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70화 (70/175)

귀환자의 모든 것 70화

“카지노에 가시려고요?”

“당연하지. 라스베이거스잖아.”

미국 서부 네바다주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

아름다운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잭팟을 꿈꾸는 화려함의 끝판왕.

라스베이거스는 본래 유흥의 도시로써 도박과 호텔 사업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그 화려함에 헌터돔이 더해졌다.

라스베이거스에 어울리게 헌터돔의 건축은 전 세계 헌터돔 중 가장 화려하고 그 규모가 큰 곳이었다.

“내가 알려 줄게. 카지노의 매력을.”

최설화의 눈에는 마치 달러 표시가 새겨져 있는 듯했다.

“죄송해요. 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럼 구경만 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을 테니까.”

잠시 고민한 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구경은 괜찮을 것 같아요.”

* * *

준혁의 무리가 탄 전용기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했다.

지우가 메이크업과 헤어를 세팅해 주는 동안 최설화는 준혁에게 분당 천만 원짜리의 힐을 써 주었다.

수면 부족으로 조금 컨디션이 나빴었던 준혁의 외모는 최설화의 마법 힐에 의해 완벽한 컨디션으로 회복되어 있었다.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귀환자님.”

최설화가 홀린 듯이 준혁을 보며 말했다.

준혁이 재킷을 걸치며 계단을 타고 전용기에서 내렸다.

준혁을 따라 지우와 최설화가 준혁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공항 입구에는 준혁을 촬영하기 위해 미국의 기자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리 구해 놓은 경호원들이 준혁의 이동하는 길을 막지 못하도록 하는 사이 기자들은 필사적으로 준혁을 촬영하기 위해 어떻게든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의 집중 세례를 받으며 공항 밖으로 나온 준혁이 하늘을 잠시 올려다봤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날씨를 확인하고서 준혁은 일행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호텔로 출발했다.

리무진이 사라질 때까지 기자들의 카메라 불빛은 멈추지 않았다.

차량이 이동하는 동안 도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거나 손을 흔들었다.

귀환자를 보기 위해 현재 라스베이거스로 유입되는 인구는 역대급이었다.

평소 여유로웠던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두 귀환자인 준혁을 보기 위해서였다.

“엄청난 인파네요.”

지우가 창밖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리 귀환자님 정도면 당연한 결과지. 참 귀환자님!”

최설화의 부름에 준혁은 그녀를 보았다.

“오늘 밤에 지우랑 데이트 좀 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실 거죠? 지우가 해외에 안 가봐서 궁금한 게 많은 것 같다고 해서요.”

넋 놓고 거리를 보던 지우가 깜짝 놀라며 준혁을 보았다.

“편하게 구경해. 어차피 내일 기자회견까지는 일정이 없으니까.”

지우는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20대 초반에 라스베이거스에 왔으니 마음이 뜨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쉬는 것도 능력이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지우는 너무 빠지지 말고 적당히 구경만 하자는 마음으로 다시 거리를 봤다.

건물과 가게의 불빛은 다시 봐도 정신이 쏙 빠질 만큼 화려했다.

지우는 혹여나 감탄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최설화는 그런 지우를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며 웃음 지었다.

준혁의 무리가 탄 리무진 차량은 공항부터 숙소로 잡은 헌터돔 옆의 호텔까지 쭉 바리케이드 친 경호 헌터의 보호 아래에서 이동했다.

그 덕분에 정체 없이 쉽게 호텔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 직원이 모두 로비 입구에 마중 나와 있었고 준혁이 차에서 내리자 호텔 내에는 준혁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가 귀가 아플 정도로 함성을 질렀다.

“모두 귀환자님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에요.”

지우가 미소 지은 얼굴로 사방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호텔 내부뿐만이 아니라 준혁을 보기 위해 호텔 밖으로도 엄청난 인파가 개미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에 답해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우의 말에 준혁은 가볍게 손을 들어 그들의 환호에 답했다. 그러자 땅이 울릴 정도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저희 헌터돔 호텔에 방문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호텔 앞에 이르자 헌터돔 호텔의 사장이 직접 마중 나와 있었다.

준혁은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인터뷰 예정이 9시이니 2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다 같이 식사를 하기로 하고 준혁은 먼저 객실로 올라갔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식당으로 내려온 준혁은 텅 비어 있는 가게를 보고 대충 자리에 앉았다.

지우와 최설화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먼저 식사를 주문했다.

그때 지우와 최설화가 부랴부랴 식당 안으로 달려들어 오는 게 보였다.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않은 모습들이었다.

“왜 그렇게 급하게 내려와?”

준혁이 이상하다는 듯 보자 지우가 어색하게 웃었고 최설화가 준혁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귀환자님이 혼자 식사하게 둘 수는 없죠.”

최설화의 말에 준혁은 턱짓으로 지우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좁아.”

최설화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맞은편에 앉았다.

“난 주문했으니까. 주문들 해. 지우는 밥 먹고 인터뷰 준비하고.”

“네, 귀환자님.”

지우가 생긋 웃으며 답했다.

준혁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로비 너머의 입구를 봤다.

이미 호텔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번쩍이는 카메라 불빛과 사람들이 빠르게 오가는 게 보였다.

“인터뷰 끝나면 바로 나가는 거야. 알았지?”

놀 생각을 하고 있는 두 여자를 보면서 준혁은 마음이 편했다.

