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자의 모든 것-32화 (32/175)

귀환자의 모든 것 32화

“그래서 일단 캐슬에서 지내라고 해 둔 상태야. 어떻게 생각해?”

다음 날 아침.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새벽.

준혁은 동생 선우에게 용병 유다연의 던전화에 대해 설명하고 의중을 물었다.

- 형 말대로 그 사람에겐 이번 일이 결코 좋은 일로 남지 않겠지. 하지만 파천 길드에 비공식 기밀 자료로 내용은 확실히 남겨야 할 거야.

“만약 나 때문에 내키지 않는 처리 방식이라면.”

- 아니 그런 건 아니야. 기록만 확실히 남겨두면 돼. 이 일이 설령 밝혀진다고 해도, 용병의 개인 정보를 지켜주기 위해서였다는 건 공감 할 테니까. 오히려 그 부분이 파천 길드와 협회의 이미지를 올려줄 수도 있겠지. 다만 유다연 씨가 협회에는 협력해줘야 할 거야.

“그래. 넌 좀 어때?”

- 음. 여전히 바쁜 것만 제외하면 별로? 참, 파천 길드에서 더 이상 던전행을 공지하지 말라고 했다며?

“제약이 많아지면 불편해지니까.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를 일에, 너무 주변을 의식할 수는 없어.”

- 얼마든지 형 마음대로 활보해도 돼. 이제 모두 형만 보고 있으니 형이 자주 더 월드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팬들은 좋아하겠지.

“그렇지 않아도 던전으로 갈 생각이야.”

- 오늘?

“전화 끊고?”

- 아무리 그래도 너무 타이트한 거 아니야?

“네 업무 강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 하하. 형제끼리 너무 열심히 사네. 과로는 건강의 적인데.

“건강 잘 챙겨라. 선우야.”

- 형이야말로.

준혁은 전화를 끊고 외출을 준비했다.

“어디 나가세요?”

드레스룸에서 던전 의복을 챙겨 입고 나온 준혁을 향해 매니저가 물었다.

“던전으로 간다.”

“아! 그럼. 제가 운전할게요. 들러야 할 곳도 있어서요.”

“유다연 씨는?”

“방에서 쉬고 있어요.”

“계속 확인해. 특별한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은 대비해둬야 하니까.”

“네. 걱정 마세요. 유다연 씨는 제가 집중 관리 할게요. 바로 출발하시는 거죠?”

준혁이 눈짓으로 답하자 매니저가 즉시 운전기사에게 무전기로 호출했다.

캐슬 밖으로 나가자 운전기사가 매니저에게 차량 키를 넘겼다.

매니저와 함께 출발하면서 준혁이 골드 던전의 위치를 말했다.

던전마다 등급에 따라 마수가 유출될 수 있는 브레이크 기간이 달랐다.

높은 등급일수록 브레이크까지 더 오랜 기간이 걸렸기 때문에 골드 던전은 일정으로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지만 준혁은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던전은 유한하지만 균열의 틈을 찾는 건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국내 던전에서 균열의 틈을 찾을 수 없다면 해외로 나가 골드 던전을 수급해야만 했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니.’

준혁이 짧게 한숨을 뱉을 때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량은 도로가로 나와 던전을 향해 달렸다.

상당히 이른 시간이라 출근하는 차량이 얼마 없어 도로는 열려 있는 편이었다.

준혁은 더 월드 시스템의 스트리밍을 오픈했다.

이른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시청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 헉?! 귀환자님이 이 시간에!

- 귀환자님 안녕하세요.

- 좋은 아침입니다!

- 새벽 아침부터 출중한 미모십니다.

- 오마이갓! 서프라이즈! 급 라이브!

- 황제 폐하 기침하셨습니까?

- 차 안 같은데 어디 가시나용?

“안녕하세요. 한준혁입니다.”

준혁이 어렵게 인사를 전하고 머쓱함에 괜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매니저 지우가 백미러로 준혁을 힐끔 보곤 소리 나지 않게 미소 지었다.

- 캬, 목소리 취한다.

- 오! 이른 새벽부터. ㅎㅎ

- 파천 길드 공지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 귀환자님 어디 가시는 중인가요??

