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6화
VIP관 출입 담당 관리자는 옆에 있는 흑인 경호원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뒤이어 서서히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그 반응으로 턱이 빠질 듯이 입이 벌어졌다.
너무 충격이 심해서 다리가 후들거려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귀, 귀환자님?’
10년은 늙어 버린 것 같은 얼굴이 되어 버린 관리자는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듯했다.
하지만 만약 진짜 귀환자가 아니라 사기꾼이라면?
관리자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매니저 지우가 파천 길드 소속 명찰을 보여 주었다.
“예정에 없는 방문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 미리 말씀드리면 좋았을텐데 경황이 없어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만약 안 된다면 길드 마스터에게.”
“아, 아닙니다.”
“미리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아직 파천 백화점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명함 좀 주시겠어요? 다음에는 미리 연락을 드릴게요.”
진짜 귀환자라는 걸 확인한 관리자가 발발 떠는 손으로 명함을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귀환자님은 조용히 둘러보고 싶어 하셔서요.”
“예. 예!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관리자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귀환자를 흘깃 봤다가 눈빛이 마주치자마자 온몸이 얼어붙었다.
“가, 감히 몰라뵙고 실례했습니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준혁이 땀을 심하게 흘리고 있는 관리자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며 지나갔다.
마치 드래곤이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매니저가 꾸벅 인사하고 준혁과 함께 VIP관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관리자는 벽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십년감수했네.”
관리자가 헛구역질을 하며 가슴을 두드렸다.
“귀환자면 더 월드 리더보드…….”
“쉿!”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싶어 관리자가 입술에 검지를 대었다.
흑인이 눈치를 살피며 마른침을 삼켰다.
“큰 일 날 뻔 했네.”
“브로, 가서 귀환자님이 편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가 봐야 할 것 같아. 혹시 모를 사고가 있으면 큰 일이거든. 여기서 혼자 입구 지킬 수 있지?”
“당연하지.”
흑인 동료를 남겨 두고 관리자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진정되지 않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문질렀다.
난데없이 귀환자가 나타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나저나 실제로 보니 눈빛이 장난이 아니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흘러넘치는 아우라와 존재감은 가히 숨이 막힐 정도였다.
이제야 겨우 호흡이 편해진 관리자는 서둘러 귀환자를 찾아 나섰다.
혹여나 그를 무례하게 대하는 자들이 없도록.
* * *
“던전에 나오는 아이템들을 담을 수 있는 아이템으로 옵션은 아공간 기능 단 하나지만 레드라인답게 현재 나와 있는 아공간 템 중 굉장한 양을 담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업데이트까지 가능한 큐브죠.”
정장 차림의 판매 직원이 커다란 유리관 안에 단독으로 진열되어 있는 큐브에 대해 설명했다.
요즘은 여성들의 아티펙트 수요가 늘어나면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명품 가방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다.
디자인을 위해 나온 아공간 가방과 달리 레드라인은 큐브 형태로 되어 있어 각성자들이 실질적으로 쓰는 최고가의 모델로 가격 자체가 일반 아공간 가방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어떻게 쓰는 건지 한 번 사용해 보고 싶은데.”
준혁이 유리관 안에 들어 있는 금빛의 큐브를 보며 말했다.
직원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안 됩니다! 현재도 경매가 진행되고 있는 물건으로, 즉시 구입할 경우 100억 원을 지불해야 하는 아이템입니다. 즉시구매가로 판매하게 된 건 이제 겨우 1시간밖에 되지 않았고요.”
막 매장 안으로 뛰어 들어온 관리자가, 준혁을 응대하고 있는 직원에게 달라붙었다.
“당장 꺼내 드려.”
관리자의 말에 직원이 당황했다.
“예?”
“내가 책임질 테니까 당장 큐브를 보여 드리라고.”
“아니 하지만…….”
관리자가 준혁과 매니저의 눈치를 살폈다가 옆구리를 찔렀다.
“잘리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야 할 거야.”
관리자의 표정을 보고 직원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금고 쪽으로 향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VIP관 지배인이 비번이라 제가 대리 담당이라서요. 하하...”
준혁이 매니저를 봤다.
“100억이면 조금 과한 거 아니야?”
아직 자신의 재무 상태와 돈에 대한 개념이 잡히지 않은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100억이라는 돈은 지나치게 큰 비용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매니저는 준혁과 생각이 달랐다.
“100억이면 충분히 결제할 만 해요. 모두가 탐내는 물건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건 행운 아닐까요? 더욱이 귀환자님처럼 재무가 튼튼하다면 더더욱이요. 만약 이 물건이 해외 경매 건으로 올라갔다면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었을 거예요. 지금 이 아이템을 만날 수 있는 건 국내 각성자 법 덕분이기도 하고 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운이 좋았어요.”
계약금 1조에 1년 연봉으로 계산하자면 천억 원이 넘어간다.
준혁은 현재 충분히 구매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
더욱이 매니저가 이렇게까지 얘기하고 있으니 굳이 아이템의 가격에 의심을 품을 필요는 없었다.
끼긱-
하얀 장갑을 낀 직원이 유리관 안에 성스럽게 모셔져 있는 큐브를 꺼냈다.
큐브가 유리관 밖으로 나오자 그 금빛의 빛깔은 훨씬 더 고급스러운 색감을 뿜어냈다.
“던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큐브는 추가 활성화 기능이 생깁니다. 예컨대 전원을 오프하게 되면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 버리죠. 굳이 불편하게 소지하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는 겁니다. 숨겨진 히든 옵션은 구매 후 사용해 보셔야 알 수 있고요.”