최소한 최설화가 있다면 사건 사고는 없을 테니까.

특성 계열이 힐러이긴 해도 그녀는 S급이었다.

최상급 힐러는 평범한 마법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레스토랑에서 준혁의 메뉴로 나온 건 스테이크였다.

최근 어비스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별로 식욕은 없었지만 인간의 육체를 가진 만큼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배는 적당히 채워 둬야 했다.

위스키를 언더락으로 한 잔 주문하고 나이프로 고기를 썰어 먹는 사이 두 사람의 음식도 테이블로 올라왔다.

“인터뷰 있다고 했었지? 누가 진행하는 거야?”

“켈리 그레이스라고. 꽤 유명한 기자 출신 방송인이에요. 호텔로 들어오기 전에 인터뷰 질문지를 받았는데 식사 끝나면 드릴게요.”

“켈리? 여자네?”

최설화가 질투 어린 눈으로 지우를 힐끗 보았다.

지우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 *

헤어와 메이크업. 그리고 블랙수트.

인터뷰 준비를 끝낸 준혁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인터뷰는 로비 우측에 위치한 스튜디오 룸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준비를 끝마치고 잔뜩 긴장한 채, 준혁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방송국 사람들은 문이 열리고 준혁이 나타나자 모두 얼어붙거나 마른침을 삼켰다.

실제로 가까이서 준혁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준혁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자 지나친 아우라에 숨이 막히는 듯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중 오늘의 인터뷰를 맡은 베테랑 방송인인 켈리 그레이스가 용기를 내서 준혁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켈리 그레이스입니다.”

그녀가 악수를 청했다.

준혁이 손을 맞잡자 켈리 그레이스는 목이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벌게졌다.

얼굴은 화장 때문에 가릴 수 있었지만, 목은 가릴 수 없었던 것이다.

몸을 약하게 떨면서 얼굴이 굳어 있는 걸 보고 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아요?”

“괘, 괜찮아요! 여기 앉으시죠.”

켈리가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의자를 가리켰다.

준혁이 자리에 앉고,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켈리가 영상 카메라의 준비를 확인한 후, 곧 인터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귀환자님!”

“네, 안녕하세요.”

“실물로 처음 뵈니까 떨려서 너무 당황했네요.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는지. 손까지 이렇게 벌벌 떨었다니까요.”

켈리가 큐 카드로 입을 가리며 깔깔 웃었다가 준혁의 무반응에 급하게 웃음을 멈추며 인터뷰를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내일 윌리엄과의 헌터대전 경기로 기자회견을 갖게 되는데. 내일 있을 기자회견, 그리고 윌리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기자회견이라고 해서 평소랑 별로 다를 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윌리엄은 미국의 각성자로 제게 헌터대전을 통해 뭔가를 증명하고 싶어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윌리엄은 현재 리더보더 2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굉장히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관심 없습니다.”

준혁이 인터뷰를 맡은 켈리 그레이스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 단도직입적인 포스에 켈리는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린 채 굳었다가 방송인 걸 깨닫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켈리 그레이스는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 *

“Son of bitch!”

실시간 생방송 인터뷰로 진행되고 있는 켈리의 인터뷰를 TV로 보던 윌리엄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일어났다.

매니저가 급하게 윌리엄의 팔을 잡았다.

“진정해, 윌리엄.”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저 망할 자식이 말하는 것 좀 보라고. 방소에서 날 완전히 떨거지 취급하고 있잖아!”

“흥분하면 안 돼. 내일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먹여 주면 되는 거야.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그렇지?”

“죽여 버릴 거야, 저 개자식.”

윌리엄이 의자를 걷어차자 의자가 산산조각이 났다.

매니저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을 때 TV 화면 속에서 켈리가 질문을 이었다.

“격투전이라면 윌리엄 쪽이 승산이 높을 거라고 예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순위 차이가 많이 나긴 해도 리더보드 순위에 있는 각성자이기도 하니까요. 이에 대해선 어떤 생각이신가요?”

“예, 별생각 없습니다.”

준혁이 전혀 흥미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윌리엄이 이성을 잃고 TV를 뜯어 집어던졌다.

매니저는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며 방을 나갔다.

“관심이 없다고? 이 윌리엄한테?”

낄낄 웃던 윌리엄이 온몸의 근육을 꿈틀거렸다.

“내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려 주지.”

윌리엄의 주먹이 벽을 뚫었다.

매니저는 못 말린다는 듯 몰래 얼굴을 가로저었다.

* * *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지우는 매니저로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준혁의 방송은 마치 외줄을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준혁에 대한 전 세계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는 여전히 뜨겁지만 작은 일 하나로도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게 사람이었다.

끝까지 열성적인 지지와 인기로 최고의 자리에 있도록 보좌해야 하는 게 지우는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이라 생각했다.

인터뷰한 지 이제 30분.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끝나자 지우는 그제야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방송국 관계자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준혁과 함께 로비로 나왔다.

“자유시간이야.”

준혁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말했다.

“네?”

엘리베이터 숫자를 올려다보던 준혁이 옆에 선 지우를 보았다가 그녀의 등 뒤로 턱짓했다.

그곳엔, S급 힐러 최설화가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일 생각이 날 정도로 재밌게 놀다 와.”

준혁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타면서 말했다.

지우가 잠시 놀란 표정으로 준혁을 보다가 이내 미소 지었다.

“네, 귀환자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