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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24화 (24/175)

귀환자의 모든 것 24화

유다연의 말대로 건물 후문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전혀 없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몇 명만이 느긋하게 지나다닐 뿐이었다.

유다연이 차 안에서 창문을 내렸다.

“타세요. 귀환자님.”

준혁이 유다연의 차 조수석에 오르자 그녀가 차를 출발시켰다.

“캐슬로 가시는 거죠?”

“위치 알아요?”

준혁이 안전벨트를 매면서 물었다.

“그럼요. 워낙 유명한 곳이잖아요.”

유다연이 준혁이 맨 안전벨트를 흘끔 보았다.

“왜 그렇게 봅니까?”

“벨트를 매시는 게 조금, 신기해서요. 나쁜 마음으로 드린 말씀은 절대 아니고.”

“도로교통법은 지켜야죠.”

준혁이 창밖으로 보이는 특이한 형태의 먹구름을 응시했다.

유다연도 준혁이 보는 시야를 따라가더니 먹구름을 눈에 담았다.

“이상하죠?”

유다연이 말했다.

“처음입니까? 저런 구름이 나타난 게.”

“네. 워낙 특이한 형태라서 저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던전과 관련 있을 가능성은요?”

“던전이 형성될 때는 마나 에너지가 발생해서 푸른빛이 나와요.”

“예외 없이 말입니까?”

“네.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어요.”

먹구름은 하나로 뭉쳐져 마치 용이 형상을 한 형태였다.

“별일 아닐 거예요. 아마도 마력 파장에 의한 단순한 기후 변화 같기도 해서요. 이따금 저럴 때가 없진 않아서.”

구름을 주의깊게 보던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저, 귀환자님…… 그, 처음 뵈었을 때, 실수했던 거 사과드릴게요. 죄송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제가 감히 멱살을…….”

유다연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눈치를 보며 힘겹게 사과를 건넸다.

“아, 괜찮아요. 신경 안 쓰니까.”

아마 그동안 쭉 마음속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꼭 사과를 드리고 싶었어요.”

준혁이 옅게 웃었다.

“별말씀을.”

침묵 속에서 준혁이 창문을 내려 바람을 얼굴에 맞았다.

겨울이 깊어지고 있는 온도였다.

“용병 일은 할 만해요?”

준혁이 풍경을 보며 물었다.

“아!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지만 그건 누구나 그럴 테니까요!”

준혁이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그렇겠죠.”하고 답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던 중 유다연의 전화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자마자 오디오가 커다랗게 울렸다.

“야! 차를 버리고 가면 어떡해 인마! 너 미쳤어? 지금 어디야?”

유다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 옥상에 계셨던 분이 귀환자님이셔서요. 급히 차를 태워다 드려야 하는 상황이 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보고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서두르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허허허! 유다연 씨. 날이 갈수록 구라가 일치월장하시는구먼? 입만 벌리면 구라가 술술 나와. 내 아주 감탄 했어요.”

유다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예요. 대장.”

“예예. 그러셔요? 알겠어요. 그럼 그 잘나신 귀환자님 좀 바꿔 주시겠어요?”

“진짜라니까요 대장?”

“그러니까 바꿔 보라고 인마. 내가 널 믿을 것 같냐? 퇴근하라니까 몰래 던전을 가질 않나. 너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그래 인마!”

지켜보던 준혁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

“한준혁입니다.”

“한준혁? 아아, 귀환자님이시라고?”

“네. 의도치 않게 신세를 좀 지게 됐네요.”

“아, 예예. 잘 알겠고. 유다연 스피커지 지금?”

“네. 듣고 있어요.”

“너 연애하냐? 남자 친구야? 이젠 남자 친구 연기까지 시키십니까? 유다연 씨? 구라를 쳐도 적당히 해야지. 이게 진짜 막나가네. 감히 귀환자님 사칭을 해? 너 각성자 재판 받고 싶냐?”

“……귀환자님 맞으세요. 대장.”

“허허허! 야 인마. 네 옆 사람이 귀환자님이면 난 협회장이다. 거짓말을 하더라도 좀 믿을 만한 걸…….”

유다연이 전화를 끊고 바로 영상통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워낙 의심이 많은 타입이라.”

