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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49화 (49/175)

귀환자의 모든 것 49화

다음 날 오전.

요트가 헌터돔을 향해 출발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펄펄 날렸다.

점점 헌터돔과 가까워지니 멀리서 봤던 것과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각성자들의 치열한 혈투를 치르는 곳이라 그런지 웅장한 포스가 요트 위로 어른거렸다.

스산한 기운이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든다.

툭!

요트가 선착장에 도착했다.

준혁이 먼저 헌터돔에 발을 디디고, 그다음 선우가 내렸다.

선우의 손을 잡고 요트 밖으로 지우까지 모두 내렸다.

“……대기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협회 입구에서, 준혁에게 얻어맞았던 피에로가 붕대를 칭칭 휘감은 얼굴로 나와 있었다.

선우는 그가 안내인으로 나왔다는 게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지오반니 이탈리아 협회장이 뒤끝이 기네. 보란 듯이 저 친구를 보낸 걸 보면.”

선우가 피에로를 보며 말했다.

준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굽은 등으로 조심스레 앞장서고 있는 피에로를 따라갔다.

선우와 지우는 고개를 젖혀 헌터돔의 외관을 구경했다.

헌터돔은 돔 형태로, 외부에서 들어갈 수 없게끔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벽이 굉장히 높게 설계되어 있다.

중세시대의 성문보다도 크게 지어진 입구를 통해 준혁의 무리는 헌터돔의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헌터돔의 정문을 통과하자 쇠사슬 소리가 나면서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그긍!

뒤를 돌아보자 거대한 철문이 정문을 틀어막기 위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헌터돔의 입구는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넓은 복도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소리가 복도에 커다랗게 울렸다.

밝은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복도에 어린 차가운 한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선우와 지우는 상당히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준혁은 오로지 앞만 보고 걸었다.

규칙적이면서도 빠른, 자신감이 있는 걸음이었다.

“헌터대전이 진행될 경기장부터 보여 드릴까요?”

당한 바가 있어서 그런지 피에로는 겁먹은 얼굴로 눈치를 살피며 준혁에게 공손한 어투로 물었다.

피에로의 목소리에는 존중을 담은 예의가 잔뜩 담겨 있었다.

“미리 봐 두는 게 좋겠어.”

준혁이 수락했다.

그러자 피에로가 곧 나온 양 갈래 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데 바깥보다 더 추운 것 같아요.”

지우가 팔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아마 외부의 마법공격을 막기 위해서일 겁니다. 마법학에 의하면 건물 외부 쪽 온도를 낮춰야 한다더군요. 전공 분야가 아니라 제가 아는 건 이 정도뿐이지만요.”

선우의 말에 지우가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장 쪽으로 가게 되면 곧 따뜻해질 겁니다.”

선우의 말대로 긴 복도를 지나 문 하나를 넘자마자 차가웠던 공기가 순식간에 따뜻한 온도로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우가 선우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선우가 웃음 지을 때, 높은 벽 사이로 걸음을 옮기면서 서서히 경기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준혁의 무리는 헌터돔의 규모와 분위기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주 곱게 갈린 흙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부드럽게 밟히는 땅은 마치 쿠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공간은 약 500평 정도였는데 그 주변으로는 콜로세움처럼 구경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콜로세움을 모티브로 만든 건축 형태가 틀림없었다.

아주 넓게 탁 트여 있는 공간은 그 어떠한 거친 경기도 치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단순히 넓고 단단하다고 해서 헌터돔의 경기장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마법으로 공간을 보호하기 위한 설계까지 완벽히 끝마쳐 있어야만 헌터돔으로써의 제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경기장에 설치된 마법 장비 덕분에 헌터돔은 랭커들의 광범위한 스킬의 공격력까지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랭커들 간의 경기로 헌터돔이 무너질 확률은 제로입니다. 그러니까 전력을 다해 싸워도 될 만큼 안전한 곳이란 뜻입니다.”

피에로가 경기장을 둘러보는 준혁의 무리에게 말했다.

