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4화
협회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로로 넓고 긴 계단을 올라가면 웅장한 건물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이 건물 역시 동생의 오른팔인 백인호 군단장의 아버지가 디자인한 것 같았다.
깔끔하면서도 웅장한 느낌을 주는 회색빛의 건물은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하지 않았다.
“귀환자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로비로 들어가자 2명의 경비병이 잔뜩 얼은 채로 동시에 소리쳤다.
그들은 마치 지독히 차가운 한파에 몸이 언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리고 목에는 단단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군기를 넘어 공포에 휩싸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미리 연락을 해둬서 따로 신원 체크를 할 필요는 없으세요.”
준혁이 경비들에게 가볍게 꾸벅 목례로 인사하곤 매니저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동생은 협회장답게 가장 높은 층에 사무실을 뒀다. 가장 높다고는 해도 협회 건물 자체가 고층이 아니었기에 5층에 불과했다.
곧바로 5층에 도착하자 왼쪽은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고 오른쪽은 협회장의 단독 사무실이 있는 쪽이었다.
준혁은 매니저와 함께 협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넓은 사무실에서 만년필을 들고 집무 중인 선우가 보였다.
서류에 집중하고 있는 선우는 엘리트 느낌이 물씬 났다.
“오늘도 바쁘시네.”
준혁의 인사에 한 템포 늦게 선우가 얼굴을 들었다.
다소 피곤함이 엿보였지만 동생은 그런 기색을 감추며 미소 지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겨우 5분인걸.”
“미안한데 잠시만 앉아 있어. 금방 마무리될 거야.”
준혁은 매니저와 함께 천연가죽 소파에 앉았다.
“항상 저렇게 바쁜 모습인가?”
“협회장님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쓴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오래전부터 유명한 워커홀릭이었죠.”
“하긴 내가 의식불명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그때부터 범상치 않긴 했어. 어릴 때만큼이나 독했던거지.”
“그만큼 책임감이 강한 거겠죠?”
“글쎄. 그냥 중독 같은데.”
매니저가 웃음을 참을 때.
“두 분? 나 각성자인 거 잊었어? 그렇게 작게 얘기해도 다 들린다?”
선우가 여전히 업무를 보는 채로 말했다.
“일이나 집중하시지.”
“옙.”
선우가 만년필의 속도를 올렸다.
그 사이 준혁은 사무실을 훑어봤다.
선우와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였다.
아마 원래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브라운 톤의 따듯하면서도 섬세한 감각이 묻어나 있다.
이런저런 소품들을 구경하던 중 탁! 하고 서류를 덮는 소리가 났다.
“끝났어.”
선우가 비서를 호출했다.
곧장 문을 열고 들어온 비서가 서류를 챙겨 나갔다.
“협회장 나부랭이가 귀환자님의 시간을 뻇어서 어쩌나?”
선우가 웃으며 준혁의 맞은편에 앉았다.
“넌 없는 일도 만들어서 하고 다니냐? 뭐가 그렇게 바빠?”
“파천 길드 업무에 협회장 업무가 더 해졌으니 더 바쁠 수밖에. 내가 바빠지는 건 다 형 떄문이라는 걸 잊지 마.”
준혁은 모르는 척 먼 곳을 보았다.
“계약서랑 서류는 챙겨 왔지?”
“넌 오랜만에 형을 보는건데 계약 얘기부터냐.”
“그래야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준혁이 흘끔 매니저를 보자 매니저는 이미 가방에서 계약서와 각종 서류들을 꺼내고 있었다.
선우는 매니저가 준 서류들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도장을 찍었다.
준혁도 매니저가 챙겨 준 도장으로 날인했다.
동생이니만큼 특별히 의심할 것도 확인할 것도 없을 일이었지만 준혁과 다르게 선우는 계약서 이후로, 서류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꼼꼼한 검사 끝에 모든 처리가 끝났다.
“다 됐어.”
“그럼 난 이제 파천 길드 소속이야?”
“뭐야? 형 계약서 안 봤어?”
“네 회사 이름이랑 대표 이름만 확인했지.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선우가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형. 아무리 동생이라도 계약서는 제대로 확인해야지.”
