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45화
항공사 스튜어디스의 안내를 받아 전용기 기내로 들어갔다.
세계 최고의 초호화 전용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호텔을 연상하게 하는 넓은 공간과 장인이 만든 명품 소파와 테이블은 예술적인 구조로 자리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욕실 안에는 넓은 욕조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10여 명이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다이닝 공간과 침대 공간까지 따로 빠져 있었다.
마치 하나의 집이나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편안한 비행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스튜어디스가 깍듯하게 준혁의 일행에게 말하며 곧 비행이 시작될 거라 알렸다.
그사이 지우는 최대한 리액션을 자제하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휘둥그런 눈으로 기내를 훑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건 TV에서나 보던 곳이었다.
5천억짜리 전용기 기내인지라 입이 자꾸만 벌어졌지만 지우는 의식적으로 입을 닫기 위해 애써야 했다.
대체 얼마나 비싼 비행기인지 감도 오지 않는 수준이라 지우는 얼굴을 흔들며 현실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지우 양? 매니저이긴 해도 이동하는 동안 편하게 쉬어요.”
“네, 협회장님.”
지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겁니다.”
“빨리 적응하겠습니다.”
심호흡을 하는 지우를 귀엽게 보던 선우가 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은 벌써 귀환자로서 완성된 것 같네. 완벽히 이 사회의 지도자계층에 스며든 것 같아.”
선우가 훈훈하다는 듯 준혁을 보며 말했다.
“지도자는 무슨.”
준혁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미 상징적인 지도자지.”
준혁이 모른 척 시선을 피할 때, 비행을 맡은 파일럿이 와서 인사했다.
뒤이어 스튜어디스가 출발 전 기본 설명을 하고 벨트를 매 주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초호화 전용기가 전자음을 내며 출발했다.
“우리가 이탈리아 협회로 가게 되면 분명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야. 이미 판을 벌려 놨으니까.”
“…….”
“유럽연합 대표들이 모여 있을 거고. 비즈니스 준비로 이미 서로 입을 맞춰 놨겠지. 골드 던전의 독점 수급을 취소하라고 한다면 아마 거절보단 그쪽에선 거래를 제안할 거야. 아마 뭐가 됐든 듣기 좋은 제안은 아니겠지.”
선우와 지우의 시선이 준혁에게로 집중됐다.
준혁의 대답 여하에 따라 이번 미팅의 방향이 결정된다.
“가 봐야 알겠지.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할지는.”
준혁은 가벼운 어투로 얘기했지만, 선우는 생각이 깊어졌다.
유럽연합은 분명 첫 자리인 만큼 포지션의 우위를 가져가기 위해 강하게 나올 게 틀림없었다.
그럴 경우 준혁의 대응은 자칫하면 민감한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다.
학창 시절처럼 주먹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선우는 지금까지 생각해 왔고 여전히 지금도 생각 중이었다.
어떤 전략이 가장 효과적으로 유럽연합에게 강한 압박이 될 수 있을지.
하지만 애초부터 늘 우위에 서 있었던 노련한 유럽연합을 상대로 전략을 구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한쪽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솟아나곤 했다.
그에 반해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창밖의 구름을 보고 있는 준혁은 자유로워 보였다.
“형.”
준혁이 선우를 돌아봤다.
“형이 만약 강하게 나간다면 유럽연합 쪽은 형을 법을 어기고 목적과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프레임을 씌울지도 몰라.”
“상관없어.”
준혁이 단호히 답했다.
“우리에겐 단순히 우리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와 시민의 안위까지 걸려 있다는 걸 기억해야 돼.”
“적어도 뭐가 더 중요한지는 알고 있으니까.”
“형이 따로 생각하는 방법이 있는 거지?”
“선우야.”
“……?”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리스크 없이 가질 수 있는 건 없었어. 이 세계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다를까?”
선우는 생각이 깊어졌다.
처음 파천 길드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파천 길드를 운영하면서 각성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업 경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과정들.
돌이켜 보면 모두 인생을 건 도박이었다.
하나를 얻고자 하면 그에 걸맞은 대가를 치르는 것.
결국 정점에 서기 위해선 그동안 한선우 자신이 경험한 리스크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걸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형 이전에 귀환자.
그는 애초에 자신과는 그릇부터가 달랐다.
단순히 운이 좋아 리더보드 1위가 된 게 아니라는 느낌이 선우의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다.
“담을 좀 키워야겠네. 잃을 게 많아져서 그런가 잔가지가 너무 많아.”
선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잊지 마. 옳은 길을 나아가는 데 있어 주저하면 안 된다는 걸. 만약 전쟁을 걸어오겠다면 얼마든지 하라고 해. 내가 알려 줄 테니까. 누굴 상대하고 있는지.”
가까운 사이 혹은 친한 사이는 가끔씩 망각하게 된다.
지금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그 친밀함과 신뢰가 현실과의 괴리를 만드는 법.
그리고 깨닫게 된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형이기 이전에 골드 던전을 단신으로 최단 시간에 깨부순 전무후무한 지존이라는 것을.
“기대되네. 그동안 자신들의 힘을 믿고 패악질을 일삼아 온 유럽연합의 얼굴이 어떻게 일그러지게 될지.”
선우가 소파에 기대며 웃었다.
“가서 다 죽여 놓자고.”
