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59화
‘해 보면 알겠지.’
준혁은 확실하지 않았지만 모래 폭풍이 서로와 엉켜 들며 폭발을 일으키는 곳을 향해 빛의 검을 휘두르고 나서 땅에 착지했다.
모래 폭풍은 파장은 준혁이 휘두른 검의 마력 풍압에 의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샌드박스가 서 있었다.
마법 악마의 저주혼.
준혁의 손 앞으로 새빨간 원형의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준혁이 마력을 분출하자 악마의 저주혼에 의해 샌드박스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악마의 저주혼이 제대로 먹힌 듯 샌드박스의 모래로 이루어진 신체 일부분이 마치 폭포처럼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샌드박스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던 중, 놈의 명치 쪽에 숨겨져 있던 마나핵이 준혁의 눈 안에 들어왔다.
저주에 걸린다 하더라도 저 마나핵을 깨트리지 못한다면 놈은 저주에 걸린 모래를 버리고 새로운 모래로 다시 몸체를 부활시킬 것이 틀림없었다.
준혁이 순식간에 샌드박스를 스쳐 지나가 빛의 검 칼날에 묻은 마나핵의 파편을 베어 냈다.
준혁의 등 뒤로 샌드박스가 마치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한 줌의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 회복되는 거 보고 놀랬는데 마법으로 모래 깨고 마나핵 박살;;;
- 소오름.
- 원래 저런 부활 계열은 성직자 있어야 되는데, 폐하의 마법에는 성직자의 힘까지 깃든 겁입니까?
- 그저…… 갓준혁.
[샌드박스를 처치했습니다.]
[동시 시청 중인 시청자 숫자가 30억을 돌파했습니다.]
[화려한 플레이! 문장을 획득했습니다.]
[스트리밍 라이브의 열광적인 반응! 문장을 획득했습니다.]
[더 월드 라이브의 엄청난 조회수! 문장을 획득했습니다.]
[더 월드 보상이 주어집니다.]
[더 월드 보상으로 ‘고대의 엘릭서’ 5병을 획득했습니다.]
[더 월드 라이브 특전 보상으로 천리안의 지도 범위가 2배로 확장됩니다.]
*고대의 엘릭서*
: 죽지 않은 생명체일 경우 어떠한 상태 이상과 치명상도 정상화시킨다. 다만 대상의 정신력과 능력에 따라 회복 속도는 차이를 가진다.
준혁의 발아래로 고대의 엘릭서 5병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큐브가 자동적으로 고대의 엘릭서를 게눈 감추듯 삼켰다.
‘기대 이상이야.’
고대의 엘릭서는 신수를 키우는 과정에서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준혁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던전의 끝을 쫓았다.
뜨거운 열기가 작렬하는 던전을 이동함에 따라 그곳엔 폐허가 되어 버린 현장이 준혁이 다녀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하면 될 것 같네요.”
준혁이 천리안이 보여 주는 지도를 보며 말했다.
- 오늘 진짜 빛의 속도로 클리어하시네요, 귀환자님.
- 던전 클리어하고 나서 쉬시나요? 아니면 또 골드 던전 가시나요?
- 귀환자님 옷 브랜드 뭐예요?
- 귀환자님. 저 이지영이라고 해요. 이름 한 번만 불러 주세요!!
- 대박 나게 해 주세요!
- 시험 붙게 해 주세요!
준혁이 채팅창을 보고 웃었다.
말하는 내용들이 재밌어서였다.
더 월드 카메라는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웃고 있는 준혁의 얼굴을 비추었다.
- 헉! 귀환자님 웃으셨다 ㅠㅠ
- 우리 때문에 웃은 거임!! ㅋㅋㅋㅋ
- 폐하의 웃는 모습을 처음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 폐하…… 심장이 녹아내리옵니다. 그렇게 웃으시면……!
늘 던전만 클리어하고 소통은 뒷전이었다.
낯 간지럽기도 했고 자신이 없었다.
