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51화
8인의 유럽연합의 랭커들이 경기장에 들어섰다.
관중석 1층에는 즉시 투입 가능하도록 힐러들이 대기 중이었다.
보통 헌터돔에서 경기가 진행될 때 힐러들이 배치되긴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B급이 아닌 A급의 힐러들이 위치해 있었다.
A급 힐러만 해도 엄청난 금액을 받는 각성자들이었다.
최설화 힐러와 같은 S급은 단순히 돈으로 초청하기엔 마진율을 절대로 충족할 수 없다.
그렇기에 A급만 해도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어야 했다.
“힐러들도 있으니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해 주자고.”
암살자 계열의 독일 헌터가 힐러들을 보며 말했다.
“더 월드에서 본 적 있지? 귀환자가 마수를 부리는 걸. 분명 소환부터 시작할 거야.”
“소환은 언데드 계열일 수밖에 없고 아무리 대단한 네크로맨서라고 해도 성직자 마법 한 방이면 녹아 버릴 거야. 그게 마수 사냥과의 차이지.”
모두의 시선이 방금 대화의 주인공이었던 스페인 헌터에게로 향했다.
성직자 계열의 힘을 다루는 ‘마띠아스’.
그녀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눈빛에 자신감이 꽉 차 있었다.
“네크로맨서는 내 상대가 될 수 없어.”
마띠아스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귀환자는 올라운더야. 단순히 네크로맨서의 소환술뿐만이 아니라 체술은 물론 검술과 마법까지 가능하지.”
“올라운더라는 건 그만큼 특정 계열을 마스터하지 못했다는 걸로 볼 수도 있어.”
“리더보드 1위이니만큼 그 반대일 수 있다. 다들 방심하면 안 돼. 단기간 안에 승세를 잡고 몰아붙이자.”
“리더보드 1위씩이나 돼서 멍청하게 이런 무모한 무대에 서다니. 역시 신은 공평한 것 같군. 안 그래 마띠아스? 신이 귀환자에게 사회적인 지능은 주지 않은 모양이야.”
스페인 성직자 헌터 마띠아스는 대답 없이 그저 자신의 무기인 철퇴를 어루만졌다.
“겁먹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쉽게 봐선 안 돼. 리더보드 1위와 일반적인 리더보더들과는 그 수준이 다를지도 몰라.”
“하하. 우린 여덟 명이야. 이제 와서 그 사실을 잊지 마. 다치는 걸 두려워하는 겁쟁이만 없다면 아주 쉬운 게임이 될 테니까.”
“두려움이 있었다면 랭커가 될 수 없었겠지. 압도적인 차이로 귀환자를 무력화시키고 지오반니의 돈을 가져간다!”
프랑스의 마법사 ‘케빈’이 경기장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보며 말했다.
케빈의 말에 모두 경기장 입구 쪽을 응시했다.
8인의 헌터들 사이로 강한 패기가 서서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준혁은 대기실에서 거울 속의 자신을 마주했다.
아직 균열의 틈으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밖에 구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골드 던전을 확보하면 그 확률은 비약적으로 올라가리라.
약속된 시간이 되었음을 인지한 준혁이 대기실을 나가면서 시스템 창을 열었다.
[더 월드 라이브 ON.]
[스트리밍이 열렸습니다.]
[채널이 형성됩니다.]
[채널 형성 완료.]
[스트리밍이 시작됩니다.]
[채팅방이 오픈됩니다.]
- 안녕하세요!!
- 귀환자님 ㅎㅇ
- ㅎㅇㅎㅇ
- 와, 진짜 하네 이거 ;;;;
- 갓준혁!! 기다렸습니다!
- 폐하아아아아아아!!
- 홀리 싯트!! ㅠㅠ
- 갓준혁 화이티이이이잉!
- 다 발라 버려 ♬발!!
- 우리 폐하 너무 늠름하십니다 ㅠㅠ
- 아…… 상황이 너무 암울함…….
- 언론에서 말하다시피 말도 안 되는 경기임…….
- 아무리 갓준혁이라도 최상위 랭커 8명을 한 번에 상대하는 건 어려울 텐데. 상성 문제가 너무 심해.
- 국내도 아니고 세계 랭커들인데. 이거 진짜 하는 거냐?
- 잘 봐라. 갓준혁이 다 바른다.
