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23화
“더 월드가 주는 시스템 보상. 레전더리 등급의 아이템 같은 경우는 아직 관련 케이스 정보가 없는 거지?”
준혁이 물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리더보더들이 워낙 비밀스러운 사람들이라. 레전더리 등급은 리더보더들의 전유물이거든.”
리더보더는 리더보드라는 전 세계 최고 순위에 속하는 자들.
“형. 내 생각엔 앞으로 형이 라이브 방송을 하는 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아. 보상도 보상이지만, 형이 ‘귀환자’라는 아이콘으로써 적응하기에 좋은 환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거든.”
“라이브 방송은 순전히 시스템 보상 때문에 매력을 느끼는 거야. 만약 내게 중간에 필요 없다고 판단 될 경우, 내가 스트리밍을 버리면 너한테 피해가...”
“형.”
“……?”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어. 난 그러려고 협회장이 된 거야. 그러니까 다른 건 신경 쓰지 마. 형은 형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준혁은 동생 선우를 빤히 보다가 옅게 웃었다.
“코흘리개가 언제부터 이렇게 든든해진 거야.”
“꽤 됐지.”
준혁의 웃음이 잠시간 짙어졌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지? 시스템의 근원에 대해선.”
준혁의 질문에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이 생긴 후에 각성자들이 시스템에 의해 성장하지 못했더라면 지구는 멸망했을 거야. 그래서 그런지 다들 더 월드 시스템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이거나 우호적일 수밖에. 미지의 두려움에 대해선 다들 묵인하는 거고.”
마계에선 늘 의심하고 경계해야 했다.
매분 매초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였으니까.
“어차피 형은 생각을 정리했을 거고 어느 정도는 결론에 이른 거 아니야?”
마계에서 미래라는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을 때 준혁은 맹세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이 마계에 소환한 근원을 남김없이 멸할 것이라고.
상대가 누구든 관계된 모든 뿌리를 뽑아내겠다고.
그렇게 천 년간 쌓이고 쌓인 마음.
“만나야 할 놈들이 있어.”
“누구?”
“마계를 지배하는 주인, 아우터 갓.”
“형이 하려고 했던 일이 그런 거였구나.”
선우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결착을 지어야 돼. 어쩌면 더 월드라는 시스템. 그리고 던전. 이 모든 것들이 관계되어 있을지도 몰라.”
선우가 한숨을 길게 뱉었다.
“이름 한 번 살벌하네. 아우터 갓이라니. 젠장 듣기만 해도 벌써 무시무시한데?”
준혁이 쓰게 웃었다.
“뭔가 형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거지?”
“강해지기 위해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전 세계 모두가 지켜보는 거라면.”
“그런 거라면?”
“난 혼돈 그 자체가 될 수도 있어.”
“어차피 이 일은 형밖에 할 수 없잖아?”
“이유가 어떻든 나한텐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까.”
준혁의 목소리에서 어둠이 흘러나왔다.
천 년간 켜켜이 쌓인 감정이었다.
“형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세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
“어쩌면.”
“난 형의 그 개인적인 감정이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전적으로 내 선택에 맡기겠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선우가 먼 풍경을 보며 웃었다.
“아니. 난 형을 믿고 있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많은 사람이 형을 알아 가게 되겠지. 형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이뤄 가는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진행하려고 했었어.”
“인생이 그런 거야. 아무리 귀환자라고 해도.”
“애늙은이냐?”
“뭐, 직책이 주는 무게감이랄까. 이래봬도 협회장이잖아.”
준혁이 웃으며 커피를 마셨다.
“형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 뒤는 내가 다 봐줄 테니까.”
누구도 다치지 않고, 숙원을 해결하고 싶었다.
선우의 말대로 인생이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일.
더욱이 아우터 갓은 자존심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괴물이 아니었다.
준혁은 괜히 커피를 마셨다.
“아! 그리고 아이템 말인데, 처분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준혁은 모르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협회에서 처분해 줄 수 있어.”
준혁이 곧바로 큐브를 꺼내 내밀자 선우가 웃었다.
“이렇게 말고, 협회에 정식으로 제출해야 해. 암호화되어 있어도 대리로 제출할 수 있으니까. 매니저 시키면 될 거야. 어차피 귀속 되어 있어서 암호를 못 풀면 훔쳐갈 수도 없거든.”
준혁이 다시 큐브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추가 던전 일정 조율은 일단 형이 스케줄 잡아 보고 그 다음에 얘기해 주면 내가 던전을 알아볼게.”
“고생이 많다 네가.”
“귀환자님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이라면 이 한 몸 불살라…….”
“시끄러워.”
준혁이 커피를 마저 마시며 먼저 발 빠르게 루프탑을 벗어났다.
“어디가, 형!”
* * *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동생의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었다.
모두 업무 관련 전화들이었다.
중간중간 받은 전화만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어려울 정도의 내용들이다.
“먼저 가. 난 택시를 타든 매니저를 부르든 할 테니까.”
“괜찮아. 태워 주고 갈 게.”
“지금도 계속 전화 울리고 있잖아. 넌 내가 집도 못 찾아가는 사람으로 보이냐?”
“아니 그게. 형.”
“됐어. 어서 가 봐.”
준혁이 선우의 등을 밀어 차량 안에 욱여넣어 보냈다.
동생이 탄 차량이 출발하는 걸 확인하고 준혁은 언덕에서 도로가 쪽으로 내려왔다.
굳이 매니저를 부를 것 없이 택시나 타고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준혁의 오만이었다.
