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73화 (73/175)

귀환자의 모든 것 73화

귀환자의 등장 음악은 영화 BGM의 거장이 만든 음악으로 극한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음악이었다.

귀환자의 등장 음악이 헌터돔에 흘러나오는 즉시, 윌리엄의 이름을 부르짖던 소리는 단숨에 사라졌다.

관객들은 일제히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함성이 준혁이 나타날 입구 쪽으로 향했다.

윌리엄 역시 갑작스레 나온 음악에 깜짝 놀라며 준혁이 나올 방향을 확 돌아봤다.

아직 준혁이 입구를 통해 등장하지도 않았음에도 귀가 얼얼할 정도의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윌리엄이 등장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반응이었다.

윌리엄은 주먹 관절을 풀면서 눈에 힘을 꽉 주고 준혁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검은색 후드를 덮어쓴, 올블랙 트레이닝복 차림의 준혁이 휘장을 걷어 내며 나타났다.

헌터돔을 무너트릴 만큼의 함성이 쏟아져 나왔으며 관객들은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준혁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리더보더 대 리더보더의 대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그 역사적인 순간이 지금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질 예정이라 관객들은 극도로 흥분하며 준혁과 윌리엄을 주시했다.

이탈리아 헌터돔의 2배에 달하는 규모로 지어진 곳인 만큼 관객들의 반응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는 가히 전쟁을 연상하게 할 정도였다.

준혁은 무대에 오르기 전, 360도 방향에 꽉 차 있는 관객석을 훑어본 후, 무대 위로 올라갔다.

준혁은 그렇게 윌리엄과 대치되는 곳에 섰다.

“헐렁해 보이는 추리닝이나 입고 와서 제대로 버티기나 하겠나? 제대로 된 방어복을 입고 왔어야지. 여긴 마수를 상대하는 던전이 아니야.”

윌리엄이 준혁을 향해 웃어 보이며 이죽거렸다.

준혁은 얼른 시작하라는 듯 사회자를 보았다.

사회자는 마이크를 들고 경기장의 함성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귀를 막아야 할 정도로 시끄럽던 헌터돔의 현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회자가 한 차례 관객석을 살펴본 후 마이크에 입을 대고 규칙에 대해 설명했다.

반칙 규정과, 주의 사항. 그리고 심판의 스탑 사인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이 모든 것은 경기를 즉시 종료시킬 수 있는 조건들이었다.

준혁과 윌리엄은 약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규칙 설명을 끝마치고 나서 사회자가 뒤로한 발자국 물러섰다.

“신호가 울리면 즉시 경기가 시작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사회자가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안전지대 위치에서 360도 방향에서 총 6명의 심판이 육각 형태의 위치를 잡으며, 두 헌터를 주시했다.

안전지대에는 힐러들 역시 긴급 상황에 대비해 준비 중이었다.

기대감이 만연해진 가운데, 관객들은 무대와 경기장의 높은 천장 쪽에 걸린 대형 모니터를 번갈아 봤다.

특수 물질로 만들어진 모니터는 더 월드와 연계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인간의 평범한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움직임을 경기장의 대형 화면을 통해 면밀히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얼굴이군. 귀환자, 넌 오늘을 계기로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게 될 것이다.”

양손을 허리에 얹은 윌리엄이 준혁을 향해 턱을 치켜들며 웃었다.

준혁은 조용히 곧 시작될 경기의 사인을 기다렸다.

리더보더의 수준은 준혁 자신이 직접 확인해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준혁은 가볍게 팔 관절을 풀고 냉정함을 갖춘 두 눈으로 윌리엄을 직시했다.

긴장감으로 휩싸인 거대한 헌터돔의 무대 중앙.

경기 시작을 알리는 두꺼운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다시금 진동할 듯 울려 퍼지는 관객의 함성 소리.

웃고 있던 윌리엄이 곧 진지해진 표정으로 준혁을 주시하며 가드를 들어 올렸다.