“그래 알았어. 앞으로는 확실히 보마.”
영혼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태도였다.
선우가 부풀어 오르는 혈관을 꾹꾹 누르며 웃었다.
“이지우 매니저?”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더 잘 설명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왜 괜한 사람을 잡아?”
“오? 우리 귀하신 귀환자님께서 벌써 매니저를 챙기네?”
“챙기는 게 아니라…… 됐다.”
준혁이 손을 내젓자 선우가 매니저에게 잘하고 있다는 사인으로 윙크했다.
매니저는 빨개진 얼굴로 꾸벅 머리를 숙였다.
“형은 파천 길드 소속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무소속이야. 한 개인의 헌터로서 협회. 그리고 파천 길드와 계약한 거야.”
“무소속. 자유로워보여서 좋긴 하네.”
“계약서를 제대로 봐야한다고 했지?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들으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걸?”
선우가 계약서를 들어 흔들어보였다.
준혁의 입가에 아주 미세하게 어렸있던 여유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귀환자가 해외로 이민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 해에 형이 받는 돈이 천억이야. 계약금은 1조.”
‘1조에 해 마다 천억?’
준혁은 숫자를 상상해봤지만 감이 오질 않았다.
“일종의 국방비야. 1급 재난 상황 시 형이 지휘를 맡아 주는 조건이긴 한데 사실 역사상 1급 재난 상황이야 3번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대부분 초창기였으니까. 대충 느낌 오지? 형이 대한민국 국적으로 국가를 수호한다는 맹세만으로 그 돈을 받게 되는 거야.”
조 단위와 천억이라는 연봉이 준혁의 머릿속을 재차 스쳐 지나갔지만 도저히 어떻게 써야 할지 계산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한 해 연봉만으로 평생 쓰기 힘든 돈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큰돈을 쓰는 건 형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야. 형이 곧 국가의 보안 그 자체니까.”
선우가 준혁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각성자의 시대가 오기도 전에 미국에선 한 해 국방비만 천조가 넘어갔어. 인플레이션으로 화폐의 규모도 달라졌고, 아무튼. 형이 부담 가질 만한 사이즈는 아니란 뜻이야.”
“다른 조건은?”
“음. 계약 조건까지는 아닌데 전에 말했던 대로 형이 시스템으로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해 주는 거 잊지 않았지?”
“매번?”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이건 그저 귀환자의 솔로 레이드의 당위성. 형의 지위와 독점 권한에 대해 설득력을 갖기 위한 과정이니까. 그리고 형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아도 협회를 찾은 건 단순히 계약 문제가 아니라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준혁은 소파에 늘어져 있던 자세를 고쳤다.
“이 과정만 잘 끝내면 더 이상 던전 솔플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 이벤트를 하는 거야. 형이 얼마나 위대한 헌터인지에 대한 증명으로.”
“가능한 최대한 빨리 끝내고 혼자 움직이고 싶은데.”
“왜 그렇게 서두르려는 거야? 형은 이미 충분히 강하잖아?”
“찾아야 할 게 있어.”
“뭘 찾는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아니 혼자 해야 돼.”
선우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럼 일단 첫 던전만큼은 혼자서 들어갈 수가 없는 거 이해하지?”
“누구와 함께 가는건데?”
“파천 길드.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해 지원조 팀으로 형 후방 포지션으로 투입될 거야.”
“날짜는?”
“원래는 일정을 생각 중이었는데. 형이 서두르니까, 일정을 좀 당겨야겠네. 오늘 저녁에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리면 뉴스 퍼지는 시일까지 계산해 봤을 때. 아마 사흘. 그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준혁이 먼 곳을 보며 짧게 한숨 쉬었다.
“왜? 그것도 못 기다리겠어?”
조급한 마음은 실수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아우터 갓을 상대함에 있어 실수 따위가 끼어들 공간 따위는 없다.
완벽한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역설적으로 복수에 대한 감정을 철저히 통제해야 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려면 감정의 충동을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사흘 후로 하자.”
“확실해? 사흘 후면 되는 거야? 만약 시일을 더 당기고 싶으면.”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여유 있게 진행해.”
