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68화
“나 윌리엄은 귀환자처럼 세계 랭커들을 상대로 헌터대전을 치를 것을 발표합니다.”
TV에서 리더보드 21위 윌리엄 테드가 기자들을 모아 놓고 파겨적인 행보를 발표했다.
선우는 테이블에 앉아 과일을 먹으면서 윌리엄의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그동안 리더보더들은 전혀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요. 갑자기 대중 앞에 나서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기자 한 명이 질문했다.
윌리엄이 기자를 보며 웃음 지었다.
“그동안 리더보더는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건 곧 큰 분쟁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고 무엇보다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최상위의 헌터라는 건 이미 시스템이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요.”
기자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윌리엄을 주시했다.
“하지만 귀환자가 이 고요하고 평화롭던 불문율을 깨트렸습니다.”
귀환자를 향한 도발적인 말에 노트북을 두드리는 기자들의 손이 빨라졌다.
“전 세계 사람들은 리더보더가 얼마나 위대한 강함을 지녔는지 몰랐을 겁니다. 우린 증명할 필요도 없이 강했으니까. 하지만 귀환자로 인해 증명을 원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죠. 그러니 보여 주고자 합니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선우가 피식 웃었다.
‘예상대로군.’
선우는 그들의 행보를 알고 있었던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TV를 응시했다.
“나 윌리엄이 먼저 세계 최상위 랭커들 5인을 상대로 헌터대전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나고 나면, 증명을 마친 셈이니 귀환자는 날 만나야 할 겁니다.”
장내에 윌리엄의 강한 기운이 퍼져 나오자 기자들이 숨을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리더보더는 격이 다르다는 걸. 그리고 귀환자와 맞설 만큼의 힘이 있다는 걸. 보여 주겠다는 겁니다.”
“설마 그 의미는 귀환자와 헌터대전의 경기를 진행하겠다는 것으로 봐도 되는 겁니까?”
기자가 상기되어 물었다.
“더 월드의 시스템은 구조적으로 마력 수치에 기반하여 순위를 집계합니다. 하지만 오래전 더 월드 초창기 시절 리더보더간의 세력전이 있었습니다. 기밀 사항이라 그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말씀드리지 못하나.”
윌리엄의 눈에서 도전적인 패기가 소용돌이쳤다.
“리더보드의 순위가 그 강함의 척도를 규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기자회견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윌리엄의 말은 그동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상식을 파괴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랭킹 21위와 1위의 격차는 메우기 어려울 텐데요.”
윌리엄이 맹수 같은 눈빛으로 기자를 노려보며 일어섰다.
거구의 윌리엄이 보내는 눈빛에 기자는 숨도 쉬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리더보드 순위의 격변이 시작될 거라는 것만 예고해 드리죠. 귀환자는 리더보더에게 증명해야 할 겁니다. 지금 그 자리가 본인의 자리가 맞는지.”
리더보더 21위 윌리엄 테드가 기자회견장에서 퇴장했다.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
선우는 TV에서 퇴장하는 윌리엄의 얼굴을 비추는 화면을 보면서 빙글 웃었다.
* * *
“귀환자님, 한선우 협회장님께서 이걸 좀 확인해 보고 전화 달라고 하셨어요.”
준혁은 소파에서 매니저 지우가 준 테블릿을 받았다.
테블릿에는 미국의 리더보더 헌터 윌리엄 테드에 대한 뉴스가 나와 있었다.
헌터대전으로 리더보더의 실력을 증명하고 귀환자에게 도전하겠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준혁은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라리고 있었던 듯 통화는 곧바로 연결되었다.
“윌리엄 테드? 뭐야 이건?”
- 형에게 도전하겠다는 거야. 헌터돔에서. 형 때문에 20위권 아래의 리더보더들의 평가가 박해지고 있거든.
“매니저가 나한테 이걸 보여 줬다는 건…….”