준혁이 미소 지은 얼굴로 창밖을 보며 말했다.
“……진짜로 죽일 건 아니지?”
대답이 없는 준혁을 보고 선우가 질린 얼굴로 지우를 보았다.
“이, 이지우 매니저. 우리가 가는 이 비행기.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겠죠?”
지우가 안경을 고쳐 쓰며 미소 지었다.
“설마 무슨 큰일이야 있겠어요?”
선우는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보니 우린 전혀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군요.”
유럽연합의 회담실로 들어가게 되면 어떤 분위기가 나올지 선우는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났다.
그건 유럽연합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강력한 패권을 유지해 온 유럽연합과 준혁의 대치 상황에서 만들어질 공기가 얼마나 숨 막힐지 벌써부터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져서였다.
“휘유.”
선우가 휘파람을 불 듯 바람을 뱉었다.
짜릿한 긴장감이 목을 간지럽혔다.
‘이렇게 대책 없이 쳐들어갈 수도 있는 거구나.’
선우는 어지러운 듯 이마를 탁 짚었다.
* * *
유럽연합의 회담실.
각국의 대표 협회장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탈리아 협회장 지오반니는 이미 상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오.”
“날씨가 사납군.”
예정된 시각에 이르자 저마다의 인사를 전하며 각자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이번 유럽연합 회담에 참석한 협회장들은 가장 던전 물질 사업의 성장이 뛰어난 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회담실의 의자 수는 총 아홉.
본래 유럽연합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건 이탈리아를 제외한 8개국.
하지만 이번엔 준혁의 자리를 비워 놓고 7개국의 협회장이 초대되었다.
하나같이 불편한 기색이 가득한 표정으로 7인의 협회장들이 자리에 앉았다.
착석을 모두 마치고 나자 이탈리아 협회장 지오반니가 시계를 보고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고, 시간도 되었으니 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예정에 없던 이번 회담 자리가 만들어진 건 귀환자 때문입니다.”
귀환자라는 세 글자가 지오반니의 입에서 나오자 협회장들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귀환자는 사실상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서열이 정해지고 던전 물질로 고도성장을 해야 할 시기에 툭 하고 튀어나온 귀환자는 불편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먹을 수 있는 파이는 정해져 있는 가운데 최상위 포식자가 나타났으니 이는 심각한 생태계의 혼란이었다.
“귀환자는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명백히 더 월드 시스템상 리더보드 1위의 인물이지요.”
협회장들은 할 말이 많았으니 불편함을 품은 얼굴로 지오반니의 말을 계속 듣기 위해 기다렸다.
“오래전부터 더 월드의 순위는 우선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던전은 인류가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이었고 그로 인해 마음이 맞는 자들이 모여들었죠. 그렇게 각국에서 위대한 자들이 협회를 맡아 평화를 위한 여정으로 역사를 써 왔습니다.”
지오반니가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귀환자는 스트리밍을 통해 보란 듯이 자신이 리더보드 1위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했고 또한 혼자서 골드 던전을 클리어하겠다고 나섰죠.”
“유럽연합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했어요!”
네덜란드 협회장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지오반니가 진정하라는 듯 손으로 허공을 꾹꾹 눌러 보였다.
“물론 리더보드 1위로서의 능력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희생이 배인 노력을 빼앗아 가게 둘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여 귀환자의 행보가 어떤 식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고 예상대로 귀환자는 우리의 던전 수급에 대해 직접적으로 제동을 걸어왔습니다.”
각국의 협회장들이 합을 맞춘 것처럼 화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책을 수립하고자 드린 메시지는 모두들 확인하셨을 겁니다. 우리는 오늘 귀환자에게 유럽연합의 입장을 확실히 전하고자 합니다.”
포르투갈 협회장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탕 쳤다.
“맞는 말이오. 우린 오늘 귀환자에게 정중한 예의를 요구해야 하오.”
지오반니가 숨으로 고르곤 입을 열었다.
“메시지를 드린 대로 귀환자에게 합리적인 거래의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최소한의 지성을 갖춘 각성자라면 우리의 요구가 그렇게 무리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리겠지요.”
“말씀하셨던 대로 우리는 각 나라를 대표할 만한 최상의 헌터들을 데려왔습니다.”
프랑스 협회장의 말에 모두 지오반니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 역시 협회로 그를 불렀습니다. 이미 준비 중이죠. 우리는 귀환자에게 던전을 요구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그 자격을 물을 것이고, 또한 그는 우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스페인 협회장이 웃음 지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군요.”
각국 협회장들이 자신만만한 미소들을 지었다.
그들을 대표하기라도 하듯이 지오반니도 진한 웃음기를 입가에 머금었다.
“귀환자가 골드 던전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긴 했지만 혼자 우주정복이라도 할 것처럼 구는 걸 내버려 두자니 그러기엔 너무 오만하지 않습니까?”
각국 협회장들이 사방에서 커다랗게 웃었다.
“비록 리더보드는 아니라고 해도, 귀환자 혼자서 세계 랭커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상성 상 불가능하지요.”
“규칙은 죽이지 않는 것. 덕분에 귀환자가 목숨은 부지하겠지만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의 주제를 알 게 될 것이오.”
“멘탈이 산산조각 나게 될 겁니다!”
지오반니가 손을 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귀환자가 과연 우리가 모은 8인의 랭커들을 상대로 헌터대전을 수락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