- 해외 언론에서 분석한 바에 의하면 아무리 귀환자라도 세계 랭커들을 상대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제로라고…….
- 유럽연합이 바보냐? 왜 제안했겠어.
-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왜 받았지? 1 vs 1도 아니고. 솔직히 이번 판단은 좀 실수한 듯.
- 하…… 진심 걱정된다.
- 전부 닥쳐어어어어어어. 갓준혁이 이깁니다. ㅇㅋ?
- 무지성 팬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 지금은 귀환자님이 훌륭한 내용을 보여 주고 최대한 부상이나 후유증 없었으면 하네요.
- 국내 랭커도 아니고 세계 랭커라서 답이 안 나오긴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랄까.
- 이건 게임 같은 게 아니긴 하지…… 현실은 현실.
- 상성 봐라. 성직자에 마법사에 암살자 계열, 체술, 검사, 궁숰ㅋㅋㅋㅋ 없는 게 없다 ㅅㅂ;;;
- 최상위 랭커 두 명만 해도 리더보드 하위권은 이긴다던데.
- 정도껏 해야지. 8명? 에바지. 한국이 봉이냐! 유럽연합, 이 양아치들아?
- 진정들 하셈. 이미 엎질러진 물임.
- 귀환자님 출정하신다 ㅠㅠㅠㅠ
- 아아아……!!
- 폐하 지금이라도…….
준혁은 복도를 걸으면서 가볍게 손목을 돌리며 오늘 경기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려 보았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며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건 준혁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오반니를 비롯한 유럽연합 협회장들. 그리고 세상 모두가 세계 랭커들의 승리를 점쳐 주고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어떻게 생각하든 준혁은 지금 이 순간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유럽권의 골드 던전을 구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었는데, 그 과정이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됐으니까.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은 몰랐다.
인간들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확신하고 그렇기에 기회가 발생한다.
‘악마들도 그랬었지.’
펄럭-!
준혁이 붉은 휘장을 손으로 걷어냈다.
큰 붉은 천이 휘날리며 헌터돔 경기장 입구 통로에 준혁이 나타났다.
8인의 헌터들이 경기장에서 준혁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준혁이 당당한 걸음으로 8인의 헌터들이 서 있는 경기장의 중심을 향해 걸었다.
오후 16시.
헌터돔에서 열리는 헌터대전을 위해 준혁의 공식 경기가 시작을 앞둔 순간이었다.
- 등장!
- 곧 시작한다 ㄷㄷㄷㄷ
- 입장 포스는 ㄹㅇ 지린다 ;;;;
-실망하고 싶지 않은데 ㅠㅠ 걍 하지말지.
- 이번 시합에 조 단위 거래 조건이 걸려 있다더라. ㄷㄷ
- 후우, 이젠 진짜 모르겠다. 일단 지켜보자.
- 유럽연합 얍실이들 눈빛 킹 받네.
- 일대일로 다이다이 뜨면 숨도 못 쉬고 뚜드려 맞을 것들이.
- 와, 랭커들 다 유명한 놈들이네.
- 거의 각국 대표들이네요.
- 그만해 유럽연합 놈들아. 이러다 다 죽어~
- 난 갓준혁에게 걸겠다.
- 올릭픽급 ㅋㅋ
- 아무리 봐도 졌잘싸 아니겠냐...?
- 제발……!!
- 기적을…….
- 내가 다 쫄린다.
준혁이 8인의 랭커들과 일정 거리를 두고 경기장의 중앙에 위치했다.
“5분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대전 플레이어들은 편한 위치에서 대기해 주시길 바라며 경기 시작 전까지 거리를 유지해 주십시오. 상대가 치명상을 당했다고 판단 될 경우에는 휘슬이 울립니다. 휘슬 소리가 울리면 대상에게 공격을 즉시 중지해 주시길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규칙에 대해 설명했고 뒤이어 전광판에 숫자가 나타났다.
타임워치 5분.
준혁은 VIP룸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탈리아 협회장 지오반니를 올려다봤다.
그는 여유롭게 술을 마시며 관전 중에 있었다.
“어딜 보는 거요? 정신 차려야지. 뼈가 부러지고 살이 찢겨 나갈 거요.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을 텐데. 울진 말라고. 1위의 체통이 있는데.”