준혁은 괜히 자신 때문에 가뜩이나 바빠서 피골이 상접한 동생이 쓰러질까 걱정됐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일에 치이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준혁이었다.
“사흘 후면 전 세계가 떠들썩해지겠네. 채널 동시 접속자가 얼마나 나올지 상상도 안 돼. 아마 전무후무한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겠지. 세상 모두가 형을 지켜볼테고...”
선우가 기대감이 만연한 얼굴로 웃음 지었다.
무서울 정도로 깊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기운이 얼마나 대단한지 협회장실을 꽉 채울 정도였다.
“매니저.”
준혁이 낮은 목소리로 지우를 불렀다.
“네. 귀환자님.”
“동생이 과로로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아. 저건 분명 피로도 때문이야. 쉬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매니저가 웃음 지었다.
“아무래도 협회장님이 귀환자님의 열렬한 팬인 것 같은데요?”
선우가 매니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했어. 정확해. 난 형의 열렬한 팬이지. 그것도 최초의, 첫 번째, 퍼스트 넘버원 팬.”
“선우야.”
“응?”
“좀 자라. 얼굴은 다 상 했다.”
“미안하지만 오늘 못 잘 것 같은데? 홈페이지 공지 올리면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겠지?”
선우의 눈에 이채가 띄더니 동생이 바로 비서에게 사무실 스피커 폰으로 연결했다.
-삐익!
“지금 당장 홈페이지 서버 확장 시작해. 저녁 먹기 전까지 완벽히 준비가 끝나야 해. 언론사들한테 오늘 저녁 빅뉴스가 터질 거라고 메일 돌리고. 서둘러.”
-네. 협회장님.
선우의 눈이 마치 불길이 치솟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형 이제 긴장해야 돼. 이번 무대를 시작으로 감당하기 힘들 만큼 어마어마한 월드스타가 될 테니까. 아니 월드 스타가 아니야. 신. 신이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될 거야.”
선우는 먼 곳을 보며 충혈된 눈으로 웃었다.
준혁이 매니저를 돌아봤다.
“쟨 뭐 세계정복이라도 싶은 거야?”
매니저가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준혁이 선우를 보다가 얼굴을 가로저었다.
“과로가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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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뉴스 헤드라인 코너!>
-귀환자의 이중계약? 그리고 공식 이벤트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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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협회와 파천 길드에서 새로운 공지사항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각성자 협회와 파천 길드의 주요 계약 내용은 아래를 확인해주세요.※
1.
『더 월드 리더보드 1위 ‘귀환자’님과의 협회 전속 계약이 완료되었음을 알립니다.
이로써 귀환자님은 1급 재난 상황 시 협회 군단 지휘권을 갖게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각성자 협회 공식사이트 공지사항 안내 中
2.
『안녕하세요. 파천 길드의 길드 마스터였던 한선우 님이 협회의 협회장에 취임하게 되면서 파천의 새로운 길드마스터로 저 군단장 백인호가 선임되었습니다.
길드마스터로써 첫 번째 영광스러운 소식을 전합니다.
현 시간부로 ‘귀환자’님이 파천 길드와 공식 파트너 계약이 완료되었음을 알립니다.
동시에 ‘귀환자’님의 첫 공식 일정을 공개합니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 15시.
‘귀환자’님의 첫 던전 레이드 라이브 송출
*시스템 라이브는 PC와 연결된 PC 전용 마나석 1.79버전 등급 이상에서 모두 가능합니다.』
-파천 길드 공식사이트 공지사항 안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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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자 협회에서 ‘귀환자’와 공식 지정 계약을 맺음으로써 대한민국은 본 계약을 통해 귀환자의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못 박을 수 있게 됐다.
또한 동시간대에 파천 길드에서는 ‘귀환자’가 파천 길드와 공식 파트너가 되었음을 알리고 이벤트 내용을 공개했다.
무려 귀환자의 던전 레이드를 실시간 방송으로 송출한다는 내용.
현재 협회와 파천 길드의 공식 사이트는 접속 폭주로 인해 서버가 불안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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