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58화
준혁은 악룡의 날개를 밟고 올라가 등 위에 섰다.
이내 저공 비행을 시작하던 악룡이 점차 높은 하늘로 솟아올랐다.
준혁의 시선이 천리안의 투명한 지도창으로 향했다.
현재 자신의 위치를 표시하는 빨간 점이 지도상에서 빠르게 화살표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준혁은 악룡의 등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더 월드의 자동 카메라가 그런 준혁의 모습을 생생하게 앵글 속에 담았다.
- 포스! 크으.
- 타고 있는 거 뭐지?? 아시는 분??
- 아 저 내려다보는 눈빛 봐라. 지림 ㅎㅎ
- 귀환자님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나요? 아 물론 남자입니다만…….
- 귀환자는 사람이 아니야.
- 살아 있는 신화 그 자체.
- 간지나네 ㅎㅎ
- 학창 시절에 만화 몰래 보듯이 사무실에서 스마트폰으로 보는 중.
- ㄹㅇ 스마트폰이랑 PC용 마나석 안 사놨으면 어쩔 뻔했냐? 가격 계속 오르던데.
- 이러다 일반인들은 마나석 못 산다 진짜.
- 갓준혁 더 월드 보려면 돈 좀 써야죠ㅎㅎ
지도상에 마수들이 표시됨과 함께 준혁의 눈에 지상을 나다니는 마수들이 보였다.
마수들이 고개를 젖혀 준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준혁이 냉담한 눈빛으로 마수들을 내려다보며 빛의 검을 역수로 쥐었다.
마력의 의식이 만들어 낸 무기가 지상으로 향해 쏘아져 나갔다.
빛의 검이 마치 분신술을 쓴 것처럼 10개로 늘어났다.
저항을 찢어발기는 파공음.
뒤이어 10개의 빛의 검이 지상의 마수들을 향해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했다.
검에 관통당한 마수들이 즉사로 쓰러져 나갔다.
- 헐!!
- 오진다;;;
- 쩐다 진짜.
- 마수들 어리둥절ㅋㅋㅋㅋㅋ
- 검이 무슨 하늘에서 비 내리듯이;;;
- 강하다. 너무 강하다 갓준혁 ㅠㅠ
준혁이 타고 있는 악룡의 머리를 딱밤으로 때렸다.
“느리잖아.”
“키, 키에에에에에엑!”
악룡이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했다.
빠르게 비행하면서 준혁의 시선이 먼 곳을 좇았다.
준혁이 보고 있는 쪽은 천리안의 지도상 균열의 틈이 위치한 곳이었다.
아직까진 시야에 드러나지 않는다.
마치 대서양의 망망대해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는 사막.
하지만 지도는 분명히 알려 주고 있었다.
균열의 틈이 위치한 곳을.
* * *
‘뭐지?’
준혁은 의문을 품은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봤다.
악마룡을 타고 천리안이 표시한 균열의 틈 앞에 도착하자 새하얀 빛 주변으로 엄청난 수의 마수들이 모여 있었다.
준혁이 보기에 이 골드 던전 안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마수들이 모인 것 같았다.
균열의 틈 주변으로 빽빽하게 모여든 마수들 위에서 악룡이 원형으로 선회했다.
하나하나 처치하기엔 너무 많은 숫자였다.
‘굳이 누적 포인트를 쌓는 것 보다, 이쪽이 더 자극적일지도. 편리하기도 하고.’
끓어오르는 강대한 마력에 의해 준혁의 눈이 새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 뭔가 시작된다.
- 또 큰 거 온다.
- 마수들아 준비해. 종말이다.
- ㅋㅋㅋㅋㅋㅋ 마수들 자연재해 만남.
- 마수들 왜 이렇게 많냐??
- 일반 랭커들도 지상에서 저 숫자 만났으면 일단 튀었을 것 같은데.
- 위쪽에서 보니까 바글바글한 게 개미 떼 같구만?
- 잡몹이랑 상급이랑 섞인 듯요.
- 마수들 중앙에 빛나는 거 있는데 저거 뭐지? 아이템인가?