“던전으로 가는 중입니다.”

준혁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 헉 던전.

- 출근 전에 골드 던전 공략 끝날지도?

- 흑흑. 그래도 골드 던전이면 맵 크기 자체가 달라서 풀타임 시청은 어렵겠네.

- 귀환자님 식사하셨나요?

- 귀환자님 굿모닝이에요!

이렇게 시청자와 소통하는 걸 해 본 적이 없어서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영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적응해야 했다.

“날씨가 좋네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창밖의 날씨를 보며 그걸로 떼웠다.

- 예 폐하. 좋은 아침입니다 ㅜㅜ

- 아침부터 이렇게 폐하의 용안을 뵙게 되다니 ㅎㅎ

- 진짜 잘생겼다 와…….

- 역시 리더보드 1위의 얼굴.

- 귀환자님 키가 몇인가요?

- 오늘도 완벽 그 자체십니다.

- 저 행사장에서 봤는데 키 크시던데. 한 187cm정도 되시는 듯?

채팅창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준혁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멈춰 선 곳에서 준혁의 시선은 2시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성인 여자 한 명과 그 아래, 아들로 보이는 4살 정도의 남자아이.

모자관계 같았다.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트럭 한 대가 있었다.

트럭은 중심을 잡지 못 하고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내 트럭이 가속되며 여자와 아이를 향해 빨라지기 시작했다.

매니저 지우가 사태의 심각성을 본능적으로 인지하는 그때 준혁은 이미 차 밖으로 내리고 있었다.

여자와 아이가 넋 나간 표정으로 달려오는 트럭을 돌아봤다.

그들은 본능적인 공포로 몸이 굳어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 했다.

충돌 직전.

뒤늦게 여자가 아이를 감싸 안을 때.

쿵.

준혁은 여자와 아이 앞에 서 있었다.

덮치듯이 달려든 트럭이 준혁의 손바닥과 충돌했고,

굉음과 함께 트럭이 멈춰 섰다.

끼릭! 끼릭!

여자가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준혁이 트럭을 막은 채로 서 있었다.

여자가 놀람과 공포. 그리고 안도가 어우러진 얼굴로 준혁의 등을 빤히 보았다.

- 와 씨! 큰일 날 뻔했네!

- 뭐, 뭐야?!

- 깜짝이야.

- 와, 귀환자님이 구해 주셔서 진짜 다행이다 ㅜㅜ

- 대박! 차 안에서 구하기까지 판단과 속도감 어쩔 ;;

- 저 아이 황제 폐하 덕분에 살았네. 휴우.

- 더 월드 시스템인데도 화면이 흔들릴 정도로 빨랐음 ㅋㅋ 대체 얼마나 빨리 움직였단 얘기임? ㅋㅋ

- 귀환자가 생명의 은인이라니. 저 아이는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모르겠지? ㅋㅋ

- 제가 다 고맙습니다. 귀환자님 ^^

- 전하아아아 흐그극!

“아이는 괜찮습니까?”

준혁이 여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뒤늦게 준혁을 알아본 아이의 어미가 아들을 꼭 안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우리 아이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헌터님.”

여자가 몇 번이나 90도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때, 트럭에서 운전수가 비틀거리며 내렸다.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뚱뚱한 사내는 이마에 번진 피를 닦으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에게선 술 냄새가 진하게 났다.

- 저 운전한 사람 술 먹은 거 아니야?

- 진짜 미쳤나 차를 왜 저렇게 몰아!

- 아…… 킹받네 저 인간.

- 이건 살인미수임!

- 저거 백퍼 음주운전이다.

- 졸음운전 아님?

- 귀환자님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ㅡㅡ

“귀환자님. 경찰은 불렀어요. 혹시 다치신 분들 있나요?”

등 뒤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급차까진 필요 없어.”

준혁이 운전수의 까진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말했다.

매니저 지우가 운전수에게 다가갔다.

운전수는 가까이 다가온 지우를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눈치를 살피며 손을 벌벌 떨었다.

“경찰들이 올 거예요. 이대로 도망가면 뺑소니가 되니까. 조사 착실하게 잘 받으시고요. 알았죠?”

지우가 단호하게 말했다.

