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54화
“떠나시기 전에 지오반니 협회장님이 뵙기를 청합니다.”
안내인 피에로가 공손히 말했다.
“지금?”
준혁이 묻자 피에로가 고개를 수그렸다.
“지금도 가능하지만, 혹시 더 머무르신다면 편한 시간대에 지오반니 협회장이 그 시간에 맞추겠다고 합니다.”
선우가 픽 웃었다.
“사람이 많이 변했네.”
피에로는 그저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숙인 채로 답변을 기다렸다.
“가자 형. 지오반니의 얼굴이 너무 궁금해.”
별로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선우의 말대로 만나보기로 했다.
선우와 지우를 데리고, 피에로의 안내를 받았다.
경기 전에 갔던 적이 있던 터라 지나는 길은 익숙했다.
차가운 느낌의 복도를 지나 지오반니의 방으로 들어가자 이탈리아 협회장 지오반니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로 서 있었다.
준혁은 물론, 선우와 지우도 당혹감과 더불어 놀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마치 잘 훈련된 웨이터 같은 모습이었다.
“괜찮아요?”
선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어서들 와서 앉으세요.”
선우와 지우가 이상하다는 듯 지오반니를 보며 방 안으로 들어갔고 준혁은 상석 자리에 앉았다.
준혁이 상석에 앉는 동안 지오반니는 손을 비비며 웃고 있었다.
“이번 경기로 인해서 귀환자님이 얼마나 위대한 남자인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감히 제가 무례하게 굴었던 일든은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직원이 들어와 차를 나눠 주고 방을 나갔다.
“계약대로 골드 던전은 지금부터 내 소유겠지?”
준혁이 지오반니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계약을 했으니 당연히 모두 조건대로 이루어질 겁니다.”
지오반니가 미리 준비해 둔 박스를 준혁의 앞에 놓았다. 박스를 열어 보자 그 안엔 검은색 카드 하나가 들어 있었다.
준혁은 카드를 집어 앞면과 뒷면을 보았다.
평범한 카드였고 카드에는 이탈리아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유럽연합의 골드 던전의 허가권입니다. 이 카드를 제시하면 언제 어느 때나 골드 던전에 입장할 수 있으실 겁니다.”
준혁이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카드를 품 안에 넣었다.
“헌터돔 안에도 호텔만큼이나 훌륭한 숙소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고, 만약 헌터돔을 나가신다면 바로 요트와 리무진을 준비해 드리려고 합니다만.”
“꽤 친절하네, 지오반니.”
그는 상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비굴함이 섞인 얼굴이었다.
“저희 유럽연합은 귀환자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오직 그 것 하나 뿐입니다.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건 앞으로 유럽연합이 하기에 달린 거겠지.”
“우리 유럽은 언제나 귀환자님을 환영할 것입니다.”
“지오반니.”
“예?”
지오반니가 공손하게 자세를 낮추었다.
“유럽연합의 대표라며?”
“그렇습니다만…….”
준혁이 천천히 일어서서 지오반니의 다친 귓불을 응시했다.
“앞으론 대표면 대표답게 굴어라. 어디 골목대장처럼 굴지 말고.”
준혁이 지오반니의 다친 귓불을 딱밤으로 때렸다.
“크읏!”
지오반니가 귓불을 붙잡고 허리를 굽히며 신음을 흘렸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VIP룸에서 칼이 날아와 꽂혔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오반니는 몸을 떨었다.
“간다.”
준혁이 방을 나갔다.
선우와 지우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웃음을 참으며 준혁을 따라나섰다.
지오반니는 폭삭 늙은 얼굴로 귓불을 붙잡은 채 준혁의 무리가 떠나는 걸 지켜보았다.
* * *
요트에서 점차 멀어지는 헌터돔을 돌아보며 선우가 웃었다.
“형, 지오반니 표정 봤어? 진짜 웃겨 죽는 줄 알았다니까? 푸하하하하!”
“지금쯤 얼마나 후회스러울까요?”
선우는 지우와 헌터돔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배꼽을 잡고 떠들었다.
그사이 준혁은 품 안에서 카드를 꺼냈다.
이 검은색 카드는 모든 골드 던전의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였다.
앞으로 던전 분석기를 이용해 던전 하나하나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선우야.”
지우와 신나게 떠들던 선우가 준혁을 돌아봤다.
