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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64화 (64/175)

귀환자의 모든 것 64화

“빨리 움직여.”

왜소한 체구의 천계인을 따라가면서 준혁이 강압적으로 말했다.

“예, 예!”

천계인이 속도를 올렸다.

그를 따라가기를 약 10여 분, 마치 은행에서나 쓸 법한 금고처럼 생긴 문이 나타났다.

천계인은 달달 떨리는 손으로 가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짤그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기다란 은색 열쇠를 넣고 돌리자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동그란 문을 열고 나서 천계인이 먼저 동그란 문틈을 기어서 올라갔다.

준혁은 가볍게 탁 뛰어 좁고 동그란 통로를 통과했다.

준혁은 상체를 일으키며 내부를 살펴보았다.

마나석과 연결된 기계 줄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천장이 높은 홀은 붉은 조명 아래 컴퓨터 장비와 같은 기계 장치들로 가득했다.

천계인을 따라가다 보니 벽 끝 무렵에 포탈로 추정되는 곳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만 한 포탈 기계가 있었다

붉은색의 마나석이 마치 심장처럼 박혀 있었고,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심장처럼 붉은빛을 반짝였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마호르가 말했던 포탈임을 인증하는 특징이었던 세 개의 점이 보이지 않았다.

“쥬레타.”

준혁이 천계인을 돌아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초조하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천계인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깨를 떨었다.

“제 이름을 어찌……?!”

마을에서 마호르가 그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는 걸 쥬레타가 알 리 없었다.

“거짓말을 하다니. 배짱이 좋다고 해야 할지,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칭찬이야.”

준혁이 연구소 소장이자 과학자인 쥬레타에게 걸어갔다.

“히이익!”

쥬레타가 지레 겁먹고 뒤로 나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고서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헬바인의 장검이 쥬레타의 허벅지를 뚫고 들어갔다.

준혁이 그대로 칼자루를 반 바퀴 돌렸다.

“아아아아아아악!”

쥬레타가 연구실이 떠나갈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쥬레타. 네 내장이 배 밖으로 나오면 넌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 있을까? 네 두 눈으로 보고 싶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용서를……!”

준혁이 장검을 뽑았다.

쥬레타의 허벅지에서 피가 푸슉푸슉 솟았다.

“끄허어어어억!”

쥬레타는 상처 부위를 필사적으로 틀어막았다.

통증보다 공포가 더 심했던지 쥬레타는 마치 드릴처럼 엉덩이를 들썩일 정도로 몸을 떨었다.

“넌 그렇게 겁도 많은 놈이 괴물은 어떻게 만드는 거냐?”

준혁이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 진짜 포탈로 안내하겠습니다. 약속해 주십시오. 목숨만은 살려 줄 거라고.”

쥬레타의 눈은 생을 갈망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필사의 의지가 두 눈에 횃불처럼 박혀 있었다.

“살려 준다니까. 약속했잖아. 그러니 너도 약속을 지켜.”

“더, 더 이상 저를 공격하면 안 됩니다. 포탈을 타고 나서도 포탈이 온전히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건 저뿐이니까요.”

“그래. 널 믿을 수밖에 없겠네.”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인 쥬레타가 자신의 상처에 포션을 뿌리더니 다리를 질질 끌고서 앞장섰다.

그는 커다란 커튼을 쳤다.

그러자 숨겨져 있던 문이 드러났다.

준혁은 쥬레타와 함께 그 문을 통과하자 진짜 포탈이 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마호르가 말했던 세 개의 검은 점이 마치 거미의 눈처럼 포탈에 박혀 있었다.

“기계를 가동하려면 포탈에 탑승하셔야 합니다.”

수백 개의 전깃줄이 마나석과 연결되어 본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커다란 스크린 화면 뒤로 푸른빛을 내는 기체가 있었다.

포탈을 생성하는 기체였다.

기체 안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것 같은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수호성으로 직행할 수 있는 진짜 포탈이었다.

“쥬레타.”

“왜 그러십니까? 이방인이시여?”