운전수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준혁은 매니저인 지우를 빤히 보았다.

전부터 느꼈지만 상당히 이성적이다.

보통 저 나이에 이런 상황이면 놀라서 허둥대기 마련일 텐데.

심지어 화도 내지 않는다.

철저히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성적이다.

나이를 봐선 사회경험이 거의 없다고 해도 될 텐데 준혁이 보기에 그녀는 놀라우리만큼 침착했다.

“아저씨.”

“……?”

밑을 내려다보자 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준혁의 바지를 꾹꾹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저씨 왜 이렇게 힘이 세요? 차를 빵! 하고. 우와.”

준혁이 다리를 굽혀 키높이를 최대한 맞추며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안 놀랐어?”

준혁이 아이의 눈을 보며 물었다.

아이가 머리를 크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저 봤어요! 아저씨가 트럭을 손으로 이렇게!”

“따라 하면 안 돼. 알지?”

“네. 고마워요, 아저씨!”

아이가 준혁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 순간 준혁은 아이에게서 아주 미약하지만 마나가 흐르고 있음을 인지했다.

일반적인 아이들처럼 놀라지 않고, 사고 상황을 눈으로 지켜보고, 그것을 설명하는 건 각성자로서의 자질을 타고나서인 듯 했다.

준혁이 다시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준혁은 아이의 등을 다시 하 ㄴ번 토닥여 주곤 일어섰다.

멀리서 경찰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지자, 운전수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 뭘 잘 했다고 우냐 쟨. 개 빡치네.

- 또 심신미약이라고 우기겠지 ㅡㅡ

- 평생 감빵에서 썩어라!

- 저 간악한 자의 악어의 눈물을 보라.

- 귀환자님 아니었으면 사고 내고 튀었을지도.

- 이건 술이 웬수가 아니라 저 인간이 웬수다.

- 여러분들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급발진일지도 몰라요.

- 어디서 주워듣고 개똥 같은 소리야?! 무죄 추정의 원칙? 방구석 변호사 납셨네 아주.

채팅창이 과열되는사이 경찰차가 도착하고 순경들이 뛰어왔다.

“귀환자님! 소식 듣고 출동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귀환자님. 우선 저 운전수부터 체포하겠습니다.”

순경들이 인사를 하자마자 운전수에게 향했다.

사고는 없었지만 준혁과 충돌했고 음주까지.

현행범으로 체포하기엔 충분했다.

순경들이 현행범을 경찰차에 싣고 준혁에게로 오다가 트럭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트럭은 대형사고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던전 가시는 중이었죠? 바쁘신 와중에도 정말 큰일 하셨습니다.”

“혹여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귀환자님이 충돌했다고 들어서요.”

경찰들이 신기한 듯이 준혁을 보며 이런 저런 말을 건넸다.

준혁이 경찰들에게 요란 떨 것 없다는 듯 잘 정리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준혁은 매니저에게 가서 차량의 위치를 물었다.

근처에 주차해 두었다는 대답을 듣고 매니저와 함께 주차 시켜놓은 차량 쪽으로 이동했다.

- 경찰들 웃겨 ㅋㅋㅋㅋ 다치신 곳은 없냐닠ㅋ

- 누굴 걱정해 ㅋㅋ

- 트럭 충돌 따위 ㅋㅋㅋㅋㅋ

- 하…… 갓준혁. 진심 심각하게 멋있네.

- 님들 님들 님들. 귀환자님 아이 앞에서 웃어 주는 거 봤음?

- 귀환자님 웃는 거 첨 봄…….

- 저렇게 가까이서 황제 폐하의 미소를 보다니. 크윽…… 부럽다!

단순히 준혁의 미소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부러움을 한 몸에 사고 있던 아이는 멀어지는 준혁을 빤히 보고 있었다.

“엄마!”

“응? 왜 불러 아들.”

아이의 부름에 엄마가 눈높이를 맞춰 주며 답했다.

“누구야 저 아저씨는? 그 뭐드라? 흔터? 그런 사람?”

“귀환자라는 분이야.”

“귀환자?”

“세상에서 가장 강한 분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

아이가 멀어지는 준혁을 보며 나지막이 감탄했다.

“우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