- 아마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되겠지. 리더보더끼리의 헌터대전은 역사상 전무후무했으니까. 애초에 형이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리더보더는 워낙 비밀스러웠거든.
“그동안 리더보더가 대중 앞에 나서지 않은 이유는?”
- 간단해. 별로 이익이 되지 않으니까. 원래 더 월드 스트리밍 라이브의 시스템 보상은 초창기 이후로 가치가 떨어졌어. 더욱이 형처럼 같은 리더보더라고 해도 좋은 보상을 받을 수도 없었을테니.
더 월드 라이브를 통해 헌터대전을 진행하게 된다면 시스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시스템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도록 유도하듯이 보상을 주고 있다.
명예가 곧 보상과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블랙 던전이 열리기 전까지는 시일이 꽤 많이 남아 있는 상황.
그리고 이번 건은 어쩌면 단순히 시스템 보상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가져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 형에겐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이야. 어떻게 생각해?
“주체자는 지오반니겠지?”
- 맞아. 일전에 형에게 손해 봤던 적자를 메우고 싶을거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있어.
“말해 봐.”
- 어차피 지오반니는 우리 제안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
“그렇지.”
- 형이 말했었지? 던전이 재설정될 거라고. 이미 일전 레이드에서 사실상 징후도 보였고.
“그 말은…….”
- 맞아. 이번 기회에 유럽연합의 패권 속으로 들어가야겠어.
준혁이 웃었다.
“전엔 불리한 싸움이니 뭐니 걱정이 많더니.”
- 이젠 형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
“너무 태도 급변한 거 아니냐?”
- 흠흠, 그럼 진행할게?
“부탁한다.”
준혁은 전화를 끊으며 웃었다.
* * *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윌리엄 테드의 헌터대전 이벤트.
윌리엄은 준혁과의 경기에 앞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다섯 명의 랭커들과 헌터대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준혁은 현재 던전을 순회 중이었고 윌리엄은 사전 경기를 치르기 위해 헌터돔에 막 도착한 상태였다.
티켓은 이미 매진이었고 그는 메인 매치로 예정되어 있었다.
귀환자와의 대립 이미지를 이미 만들어 둔 상태에서 시작된 헌터대전이었기 때문에 도전자 입장인 윌리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 역시도 꽤 폭발적이었다.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으나 윌리엄에 대한 응원 역시도 적지 않았다.
리더보더들은 활동과 동시에 팬덤과 관심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국가의 강력한 전력이라 해당 국가는 물론 같은 계열의 헌터들.
그리고 윌리엄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의 응원 역시도 꽤 강하게 확장되고 있는 중이었다.
온 뉴스를 도배했던 귀환자 중심에서 새로운 그림이 펼쳐지자 헌터대전은 관람하고자 하는 시청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인 성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귀환자와 윌리엄과의 경기표를 암표로 사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을 지경이었다.
메인 매치를 앞둔 윌리엄의 대기실.
TV에서는 메인 매치를 앞두고 치르는 헌터대전의 경기에서 평소와 다른 열기가 들끓고 있었다.
이 반응은 순전히 윌리엄을 향한 기대였다.
“피라미들이나 설 법한 무대에 내가 올라가야 한다니. 리더보더 신세가 말이 아니구만.”
윌리엄이 허리에 손을 얹은 채 헛웃음을 흘렸다.
“윌리엄 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오고 있어요.”
윌리엄이 콧방귀를 꼈다.
“내가 무대에 서면 알게 되겠지. 귀환자만 리더보더가 아니란 사실을. 그리고 리더보더 순위에 대한 상식 역시도 깨질 거야.”
“경기장은 물론 경기를 시청하는 전 세계 사람들과 헌터들 모두 오늘 윌리엄 님의 기량에 감탄할 겁니다.”
윌리엄은 씹고 있던 껌을 툭 뱉고서 티셔츠를 벗은 다음 반바지에 운동화만 신은 채로 스트레칭을 했다.
