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31화
매니저 지우는 차를 타고 유다연과 함께 캐슬을 향해 출발했다.
“보는 눈이 많아서 밖에서 미리 태워 가야 했거든요. 아무래도 언론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보니 스캔들 이슈가 있을 수 있어서요. 양해 부탁드릴게요.”
유다연이 그제야 왜 밖에서 먼저 만나고 했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지우는 운전을 하면서 유다연을 흘깃 보았다.
어쩐지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다.
동공은 초점이 흔들리고 있었고,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왼손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은 마치 지금 이 순간에도 극도의 공포를 견디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우는 히터 온도를 조금 더 올리고 잔잔한 음악을 틀었다.
“신기하지 않아요?”
“……?”
“이렇게 거리를 보면 세상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잖아요.”
창문 밖을 본 유다연이 쓰게 웃었다.
“그렇죠.”
“헌터님들 덕분이에요. 시민들이 이렇게 거리를 편하게 거닐 수 있는 건.”
유다연이 지우를 향해 생긋 미소지었다.
“고마워요. 신경 써 줘서.”
“저도 고마워요. 시민을 대표해서?”
지우와 유다연이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어색한 공기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귀환자님 매니저로서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어요. 방문 자체는 귀환자님에게 허락을 받은 상태지만 매니지먼트 업무는 결국 파천 길드 소속이라서 절차를 따라야 하거든요.”
“이해해요.”
“캐슬의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될까요?”
유다연은 얼마 전에 있었던, 빙의 사건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우는 상당히 놀랐지만 최대한 표정 관리를 위해 애썼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사례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케이스가 조금 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후유증이 있어서요.”
“그날과 관련된 후유증인가요?”
“네.”
유다연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일이었다.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더는 묻지 않을게요.”
더 이상의 질문은 할 필요가,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모든 전권은 오직 귀환자님께 달린 일이었다.
유다연이 의식을 잃은 후, 파천 길드로부터 당일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으니 이미 파천 길드는 모두 알고 있는 바.
그렇다면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지우는 창문 너머 하늘을 흘겨봤다.
석양이 드리우고 있었다.
* * *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나열되어 있는 식탁 앞.
준혁은 생각했다.
저녁을 먹는 인원은 고작해야 2명.
하지만 이 긴 테이블 위에는 선상 파티를 해도 될 만큼 다양한 호화 음식들이 줄지어 있었다.
“저기.”
“네 귀환자님.”
“아무리 손님이 온다고 해도…… 이건 조금.”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조절한다고 한 건데. 앞으로는 훨씬 더 간소하게 할까요?”
캐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상식적인 기준을 원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어쩌면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구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요. 아주 잘 하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메이드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네!”
메이드가 고개를 조아린 후, 물러갔다.
준혁은 용병 유다연을 보며 포크를 들었다.
“식사하세요.”
준혁이 그렇게 말하곤 큐브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유다연은 포크를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식사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눈은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으며 표정은 어두웠다.
“매니저한테 듣기론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입니까?”
유다연이 마른침을 삼키며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았다.
“어쩌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요.”
유다연이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집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돼 새빨간 불길에 삼켜졌어요.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땐 침대 위였는데, 단순히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어요.”
유다연이 그렇게 말하곤 입고 있던 후드티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엔 마치 타투처럼 뭔가가 새겨져 있었다.
“씻으려고 욕실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됐어요. 알 수 없는 뭔가가 제 몸에 새겨졌다는 걸.”
준혁은 그녀의 팔에 새겨진 것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확인했다.
‘……마계어.’
확실했다.
용병 유다연의 팔에 새겨진 것은 마계에서 쓰는 언어다.
천 년간 머물렀던 곳의 언어이니 준혁으로선 당연히 모를 수가 없었다.
준혁은 마계어를 보며 무전기로 매니저를 불렀다.
“귀환자님. 부르셨어요?”
매니저가 뛰어 들어와 대답했다.
“종이하고 펜 있지?”
“테블릿으로 하면 돼요.”
“둘이 같이 방으로 가서.”
준혁이 유다연의 팔을 잡았다.
“이렇게 새겨진 모든 문자를 그대로 적어와.”
“혹시 방향은……?”
“알아볼 수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상관없어.”
“네 알겠습니다. 식사 끝나시면 바로.”
“아니요. 지금 바로 할게요.”
유다연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비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세였다.
“다녀와.”
지우가 유다연을 데리고 다이닝룸을 나갔다.
준혁은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유다연의 팔에 새겨져 있던 마계어를 떠올렸다.
* * *
“불이 너무 밝네.”
지우는 노란빛의 은은한 전구색 조명을 켜고 커텐을 쳤다.
“괜찮으세요?”
지우가 테블릿을 들고 묻자 유다연이 어려울 것 없다는 듯 바로 티셔츠를 훌렁 벗었다.
지우는 너무 거침없이 벗는 그녀의 모습에 살짝 놀랐지만, 곧바로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전자펜을 들고 그녀의 팔과 등으로 이어지는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전혀 본 적 없는 문자였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를 마치 그림 그리듯이 해야 했기에 꽤 애를 먹어야 했다.
약 20분간 사투를 벌인 끝에, 유다연의 몸에 타투처럼 새겨진 문자들을 모두 테블릿에 옮겨 적을 수 있었다.
