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53화 (53/175)

귀환자의 모든 것 53화

MC최현호가 핏대를 세우며 흥분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귀환자! 전 세계 리더보드 1위. 한준혁! 헌터대전에서 유럽연합 랭커들 8명을 상대로 압도적인 차이로 승리합니다!”

한국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전 세계 언론에서 귀환자가 패배할 거라고 단언했다. 모든 전문가들이 귀환자의 패배를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압살했다.

“이번 헌터대전에 걸린 계약 조건은 유럽연합이 시장에서 독점 매수한 골드 던전이었고, 채굴될 자산. 그러니까 그 던전 물질의 가치를 모두 합산하면 최소로 잡아도 10조 원이 넘어가는 금액입니다.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뒤집고 귀환자 한 개인이 10조 원의 골드 던전을 가져갑니다!”

단판 경기로 벌어들인 가치는 약 10조 원.

모두가 귀환자가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경기에서 대반전의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 ★★★★★ 평범한 인간 8명이서 불곰에게 덤빈 격!

- ★★★★★ 그야말로 최고였다.

- ★★★★★ 리더보드 1위는 격이 다르다.

- ★★★★★ 지상 최강의 생명체.

- ★★★★★ 숨겨져 있던 리더보더의 진짜 얼굴.

- ★★★★★ 두 번 다시 그를 의심하지 말 것.

- ★★★★★ 신, 그 한 단어면 충분하다.

헌터대전 정식 리뷰 게시판에서 평론가들의 극찬이 이어졌고.

[모두의 예측을 깨 버린 귀환자의 진면모에 대하여]

[귀환자는 증명해 냈다. 어떻게?]

[귀환자에 의해 밝혀진 리더보더의 이면]

[귀환자가 전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는?]

언론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태세를 변환하며 귀환자에 대해 찬양의 기사를 쏟아 냈다.

이 모든 반응의 시작은 고작 경기가 끝난 지 겨우 단 몇 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 * *

선우는 차마 경기를 지켜보지 못했다.

혼자서 작은 방에 들어와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몇 번 헌터돔이 흔들리는 걸 느꼈고, 담배 한 개비를 모두 피웠을 때쯤 진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벌써 끝난 건가?’

헌터돔에서 경기를 지켜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더 월드 시스템으로 이번 헌터대전을 볼 용기가 없었다.

암울한 조건 속에서 만약 형이 패배한다면 미리 준비한 전략으로 언론사들과 유럽연합을 상대로 이성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형의 패배를 지켜본다면 스스로 무너질까 두려웠던 이유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극한의 긴장 속에서, 기다리던 중.

벌컥 문이 열렸다.

지우가 글썽거리는 눈으로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불안감이 가슴을 찌른다.

“협회장님.”

지우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선우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똑바로 보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선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안 좋은 결과가 그녀의 입에서 나온다면 한국의 협회장으로서 철저히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했다.

경기를 보지 않은 건 철저히 협회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이지우 매니저. 괜찮아요. 말해 봐요. 어떻게 됐어요?”

선우가 크게 뜬 눈으로 다시 물었다.

지우가 눈가에 맑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닦아내며 웃었다.

“이겼어요. 그것도 압도적으로.”

“압도? 누가 말입니까?”

선우는 매니저 이지우의 표정을 보면서 설마 하는 마음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귀환자님이요.”

선우는 소름이 끼쳤다.

“……아직 시간이 얼마 안 됐는데.”

선우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먼 곳을 보며 중얼거렸다.

“금방 이겨 버렸어요. 귀환자님이.”

선우는 침을 삼키며 더 월드 스트리밍을 켰다.

스트리밍 화면은 오프로 꺼져 있었지만, 여전히 채팅창은 마치 산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다.

- 눈물 나게 멋있다. 우리 준혁이 형……! 그렇지 않냐 형들?

- 언론사들 우디르급 태세변환 속도에 놀랐다, 정말.

- 와, 이 정도일 줄은 진짜 ㅋㅋㅋㅋㅋ

- 님들, 귀환자는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각성자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 한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남자 갓준혁. 피 끓는다.

- 으아아아아ㅋㅋㅋㅋㅋㅋ 저 옥상 가서 소리 좀 지르고 올게요.

- 갓준혁은 진짜 격이 다르구나;;;;

선우는 채팅창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 우선 형의 대기실로 가죠.”

선우는 지우와 함께 처음 안내받았던 대기실 입구에서 준혁이 오기를 기다렸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곧 준혁이 나타났다.

“귀환자님!”

지우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준혁은 웃고 있는 지우와 넋이 나가 있는 선우를 이상하다는 듯 번갈아 보았다.

“……형.”

“왜들 그래?”

준혁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고생하셨어요.”

지우가 부은 눈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고, 선우는 준혁을 보며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행이야. 진짜 다행이다, 형.”

“뭘 당연한 걸 가지고 오바들이야.”

준혁이 대기실로 들어갔다.

TV에서는 국민들이 준혁의 승리를 축하는 파티를 실시간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마치 월드컵을 연상하게 하는 축제 분위기였다.

테이블에 놓인 생수를 마신 준혁이 선우를 돌아봤다.

“잘 봤지? 앞으로 의심하지 마라.”

준혁의 질문에 선우가 시선을 피했다.

“뭐야? 왜 그래?”