준혁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큐브를 보며 감탄했다.
스스로 모습을 감추되 사라지지 않고 유령처럼 따라다닌다는 얘기였다.
“오픈.”
기이잉 철컥!
첫 번째 기능을 명령어로 활성화시키자 큐브가 블록을 분해하여 넓게 열리면서 그 안에 아공간을 만들어 냈다.
아이템과 같은 던전 물질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은 마치 우주 같았다.
이 작은 소우주에 아이템을 넣으면 그것들은 마치 별빛처럼 빛나며 떠다닌다고 했다.
아공간 속에 하나의 우주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이다.
실로 예술적이었다.
“아이템은 얼마나 넣을 수 있죠?”
“약 100평 정도입니다만, 추가 업그레이드까지 가능한 아이템입니다. 룬을 합성시킬 경우 랜덤 옵션이 추가될 수 있어요.”
처음에 100억 원이라는 금액을 들었을 때만 해도 과한 소비가 아닌가 싶었지만 매력적으로 보였다.
다른 옵션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큐브 하나만으로 모든 귀중품의 보관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이걸로 하죠.”
준혁이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큐브를 보며 말했다.
* * *
‘뭐, 뭐라고?!’
준혁의 말을 들고 직원은 두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관리자가 큐브를 꺼내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저 직접 한 번 만져 보고 싶은, 꽤 높은 위치의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그런 사람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경매도 거치지 않고 100억 원을 지불하고 큐브를 즉시구입가로 사겠다고 말한 사람은 준혁이 처음이었다.
“저, 저기. 직원으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그렇지만, 이게 현재 경매가가 62억 원 정도입니다만 즉시구입가로 가져가시려면 100억 원을…….”
“매니저.”
“네.”
“즉시구입가로 구매하기엔 비효율적인 물건인가?”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은 즉시구매가로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팔리지 않은 거예요. 즉시구매가로 구입하려면 매장에 디피 된 이후부터니까. 구입 찬스가 이제 겨우 1시간도 되지 않은 거죠. 지금이 기회입니다. 귀환자님.”
“그럼 고민할 필요가 없겠네.”
“네. 귀환자님이 이 큐브의 주인이십니다.”
“그럼 결제하자.”
준혁이 카드를 꺼냈다.
마치 다이아를 형상화한 것 같은 번쩍이는 카드였다.
이것은 협회에서 계약한 이후, 매니저가 은행에서 대리로 발급받은 카드다.
제한 한도가 없으며 전 세계에서 신원증명이 필요 없는 카드다.
직원은 일명 다이아몬드 핸즈라고 불리는 카드를 보고 잠시 충격에 빠졌다.
준혁이 고개를 갸웃하자 직원이 뒤늦게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카드를 받았다.
“죄, 죄송합니다. 결제해드리겠습니다.”
다이아몬드 핸즈는 절대 아무나 발급받을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국내에서 단 몇 명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전설의 카드였다.
직원이 손을 떨며 카드를 긁었다.
수수료만 해도 엄청난 금액.
“대체 누구길래…….”
직원이 지배인 대리로 출근한 관리자를 흘겨보았다.
관리자는 넋이 나간 얼굴로 준혁을 구경하듯 보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까마득한 사람이야.’
관리자의 저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떤 누가 오더라도 늘 기계처럼 응대했던 프로가 저렇게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일 정도라니.
직원은 100억 원의 가격을 결제한 영수증과 다이아몬드 핸즈를 들고 준혁에게 돌아갔다.
“영수증입니다.”
결제 카드와 영수증을 주고 곧장 안내 멘트를 전했다.
“워낙 고가의 아이템이라 가급적이면 지금 바로 인증 등록을 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도와드릴까요?”
준혁이 수락하자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큐브를 넘겨준 뒤, 인증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던전 물질을 통해 제작된 아이템은 모두 더 월드 시스템과 연결이 가능했다.
간단한 인증 절차를 통해 1인 등록이 완료되었다.
- ‘귀환자’ 1인 전용 인증 완료.
- 큐브가 귀속됩니다.
큐브가 더 월드와 연결되면서 시스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귀환자라는 세 글자가 큐브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관리자는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얼어붙었고, 처음으로 진실을 알게 된 큐브 담당 직원은 심장 부근의 가슴을 붙잡았다.
‘귀, 귀, 귀, 귀환자?!’
심장마비로 죽어 버릴 뻔했다.
미친 듯이 펌프질하는 심상 속도가 충격의 강도를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비밀로 좀 부탁드릴게요.”
매니저의 부탁에 직원은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그저 위아래로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였다.
직원은 뒤이어 큐브를 가까이서 보고 있는 준혁을 흘겨보았다.
정체를 알게 돼서일까?
신비로운 아우라가 광채처럼 쏟아지는 듯했다.
“쇼핑은 이 큐브 하나면 될 것 같은데?”
“무기와 방어 의류는 따로 전문 인력이 물건을 가지고 캐슬로 올 예정입니다. 협회장님이 미리 예약을 했거든요.”
“가자 그럼.”
“다른 물건들도 구경해 보시겠어요? 혹시나 필요한 게 있으실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이걸로 충분해.”
백화점을 나가는 준혁과 매니저를 향해 직원과 관리자는 90도로 머리를 숙였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머리를 푹 숙이고 있던 관리자와 직원이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후우!”
관리자가 긴 숨을 뱉으며, 넥타이를 풀었다.
담당 직원도 이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늘어진 얼굴로 편하게 숨 쉴 수 있었다.
“이거 꿈 아니죠?”
직원의 물음에 관리자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일 로또나 사야겠어.”
“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