“응?”
“골드 던전 말인데 들어가지만 않으면 매각이 가능한 거지?”
“물론. 입장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던전 장치가 있어서 확인할 수 있는만큼, 매각이 가능해.”
“아마 앞으로 많은 수의 골드 던전을 매각하게 될 거야.”
선우와 지우가 놀란 얼굴로 준혁을 보았다.
“유럽연합의 골드 던전을 다시 매각할 거라고?”
“이제 하나하나 던전을 클리어할 필요가 없어졌거든. 더 월드의 시스템 보상 덕분에.”
“음, 좋은 소식인 것 같기는 한데…….”
“어차피 국내에서도 내가 아니면 클리어가 힘들잖아? 가지고 있어 봐야 짐일 테고.”
선우가 생각에 잠겼다가 준혁을 보았다.
“아직은 형이 더 이상 골드 던전이 필요 없다는 걸 아직은 다른 나라에서 알게 되면 안 돼. 그럼 시장 거래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거야. 하지만 은밀히 진행하면 오히려 시장엔 활기가 돌겠지. 형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될 테고.”
“앞으로 선우 네가 모두 전담해서 진행해줘.”
“그건 걱정말고 형. 이번 헌터대전으로 형이 얼마를 벌어들인 건지 알아?”
준혁은 별 관심없다는 듯 얼굴을 가로 저었다.
“무려 10조 원이야. 그리고 골드 던전을 사고 싶어 하는 나라는 줄을 섰겠지. 하루라도 빨리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형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고 싶어 할 테니까.”
“협회나 파천 길드에 돈이 필요한 거면 언제든 가져다 써. 알았지?”
“날 너무 무시하는데? 형 덕분에 협회는 이제 가뜩이나 빠른 차에 날개까지 달게 된 셈이야. 형 만큼은 아니라도 협회와 파천 길드 역시 막대한 이익을 내게 될 거야.”
“그래.”
“아,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면 인터뷰가 하나 있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정도의 인터뷰인데 하는 게 좋을 거야. 우호적인 기자들이니까.”
몇 번 해 봐서 그런지 별달리 거부감이 없었다.
이제 준혁에게 ‘인터뷰’란 질문에 대한 대답만 하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나름의 변화였다.
* * *
준혁의 인터뷰는 서울 던전 아트홀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인터뷰는 공중파 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곧 생방송이 시작되고 준혁이 인터뷰를 위해 무대에 나타나자 기자들의 카메라 불빛이 마치 불을 뿜듯 터져 나왔다.
방송국 쪽 요청에 의해 대형 스크린에는 이미 커뮤니티 게시글이 오픈 된 상황.
곧 인터뷰 시작을 준비했다.
더 월드와 시청자 덕분에 무려 천리안이라는 아이템과 던전 분석기라는 준혁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면서도 필요한 아이템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이 좋아하는 실시간 라이브도 조금은 익숙해졌고, 그들의 관심이 곧 더 월드 보상으로 이어지는 만큼 더 월드 라이브 방송에 대한 준혁의 거부감은 이미 확연하게 옅어져 있는 상태였다.
- 멋지다 우리형~ㅎㅎㅎ
- 잘생겼슈~ ㅎㅎ
- 아 저 남자다운 얼굴과 선을 보라. 크읏!
- 존잘♥
- 와, 공중파 카메라인데도 얼굴 미쳤네.
- 피부가 애기 수준 ><
- 내가 지존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니.
채팅창이 준혁을 향한 관심으로 뜨거운 가운데 오늘 기자들의 질문을 갖고 인터뷰를 하게 될 사회자 MC가 나타났다.
최근 공중파 아나운서로서 훌륭한 전달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수연이었다.
이수연 아나운서가 준혁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 이수연 아나운서네.
- 귀엽군. ㅎㅎㅎㅎ
- 이수연 정도면 괜찮지.
- 억양과 발음 목소리.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 잘함 ㅇㅇ
- 눈빛 봐라. 갓준혁한테 녹고 있네 ㅋㅋ
- 난 남자지만 이수연 아나운서가 부럽다. 귀환자님을 저렇게 가까이서…….