스스로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을 지켜봐 주고 있는 시청자들 덕분에 분명히 목표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늘 마계에서 혼자 악마들과 싸워 왔던 날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균열의 조각 하나를 찾아 마음이 안정되어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몰랐다.
‘너무 내 생각만 했어.’
이유야 어떻든, 시청자는 고맙고 소중한 존재였다.
- 귀환자님 덕분에 늘 안심하고 잘 수 있어요!
- 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귀환자님!!
- 최석환입니다, 형님. 이름 한 번만 불러 주십시오!
- 폐하. 이렇게 강행군으로 일정을 소화하시다간 몸 상하십니다!
“컨디션은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준혁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먼 곳으로 던졌다.
모래사막에 덩그러니 튀어나와 있는 던전핵이 보였다.
“최대한 자주 라이브하고 던전에서 좋은 결과 보여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고생하셨습니다!
- 수고하셨어요!
- 영광스럽게 시청했습니다!
- 푹 쉬세요, 귀환자님!!
준혁이 던전핵에 손을 얹었다.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던전핵이 힘없이 부서져 내렸다.
[더 월드 라이브가 종료되었습니다.]
탈출 게이트가 열림과 동시에 준혁은 골드 던전에서 게이트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대기 중이던 파천 길드의 백인호 군단장에게 눈짓하자 그는 길드원들을 이끌었다.
“마무리하고 게이트 닫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귀환자님.”
준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인호가 곧바로 바쁘게 움직였다.
국내의 경우 게이트를 열어 둔다고 해도 통제가 가능하지만, 해외는 경우가 달랐다.
누군가 골드 던전으로 몰래 들어와 클리어한 던전의 재산을 탈취할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백인호 군단장은 해외에서 계약한 용병 헌터와 국내 최고 수준의 헌터들. 그리고 마나석과 같은 던전 물질을 채굴할 일꾼들을 데리고 행렬을 이루며 골드 던전으로 진입했다.
* * *
균열의 틈을 찾을 수 있었던 행운은 첫 유럽연합 골드 던전 뿐이었다.
5개의 골드 던전을 던전 분석기로 일일이 모두 확인해 봤지만 균열의 틈은 찾을 수 없었다.
“곧 마지막 골드 던전 앞으로 도착합니다.”
운전기사가 말했다.
최설화는 미리 현장에서 파천 길드 팀과 함께 대기 중에 있었다.
꽤 북적거리는 인파를 지나 준혁은 습관처럼 던전 분석기를 꺼내 골드 게이트 앞에 섰다.
‘겨우 하나라니.’
그 많은 골드 던전 중에 균열의 조각을 얻은 것이 하나밖에 없다는 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각을 구했으니 이로써 세트 하나는 완성시킨 셈.
준혁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마지막 던전을 향해 던전 분석기를 사용했다.
숱하게 실패해 왔던 터라 마지막이라고 해서 특별히 기대가 되진 않았다.
[균열의 틈을 찾았습니다.]
마지막 골드 던전에서 나타난 균열의 틈.
기대하지 않았던 차에 찾아온 시스템 메시지였다.
던전 분석기를 통해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스스로를 드러낸 강렬한 빛이 보였다.
균열의 틈이었다.
의식이 현실로 돌아온 순간 준혁은 곧바로 더 월드 라이브를 켜면서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게이트를 통과해 던전의 땅을 밟고 섰다.
- 재앙 등장.
- 자연재해 등장.
- 신의 등장.
- 두둥!
- 오셨다!
- 오, 또 들어가시네 ㅎㅎ 귀국하시는 줄 알았는데.
- 귀환자님 골드 던전 들어가는 기준이 뭔가요?!
- 귀환자님 순회하는 던전 중에 마지막 골드 던전으로 알고 있음.
- 그동안 던전 왜 안 들어가셨나요?
질문이 쇄도했다.
