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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40화 (40/175)

귀환자의 모든 것 40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힐러, 최설화였다.

그녀는 침착한 표정으로 다가와 유다연의 상태를 확인하고 힐을 사용했다.

최설화의 손이 신성한 빛으로 빛난다 싶더니 순식간에 고통으로 물들어 있던 유다연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감사합니다.”

유다연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지 말아요.”

유다연이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많이 앓은 탓인지 그녀의 눈은 지쳐 있었다.

잠시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최설화가 트레이닝 센터 돔의 내부를 눈으로 훑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던전이 만들어질 때의 충격을 감당할 수 있겠네. 놀라운 건축 형태야.”

지우는 최설화의 침착함에 상당히 놀랐다. 이런 상황에 저런 여유를 보여줄 수 있다니.

새삼 최설화가 미국 최대 힐러 집단인 메이즈 출신이라는 걸 인지하게 된다.

최고의 힐러, 그리고 귀환자님이 있다면 유다연씨는 분명 이 시련을 잘 이겨낼 것이라고, 지우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누구보다 유다연의 몸상태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최설화 힐러일 것이다.

“무시무시한 눈빛이네요. 매니저님.”

“네, 넷?!”

지우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이제 보니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있었던 모양이다.

“긴장이 돼서요. 힐러님은 긴장 안 되세요?”

“역시 귀여워.”

최설화가 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우는 어색한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나 혼자도 아니고 귀환자님까지 계시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거. 매니저님도 알잖아.”

“네, 확실히 그렇죠!”

지우가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음.”

최설화가 다시 유다연의 상태를 체크했다.

확실히 눈에 띄게 체력이 떨어졌고, 의식도 흐릿해지고 있다.

유다연의 육체는 곧 던전화를 이루며 거대한 던전을 개방하게 될 것이다.

유다연은 육신을 매개체로 던전을 열기 위한 하나의 통로였다.

아직 역사는 던전의 팽창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낸 바가 없었다.

어떤 이유로 던전이 생긴 것인지 전혀 과학적으로 그 비밀을 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비슷한 경우의 케이스를 데이터로 확보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인간이 던전화가 되며 던전을 여는 케이스는 의외로 적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그런 케이스를 꽤 자주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 사례에 대한 자료는 모두 오픈되어 열려 있었다.

물론 중간에 기밀자료로써 정보가 잠겨 있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 시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쨌든 지난 데이터에 비춰보면 던전화가 될 경우 48시간 안에만 던전을 클리어하면 던전핵으로 굳어지던 일종의 희생양을 구해 낼 수가 있었다.

물론 자료에 의한 근거는 확실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가 되면 어느 누구도 쉽사리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불규칙한 변화 혹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지도 몰랐다.

실제로 던전화가 된 사람을 구해 내지 못한 적도 많았다.

물론 보통 그런 경우는 늦게 발견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현실이 자신에게 닥치면 머릿속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가 없게 된다.

세상은 이미 변했다.

던전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던전을 익숙하게 여겼다.

헌터가 구해 줄 것이란 믿음이 있지만 그럼에도 본능적인 공포와 두려움은 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뿌리내리는 법이었다.

유다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극도로 지친 모습은 아마도 단순한 통증 때문이 아닌 정신적인 스트레스 문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살기 위해 몸과 감정이 반사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했겠지만 인간은 정신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유다연은 마치 힘없는 풀잎처럼 보일 정도로 말라붙어 있었다.

“곧 귀환자님이 오실 겁니다.”

최설화가 말했다.

유다연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그녀로부터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유다연의 팔과 등에 새겨져 있던 마계어의 문자들이 마치 액체처럼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그 변화는 아주 느렸다.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듯이 액체는 느릿하게 흘렀다.

이는 뭔가가 시작될 거라는 예고로 보기에 충분했다.

그런 만큼 유다연은 그 변화에 깜짝 놀랐는데 워낙 기운이 없었던 탓에 그저 눈만 커질 뿐이었다.

그동안 누르고 눌러 왔던 극한의 스트레스가 중압감으로 다가오는 듯 유다연의 얼굴빛엔 강한 그림자가 어렸다.

“제가 어서 가서 귀환자님을 데려오…….”

지우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준혁이 나타났다.

센터 안으로 들어온 준혁은 던전에 들어가기 위해 던전용 의복으로 이미 채비를 한 모습이었다.

뚝. 뚝.

뭔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우가 긴장한 얼굴로 유다연을 돌아봤다.

유다연의 몸에 새겨져 있던 검은 문자는 액체가 되어 땅에 떨어져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 하나로 뭉쳐졌다.

그러곤 그 검은 액체는 마치 피와 같은 새빨간 것을 내뿜었다.

붉은 액체는 그렇게 원형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유다연의 중심으로 새빨간 피가 원형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기괴한 빨간 액체에서는 놀랍게도 진짜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피 냄새를 풀풀 풍기는 새빨간 액체는 점차 다시 역으로 방향을 거스르더니 의자에 앉아 있는 유다연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우가 그 광경을 보고 준혁을 홱 돌아보았다.

“진정해. 던전화가 진행되는 과정일 뿐이야.”