마법을 쓸 수 없으니, 빛의 검을 쓸 수도 없다.

순수하게 체술로 겨뤄야 하는 무대였다.

[더 월드 라이브 ON]

[스트리밍이 시작됩니다.]

- 더 월드다!

- 입장 완료!

- 아 나도 직관하고 싶다 ㅠㅠ

- 드디어 경기 시작한다.

- 기대기대!!

- 귀환자님 파이팅!

- 윌리엄 박살 냅시다.

- 창과 방패의 대결. 크.

- 저 말도 안 되는 방어력을 가진 윌리엄에게 펀치가 먹혀들까?

- 갓준혁이다. 의심하지 마라.

- 리더보더간의 헌터대전이라니. 감격스럽다.

- 귀환자님 압살 예정이요.

- 윌리엄 팬도 은근히 많네.

채팅창을 최소화시킨 준혁이 강한 눈동자로 윌리엄을 응시했다.

관객들이 목소리를 서서히 낮추고 곧 펼쳐질 경기에 집중했다.

“뭐야? 가드 안 올려? 크큭, 너 체술은 아예 기본도 모르는구나? 어설프기 짝이 없기는. 넌 생각이 짧았어. 최대한 네가 가진 위치를 이용했어야지. 넌 나 같은 베테랑을 이런 무대에서 만나면 안 됐어. 내가 널 이기면 리더보드의 순위가 바뀌는 건 알고 있나?”

“다시 말하지만, 관심 없어.”

준혁의 양팔을 아래로 늘어트린 채 말하는 걸 보며 윌리엄의 눈이 분노했다.

“날 무시한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 주마!”

윌리엄이 거대한 덩치를 앞세워 준혁을 향해 전진했다.

허리를 이용해 어깨를 흔들었다.

위빙(Weaving).

마치 과거의 유명했던 복싱선수 마이클을 보는 듯했다.

헤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우리만큼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 줬던 것처럼 윌리엄 테드 역시 민첩하게 몸놀림이었다.

“내가 진짜 세계가 뭔지 가르쳐 주마.”

작게 중얼거린 윌리엄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준혁을 향해 라이트 펀치를 뻗었다.

막아도 막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힘이 실린 주먹이었다.

‘걸렸어!’

거리상 절대로 피할 수가 없는 거리다.

윌리엄은 자신의 주먹이 최소한 방어하기 위해 올린 팔은 적중시킬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일단 펀치가 한 번 성공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자신의 주먹은 막아도 막는 펀치가 아니니까. 힘과 마력이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낸 강력함. 그 강력함이 윌리엄의 주먹 끝에 맺혀 있었다.

주먹이 준혁의 얼굴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찰나의 순간 어쩌면 윌리엄은 이 펀치가 준혁에게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 펀치 안 막고 뭐 하는……?’

머릿속으로 의문을 품은 순간.

준혁이 왼쪽 발을 윌리엄을 향해 내디디며 왼팔을 움직였다.

준혁이 가볍게 날린 잽이 윌리엄의 안면에 적중했다.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타격 소리는 거대한 헌터돔 관객들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선명했다.

관객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흘렸다.

반면 준혁의 잽에 맞은 윌리엄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얻어맞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인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윌리엄은 잽으로 인해 무게 중심이 뒤틀린 채로 엉성하게 자세가 뒤틀렸다가 겨우 자세를 다시 잡았다.

얼얼한 통증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맞은 거야? 내가?’

윌리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가 준혁을 보았다.

‘집중하자.’

윌리엄은 굳어지려는 몸을 풀면서 다시 제대로 자세를 잡고 맞은편에 서 있는 준혁을 주시했다.

‘뭐지, 이 느낌은?’

윌리엄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기분에 혼란스러웠다.

태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기분이다.

‘이 기분은 뭐야?’