동생이 바쁜 와중에도 캐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 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우려해서일지도 몰랐다.
“야. 저 사람 귀환자 아니야?”
“귀환자다.”
“워…… 실물 뭐야!”
“짭 아니야?”
“닮은 것 같긴 한데. 으음.”
“귀환자님?”
“대박이다. 귀환자님 맞는 것 같아!”
찰칵. 찰칵.
카메라를 들고 있던 사람들이 점차 과감해졌다.
점차 가까워져 오는 사람들.
“……안녕하세요?”
“귀환자님 맞으세요?”
“와……. 귀환자님이다.”
“귀환자님 왜 여기서 혼자 계세요?”
질문 세례와 함께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람들.
주변을 보자 건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웅성거리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었다.
택시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다간 인도가 완전 마비될 듯했다.
쿵.
“꺄악!”
“헉!”
“으헛?!”
묵직한 소리가 울렸을 때 준혁은 이미 제자리에서 건물 옥상까지 단 한 호흡에 이동한 후였다.
준혁이 땅을 밟은 도보 바닥에는 발자국이 깊게 파여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와! 진짜 귀환자님이었어!”
“오오, 발자국.”
“대박!”
준혁이 남긴 발자국을 찍기 위해 사람들의 사진 세례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건물 옥상에서 그 풍경을 내려다보던 준혁은 짧은 한숨을 뱉으며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청담 중앙 건물이야. 차 좀 보내 줘야겠어.”
- 그렇지 않아도 협회장님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지금 가는 중이에요.
전화를 끊고 난간에 걸터앉았다.
고층이다 보니 다리 아래로 바람이 휭휭 불었고 도보를 걷는 사람들은 개미처럼 보였다.
“이래서 뭐든 아는 척하면 안 되는 거지.”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던 준혁은 반대편 건물 고층 사무실을 봤다.
그곳엔 한 여자가 깜짝 놀란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서류를 든 채 마치 얼음처럼 서 있던 여자가 동료들을 불러 이쪽을 가리켰다.
동료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창문으로 달라붙었다.
놀라는 모습이 재밌었다.
재밌는 반응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
건물 아래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차 두 대가 입구를 막고, 이쪽을 향해 메가폰을 들었다.
준혁은 마치 카메라처럼 줌을 당겨 시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메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메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은 구면이었다.
“유다연?”
자신의 멱살을 잡았던 용병팀 헌터.
그 여자였다.
‘분식집에서도 만났었지.’
“너! 뛰어내리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메가폰을 타고 쨍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뛰어내리는데 어떻게 죽인다는 거지?’
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전히 재미있는 여자다.
‘그나저나.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이대로 또 사라졌다간 괜한 오해의 문제거리가 생길 수 있었다.
‘……그냥 태워 준다고 할 때 탈걸.’
준혁이 소리없이 후회할 때, 얼마나 빨리 올라온 건지 옥상 문이 벌써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당신 대낮에 거기서 뭐 하는……! 헉?”
유다연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다가 준혁의 얼굴을 보고 헛바람을 삼키며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귀환자님?!”
유다연이 넋 나간 채 준혁을 봤다.
“또 보네요.”
준혁이 그녀를 돌아보며 멋쩍게 말했다.
“아…… 네. 근데 거기서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준혁이 상황을 설명했다.
상황을 이해한 유다연이 곧바로 무전을 쳤다.
“상황 종료됐습니다.”
- 벌써?
“금방 내려갈게요.”
유다연이 괜히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무전을 끄고 꾸벅 인사했다.
“실례했습니다. 혹시나 안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인가 싶어서. 이런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귀환자님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엄청 여러 가지 일을 하네요?”
“아, 용병들이 좀 그래요. 아무래도 하는 일들이 가지각색이라.”
유다연이 허벅지를 문지르며 말했다.
한없이 당당했던 첫 만남 때와는 달리 상당히 주눅 든 모습이었다.
“음.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유다연이 몸을 돌릴 때, 전화가 울렸다.
매니저 이지우였다.
- 저기 귀환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접촉사고가 나는 바람에.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알아서 갈 수 있을 것 같아. 천천히 처리 해.”
준혁은 전화를 끊고 비상문 계단 쪽으로 갔다.
유다연은 반 층 아래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유다연 씨?”
유다연이 놀라며 준혁을 올려다봤다.
“네? 아, 네! 귀환자님!”
“부탁 하나만 할 수 있을까요?”
“부탁이요?”
준혁이 바깥쪽을 돌아보며 스스로도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뱉었다.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지 집으로 가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유다연이 여전히 영문 모를 표정으로 준혁을 봤다.
“차 좀 얻어 탈 수 있을까요? 더 이상 뉴스에 뜨고 싶진 않아서요. 지금도 충분히 민망한 상황이라.”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그러면 제가 건물 후문으로 차 가져올게요. 한 5분 후에 내려오시면 딱 맞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아닙니다!”
유다연이 90도로 인사를 하고 비상문을 열고 뛰어내려갔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항상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그 사이 준혁은 허리에 손을 얹으며 웃었다.
‘집에 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귀환 후, 좀처럼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콰르릉!
등 뒤로 갑작스레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하늘을 모두 깨부술 것만 같은 요란한 소리였다.
다시 옥상으로 가서 하늘을 보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먹구름은 점차 한 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벼락이 치고 천둥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평범한 먹구름처럼 보이는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계속 지켜보고 있을 만한 건 아니었다.
준혁은 잠시간 먹구름을 지켜보다가 천둥과 벼락이 잠잠해지는 걸 보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