한 놈을 시작으로 유럽연합의 랭커들이 저마다 준혁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오늘 지독한 어둠을 보게 될 거다.”
“오늘 경기가 끝나고 나면 당신은 리더십을 잃게 될 거야. 한국을 대표하는 귀환자의 국제적 망신 덕분에.”
준혁은 그들의 도발을 무시하고 시간을 보고 있었다.
“귀환자.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지지 않아?”
“저 시간이 끝나면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란 걸 알겠지.”
“헤이, 무비스타. 이건 영화가 아니야. 멋 부리지 말라고.”
유럽연합은 마치 다리를 다친 사냥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들같이 굴었다.
- 아…… 시간이 간다.
- 졸라 재수없네. 말하는 거 봐라;;; 와;;;
- 아, 진짜 너무너무 열 받는데? 부끄러움도 없나 저것들?
- 하…… 이건 진짜 아닌데…….
- 솔직히 협회장이 막았어야 했다. ㅇㅈ?
- 걱정돼 ㅠㅠ
- 뉴스에서 전부 다 귀환자가 질 거래요. 어떡하죠?
- 갓준혁 파이팅!
- 조땟다…….
- 난 믿는다.
[10초]
[9초]
[8초]
[7초]
[6초]
.
.
예정된 경기 출발 시간을 앞두고, 준혁과 유럽연합 헌터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타임워치 시간을 보고 있는 준혁의 얼굴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오직 유럽연합 헌터들만이 눈빛에 살기가 피어오를 뿐이었다.
“아마 시작과 동시에 소환을 할 거야. 준비하고 있어 마띠아스.”
뒤에서 들려온 나직한 목소리에, 성직자 랭커 마띠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임워치가 커다란 숫자로 바뀌었다.
……5, 4. 3, 2, 1.
“l‘inizio(시작)!”
스피커가 시작을 알렸다.
준혁의 시선이 곧바로 8인의 랭커들에게로 향했다.
반원 형태로 넓게 포지션을 잡은 유럽연합 랭커들이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처럼 자세를 잡았다.
준혁이 소환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자, 유럽연합 랭커들은 실소를 흘렸다.
“이봐, 귀환자! 벌써 포기한 건가?”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발이 떨어지지 않나 보군.”
“굳은 거냐? 하하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랭커들이 서로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자마자 8명이 준혁을 향해 스킬을 발출했다.
빛무리가 사방에서 번쩍이며 준혁을 향해 쇄도했다.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거대한 폭음과 함께 마력의 파장이 눈을 멀어 버리게 만들 것처럼 사방으로 번졌다.
특수 던전 물질과 더불어 마법으로 설계된 땅은 뿌연 먼지만 날릴 뿐 부서지거나 금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스킬의 흔적이 그 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뿌연 마력의 잔여 오라가 안개처럼 자욱하게 퍼졌다.
그 광경을 보고 유럽연합 랭커들은 씨익 웃음 지었다.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그 자리에서 데미지를 입고 휘청이고 있을 준혁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오라의 연기가 사라지고 난 후, 준혁은 생채기 하나 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유럽연합 랭커들이 커다랗게 뜬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준혁을 보았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던 준혁이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준혁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크읏!”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자 마치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유럽연합의 얼굴이 일시에 일그러졌다.
“흔들리지 마라!”
이탈리아의 신궁 조반니가 준혁을 향해 선제적으로 화살을 쏘았다.
마법의 힘이 담긴 화살이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로 날아들었으나 준혁은 맨손으로 조반니가 쏜 화살을 잡아챘다.
화살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으나 준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을 꽉 쥐었다.
콰지직-!
화살을 부러트림과 동시에 오른손에 빛의 검을 만들었다.
준혁이 허리를 비틀며 빛의 검을 던졌다.
빛의 검은 조반니가 쏜 화살보다 더 빠르게 신궁이라 불리는, 조반니의 오른쪽 어깨를 관통했다.
조반니가 신음을 흘리며 쓰러졌다.
힐러들이 치료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전광판을 봤으나 전광판에는 아직 아웃 표시와 치료 문구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힐러들이 보기에 화살을 쏘아야 할 어깨가 완전히 망가졌으니 사실상 조반니는 탈락이었다.
그 사이, 남은 7인의 랭커들이 다급히 준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