유다연이 스마트폰을 내밀며 양해를 구했다.

준혁이 이해한다는 듯 유다연에게서 스마트폰을 넘겨받았다.

자신 때문에 생긴 오해이니 당연히 해결해 주는 게 맞았다.

준혁은 스마트폰을 보며 이어질 연결을 기다렸다.

잠시 후, 영상통화가 연결됐다.

곧 화면 속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얼굴의 남자가 나타났다.

“마! 대장이 말하는데 중간에 끊……! 응? 뭐야? 이거 남자친...구?”

말이 살짝 끊기더니, 용병 대장이 곧 헛웃음을 흘렸다.

“이야? 신기하네? 응? 어플인가? 귀환자님을 똑 닮았긴…… 닮았.”

용병 대장의 목소리에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한준혁입니다. 갑자기 사람이 너무 몰리는 바람에 도움을 좀 받게 됐어요.”

영상통화로 준혁을 보고 있던 용병 대장의 눈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입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귀, 귀, 귀, 귀환자님?! 진짜 귀환자님?!”

“바쁜 상황이면 제가 지금이라도 택시를.”

“아, 아, 아닙니다. 아니요! 예. 하하하하! 저는 그냥 설마 하고. 어이쿠! 우리 유다연이 시간 많습니다. 예 많고 말고요. 시간 아-주 많아요. 예. 예 그럼요. 전혀 신경 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택시라니 가당치도 않지요. 편히 모셔야 드릴 겁니다. 야 다연아! 귀, 귀환자님 불편함 없도록 어?! 편안하게 모셔다드려! 알았지?!”

유다연이 스마트폰을 다시 가져갔다.

그녀는 “연락드릴게요.”하고 말하곤 전화를 강제로 끊었다.

침묵 속에서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준혁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유다연만이 그 불편한 공기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대장이 조금 푼수기가 있어서... 죄송합니다.”

유다연이 뺨을 씰룩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친해 보이고 좋은데요 뭘.”

“사실 저도 귀환자님이랑 이렇게 같이 있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제가 대장이라도 믿지 못했을 거예요.”

준혁이 잠시 먼 곳을 보다가 유다연을 돌아봤다.

“아. 혹시 실시간 라이브 방송 봤어요?”

“네? 아아! 네. 당연하죠. 지금도 그 여운이 가시질 않는걸요!”

“어땠어요?”

“정말 대단했죠! 역시 리더보드 1위구나! 동료들끼리도 얼마나 신기해했던지.”

유다연은 진심으로 재밌게 봤다는 듯 웃고 있었다.

“앞으로 또 방송하는 모습을 보기는 힘들겠죠?”

유다연이 용기를 낸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혼자 결정하고 진행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서 확실히 답해 주기가 좀 어렵네요.”

“아! 당연히 대답을 바란 건 아니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하하. 저도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게 꿈이거든요.”

유다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용병이라서 제약이 많지만, 꼭 실력을 쌓아서 스트리머로 성공하는 게 꿈이에요. 대부분의 용병들이 그렇겠지만.”

“보통 다른 용병들도 스트리머를 꿈꾸나 보네요.”

“네. 아무래도 정식 소속이 아니다 보니 페이가 일정하지도 않고, 용병 일이 원래 불안불안하거든요. 규율상 A급 용병 이상이 돼야 스트리밍을 하는데.”

유다연이 단발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하하. 대장한테 물이 들었나. 제가 별 얘기를 다 하네요.”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가고 있는 걸요. 벌써 다 와 가네요.”

콰르릉!

캐슬이 저 멀리 보일 때쯤 갑작스레 천둥소리가 다시금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하나의 핵을 형성하는 듯한 구체를 만들어 가고 있던 구름이 서서히 뱀처럼 움직이며 뇌전을 뿌렸다.

이어지는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더니 먹구름의 일부분이 마치 용오름처럼 흘러나와 준혁과 유다연이 타고 있는 차량 쪽으로 움직였다.

뒤이어 가속도를 붙이는 먹구름.

이내 빛과 가까운 속도여서 유다연은 채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준혁이 급작스레 앞 유리를 뚫고 들어온 먹구름을 손으로 잡으려 했으나 연기는 흩어지더니 다시 빠르게 뭉쳐지며 유다연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쿨럭!”