화산 지대의 오픈 필드를 훑어본 준혁이 채팅창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이번 던전은 조금 빠르게 클리어하도록 하겠습니다.”
화산인 듯 뜨거운 땅과 일그러진 땅 사이로 용암이 작게 흐르는 게 보였다. 저 멀리 보랏빛으로 빛나는 해골들이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준혁은 무시하고 천리안을 보며 다리에 힘을 실었다.
지난 골드 던전에서 받은 보상 덕분에 지도가 한층 넓어졌다.
그런 만큼 균열의 틈을 찾기가 훨씬 편했다.
지형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가 볼까?’
준혁이 속도를 내어 뛰기 시작한 순간 주변의 배경이 마치 그래픽처럼 스쳐 지나갔다.
현재 준혁의 속도는 380킬로미터.
대략 F1 포뮬러가 낼 수 있는 최대 속도에 준하는 빠르기였다.
준혁은 다리를 몇 번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비롭게 이동했다.
인간의 육체가 가진 한계를 가뿐하게 넘어서는 가히 절대적인 영역의 이동 속도였다.
하지만 준혁은 단순히 이동 속도에 그치지 않았다.
준혁이 지나간 자리에 마수들의 살과 뼈가 분리되어 뿌려졌다.
그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면서도 준혁이 빛의 검으로 마수들을 척살한 것이다.
마수들의 사체는 곧 준혁이 지나갔음을 알리는 흔적이 되어 있었다.
‘가까워지는 건가?’
천리안의 지도에서 균열의 틈 위치를 알리는 화살표가 점차 진한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새로 업데이트된, 거리의 격차를 표시하는 기능인 듯했다.
강력한 골드 던전의 마수들이 준혁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깨끗하게 절단되며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단숨에 천리안의 지도가 알리는 균열의 틈 앞에 도착한 준혁은 가벼운 발놀림으로 속도를 줄였다.
지난 골드 던전과 달리 허공에 유리 파편이 떨어진 듯 깨져 있는 새하얀 빛의 공간. 즉, 균열의 틈 주변으로는 대량의 마수들이 몰려 있지 않았다.
왜 이번 골드 던전에는 마수들이 균열의 틈 주변에 모여 있지 않은지 궁금해하면서 준혁은 빛의 공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균열의 열쇠를 획득했습니다.]
준혁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은 조각이 아닌 열쇠였다. 열쇠가 있어야만 조각을 사용할 수 있다.
준혁이 열쇠를 큐브에 넣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의 시스템 메시지가 준혁의 눈앞에 나타났다.
[던전이 해당 플레이어의 수준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마수들이 본능적으로 접근을 꺼리고 있습니다.]
‘균열의 틈 주변으로 마수들이 없었던 게 그런 이유였나? 그동안 겁먹지 않았던 마수들이 왜 이제 와서?’
준혁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뒤로 돌아봤다.
마치 자연재해가 지나간 것처럼 마수들이 곳곳에서 죽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준혁이 지나오면서 처치한 마수들이었다.
‘확실히 수량이 적어. 마수들을 너무 빠른 시간 안에 처치하다 보니 그 처치 속도가 던전 클리어에 영향을 끼친 건가?’
최단 시간의 처치 속도와 최단 시간 클리어는 더 월드와 던전 시스템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지난 역사에서 골드 던전의 형성 역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시스템 문자가 준혁의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외부의 힘이 더 월드 시스템에 관여합니다.]
[더 월드 시스템이 새로운 정보를 읽고 있습니다.]
[던전 재설정까지 D-100일 남았습니다.]
준혁은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훑어봤다.
마수들이 괴로운 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는 듯 마수들은 마치 전염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굳이 준혁이 힘을 쓰지 않아도 마수들 스스로 던전 안에서 괴멸될 분위기였다.
외부의 힘, 그리고 던전의 재설정.
시스템이 알림 이후로, 마수들이 제멋대로 죽어 나가고 있다.
이는 아마도 곧 큰 변화가 있을 거라는 예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