귀환자의 모든 것 74화
‘분명 격투기를 배우지 않았어. 그라운딩 기술로 붙으면 돼.’
윌리엄이 상체를 숙임과 동시에 헤비급 체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마치 로켓처럼 쏘아져 나갔다.
테이크 다운!
준혁의 다리를 잡고 넘어트리기 위한 시도였다. 준혁의 하체를 잡기 위해 접근하던 윌리엄의 얼굴에 준혁의 라이트 펀치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다.
윌리엄은 코뼈와 이가 부러지며 충격에 의해 땅을 짚고 비틀거렸다.
일어서며 고개를 들었을 때 얼굴로 날아오는 준혁의 발차기가 보였다.
피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준혁의 발은 이미 윌리엄의 머리를 강타했다.
상체가 크게 기울어지면서 뒷걸음질 치는 윌리엄에게 준혁이 빠르게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총 일곱 번에 달하는 준혁의 펀치가 윌리엄의 몸통과 얼굴을 두드렸다.
윌리엄이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나더니 피로 물든 얼굴이 바닥으로 향했다.
검붉은 피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피?’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충격에 물든 표정으로 윌리엄이 얼굴을 들어 준혁을 보았다.
후드를 쓴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준혁이 윌리엄의 눈에는 거대한 벽처럼 보였다.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벽.
좌절감과 절망감이 마치 송곳처럼 가슴을 찔러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윌리엄은 다시 악에 받쳐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늘 우월하게 쓰러진 상대 혹은 마수들을 내려다보는 일밖에 없었던 자신의 일생에 귀환자라는 천재지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 가야 할 재앙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주친 재앙 앞에서, 윌리엄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쿨럭!”
준혁의 주먹이 윌리엄의 복부에 꽂혀 들어갔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윌리엄이 입 밖으로 분부기처럼 피를 뿜었다.
‘……스킬을 쓰고 싶어.’
차라리 방어 스킬을 쓸 수 있었다면, 진짜 각성자 대 각성자로서의 능력으로 붙었다면 조금 더 공격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귀환자의 공격이 자신의 방어 스킬에 무력화되는 장면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곧 그 장면은 방어 스킬이 산산조각 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윌리엄은 준혁의 주먹을 보며 결국 스킬이란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쿵.
준혁이 어퍼컷으로 턱을 올려치자 가드가 완전히 개방되면서 상체가 활짝 열렸다.
선 채로, 대(大)자 형태의 오픈이 이루어졌다.
천장을 봤던 윌리엄의 눈이 다시 정면에 선 준혁을 보았다.
팔을 뒤로 젖힌 채, 힘을 실은 준혁의 주먹은 마치 장전된 대포처럼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후드 속 준혁의 눈빛이 귀신처럼 번쩍이는 순간.
강렬한 타격음이 헌터돔에 울려 퍼졌다.
의식을 잃고 뒤로 쓰러져 나가는 거구의 윌리엄 테드.
준혁이 냉정한 눈으로 쓰러진 윌리엄을 내려다보았다.
보호 구역에 서 있던 심판들이 일제히 합을 맞춘 듯 뛰어나와 양팔을 휘저었다.
헌터대전 파이트 타임 3분 12초.
경기 종료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결판이 이루어진 순간 경기장 내에 있는 관객들이 전율이 돋을 함성을 귀환자인 준혁을 향해 온몸으로 쏟아 냈다.
- ㅁㅊ;;;;
- 갓준혁이 센 건 알고 있었지만…… 21위 윌리엄을 저렇게 압도적으로;;;
- ㄹㅇ 압도했다.
- 천지 차이네. 와.
- 그냥 사는 세계가 다른 듯.
- 이야…… 차원이 다르다 ㅋㅋㅋㅋ
- 리더보드가 아니라 따로 이름 붙여야 하는 거 아님?;;;
- 갓준혁. 말 그대로 신.
- 신과 인간의 싸움이 만들어 낸 결과지.
- 넘사벽.
- 미쳤다…… 갓준혁은 절대 못 이김.
- 그저 갓이라는 말 밖엔…….
- 폐하를 모욕한 자들을 용서하소서…….
- 헐? 저 방금 켰는데. 벌써 끝났나요?
[더 월드 라이브 시청률 역대 최대!]
[더 월드 라이브의 시청자들이 전율하고 있습니다.]
[더 월드 시청자들이 귀환자를 경이롭게 바라봅니다.]
[리더보드 21위. 윌리엄 테드를 쓰러트린 명성이 더 월드에 적용됩니다.]
[현재 누적 포인트는 1차 달성 목표를 넘어 2차 목표인 30만 포인트까지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착용 중인 액세서리의 스탯이 +5 증가합니다.]
준혁은 더 월드 라이브를 끄고 쓰러진 윌리엄을 잠시 지켜보다가 몸을 돌렸다.
더 월드 라이브의 보상은 기대 이상이었다.
* * *
눈꺼풀이 부어 있어서 눈을 뜨는 게 쉽지 않았다.
겨우 눈을 뜨고 초점을 잡았을 때, 윌리엄은 하얀 천장을 보고 있었다.
힐러들의 수준이 높다고 하더라도 마력이 묻은 펀치에 맞으면 마치 칼날에 베인 것처럼 회복이 잘되지 않는다.
물론 최상급 힐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힐러가 모든 것을 치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윌리엄이 그랬다.
최상급의 힐러들이 힐 치료를 집중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의 몸 상태는 현재 엉망진창이었다.
눈꺼풀은 찢어져 있고 부러진 코는 휘었으며 이는 4개가 빠져 있었다.
입술이 찢어진 것은 기본이며 갈비뼈 3대가 부러졌다.
내장에 가해진 충격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닌 터라 후유증이 윌리엄의 전신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였다.