준혁의 손바닥 위에서 새파란 구체가 전류와도 같은 에너지를 튀기며 점점 그 힘과 크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악룡이 급격히 방향을 틀면서 마수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공포를 모르는 듯 마수들은 날아드는 악룡을 탄 준혁을 향해 괴성을 질러 댔다.
준혁은 마수들의 중앙으로 뛰어내려 검은 모래를 향해 손을 내리꽂았다.
100여 마리가 넘는 마수들이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공비행을 하며 날던 악룡이 전력의 날갯짓을 하며 위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준혁을 중심으로 사방에 마치 폭탄이 투하된 듯이 마력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준혁의 손에 머물러 있던 마력이 모래 아래의 땅으로 들어가 마치 전이되듯 분산되며 그 힘을 터트린 것이다.
연속되는 폭음과 함께 마수들은 폭발에 의해 팔다리가 뜯겨져 나갔다.
형체도 없이 사라진 마수들도 있었으며 대체로 신체의 대부분을 잃어버리며 죽어 나갔다.
더 월드 시스템의 카메라는 공중에서 약 반경 1km를 폭발시키는 광경을 앵글에 담았다.
뒤이어 화면 속에 폭발로 죽어 나가는 마수들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보랏빛의 연기가 사막 위로 자욱하게 번졌다.
그 연기 사이로 소리는 없었다.
뜨거운 하늘 위를 선회하는 악마룡 드레이크의 포효만이 이곳이 던전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마력의 파장이 만들어 낸 연기가 사라지고.
준혁의 주변으로는 전쟁의 끝을 보여 주는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신체가 온전하지 않은 마수들의 사체들은 시커멓게 탄 채로 매캐한 연기를 피웠다.
준혁은 허공에 마치 파편이 떨어져 나온 듯이 뻥 뚫려 있듯 깨져 있는 허공을 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준혁이 던전에서 찾고자 했던 바로 균열의 틈이었다.
그 깨진 공간 안에서 새어 나오는 균열의 틈이 가진 빛은 눈이 멀 것만 같이 강렬했다.
손 하나만 정도만 들어갈 정도로 작은 균열.
준혁의 주변으로 살아 움직이는 마수들은 없었다.
마치 재앙이 덮친 듯한 곳에서 준혁은 균열의 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균열의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손에 쥐어지는 단단한 물체.
허공에 머물러 있던 빛에서 손을 빼자 손안에는 은빛의 룬 조각이 들어 있었다.
언제든 어비스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여는 비밀의 통로.
‘균열의 조각’이었다.
마치 허공에 박혀 있듯 자리 잡았던 강렬한 빛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열쇠와 균열의 조각을 찾았으니 이제 언제 어디서든 신수와 신물을 찾을 수 있는 어비스 세계로 갈 수 있었다.
‘이제 하나.’
준혁이 균열의 조각을 손에 꽉 쥐었다.
* * *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준혁은 지금 바로 어비스로 가고자 했다.
균열의 조각을 사용하는 방법은 늘 그랬듯이 마력을 주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균열의 열쇠를 확인했습니다.]
[어비스에 진입할 자격을 확인합니다.]
[아직 어비스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어비스의 문이 완성될 때까지 약 70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비스의 문이 완성되면 창조의 파편이 파생됩니다.]
[그럼에도 균열의 열쇠로 어비스의 문을 열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시겠습니까?]
[수락 / 거절]
‘창초의 파편?’
더 월드는 그 의문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준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비스로 진입하는 것이었기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문제가 생긴다면 해결하면 되는 일.
준혁이 수락을 터치하자 허공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그 마법진은 곧 시계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리고 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마법의 시계는 아마도 어비스의 통로를 완성하기까지의 시간을 재는 것인 듯했다.
70시간이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다.
천 년을 기다려 인간계로 돌아온 준혁이었다.
그 정도 시간쯤이야 충분히 기다려줄 용의가 있었다.
[군열의 틈을 통해 어비스 문을 여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천계의 비밀을 열어 낸 한준혁에게 천계의 봉인이 깨어납니다.]
준혁의 눈앞으로 거대한 묵빛의 책 멸마의 서가 나타나 펼쳐졌다.
[멸마의 서가 새로운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새로운 내용을 기록합니다.]
[한준혁 고유 권능 ‘신수 계약’이 생성되었습니다.]