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나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던 터라, 지우는 울먹이면서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그런 광경 속, 직접 당사자로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 내야 할 유다연이 지우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새빨간 피는 그렇게 서서히 유다연의 발끝부터 시작해 발목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뱀이 움직이듯이 유다연의 몸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던 유다연이 움찔 몸을 떤 것은, 검은 액체와 새빨간 피를 밟고 자신의 반경 속으로 들어온 준혁에 의해서였다.

준혁은 자신의 발이 더럽혀지거나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유다연의 바로 발치 앞까지 다가서서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렇게 눈높이를 맞춘 준혁을 보고 유다연은 눈동자가 떨렸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잠시 자고 온다고 생각해요.”

듣기 좋은 편안한 목소리였다.

죽어 있던 유다연의 눈동자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입가에는 작은 미소마저 걸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죽음이라는 절망의 공포 속에 잠겨 있던 그녀였다.

아무리 준혁이 구해 주기로 했다지만 던전화가 진행되는 과정은 보통의 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두려움과 고통은 준혁의 존재에 의해 새롭게, 그리고 산산이 깨져 나갔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던전으로 들어올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귀환자다.

다시 한 번 그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된다.

리더보드 1위.

절대적 지존.

그로 인해 유다연은 공포가 사라지고 완전한 믿음에 잠길 수 있었다.

핏물은 허리를 타고, 팔을 잠식시키며 목까지 올라온다.

전신을 뒤덮기 위해 올라오는 핏물이었으나 더 이상 유다연의 눈 속에 공포는 들어 있지 않았다.

준혁의 강인함이 깃든 눈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다연은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눈을 감았다.

곧 핏물은 목을 지나 얼굴까지 올라왔다.

맥박이 빨라지고 눈 앞의 시야는 기하학적으로 변해갔다.

발끝에서 시작해 머리끝까지 핏물로 삼켜 버린 순간 준혁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유다연의 전신을 삼킨 핏물은 곧 밑에서부터 회색빛으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시멘트처럼 변해 가더니 사방으로 강한 마력의 파동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만 모두들 나가.”

준혁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트레이닝 센터 룸 안에 울려 퍼졌다.

힐러, 최설화가 지우를 데리고 센터를 나갔다.

쿵.

문이 굳게 닫혔다.

오직 준혁만이 담담하게 던전이 생성되고 있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전류처럼 마력이 사방으로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준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큐브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오히려 지루하다는 표정이었다.

실제로 준혁은 어서 빨리 던전이 생성되기를 기다렸다.

트레이닝 센터를 무너트릴 것처럼 마력의 줄기가 솟구쳤으나 완성도 있게 지어진 트레이닝 센터는 마력이 건물을 무너트리거나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다.

얼마나 실력 있는 장인이 만들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수준의 마법 건축이었다.

준혁이 신기하다는 듯 구경하고 있던 중, 마력이 한 곳으로 모여들더니 공간을 찢어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간을 매개체로 하여 던전을 형성하는 케이스를 연구진들은 히든 던전이라 기록했고 후에 헌터들은 히든 던전이라 부르며 클리어에 도전했다.

히든 던전은 일반 던전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양상을 띠었으며 마수들의 수준은 물론 던전의 환경 또한 모두 그 성질이 달랐다.

던전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 만큼 항상 국가는 만만의 준비를 다해 헌터를 투입시키곤 했지만, 준혁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준혁에겐 이 히든 던전 역시도 그저 평범한 던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이트가 형성을 끝마치고 이내 완전한 게이트의 형태를 이루었을 때.

준혁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수백만 번, 수천만 번의 집도 경험을 가진 천재 외과의사가 수술실로 들어가듯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 * *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오직 밝은 빛을 내는 달빛을 닮은 것만이 떠 있을 뿐.

그 은빛 아래, 땅은 질척거리는 진흙이었다.

영혼으로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인간의 육체를 갖게 되다 보니 이렇듯 질척이는 땅을 밟자 불쾌감이 밀려들었다.

‘캐슬에서 살다 보니 도련님이 다 됐군.’

준혁은 별게 다 신경 쓰인다는 듯이 웃곤 던전핵이 되어 버린 유다연을 찾기 위해 끝없이 펼쳐진 땅을 걸었다.

레드 던전에 들어갔을 때의 경험과 비슷한 공간이었지만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진흙으로 가득한 땅에서 올라오는 아주 뜨거운 ‘열기’였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뜨거움에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 열기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차이가 있었다.

준혁은 자연스럽게 드넓은 땅 위에서 점점 더 온도가 올라가는 뜨거운 열기를 뿜는 곳 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동을 하다 보니 아주 먼 곳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지점을 향해 다가갈수록 열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

그 빛이 선명해질 무렵에는 던전 의복이 아니라 평범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면 모두 불에 검게 타 버렸을 정도로 강한 열기였다.

마침내 준혁이 이른 곳엔 불길에 휩싸인 성이 있었다.

마계에서 자주 봤던 형태라 준혁에겐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레드 던전에서도 마지막에 불타는 저택 속에 있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익숙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커다란 성에서는 철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마치 대장장이가 불길이 치솟는 성에서 제련을 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준혁은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했다.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가 머릿속을 부유했다.

익숙하면서도 꺼림칙한 기억이었다.

준혁은 타오르는 성채를 향해 자석처럼 이끌리듯 걷는 속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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