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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29화 (29/175)

귀환자의 모든 것 29화

느릿한 걸음이었지만 팔라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심상치 않았다.

그동안 던전 안에서 본 적 없던 수준이었다.

강대한 마력의 힘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왔다.

기대하지 않았던, 기대 이상의 숨겨진 마력.

“주인의 성전을 더럽힌 대가를!”

팔라트가 어두운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와 함께 상당한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준혁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거리를 장악하는 검기 능력을 갖고 있었다.

크고 투박한 검이 뿜어내는 검은 마기가 준혁을 향해 검은 영기가 되어 쏘아져 나갔다.

준혁은 검은 형체의 검기를 빛의 검으로 쳐 내고 순식간에 팔라트를 스쳐 지나갔다.

준혁의 빛의 검은 이미 팔라트의 늑골 쪽을 베어 낸 후였다.

“이, 이럴 수가.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경악한 듯 떨리는 목소리를 뱉던 팔라트가 비틀 거리며 준혁을 돌아봤다.

늑골 쪽의 갑옷이 찢겨져 나가 그 틈새로 검은 영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역시 데스나이트보다 약해.’

준혁은 투명화를 시전하면서 까지 숨어 다니던 데스나이트를 떠올렸다.

그 놈들은 그래도 수 번의 칼질을 받아 낼 정도의 수준은 됐다.

그래 봤자 어느 순간부터는 마법을 곁들이는 순간 폭망해 버리는 놈들이었고 그 뒤로 더 성장한 이후에는 두 세 번의 칼질이면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팔라트라는 녀석은 칼 질 한 번 조차 버티지 못할 수준이었다.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라…… 난 무려 100년 동안 주인의 거처를 지켜 왔다.”

팔라트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했다.

찢어진 갑옷은 말끔히 회복되어 처음처럼 깨끗했다.

‘자가 치유 능력?’

팔라트가 검은 안광을 뿜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뒤이어 칼을 휘두르는 순간 수십 개의 검붉은 마력의 빛줄기가 준혁을 향해 빈틈없이 쇄도했다.

준혁의 마력이 팔라트가 쏘아 낸 검기의 궤도를 모두 비틀어 버렸다.

팔라트의 공격은 애꿎은 천장을 날리고 벽을 허물어트렸다.

준혁이 뒤를 흘겨보았다.

1층에서 마수를 처치하면서 생긴 화염이 2층까지 그 불을 번지게 하고 있었다.

복도를 메우기 시작하는 매캐한 검은 연기.

준혁이 그 검은 연기를 뚫고 순식간에 팔라트의 앞에 도달했다.

준혁의 왼손으로 팔라트의 어깨를 잡고 심장을 향해 빛의 검을 찔러 넣었다.

빛의 검은 가볍게 팔라트의 갑옷을 관통했다.

“……!”

팔라트가 고개와 허리를 젖히며 영혼의 비명을 터트릴 때, 준혁이 빛의 검을 뽑아냈다.

팔라트의 심장 부근에서 검은 영기가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제 더 이상 치유 능력을 쓰지도 못할 것이다.

마력의 농도에 따라 데미지가 다르며 무엇보다 마력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마나홀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팔라트는 더 이상 복구가 불가능할 것이다.

“……주인이시여. 불충을…… 용서하소서…….”

무릎을 꿇었던 팔라트가 이내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팔라트를 처치했습니다.]

준혁은 천리안이 보여 주는 지도를 통해, 팔라트가 있었던 방 안에 던전핵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천리안의 지도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 보자 던전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던전핵을 파괴하는 즉시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엑시트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천리안이 보여 주는 지도상에는 탈출 게이트의 위치도 나타났다.

보통 탈출 게이트는 하늘을 향해 긴 빛을 쏘기 때문에 굳이 천리안이 아니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동굴이나 건물 내에 있는 건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천리안 덕분에 준혁은 1층에 탈출 게이트가 열렸음을 알 수 있었다.

- 전투의 신을 보는 듯 하네요.

- 괜히 리더보드 1위가 아니네.

- 팔라트는 그래도 좀 버텼다 ㅋㅋ.

- 온갖 유난 떨면서 골드 던전 정보 숨기려고 급급했던 알파 길드랑 적안 길드. 지금 보고 있나? 이게 귀환자님이다!

- 골드 게이트는 리더보드의 주 사냥터죠. 그런 곳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 주는 갓준혁!

- 국내에 리더보드 숫자가 몇 명 없어서 얼마 전에 골드 던전 처치 곤란이라 해외에 헬퍼 요청한 기사 본 것 같은데. 레드 던전이랑 골드 던전이랑은 차원이 다를걸?

- 드디어 우리도 골드 던전 구경해 보나?

멸마의 서로 균열의 틈은 수색되지 않았기에 준혁은 곧바로 던전을 나가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새빨간 불길이 계단과 벽 그리고 천장 할 것 없이 불태우고 있었지만, 준혁은 그런 불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마나 물질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불에도 안 타네.’

만약 평범한 옷이었다면 던전을 나올 때 민망하거나 꽤 꼴사나운 꼴이 됐을 것 같다.

- 불 속을 그냥 걸어 다님 ㅋㅋㅋㅋㅋㅋ

- 갓준혁 그대는 화신입니까?

- 불사신 같음 ㅋㅋㅋㅋㅋㅋ

- 팔라트 뭔가 불쌍하다.

- 우주인간종이면 다른 차원의 인간인거죠?

- 그냥 망령일 뿐임.