거울에 비친 윌리엄의 근육은 마치 다이아몬드를 깎아 만든 것처럼 보였다.
역삼각형의 엄청난 근육을 거울을 통해 관람하듯이 보며 스트레칭을 하며 윌리엄이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리더보더 윌리엄 vs 하이 랭커들.>
이제 슬슬 그 메인 매치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헌터돔 직원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이제 출전하셔야 합니다.”
윌리엄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기실 밖으로 성큼 나섰다.
대기실은 방음이 잘 되어 있었지만, 대기실과 떨어져 경기장과 가까운 복도에서부터 경기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함성이 들려왔다.
“기분 좋군. 오랜만에 힘을 쓰려니 말이야.”
윌리엄이 자신의 주먹을 보며 히죽 웃었다.
“경기 룰에 대해서는 숙지하고 계시지요?”
직원 한 명이 뛰어와 물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방어 불능 상태의 치명상이 될 수 있는 공격은 가급적 삼가 주시길 바라며, 심판의 스탑에 즉각 반응해 주시길 바랍니다.”
“알아서 잘할 거니까 걱정은 넣어 둬.”
윌리엄이 직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음 지었다.
직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경기장 입구 쪽에 대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윌리엄은 자신의 목과 어깨를 주물럭거리면서 자신만만한 미소를 입가에 걸었다.
오늘 자신의 상대는 유럽연합 소속의 랭커들이었다.
“랭커들도 꽤 높은 대전료를 받고 이번 무대에 선다지?”
매니저가 크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습니다, 마스터.”
“감히 나와 무대에 선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윌리엄이 주먹 관절을 풀 때, 직원이 출전하라고 신호했다.
윌리엄은 새빨간 휘장을 거칠게 걷어 내며 헌터대전의 무대를 향해 출발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경기장으로 가는 길.
귀가 먹을 것 같은 함성 소리가 마치 우레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저 멀리 무대를 비추는 대형 화면에 윌리엄의 모습이 멋지게 비쳐지고 있었다.
윌리엄의 등장을 알리는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윌리엄은 관객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에 화답하며 무대로 올라갔다.
무대에는 5명의 랭커들이 조용히 윌리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기가 식지 않는 관객들의 함성 소리 속에서, 윌리엄은 5명의 랭커들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꼬마들, 응급실에 실려 갈 준비는 됐나?”
윌리엄이 히죽 웃으며 턱을 든 채 말했다.
랭커들이 비웃음을 던졌다.
“자기가 무슨 귀환자라도 되는 줄 아나? 웃기지도 않네.”
“그 주둥이를 뭉개 주마.”
“왜, 귀환자처럼 8명이랑 싸우지?”
“귀환자가 이겼다고 자기도 이길 거라고 생각하다니.”
“리더보더라고 우쭐대기는! 응급실로 가는 건 너야!”
윌리엄이 눈가를 짚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정말이지. 이 가소롭기 짝이 없는 오만한 목소리를 보라.”
윌리엄은 양팔을 펼친 채 끝을 모를 정도로 높은 헌터돔의 천장을 보며 웃음 지었다.
“아카이브 소속 대표이자 리더보더 21위에 윌리엄 테드. 그리고 5인의 랭커팀과의 대결이 지금 바로 시작됩니다!”
소개와 광고 시간이 끝나고 경기를 알리는 사회자의 커다란 목소리에 이어, 게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숨겨진 리더보더들의 수준을 알려 주지.”
마치 날 것처럼 팔을 펼친 채 우람한 육체를 자랑하며 공기를 크게 들이마신 윌리엄이 랭커들을 보며 히쭉 미소 지었다.
윌리엄의 두 눈은 마치 핏빛처럼 붉게 변해 있었다.
관객들의 함성이 공기를 찢을 듯이 무대를 향해 포탄처럼 쏘아졌다.
“들어와라.”
여전히 무방비 상태라는 걸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윌리엄이 어깨 넓이 정도로 다리를 벌리고, 양팔을 펼친 채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