“어떤 것 같아 형?”

팔짱을 끼고 훑어보던 선우가 준혁을 향해 물었다.

“별 감흥은 없네.”

준혁이 경기장을 보며 말했다.

“인간의 욕망과 진화를 향해 만들어진 공간이라 그런지 벌써 피 냄새가 나는 듯해.”

선우가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을 때, 준혁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됐다.

“피에로!”

준혁의 목소리가 드넓은 경기장의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준혁의 부름.

피에로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가 준혁 앞으로 달려가 어깨를 웅크리며 고개를 숙였다.

“부, 부르셨습니까?”

준혁은 3시 방향의 위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늘 있을 경기에 몇 명의 협회장이 오지?”

“이탈리아 협회장 한 명입니다.”

준혁이 보고 있던 곳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그럼 저기서 이탈리아 협회장이 지켜보는거겠네.”

피에로가 준혁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직관할 수 있는 VIP룸 중 가장 좋은 위치이자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브라운 색감으로써 안락한 분위기였다.

“……예. 맞습니다. 아마 협회장께서는 저곳에서 경기를 지켜볼 겁니다.”

준혁이 VIP룸을 응시하고 있는 가운데 인기척이 났다.

휘파람 소리가 가장 먼저 들렸고 뒤이어 새로운 목소리가 경기장으로 흘러 들어왔다.

“여기구나. 헌터돔이.”

“나도 여긴 처음 와 봐.”

“이야, 저기 있다. 리더보드 1위 귀환자!”

“오오, 진짜네!”

웃음소리가 준혁의 무리가 있는 곳을 향해 날아들었다.

준혁과 선우 그리고 지우의 시선이 경기장 입구 쪽으로 돌아갔다.

여덟 명의 헌터들이 준혁이 서 있는 경기장 중앙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오늘 있을 경기를 앞두고 자신만만한 표정들이었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신기하네.”

“으하하, 내가 지금 귀환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있는 거야?”

“반가워요?”

여덟 명이 준혁의 앞에 몰려들어 이런저런 말을 해 댔다.

조용히 경기장만 구경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시끄럽게 떠드는 헌터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준혁을 대하는 자세는 공격적인 편이었다.

“왜 말이 없어?”

“귀환자님, 진짜 우리 여덟 명을 상대로 경기 할 겁니까?”

“아직 계약서 사인 안 했죠?”

“에이, 이건 말이 안 되지. 우리를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귀환자님이라고 해도 그렇게 욕심내다간 크게 다치실 텐데.”

준혁이 8인의 헌터들에게 걸어갔다.

준혁이 다가오자 8인의 헌터들도 지지 않고 준혁을 향해 도발적인 표정으로 웃음 지었다.

겹쳐져 있는 8명의 헌터들을 바로 앞에 두고 준혁이 하나하나 눈빛을 주고받았다.

“당신들이 얼마나 이번 일에 개입되어 있을진 몰라도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그것만 기억해라.”

긴 생머리의 사내가 준혁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당신은 그럴지 몰라도 우린 안 그래. 혼자서 우리 여덟 명을 상대하겠다고? 우리가 그렇게 병신처럼 보여?”

“약해 보이긴 하지.”

긴 생머리 남자의 목과 얼굴에 새파란 핏대가 솟아올랐다.

충혈 된 눈으로 당장 찢어질 듯한 공기가 만들어졌다.

“그만둬.”

8인의 헌터 중 한 명이 말렸다.

긴 머리 사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났다.

그는 두꺼운 재킷으로도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보일 정도의 큰 덩치였다.

“게임은 게임으로 풀면 돼. 안 그래?”

8인의 헌터들 중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긴 머리 사내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긴 머리는 준혁을 노려보며 관절을 꺾었다.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

“오늘 경기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내가 제일 먼저 저 챔피언의 콧대를 분질러 주지.”

긴 머리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의 눈은 마치 사자처럼 맹수의 사냥 본능으로 가득했다.

주변에서 쿡쿡 웃는 헌터들도 있었고, 침착하게 준혁을 지켜보는 헌터들도 있었다.