윌리엄은 자신의 몸이 준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걸 자각하고서 지금 자신이 느끼는 기분의 근원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공포.

윌리엄은 준혁을 마주하고 서 있는 지금 공포를 느꼈다.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 보는 터라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조차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공포를 느낀다고? 떨어?’

헛웃음을 흘렸던 윌리엄이 이를 악물고 양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난 리더보드 21위. 무한의 탱커 윌리엄 테…….’

윌리엄이 막 전진해서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준혁의 주먹 세 방이 윌리엄에게 꽂혔다.

얼굴에 두 방, 그리고 옆구리에 한 방이었다.

상위 랭커들의 공격은 모기에 물린 것처럼 간지럽기 짝이 없었다.

윌리엄 자신은 그 어떠한 마수들의 공격에도 상처 하나 생기지 않는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를 가진 탱커였다.

‘……아파.’

얼굴이 욱신거리고 갈비뼈는 금이 간 듯 욱신거렸다.

각성한 이후로부터 단 한 번도 통증이라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통증에 대한 자극이 없다 보니 공포는 물론이고 아픔이 무엇인지 잊고 살았다.

하지만 지금 윌리엄 테드는 옆구리 쪽을 보호하며 뒷걸음질 쳤다.

통증과 더불어 공포감이 윌리엄을 쥐어 짜내듯 몰아붙이고 있었다.

* * *

“무한의 탱커라 불리던 윌리엄이 저런 표정이라니.”

선우는 TV를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형이지만 준혁의 능력은 가히 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차이를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대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각성자 중 한 명인 윌리엄 테드다.

더욱이 방어력으로는 전 리더보더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최상의 수준을 갖고 있을 남자.

그런 윌리엄이 지금 준혁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윌리엄에게선 일전의 헌터대전에서 랭커들을 상대할 때의 여유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체술 능력까지 압도라니.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선우는 TV 속 준혁을 보며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정말이지.”

현장에서 지켜보는 관객들. 그리고 더 월드를 통해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선우가 느끼는 충격만큼 준혁의 경이로움을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격투.

어쩌면 유리한 장점을 가진 윌리엄이 앞설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오직 체술만으로 리더보드 21위 무한의 탱커라 불리우는 윌리엄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고 있었다.

“귀환자 진짜 미쳤다.”

“윌리엄 테드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어.”

“귀환자가 올 라운더 스타일인 건 알고 있었지만…….”

“모든 부분에서 완벽해.”

“무결점이라니.”

“귀환자는 한계가 추정조차 안 돼.”

관객석 중에서 각성자 평론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평론가들은 준혁의 수준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최설화는 힐러진에서 홀린 듯이 준혁을 보고 있었고, 지우는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숨죽인 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헌터돔을 가득 채운 관객들 역시도 준혁의 강함에 충격에 빠진 듯 쥐 죽은 듯 고요하게 헌터대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침묵의 중심에 서서, 모든 압박과 공포에 휩싸여 있는 남자 윌리엄 테드.

‘실수였어. 귀환자에게 도전하지 말아야 했다! ……저건 괴물. 아니, 그 이상이야!’

윌리엄이 눈을 크게 뜨며 숨을 몰아쉬었다.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약한 마음이 윌리엄의 가슴을 시커멓게 물들인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였다.

지독한 후회가 생기자마자 윌리엄의 기억 속에, 21위라는 이유로 진정한 리더보더가 아니라는 오명이 따라붙은 순간들이 눈앞에 겹쳐지듯 떠올랐다.

‘난 무한의 탱커다. 절대 부러지지도 부서지지도 않아. 나를 증명할 것이다. 나를 입증할 거야.’

다시 기세를 갖고 공격을 위해 전진.

윌리엄은 최대한 신중하게 준혁의 빈틈을 찾으며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다가갔다.

잽을 던지며 진짜배기 펀치를 날리기 위해 라이트 찬스를 살폈지만, 전혀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