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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13화 (13/175)

귀환자의 모든 것 13화

매니저 이지우는 24시간 호출에 대비하기 위해 늘 5분 대기조처럼 즉시 귀환자님에게 출동할 수 있도록 취침 시에는 무전기를 옆에 두고 외출을 대비하곤 했다.

하지만 귀환자님은 그동안 새벽이라든지 일과가 끝난 시간 이후로는 전혀 무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편하게 쉬라는 의미로 배려하는 듯했다.

‘진즉 연무장에서 돌아오셨겠지?’

업무를 보기 위해 이른 새벽 거실로 나가 메이드에게 귀환자님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았다.

메이드들은 저마다 고개를 저으며 귀환자님을 뵌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시간이 아직 오전 6시이니만큼 아직 침실에 계시리라 생각하고 메이드에게 오늘 아침 메뉴에 대해 물어봤다.

“메인으로는 옥돔구이와 전복, 그리고 된장찌개를 준비 중입니다.”

지아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뉴스를 체크하며 거실로 이동하던 중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복도를 통해 거실 쪽으로 오는 소리였다.

균일하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발소리.

설마하는 심정으로 지아는 그곳을 돌아보았다.

“……맙소사.”

지아는 일순 기절할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그에게 뛰어갔다.

“귀환자님!”

귀환자님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티셔츠를 벗은 상체에는 찢어지고 멍든 상처들로 가득했고 얼굴 역시 베인듯한 자국과 입술이 터져 있었다.

“별일 아니야.”

귀환자님은 그렇게 짧게 일축하더니 주방으로 들어가 놀란 메이드들 틈 사이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는 것이다.

지우는 물론 메이 드들까지 모두 얼어붙은 채로 그런 귀환자님을 지켜봤다.

귀환자님은 지우와 메이드들을 이상하다는 듯이 잠깐 봤다가 주방을 나갔다.

마치 산책을 갔다 온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지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다치셨단 말인가?

‘설마 연무장에서 지금까지 훈련을 하신 거야?’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기 이전에 이 문제를 해결부터 봐야 했다.

그녀는 서둘러 파천 길드 마스터에게 보고를 올리고 집사부터 찾아 나섰다.

* * *

“어서 하우스 닥터를 호출해 주세요. 어서요!”

샤워를 하러 가던 준혁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매니저와 메이드들을 보며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슨 큰일이라고 저렇게 유난인 건지.’

부르르-!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속사포같은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형! 다쳤어? 왜? 어쩌다가? 암살 공격이라도 받은 거야? 상처가 있다며?

암살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협회장 무리야 진즉에 처리했던 일이다.

“호들갑 떨 것 없어. 그냥 연무장에서 훈련 좀 했을 뿐이야.”

-연무장에서? 아니 무슨 훈련을 어떻게 하면 형이 다칠 수가 있는 거냐고.

“마력 없이 로봇이랑 좀 놀았어. 감각 올리기엔 그게 좋을 것 같아서. 마력을 쓰면 훈련 자체가 안 되니까. 해 보니까 의외로 쓸 만하던데?”

-마력 없이? 몇 단계로?

“아마, 적응하고 바로 5단계로 했던 것 같은데.”

-……거짓말이지?

“거짓말?”

-5단계면 B급 각성자 수준이야. 마력을 통제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마력 없이 인공지능 로봇이랑 5단계로 훈련한다는 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되던데.”

-되던데라니…… 하아. 뭐 형이니까 납득이 되긴 한데 그보다 진짜 괜찮은 거야? 일단 힐러 보냈으니까 치료부터 받아. 곧 도착할 거야.

“팔다리 잘려 나간 것도 아니고. 무슨 힐러야.”

-형.

“일단 씻어야겠다. 그럼 내일 보자?”

더 잔소리가 나오기 전에 준혁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

무서운 게 없는 준혁이었지만 동생의 잔소리는 언제나 꽤 무섭다.

“귀환자님. 힐러 도착했습니다.”

준혁은 뒤를 돌아봤다.

새하얀 치마 수트 차림의 여인은 신비한 눈을 갖고 있었다.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외국인처럼 푸른빛의 눈을 가졌다.