“휴우. 제대로 한 건지 모르겠네요.”
지우가 전자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충 보아선 문자 같아 보이긴 했는데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 모르니 잘 옮겨 적은 건지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으나 상관없다는 준혁의 말을 떠올리며 우선 이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지우는 유다연이 옷을 입을 수 있게 도와주고 곧바로 그녀와 함께 준혁에게로 돌아갔다.
“다 했어요. 귀환자님.”
지우가 반신반의하는 느낌으로 준혁에게 테블릿을 건넸다.
준혁은 테블릿에 적은 걸 보자마자 다시 지우에게 테블릿을 넘겼다.
“어? 벌써 해석하신 거예요?”
“유다연씨와 응접실 가서 기다려. 곧 갈 거야.”
준혁의 명령에 지우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곤, 곧바로 유다연을 데리고 이동했다.
“어떻게 보자마자 아신 거지? 신기하네요. 그죠?”
지우의 말에 유다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환자님은 확실히 뭔가를 아는 것 같아요.”
유다연이 말했다.
“많이 불안했겠어요. 잠도 많이 못 잔 거 같고.”
“괜찮아요.”
“별일 아닐 거예요. 분명. 그러니 우리 차분히 기다려 봐요. 응접실에 차가 있으니까. 차 한잔 타 드릴게요.”
유다연이 지우를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에는 엄청난 종류의 차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우는 자신이 그나마 가장 잘 알고 있는 차들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라벤더 차였다.
진정 효과가 있어서 경직된 근육을 풀어 주고, 심신을 진정시켜 주는 효과가 있었다.
유다연 헌터에겐 이 차가 좋으리라.
뜨거운 물에 차를 우려 유다연에게 내주었다.
“고마워요.”
유다연은 여전히 긴장이 남은 얼굴로 차를 마셨다.
철컥!
문고리가 열리면서 준혁이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유다연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극도의 긴장이 그녀의 근육을 다시 굳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저는 나가 있을까요?”
매니저가 선 채로 물었다.
“아니. 같이 들어.”
준혁이 상석 쪽에 앉자, 매니저 지우와 용병 유다연도 자리에 앉았다.
“몸에 새겨진 건 마계어입니다.”
준혁이 유다연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마계어라는 말에 유다연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준혁을 보았다.
“마계어라면……?”
“설명하자면 길고 중요한 건 내용인데.”
유다연이 긴장한 눈으로 준혁을 보았다.
준혁이 침묵한 채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유다연 씨.”
“네.”
유다연이 마른침을 삼킨 후 대답했다.
“몸에 새겨진 마계어는 일종의 마법 장치로 유다연 씨가 의식을 잃게 되면, 그 이후 던전이 만들어질 겁 겁니다. 유다연 씨가 던전의 핵이 될 거예요.”
충격적인 소식에 유다연이 넋을 잃었다.
매니저 지우도 충격에 물든 얼굴로 유다연을 보았다.
“그, 그럼 어떡해요?”
지우가 준혁을 보며 물었다.
“방금 알아보고 왔는데 일정 시간 안에 클리어하면 된다고 해. 비슷한 사례가 있었고 던전핵이 됐던 헌터는 살았어.”
“저기. 그럼 유다연 헌터님은 괜찮겠죠? 귀환자님은 강하니까.”
“유다연 씨.”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유다연이 준혁을 보았다.
“걱정됩니까?”
준혁이 유다연을 보며 물었다.
유다연은 준혁의 고요히 강한 힘을 품은 눈을 보다가 곧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졌다.
“아니요. 전혀 걱정되지 않습니다. 귀환자님.”
“유다연씨의 신체에 새겨진 마계에어 의하면 시일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던전이 열리는 날은 지금으로부터 약 사흘 후 정도가 될 겁니다.”
“저기 귀환자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가요?”
유다연이 물었다.
“유다연 씨의 육체를 지배했던 망령이 마법을 터트렸을 때 아마 흔적이 남았을 겁니다. 애초에 배후가 그걸 노렸던 것 같긴 한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들었기 때문에 유다연도 준혁의 말을 이해했다.
“특별한 날이 되겠네요. 귀환자님께서 친히 저를 구해 주시는 날이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준혁이 웃었다.
“불안하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아, 아니에요!”
“당분간 캐슬에서 지내세요. 외부에 이 이야기가 나가서 유다연 씨에게 좋을 게 없을 테니. 이번 일은 비밀리에 진행하는 걸로 했으면 하는데,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용병팀은 파천 길드 쪽에서 알아서 잘 이야기할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귀환자님이 없었다면, 어쩌면 전…….”
“약해지지 말아요. 당신 헌터잖아.”
유다연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귀환자님.”
“걱정 말고 몸 관리에나 집중해요. 던전은 내가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준혁이 응접실을 나갔다.
눈치를 보고 있던 지우가 얼른 손수건을 꺼내 유다연에게 내밀었다.
“쓰세요.”
“고마워요.”
지우가 테이블에 양팔을 얹은 채 생글 웃었다.
“캐슬 구경시켜 줄게요. 여기 진짜 예쁘거든요. 어때요?”
유다연이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어요, 우리.”
지우가 유다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유다연이 지우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끔찍한 미지의 공포가 용병 유다연, 그녀에게서 아주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