준혁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신비롭게 빛나고 있는 탈출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 황제 폐하. 클리어 감축드리옵니다.

- 축하염.

- 축하드립니다.

- 잘 봤습니다.

- 감사합니다.

- 눈 정화 했습니다. ㅠㅠ

- 모두 엎드려 찬양하라!

.

.

준혁은 던전 밖으로 나오면서 스트리밍을 종료했다.

그러자 그 즉시 시스템 알림이 나타났다.

[스트리밍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청자와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보상 획득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

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일단 진행을 해 본 건데 역시나 더 월드 시스템은 문제를 제기했다.

시스템이 만든 스트리밍 기능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에 가까웠으니 더 월드의 보상 차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입력값이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결국 편하게 얻을 수 있는 건 없는 법이었다.

준혁은 스트리밍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기로 하면서 주변을 봤다.

던전이 클리어 된 가로수길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없었다.

파천 길드 쪽에서 몰려드는 인파를 통제해서였다.

블루 던전과 달리 레드 등급의 던전의 경우 만에 하나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날 경우 재해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일반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귀환자님.”

매니저가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캐슬로 가서 회의 좀 해야겠어.”

“어떤 회의요?”

“가서 얘기하자.”

“네!”

차량을 타고, 캐슬로 가면서 준혁은 숨을 가다듬었다.

생각만으로도 꽤 긴장이 돼서 몸이 경직되고 안면근육이 굳어지는 듯했다.

마수를 죽이는 것 정도. 토크쇼까지는 그래도 크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앞으로 시청자와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DNA가 거부하는 듯 했다.

늘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했던 것과 달리 스트리밍은 준혁에게 너무도 어려운 과제였다.

준혁은 눈을 꾹 감으며 긴 숨을 뱉었다.

“귀환자님 어디 불편하세요?”

매니저 지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준혁이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 * *

“더 월드 스트리밍으로 시청자와 소통하는 법이요?”

거실 소파에서 어렵게 꺼낸 이 주제에 대해 매니저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귀환자님이 그냥 편하게 대답하는 형식이면 어떨까요?”

“대답?”

“네. 보통은 그렇게 하거든요. 여러 가지 컨텐츠를 만들어서 진행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귀환자님은 던전 클리어 자체가 컨텐츠니까.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걸 적당히 대답해 주거나 아니면 그냥 떠오르는 생각 같은 걸 말씀해 주셔도 좋고요.”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는 거네.”

“아무래도 주 목적이 던전 클리어고 시청자들이 집중해서 보는 것도 결국 던전 클리어니까. 중간중간 틈나실 때만 해도 점점 편해지실 거예요.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엄청 기뻐할 테고요.”

준혁이 먼 곳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생각하면 쉬워진다.

반대로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지는 게 이런 일들이다.

매니저 지우의 말대로, 굳이 애쓰기 보단 편한 마음으로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뜻이었다.

오히려 그 편이 시청자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을 듯 했다.

“그래. 조금씩 하다 보면 늘겠지.”

“네. 분명 익숙해지실 거예요! 아 참. 그리고 시청자분들이랑 소통하실 거면 전에 말씀드렸던 사진 말인데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사진?”

“시청자분들은 귀환자님의 일상적인 모습도 궁금해할 테니까. 몇 컷씩 올리기만 해도 아마 엄청 좋아할 거예요. 그럼 거리감을 줄이고 친숙한 느낌을 줄 수도 있을 테고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지. 시스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 업무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고 취미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부담감이 훨씬 덜할지도 모르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으니 괜히 불필요한 제약을 많이 두는 경향이 있었다.

“고마워.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뻐요.”

준혁이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골드 던전은 내일 가는 걸로.”

“내일이요?”

“왜?”

“그게, 보통 헌터들이 던전을 갔다 오면 휴식기를 그래도 조금 갖거든요.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피로감이 있을 수 있어서. 물론 귀환자님은 전혀 그런 피로감이 없으실 수도 있지만요.”

“당분간은 서둘러야 해. 선우에게 파천 길드의 공지 없이 던전행은 진행될 거라고 전해줘.”

“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럼 사진 촬영은 허락하신 걸로 알고 진행할게요.”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유다연 헌터 말인데요.”

“용병 헌터?”

“네. 귀환자님을 뵙고 싶어 해요. 꼭 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고.”

“일정 없지? 오늘 저녁 약속으로 잡아.”

“캐슬로 초대하는 게 좋겠죠? 바깥에 나가시면 여러모로 불편하실 테니까요.”

일전에 사람이 몰려들었던 때가 기억났다.

준혁은 캐슬의 거실을 훑어봤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확실히 여기만 한 곳이 없었다.

준혁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호수를 보며 쓰게 웃었다.

“동생 덕을 얼마나 보는 건지.”

“협회장께서 늘 귀환자님에 대해 생각하고 계세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요.”

“걘 일 좀 줄여야 돼.”

지우가 작게 웃었다.

“너무 바쁘게 살긴 하시죠.”

“다른 일정은 없지?”

“다음 스케줄은 어떻게 될지 몰라서 특별한 일 없으면 내일 오전에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끝?”

“네. 끝입니다!”

매니저가 미소와 함께 인사하고 물러갔다.

준혁은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창 밖의 풍경을 감상했다.

* * *

찰칵.

매니저가 거실에서 창밖의 풍경을 보고 있는 준혁을 향해 몰래 사진을 찍었다.

얼굴이 나온 사진은 아니었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이런 사진에서 더 신비감을 느낄 것이다.

매니저는 카메라 속 준혁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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