쥬레타가 불안에 찌든 얼굴로 물었다.

포탈을 살펴보던 준혁이 쥬레타에게 걸어가며 의식을 사용해 헬바인의 장검을 큐브 속으로 돌려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쥬레타가 참았던 호흡을 편하게 내쉬며 웃음 지었다.

그때, 준혁이 주먹으로 쥬레타의 안면을 후려쳤다.

코가 부러지고 이가 7개가 뭉텅 빠졌다.

한 번 더 때리자 광대는 함몰됐다.

“크, 크흑! 크헉! 야, 약속이……! 이러면 온전히 포탈을……!”

준혁이 다시 주먹을 들었다.

한 대 더 때리자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할 정도로 오른쪽 아래턱이 주저앉았다.

“끄. 끄륵!”

“쥬레타, 내가 마계에서 쓴 포탈만 해도 수천 종이 넘는다. 악마들도 마나석과 연결된 기계 문명을 이용해 포탈을 만들었지. 지금 너희들이 쓰는 포탈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쥬레타가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 충격에 물든 눈동자로 준혁을 올려다봤다.

믿지 못하겠다는 눈동자였다.

“예언가를 기억하나? 그런 사람이 있었다던데.”

쥬레타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냥 그렇다고. 나도 들은 얘기야.”

준혁의 주먹이 쥬레타의 머리를 터트렸다.

퍽! 하고 벽에 피와 뇌수가 튀었다.

준혁은 몸을 홱 돌려 곧장 모니터 앞으로 걸어갔다.

모니터를 만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계에서도 이런 마나석과 연결된 기계 장치를 다뤄본 적이 많아서였다.

“이런 기능도 있구나.”

연구소 폭파 버튼을 누른 후, 포탈 가동 버튼도 뒤이어 눌렀다.

[5분 후, 연구소가 폭파됩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포탈 속으로 걸어간 준혁이 자리를 잡고 섰다.

마법진이 푸른빛을 쏘면서, 작은 마나 입자들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그와 포탈에 서 있던 준혁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혼으로 있을 때 탄 포탈과, 육체를 가지고 탄 포탈은 그 느낌이 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특별할 건 없었다.

그 정도로 익숙하게 탔던 포탈이니까.

단순히 감각으로 마나가 느껴지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포탈이 가동되었습니다.]

[수호성으로 이동합니다.]

두둥실 떠올라 있던 준혁의 팔다리가, 마치 고장 난 홀로그램처럼 번쩍였다.

에너지가 절정치에 이른 순간 포탈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한순간에 집중된 에너지를 터트렸다.

포탈 위에 떠 있던 준혁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렇게 준혁이 사라진 지 약 10초 후.

천계인의 육체에 악마의 세포를 넣어 만들던 괴물 연구소의 건물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새빨간 불꽃을 터트렸다.

폭발과 함께 건물이 그대로 폭삭 무너져 내렸다.

사방으로 번진 불길은 잠들 생각이 없다는 듯 뜨겁게 일렁였다.

* * *

눈앞이 새하얗다.

의식이 깨어나자 시야는 점차 선명해졌다.

수호성에 도착해 공중에 떠 있던 두 다리가 점차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면 두 발이 땅을 디뎠다.

준혁은 포탈 게이트에서 걸어 나왔다.

[수호성에 도착했습니다.]

수호성에서 처음 본 곳은 아주 넓은 실내 광장이었다.

포탈 이동 통로로 쓰고 체육관으로 쓰는 듯, 수호 기사들이 쓸 법한 병장기나 여러 가지 물건들이 한쪽 벽 쪽에 몰려 있었다.

준혁은 광장의 홀을 지나 커다란 문을 손으로 밀고 나갔다.

문이 열리면서 환한 빛이 준혁의 얼굴에 쏟아졌다.

눅눅한 습기로 가득했던 지상의 땅과 달리, 포탈을 타고 넘어온 수호성에서 건물 밖으로 나서자마자 태양의 따스함과 온기가 피부에 닿았다.