“사실 경기 못 봤어. 아니 안 봤다고 해야 하나.”

“왜?”

“그게, 만약 형이 패배하면, 후폭풍이 일어날 거고 난 그걸 수습해야 했거든. 난 협회장이니까. 형이 놈들에게 당하는 걸 보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될 테니까.”

준혁이 걸음을 옮겨 선우의 등을 팡! 때렸다.

선우가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세웠다.

“역시 내 동생이네.”

“으악, 왜 때려…… 아프잖아.”

“어깨 펴고. 허리 세우라고. 너 대한민국의 협회장이야. 흔들리지 마라.”

선우가 힘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웃었다.

“난 정말 진이 다 빠졌다고.”

선우가 소파로 가서 주저앉았다.

“경기는 내가 했는데 왜 네가 진이 빠져?”

“……하하. 그러게나 말이야.”

“헌터돔 바로 나갈 수 있게 안내인 찾아올까요?”

화장을 고친 지우가 언제 울었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물었다.

“아아……! 부탁해요. 이지우 매니저. 난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협회장으로서의 중압감에 짓눌려 있던 선우가 녹초가 된 채 소파에 누우며 말했다.

준혁이 눈짓으로 허락하자 지우는 곧장 안내할 직원을 찾아 나섰다.

* * *

독입 협회장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이제 어쩝니까? 리더보더들한테 얼마나 비싼 값에 사 온 골드 던전인데. 이걸 이렇게 그냥 넘겨요?!”

이탈리아 협회장 지오반니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독일 협회장을 노려보았다.

“다 같이 동의하고 기분 좋게 베팅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내 탓?”

“당신 유럽연합 대표잖아!”

포르투갈 협회장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럼 이대로 해체하지 뭐. 자리도 내려놓겠소. 그럼 됐소?”

입술을 오물거리던 포르투갈 협회장이 답답한 한숨을 뱉으며 고개를 팩 돌렸다.

“이러지들 말고, 대책부터 수립해야지요. 이대로 가다간 유럽연합은 여론으로부터 매장당할 거요.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이번 일과 관계가 없다는 걸 은연중에 언론을 이용해 드러내고 있는 중이요.”

“지오반니, 방도가 없겠습니까?”

프랑스 협회장이 지오반니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물었다.

“이대로 가면 유럽연합은 귀환자에게 저항하다가 재산을 빼앗긴 바보 천치로 남게 될 겁니다. 감히 리더보드 1위를 노리다 10조를 날려 먹은 머저리 같은 집단!”

지오반니가 자조적인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그게 대표로서 할 말이요?”

“내 말이 틀렸습니까? 리더보더들이 실력을 숨겨 왔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 실력을 갖고 그렇게 세력질을 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싶었지.”

지오반니가 자조적으로 인상을 썼다.

독일 협회장이 눈가를 감싸 쥐었고 유럽연합의 협회장들 모두 괴로운 듯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눈살을 구겼다.

“현실 말고, 방도 말이오. 골드 던전이야 계약대로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잖소?”

스페인 협회장이 타이르듯 말했다.

지오반니가 담배를 피우며 웃었다.

“이런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도 이렇게 된 이상 귀환자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그게 무슨 말이오.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보시오.”

독일 협회장이 채근하자 지오반니가 그를 노려보았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합니까? 당신 혼자 망했어?”

독입 협회장이 불끈하자 다른 협회장들이 적당히 좀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주변 반응에 어쩔 수 없이 독일 협회장은 콧김을 뿜으며 화를 식혔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당분간은 자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적자를 메울 방법을 찾아볼 테니. 기다려주세요. 여기서 더 일을 벌였다간, 음지에 있는 리더보더들이 수면 위로 올라올지도 모릅니다. 그땐 다 끝이에요.”

협회장들이 지오반니의 말에 동의했다.

귀환자를 향한 자극은 리더보더를 향한 자극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사실상 비즈니스가 아닙니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준비하기까진, 모두 소란 없이 침묵해주세요.”

협회장들이 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끙끙 앓았다.

자국에서의 비난과, 자리보전에 대한 두려움이 물밀 듯이 밀려들고 있어서였다.

* * *

협회장들이 모두 떠난 후.

홀로 남은 지오반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당연히 먹을 수밖에 없는 잔치상인 줄 알았다.

언론에서 사나운 칼질을 한 만큼, 그 정도로 유리했고,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적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단순히 협회장 자리를 내려놓는 것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필시 그 대가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지오반니의 눈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지오반니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들며 껄껄 웃었다.

“10조 원. 10조 원이라니…….”

협회장들에게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그 적자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 귀환자 한준혁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마치 유럽연합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해도 자신 있는 것처럼 굴었던 모습.

정신 나간 놈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대응해 싸움을 벌여봐야 외려 유럽연합의 출혈만 있을 뿐이니 귀환자를 이용해 최대 이익을 얻고자 했다.

“……정말 전쟁을 이길 자신이 있었단 말인가?”

지오반니는 넋이 나간 채로 웃었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이번 거래를 수락한 이유.

확신하는 표정으로 돌아간 귀환자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Che cazzo.”

지오반니는 의자에 늘어진 채, 천장을 보며 욕을 뱉었다.

마지 전기가 머리통을 지지는 듯했다.

“완전히 당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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