그때 선우가 피식 웃으며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여덟 명이서 덤벼드는 주제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신난 꼴들이라니. 역하네 진짜.”

선우의 말에 8인의 헌터들이 모두 예민해진 표정으로 선우를 노려보았다.

선우가 웃었다.

“돈 때문에 그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경기하는 게 그게 자랑입니까?”

긴 머리의 헌터가 튀어 나가려고 하는 걸 다른 헌터가 붙잡았다.

“당신들은 경기 이전에 겸손과 양심이라는 것 좀 배우십쇼. 랭커라면서 까마귀도 아니고.”

크로아티아의 랭커가 선우의 앞으로 걸어갔다. 선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였다.

까까머리의 크로아티아 랭커는 무표정하게 고요한 살기가 어린 눈으로 선우를 내려다보았다.

“귀환자가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서 네 얼굴을 터트렸을 거다. 저기 서 있는 피에로보다 훨씬 멋진 얼굴로 만들어 줬을 거야.”

선우는 식은땀을 흘렸다.

단순히 이렇게 서서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세계 랭커의 존재감이라, 선우는 내심 당황했다.

준혁의 편을 들기 위해 몇 마디 거들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압박감이 심했다.

그 어떤 무기를 들고 와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할 것 같다는 벽이 느껴졌다.

싸우기 전부터 전의를 상실하게 된다.

자신의 형이 이런 랭커들 여덟 명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 이번 경기의 수준이 실감 났다.

‘젠장.’

하지만 그건 속마음일 뿐 선우는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을 들키면 귀환자이자 자신의 친형인 준혁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선우는 크로아티아 랭커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너희들의 상대는 내가 아니야.”

선우를 뚫을 것처럼 강하게 쏘아보던 크로아티아 랭커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준혁을 힐끔 보았다.

“뒤로 빠져.”

준혁이 말했다.

크로아티아 랭커가 강한 눈으로 준혁을 쏘아보았다.

“세계 랭커들 중 일부는 리더보드를 꺾고 새로이 리더보드가 된 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말인 즉슨 우리 하나하나를 무시한 결과는 끔찍할 거란 겁니다.”

“셋을 세지.”

준혁이 고요한 눈빛으로 크로아티아 랭커의 눈을 보며 경고했다.

“셋, 둘.”

숫자를 모두 세기 전에 크로아티아 랭커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리더보드 1위에 대한 존중의 표시입니다. 하지만 경기에서 내게 그 존중을 찾긴 어려울 겁니다.”

준혁이 말없이 그를 응시했다.

크로아티아 랭커가 가장 먼저 경기장을 떠났다.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

“1인 군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긴 머리의 네덜란드 랭커가 두 번째로 경기장을 떠났다.

“우린 비열하다는 손가락질은 받겠지만, 귀환자님. 당신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겁니다. 혼자 잘나봐야 의미 없다는 거지.”

“재밌게 해봅시다. 챔피언.”

세계 랭커들이 준혁에 대해 한마디씩 남겼고, 이내 그들은 경기장을 모두 떠났다.

모두 하나 같이 오후 경기가 시작되면, 준혁을 죽일 것처럼 기세등등한 살기를 등에 업은 채였다.

그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가 돼서야 선우는 이마에 배인 땀을 닦아내곤 답답함을 긴 숨으로 뱉어 냈다.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더해 봐도 계산이 서질 않았다.

유럽연합이 말도 안 되게 불리한 싸움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말리지 못한 건 한국의 협회장이자 한선우 자신이었다.

만약 이게 잘못된 판단이라면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에 믿음을 갖고 있는 형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준혁이 선우의 허리를 툭 쳤다.

“어깨 펴고 허리 펴. 그리고 한 번만 더 형을 의심하면 파천 길드는 탈락이야.”

준혁이 걸음을 옮겼다.

“피에로, 지오반니에게 안내해. 지금 바로 계약서를 써야겠어.”

피에로가 앞서가는 준혁의 옆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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