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71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지우는 최설화를 향해 뛰어갔다.
“여기서 인터뷰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시간이 금인데.”
최설화가 지우를 위아래로 훑었다.
“음, 다분히 사무적인 복장이네.”
“그, 그런가요?”
지우가 자신의 복장을 다시 확인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흰 셔츠에 베이지 H치마. 그 위로 브라운 코트에 브라운 구두. 누가 봐도 비즈니스를 위한 차림새였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예쁘긴 해.”
“하하, 언니도 참.”
지우가 얼굴을 붉히며 목을 긁적였다.
“그래도 이렇게 놀 순 없어. 여긴 라스베이거스고 오늘 우린 주인공이니까. 가자.”
“어디로요?”
“잔말 말고 따라와.”
지우를 변신시키기 위해 최설화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 * *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카지노는 단연 헌터돔 1층 로비에 있는 돔 카지노였다.
돔 카지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규모를 갖고 있었다.
가장 유명한 돔 카지노에 최설화와 이지우가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두 여자가 카지노에 입성하자 남자와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벌린 채 그녀들을 주시했다.
마치 천사처럼 새하얀 드레스를 타이트하고 섹시하게 입은 최설화와 새빨간 드레스를 입어 마치 왕비를 보는 듯한 힘을 풍기는 이지우는 카지노장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히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남자들의 열정적인 구애의 시선을 받으며 두 여인은 아이처럼 신나게 카지노장을 활보했다.
최설화는 게임 규칙을 설명해 주었고, 지우는 흥미롭다는 듯 게임장을 구경했다.
칵테일도 마시고 간단히 소액으로 게임도 몇 판 해 봤다.
그러는 동안 쉴 틈 없이 남자들이 두 여자를 향해 접근하곤 했다.
지우는 이렇게 적극적인 남자들이 처음엔 난감했지만 술도 조금 들어가고 최설화와 어울리다 보니 쉽게 남자를 거절하는 것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때? 재밌지?”
“완전 재밌어요!”
살짝 취기가 오른 지우가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하하, 그렇지만 도박에 너무 빠지면 안 되니까 그만 나가자.”
“더 하고 싶은데.”
최설화가 나가기 싫어하는 지우의 등을 떠밀며 외투를 챙겨 카지노장을 나왔다.
기분 좋게 거리로 나와 따듯한 차를 마시며 거리를 구경하던 중 지우는 호텔 주변에 머무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모두 헌터돔 호텔의 바리케이드 밖에 모여 야외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귀환자님의 이름 담긴 피켓을 들고 춤을 추는 사람들.
술을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원래 이렇게 거리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도 하나요?”
지우가 그들을 보며 말하자 최설화가 웃음 지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모두 귀환자님을 한 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거지.”
지우는 목에 걸고 있던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찰칵!
지우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짤막하게 글을 남겼다.
-귀환자님이 묵고 있는 호텔 앞 풍경
그러자 순식간에 하트 숫자가 올라가며 댓글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 역시 매니저 누나 사진 너무 잘 찍어요!
- 사람들 신났네 ㅎㅎ
- 아아, 나도 저기 있고 싶다 ㅠ.ㅠ
- 헌터대전 직관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 사진 멋져용!!♡♡
- 저 라스베이거스인데 매니저 누나 봤음. 완전 인형같던데 ㅋㅋ 힐러님도 말도 안 되게 예쁘고.
-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물 밖을 파티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갓준혁 클라쓰~!
댓글에 웃고 있는 지우를 보며 최설화가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넌 놀러 나와서도 그렇게 일이 하고 싶니?”
“미안해요, 언니. 저도 모르게 그만.”
“누가 워커홀릭 아니랄까 봐. 얼른 가자. 저기 맛있는 거 판단 말이야.”
지우는 최설화의 손에 이끌려 노점상에서 파는 음식을 먹기 위해 뛰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라스베이거스의 거리를 지우는 최설화와 함께 웃으며 뛰었다.
* * *
기자회견 당일의 해가 밝게 떠올랐다.
윌리엄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트레이닝에 열중이었다.
‘단순 격투술에서는 속도나 힘보다 단단한 육체와 격투 경험이 훨씬 더 중요해.’
윌리엄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특수 던전 물질로 만들어진 샌드백을 윌리엄이 주먹으로 두드릴 때마다 대포 소리가 났다.
차가 들이받아도 살짝 흔들릴 정도에 불과한 게 윌리엄이 치고 있는 특수 샌드백이었다.
체육관이 진동 할 정도로 강한 힘이 샌드백을 난사하고 있었다.
“윌리엄, 말했던 대로 적당한 스파링 상대를 데려왔어.”
윌리엄이 주먹을 멈추고 열이 오른 몸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젊은 각성자 한 명이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체술 특성의 각성자야. 실력 있는 신인이지.”
“링으로 올려 보내.”
윌리엄이 그렇게 말하곤 먼저 링으로 올라갔다.
스파링 상대는 어렵게 구한 각성자로, 이제 막 헌터대전의 출전을 앞두고 있는 상위 랭커의 잠재력을 가진 자였다.
윌리엄이 코너에 기댄 채로, 글러브를 끼면서 스파링 파트너를 노려봤다.
“죽지 않을 거고 힐러진도 준비되어 있어.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연습이 될 정도면 돼.”
스파링 멤버인 청년은 그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늘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아무리 상대가 리더보더라 하더라도, 청년은 기죽지 않고 전력을 다할 마음으로 링 위에 섰다.
글러브를 끼고, 마우스피스와 헤드기어까지 착용했다.