[한준혁 고유 권능 ‘악마 소환’의 등급이 상향되었습니다.]
[권능 – 신수 계약]
: 신수와 계약할 수 있는 힘이다.
[권능 – 악마 소환2]
: 마계의 역대 최상위 악마의 영혼을 부릴 수 있게 되며 악마 군단의 숫자가 늘어난다.
권능의 자격으로 최대 100마리의 악마를 부릴 수 있다.
최대 50마리밖에 부릴 수 없었던 악마가 100마리까지 불어났다.
더욱이 이미 자신이 죽여 버렸던 최상위 악마들까지 부릴 수 있다는 건 이미 자신이 죽였던 악마들의 영혼까지 부활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마계에 살아 움직이는 악마 군단과 최상급 악마 영혼까지.
‘전력이 늘었군.’
준혁은 멸마의 서에 새로이 새겨지는 글자들을 눈에 담았다.
‘이런 식으로 권능의 상향 역시 가능한 거였나?’
멸마의 서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준혁은 인기척을 느꼈다.
2시 방향에서 강한 힘을 품은 존재가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놈은 살기를 노골적으로 풍기며 공격성을 표출해 내고 있었다.
준혁은 균열의 조각을 큐브 안에 넣고 곧 녀석이 나타날 방향을 응시했다.
이 정도 기운이라면 이 골드 던전을 장악하고 있는 보스몹일 것이다.
준혁의 손에 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귓가를 스치는 모래가 긁히는 소리.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러곤 준혁이 보는 먼 곳이 검은 모래 폭풍으로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은 모래 폭풍을 몰고 오는 것은 5미터에 달하는 키의 마수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고 인간처럼 머리 하나에 몸통과 팔다리를 가져 마치 인간처럼 걸어왔다.
더 월드가 알려 주는 마수의 이름은 샌드박스.
놈의 얼굴 쪽에는 새빨간 눈이 마치 귀신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골드 던전에서 보스몹은 이미 상대해 본 바가 있어 별달리 어떠한 자극도 전해져 오지 않았다.
칼을 섞어 보면 뭔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기대감을 품으며 준혁은 놈을 향해 빛의 검을 들고 걸어갔다.
준혁은 보스몹인 샌드박스를 처치하고 던전핵을 파괴한 뒤, 시간을 할애할 것 없이 던전을 나갈 생각이었다.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놈이 지척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마치 유령 같은 소리를 내며 준혁의 앞에 선 샌드박스가 준혁을 향해 모래로 된 팔을 휘둘렀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마력의 힘을 머금은 팔이 준혁을 향해 휘둘러졌다.
준혁은 높은 점프로 피하면서 샌드박스의 가슴 앞으로 뛰어들어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손끝으로 모여든 마력이 샌드박스를 파괴했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검은 모래들.
준혁이 땅에 착지하여 뒤를 돌아봤다.
미세한 알갱이가 되어 액체처럼 쏟아지듯 바닥에 흩어진 모래들은 다시 스스로 모여들더니 처음 만났던 것처럼 멀쩡한 모습을 재현시킨 후였다.
“회복계?”
준혁이 샌드박스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샌드박스는 전혀 데미지가 없는 모습으로 준혁을 향해 양팔을 휘둘렀다.
마력을 머금은 샌드박스의 팔은 준혁이 피한 자리를 때릴 때마다 폭발을 일으켰다. 검은 모래가 튀어 오르고 모래가 타들어 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준혁은 샌드박스의 공격을 피해 다니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마계에서 악마들의 마법을 훔친 것들 중에 이런 녀석들을 상대하는 방법이 있었다.
그 능력을 강탈하긴 했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라 악마 주문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뭐였지?’
준혁이 기억을 더듬는 동안 샌드박스가 모래 폭풍을 일으켰다.
360도 방향에서 마력을 품은 모래가 파도처럼 준혁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자신을 잡기 위해 샌드박스가 내민 손이 보였다.
준혁을 땅을 차고 하늘 위로 높게 솟아올랐다.
공중을 올려다보는 샌드박스 주변으로 칼날 같은 마력을 가진 모래 폭풍이 서로 엉켜 들며 뇌전과 함께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귀청을 때리는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