유다연히 눈을 치켜뜨며 입 밖으로 피를 뿜었다.

새빨간 피가 깨진 앞 유리와 차량 내부에 뿌려졌다.

유다연이 눈을 크게 떴다.

“귀, 귀환자님…….”

유다연이 피를 흘리며 눈에 초점이 흔들리고 있었다.

뒤이어 쾅! 하고 차량이 공사장 부근의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보닛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로 유다연의 얼굴과 목에 혈관이 새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게 보였다.

영문 모를 증상에 의해 그녀의 눈은 점차 흰자위까지 검게 물들었다.

“누구야, 너.”

준혁이 건조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유다연이 검은 눈으로 준혁을 보며 웃었다.

유다연의 오른팔이 검게 촉수처럼 변하더니 준혁을 향해 휘둘러졌다.

휘릭!

퍼어엉!

준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때문에 유다연의 기이한 팔은 준혁이 아닌 차량 시트만을 박살 냈다.

준혁은 이미 차량 밖, 비어 있는 공사장 건물 2층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다연이 차량에서 내리더니 곧바로 준혁을 향해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준혁 앞에 도달하며 검은 촉수가 준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준혁이 가볍게 왼팔을 들어 막았다.

데미지가 들어올 정도는 아니지만, 강도로 봐선 절대 유다연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의 수준이 아니었다.

최소, 마계의 악마 수준이었다.

준혁이 팔에 묻은 먼지를 가볍게 털었다.

유다연이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흔들리던 양팔은 어느새 날카로운 칼날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유다연이 아니었다.

분명 다른 어떠한 존재였다.

“어디서 왔냐고 묻잖아 내가.”

준혁이 거슬린다는 듯 말했다.

유다연이 공사장 내부 홀을 여유롭게 걸으며 웃음 지었다.

“라미네르. 그게 내 이름.”

유다연의 육체를 차지한 존재.

라미네르가 느긋하게 걸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디서 온 건지는 비밀이야.”

라미네르가 윙크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걱정되지 않아?”

“……?”

준혁의 표정을 보고 라미네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날 죽이려면 이 여자의 육체를 죽여야 할 텐데. 어떻게 생각해? 즐겁게 대화를 나눴잖아? 그렇지? 난 이 육체의 감정을 읽을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너와의 관계를 우호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거든.”

준혁이 답하지 않고 건조한 눈으로 라미네르를 응시했다.

그 눈빛을 보고 그녀가 다시 까르르 웃었다.

“너 정말 피도 눈물도 없구나? 인간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거야? 필요하다면?”

“…….”

“아니. 그러고 보니 넌 평범한 인간은 아니었네?”

라미네르의 발아래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그 마법진에서 파편처럼 생긴 시커먼 입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력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던 먹구름의 일부분이 다시 유다연의 육체로 마치 빨려 들어가듯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라미네르의 마력은 점차 더 강해지고 있었다.

“뭐 해? 어서 막아. 지금이라도 건드리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걸? 보이지 않아? 내가 완전해지고 있는 게? 내가 이 육체를 완전히 갖게 되면 넌 이 여자를 잃는 거야.”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는 준혁을 라미네르가 이상하다는 듯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곤 곧 눈이 가늘어졌다.

“생각하고 있구나?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다치지 않게 날 제거할 수 있을지? 그래? 그런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어? 인간들이란.”

라미네르의 얼굴에는 광기에 가까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던 먹구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다시 평범한 나날과 다를 것 없었다.

하늘의 일부를 물들이며 뇌전을 뿌렸던 먹구름은 모두 라미네르의 몸속으로 흡수된 후였다.

라미네르가 서슬 퍼런 눈을 뜨며 준혁을 향해 점점 빠르게 걸어갔다.

곧, 땅을 차고 뛰는 순간 힘을 각성한 헌터라고 하더라도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였다.

곧 라미네르가 준혁을 향해 검은 칼날을 그었다.

준혁이 왼손으로 그 칼날을 잡은 채로 라미네르의 눈을 응시했다.

라미네르가 당황한 듯 준혁의 손과 자신의 붙잡힌 칼날을 번갈아 보더니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준혁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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