마음 같아선 다 갖다 버리고 한번 붙어 보고 싶었지만 윌리엄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그 마음은 삭혀야 했다.
“1라운드 4분이고. 윌리엄, 적당히 조절해야 해. 알지?”
윌리엄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했다.
신인을 데려온 관장이 스파링 스타트를 알렸다.
윌리엄이 거구의 몸으로 청년을 향해 가드를 올리면서 접근했다.
청년은 마치 산이 움직이는 듯한 중압감을 느꼈다.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거대한 압박감이 청년의 전신을 휘어 감았다.
전력으로 덤벼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은 단숨에 사라졌다.
생존.
살고 싶다는 감정이 가슴이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정신 차리고 덤벼라, 꼬마야.”
윌리엄이 사자 같은 눈으로 청년을 보며 말했다.
청년은 마우스피스를 꽉 물며 윌리엄을 향해 전진했다.
청년 역시 체술 특성의 각성자로, 스피드와 파워를 갖춘 각성자였다.
마력을 실은 주먹이 빠른 속도로 윌리엄을 향해 뻗어져 나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헤비급인 윌리엄이 민첩한 속도로 어깨를 흔들며 청년의 공격을 피해 냈다.
단순히 헤비급 방어력으로 펀치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닌, 민첩함으로도 미들급의 빠른 속도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내고 있었다.
차원이 다른 수준임을 직감한 순간 윌리엄의 주먹이 청년의 갈비뼈에 꽂혀 들어갔다.
단 한 방의 공격에 청년이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뜨며 마우스피스가 입 밖으로 툭 삐져나왔다.
이내 무릎을 꿇고 엎어진 청년이 거품을 문 채로 꿈틀거렸다.
“빌어먹을, 연습이 될 리가 없지.”
윌리엄이 링 위에서 내려오며 손에 끼고 있던 가장 무거운 무게의 글러브를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기자회견까지 얼마나 남았어?”
“4시간 정도입니다. 샤워하시고, 옷 갈아입으신 후에 출발하면 될 것 같습니다.”
매니저의 말을 듣고, 윌리엄은 귀환자를 떠올렸다.
리더보드 랭크 1위의 각성자.
“쳇!”
불꽃같은 눈동자로 윌리엄이 샌드백을 돌아보며 주먹을 내뻗었다.
폭탄이 터지는 급의 소리와 함께 특수 물질로 만들어진 샌드백이 터져 나갔다.
찢어진 천과 특수 물질이 뿌연 연기를 뿌리며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관장이 아연실색하며 망가진 샌드백을 쳐다봤다.
“대체 어떤 인간이 마나 샌드백을 터트려.”
관장의 황당한 불만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윌리엄은 이미 각성자 체육관을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신인 상태는?”
“힐 치료가 잘 먹히지 않습니다.”
“살살 하라니까. 젠장! 응급실로 보내게 구조대 불러 얼른!”
윌리엄과 스파링했던 청년은 여전히 링 위에서, 힐 치료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었다.
* * *
기자회견은 헌터돔 내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으며 방송국이나 기자. 그리고 관계자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준혁은 굳이 미리 준비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시간에 맞춰 기자회견까지 20분 정도 남았을 때 준혁은 호텔 방에서 나왔다.
준혁은 수트 차림으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준혁이 나오기를 고대한 사람들이 바리케이드 밖에서 피켓을 들며 준혁을 향해 환호했다.
귓전을 때리는 함성.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 몇 분 걸리지 않아 헌터돔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준혁은 걸어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우가 자신을 기다린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얘기를 들어서였다.
일종의 팬 서비스 차원이었다.
준혁이 지나갈 때마다 팬들은 열광적으로 준혁의 이름을 연호했다.
엄청난 인파의 시선을 받으며 호텔을 나와 준혁은 헌터돔의 건물 입구 앞까지 이르렀다.
‘멋진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지어진 헌터돔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건물의 규모도 규모였지만 벽면 전체가 예술적인 형태로 조명으로 뿜어내는 감각이 대단했다.
경기 당일, 콜로세움 형태로 만들어진 이 건축 형태는 360도 방향으로 불빛을 뿜어내게 된다.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 형태의 웅장함과 예술성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다.
준혁은 잠시 건물을 구경하곤 기자회견을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를 받아 기자회견장에 도착하자 이미 방송국과 기자들이 준비해 있었다.
기자회견은 사회자의 진행으로 실시간 생방송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지우가 준혁의 보조로 붙었고, 최설화는 잠든 백호를 데리고 회견장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사회자가 먼저 시간에 맞춰 생방송을 시작했다.
그가 등장을 알리면 준혁과 윌리엄이 나갈 예정이었다.
준혁은 이미 도착해 있었지만, 윌리엄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방송 스케줄 상 시간에 맞춰 시작을 해야 하기에 사회자가 무대에 서서 먼저 방송을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각성자를 가리기 위해 탄생한 헌터대전. 무려, 리더보드 랭크 1위인 귀환자와 윌리엄 테드의 대전이 성상 되었습니다. 이 대결은 전 세계인들의 관심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죠!”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윌리엄이 도착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
“아무래도 윌리엄이 조금 늦나 봐요.”
지우의 말에 준혁은 괜찮다고 눈짓했다.
사회자가 귀에 낀 이어폰을 통해 윌리엄이 곧 도착한다는 정보를 전해 듣고 준혁부터 기자회견장에 등장시키기로 결정했다.
“소개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 귀환자 한준혁입니다!”
준혁이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방송 카메라가 준혁을 비추고 카메라 불빛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