윌리엄은 천장을 보며 힘겹게 웃었다.
“……더럽게 아프군.”
윌리엄이 혼잣말을 하자 근처에서 차트를 보고 있던 의료 닥터 하나가 급히 윌리엄에게 다가갔다.
“윌리엄, 정신이 드십니까?”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던 거야?”
“1시간 정도…… 입니다.”
잠을 잘 때 빼고는 의식을 잃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신이 1시간 동안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다니.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기분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어깨를 들썩이며 웃을 때마다 망치로 때려 부수는 듯한 통증이 몸 곳곳에서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실로 살인적인 펀치였다.
절대 부서지지 않는 육체일 것 같았던 이 몸은 귀환자 앞에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아주 부드러운 살과 뼈에 불과했다.
“30분 정도 후면 2차 치료가 시작될 겁니다. 지루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윌리엄이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사람이 들어왔다.
윌리엄의 매니지먼트 대표였다.
“잠시 자리 좀 비켜 주겠나?”
대표의 말에 의사가 꾸벅 인사하고 치료실을 나갔다.
“윌리엄.”
대표의 말에 윌리엄의 눈이 다시 초점을 되찾았다.
“몰랐어요. 맞는다는 게, 통증이라는 게. 이렇게 아픈 건 줄.”
윌리엄의 부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어쩝니까? 리더보드 21위. 윌리엄 테드는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었는데.”
“그 누구도 너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 넌 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 무대에 섰어. 그것도 무려 귀환자를 상대로.”
“센 척하긴 했지만 그래도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얄팍한 수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나도 놀랐다. 네 그 강한 육체에 그것도 무려 단순 체술로 이 정도의 손상을 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
“그러고 보면 그동안 참 많은 걸 누리고 살았습니다. 노력도 하지 않고. 리더보더라는 이유만으로. 돈과 쾌적한 편안함. 그리고 여자까지. 아주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어요.”
“윌리엄. 상대는 귀환자였다. 자책하지 마. 누구라도 그 앞이라면 힘을 쓰지 못했을 거다!”
“처음 느껴 봤어요. 그런 기분. 저런 괴물도 있구나. 저렇게 강할 수도 있는 거구나.”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너를 보며 했던 생각들이다, 윌리엄.”
눈물을 흘리는 윌리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그렇게 말도 안 되게 강하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렇게 강하면서. 늘 그는 나아가고 있었어요. 늘,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고요.”
“…….”
“근데 난 리더보더라는 이유만으로 놀고먹고. 사냥은 뒷전에 돈 쓰기만 바빴죠. 이번 경기도 사실 21위라는 이유로, 진짜 리더보더가 아니라는 언론의 비평만 아니었어도 제가 나서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윌리엄 테드. 넌 후회 없이 싸웠어. 그거면 된 거야.”
윌리엄이 대표에게 힘겹게 얼굴을 돌렸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대표가 복잡한 심정으로 엉망이 된 얼굴을 하고 있는 윌리엄을 보았다.
“그동안 신처럼 세상에서 군림해 왔던 리더보더들은 모두 저처럼 그에게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권세를 누렸던 모든 순간들이 무너지게 될 거라고요.”
대표는 침묵했다.
* * *
우린 귀환자의 시대를 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지는 이 한 문장이 가장 유명한 신문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헌터돔에서 치러진 헌터대전에서 귀환자님이 리더보드 21위의 윌리엄 테드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쥡니다!”
TV 뉴스에서 준혁의 승리에 대해 보도했으며.
- 윌리엄 까불다 골로 갔쥬?
- 리더보더들 전부 갓준혁을 경배해라.
- 숨어서 돈과 명예만 빨아먹던 리더보더들은 사실 정치인이나 다름없었음.
- 갓준혁을 봐라.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진짜 리더보더가 뭔지 보여 주고 있잖아.
- 세계 1위 클라스란 이런 것이다하고 보여 주는 듯.
- 리더보더라고 해서 다 같은 리더보더가 아닌 거지.
커뮤니티에서는 귀환자의 위엄에 대한 찬양이 끊이지 않았다.
온라인이 이 정도이니 오프라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전 세계에서 준혁과 줄을 잇기 위해 수많은 인사가 캐슬로 선물과 편지를 보내왔다.
팬레터만 해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탑을 쌓아 나가고 있었다.
“귀환자님. 유럽연합의 특별입찰 허가권이 도착했어요.”
매니저가 서류를 보여 주었다.
캐슬의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준혁은 지우가 보여 준 서류를 확인했다.
“추가로 이번 헌터대전을 통해 귀환자님의 대전료와 광고료 수익입니다. 여기 영수증이요.”
골드 던전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 이외에는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굉장한 액수였다.
PPV와 광고료까지 합산하면 이번 헌터대전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2조 원에 달했다.
거기에 윌리엄의 골드 던전까지 양도받았으니 가히 천문학적인 외화를 벌어들인 셈이었다.
* * *
헌터대전 이벤트를 끝내고 캐슬로 돌아온 지 일주일.
모처럼 여유로운 주말을 맞이한 날.
“귀, 귀환자님!”
준혁과 선우, 그리고 지우와 최설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이닝 룸으로 뛰어들어온 캐슬의 집사를 응시했다.
“……?”
“백호가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너무 사나워서 아무래도 귀환자님이 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기 백호가요?”
지우의 물음은 아기 백호가 사나워 봤자 얼마나 사납겠냐는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지만.
“꺄악!”
다이닝룸 밖의 거실 쪽에서 메이드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준혁의 무리는 서둘러 식탁 앞에서 일어나 거실로 갔다.
그곳에선 메이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란의 중심은 집사가 두려워했던 그 백호가 맞았다.
“크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