큐 사인을 보고 이수연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네, 안녕하세요. 오늘 서울 던전 아트홀에서 인터뷰 진행을 맡은 이수연입니다. 이곳 던전 아트홀은 그동안의 던전 역사를 표현한 전시장인데요. 협회에서 곧 오픈을 앞두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던전 아트홀 소개로 시작을 열고, 이수연 아나운서가 준혁을 보면서 큐 카드를 고쳐 잡았다.
“안녕하세요. 귀환자님?”
이수연 아나운서의 인사에 준혁이 예의 있게 머리를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영광스럽게도 제가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귀환자님과 있으니까 너무 떨리네요. 어쩌죠?”
이수연 아나운서가 큐 카드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 저건 찐인데?ㅋㅋㅋㅋ
- 끼 부리지 마라! 우리형 넘어가면 안 돼용.
- 끼 부리네.
- 난 솔직히 공감한다. 떨리지 ㅋㅋㅋ
- 남자인 나도 손 떨 듯? ㅇㅈ?
- 안 떠는 게 비정상이지. 갓준혁인데.
- 남자들이 질투하고 있엌ㅋㅋㅋ ㅁㅊㅋㅋ
“저도 이제 인터뷰가 조금 익숙해져서요. 전보다는 훨씬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갓준혁 상냥한 거 보솤ㅋㅋㅋㅋ
- 쏘 스윗♥
- 폐하 스윗남이었네ㅋㅋㅋ
- 예전 인터뷰 때는 좀 딱딱했는데 이제 적응하신 듯 여유가 있네요.
- 매력 봐ㅠㅠㅠ 미치겠다 보고 있으면!!
“기자들의 질문이 이 큐 카드에 들어 있어요. 그럼 순서대로 인터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유럽연합이 골드 던전을 독점적으로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파천 길드에게 메일을 보내라고 지시한 게 정말인가요?”
“파천 길드는 아니고, 제 동생. 그러니까 협회장 한선우에게 메일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대략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별로 긴 내용이 아니라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마 귀환자가 이탈리아 협회장을 만나고 싶어 한다. 거절한다면 강제로라도 들어갈 거라고. 그렇게 전달하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수연 아나운서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큐 카드로 황급히 자신의 입을 가렸다.
기자들의 노트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급격하게 강하게 울려 퍼졌다.
- 와…….
- 헐…….
- 상남자 ㄷㄷㄷㄷㄷ
- 강제롴ㅋㅋㅋㅋㅋㅋ
- 이건 개 멋있다 진짜. 유럽연합 상대로……. 와.
“그렇게까지 메일을 보낸 이유는 아무래도 골드 던전 때문이었겠죠?”
“제가 알기로 골드 던전을 그렇게 단기간에 한 단체가 매입하는 건 시장의 불균형을 만드는 범죄로 알고 있습니다.”
- 사실 명분은 확실했지. 강대국이 갑질하는 거 하루 이틀이었나, 어디.
- 저 말 맞음.
- 맞아. 지들이 다 해 먹으려고 한 거지, 뭐.
- 갓준혁 급 아니었으면 견제 오지게 당했다. ㄹㅇ
- 대단하다 정말 ;;;;
- 갓준혁 마인드 세기 보소.
- 유럽연합 혼자서 통제해 버린거넼ㅋㅋㅋㅋ
이수연 아나운서가 이탈리아 협회에서 헌터대전이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질문했고, 그 질문부터 헌터대전이 끝나기까지의 질문이 이어졌다.
준혁은 사실대로 간략히 축소해서 답했고 그 대답은 공중파를 지나 순식간에 해외로 퍼져나갔다.
타국의 견제, 그리고 압박에 지지 않고 더 강하게 밀고 나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 준혁에 대한 평가가 언론을 타고 전 세계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수연 아나운서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더 월드 스트리밍을 끄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 속에서 준혁은 매니저 지우가 열어 준 세단 차량에 탑승했다.
“귀환자님, 유럽연합 측이 이번 인터뷰에 대해 호의적으로 뉴스를 보내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이번 유럽연합의 패배를 컨텐츠 삼아 방송 일정이 잡히고 있다고 합니다.”
지우가 차에 타면서 곧장 태블릿의 뉴스를 보여 주었다.
준혁은 어이가 없었다.
패배한 걸 컨텐츠 삼아 유럽연합의 이미지를 귀환자 추앙으로 바꾸는 전략인 듯 했다.
준혁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고 지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출발하겠습니다.”
운전기사가 준혁의 집인 캐슬을 향해 악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