빛에 적응하여 눈을 제대로 떴을 때 준혁의 주변으로는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주 어린아이거나 이제 막 청년 정도로 보이는 천계인들이 웃으며 도시 안의 시장을 활보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그 나이랑은 달리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천계인들 역시 어둡지만은 않은 표정들이었다.

타락한 천계인들과는 전혀 다른 생기가 얼굴에 감돌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포탈 게이트가 있는 건물에 나온 준혁을 보자마자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준혁의 등에는 천계인의 표시인 새하얀 날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닭도 아니고 천계인들은 날지도 못하나?’

준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연하게 천계인들의 도시를 걸었다.

수호성도 인간계와 별달리 다를 바는 없었다. 마치 역사 속 중세시대를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악취가 심하게 나는 골목 하나를 지났을 무렵, 구경하는 천계인들이 점차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준혁은 천리안의 지도를 통해 보이는 수호성의 왕성으로 이동했다.

멸마의 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천사가 수호성의 수호 기사들에게 신수를 맡겼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길 신수는 당연히 왕성 안에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때문에 준혁은 생각할 것도 없이 왕성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준혁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천계인들을 등 뒤로 줄줄이 달고 걸었다.

그렇게 이동한 지 얼마 후, 왕성과 가까워질 무렵 준혁을 따라다니던 천계인들이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왕성에서 그 유명한, 천사에게 선택받은 진짜배기 수호 기사 본대의 병력이 오고 있어서였다.

외양은 같았지만, 그들이 들고 있는 검만큼은 예사롭지 않았다.

“연구소를 폭파시킨 침입자다. 저자를 잡아라!”

본대의 수호 기사들 중 유일하게 붉은 투구와 붉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소리쳤다.

일백여 숫자에 이르는 수호 기사들이 준혁을 향해 달렸다.

준혁을 따라왔던 천계인들은 혹여나 불똥이 튈까 이미 싸움이 벌어질 현장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쿠르르!

대지를 타고 흘러나오는 마력이 진동했다.

군대의 기세는 적지 않았다.

하나하나 개인들의 마력이 모여 군대를 이루고 그 군대의 마력은 준혁 하나를 향하고 있었다.

‘균열의 틈을 찾으면서 얻게 된 새로운 스킬을 시험할 좋은 무대야.’

준혁은 흉폭한 기세로 달려오는 일백의 수호 기사 본대를 보며 헬바인의 장검 그, 칼자루를 역수로 꽉 움켜쥐었다.

멸마의 서.

격노.

신성력을 10배로 강화하는 권능이 발현되었다.

준혁이 쥐고 있는 헬바인의 장검이 마치 짐승처럼 울음소리를 냈다.

헬바인의 장검은 곧 깨질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진동했다.

예언가로부터 전해진 이 신물은 격노의 힘을 온전히, 스스로 받아 내고 있었다.

준비를 끝마쳤으니 명령을 내려 달라고 헬바인의 장검은 소리치고 있었다.

신물에게 자유를 주고자 응집되어 있는 힘을 개방하여 수호성의 땅에 검을 내려 꽂았다.

여전히 수호기사 본대는 준혁에게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 그들의 군단장이 붉은 갑옷의 기사만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환영검이 일백의 군대를 이룬 수호기사들을 향해 마치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마법과 검의 힘이 합쳐져 거대해진 수십 개의 환영검이 수호 기사 군대를 향해 벼락처럼 꽂혔다.

마력의 3분의 1을 소모한 만큼 준혁은 급격히 체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꼈지만 그만큼 격노 권능이 가진 파괴력은 그 가치를 다했다.

비명은 없었다.

오직 순수한 빛의 파괴만이 수호 기사의 군대를 휩쓸 뿐이었다.

수호 기사들은 죽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전신의 일부분들이 찢겨져 나가며 죽어 나갔다.

뒤이어 폭발과 함께 파괴된 땅 주변으로 건물들이 쓸려 나갔다.

굉음이 지축을 흔들고 뿌연 회색 연기가 하늘에 닿을 듯이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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