푸른눈은 극 최상급 힐러들의 고유 특색이었지만 준혁은 그런 힐러를 처음 보는 일이라 신기했다.

“선우가 보냈다던 그 힐러?”

“미국 최고의 힐러 중 한 명이었어요. 귀환자님을 모시기 위해 계약을 해지 하고 한국으로 왔다고 해요.”

준혁은 힐러를 빤히 보았다.

방금 그녀를 설명한 매니저인 지우만큼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다만 차분한 느낌의 지우와는 달리, 조금은 부담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다.

힐러가 아름다운 각선미를 자랑하며 천천히 높은 구두를 신은 채 준혁에게 걸어갔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메이즈 소속 힐러였던 최설화라고 해요.”

힐러 최설화가 무릎을 꿇더니 준혁의 손을 잡아 손등에 키스했다.

“최선을 다해 귀환자님을 모실 것을 맹세합니다.”

최설화가 준혁을 올려다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

그녀는 준혁에게 완전히 취해 있었다.

사랑에 빠져 주변을 전혀 인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선우가 보낸 힐러 맞아?”

준혁이 지우를 향해 묻자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본래 미국 길드팀 소속인데, 귀환자님 때문에 국내로 왔다고 해요. 앞으로 귀환자님을 전담으로 모시게 될 겁니다.”

“파천 길드랑?”

“네. 계약됐어요. 아직 말씀을 못 드렸던 건, 마침 계약한 지 1시간이 안 됐거든요.”

최설화의 손이 준혁의 몸을 만졌다.

그녀는 준혁의 상처부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준혁은 자신의 상처를 보는 최설화의 신비로운 푸른 눈을 보았다.

일반적인 푸른빛이 아니라, 오러의 힘이 깃들어 있어 눈에선 오러의 빛이 은하계처럼 살아 움직였다.

마계에서는 본 적 없는 빛이었다.

‘천계의 힘이구나.’

천계의 천신들은 아우터 갓을 심판한 이후, 천사를 통해 신물과 신수들을 마계와 인간계 사이. 즉, 균열의 틈에 숨겨 놓았다.

멸마의 서를 통해서만 균열의 틈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나 천계의 힘은 오랜 세월을 통해 인간계로 미미하게 흘러나왔을 것이다.

‘그 천계의 힘이 모여 각성자를 만들었을 거고, 던전은 생체에너지를 빨아들이고자 만든 아우터 갓의 더러운 수작질이겠지.’

지금의 이 힐러를 통해 천계의 힘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낯선 감각이 느껴지실테지만 최대한 긴장을 풀어 주세요.”

준혁은 짧은 한숨을 뱉고서 소파에 앉아 편안히 기댔다.

성격상 영 적응되지 않는 일이지만 동생의 잔소리와 더불어 얼굴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이상, 이 몰골로 다니면 동생이 운영하는 파천 길드에 괜히 민폐를 끼칠 수 있었다.

준혁은 힐러가 시키는 대로 힘을 빼고 눈을 감았다.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혈액을 타고 흐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가속되는 혈액순환과 더불어 오러가 가진 신비한 힘이 재생을 촉진시켰다.

단 30초도 되지 않아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행히 타박상과 열상은 심하지 않은 정도여서 후유증은 없을 것 같아요.”

힐러가 듣기 좋은 어조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준혁은 천천히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멍과 상처가 깔끔히 사라져 있었다.

언제 그런 거친 훈련을 했느냐는 듯 말끔한 피부는 거짓말처럼 깨끗했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온갖 길드에서 데려가고 싶어 난리겠네. 최상급 힐러들이 미국에 있는 이유를 알겠어.’

여전히 미국은 최강의 자본을 보유한 나라다.

준혁이 예상한 대로 실제 힐러에 대한 대우는 국내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선우랑은 원래 아는 사이입니까?”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친분까지는 아니에요. 그보다 혹시 다른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최설화가 반한 듯이 말끔해진 준혁의 상체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얼맙니까?”

“……네?”

“힐러님을 데려오려고 파천 길드가 얼마를 썼는지 궁금해서. 굉장히 비싸 보이는데.”

힐러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 미소 지었다.

“계약사항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귀환자님을 위해 온 만큼 파천 길드 재정에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순수하게 귀환자를 위해서?”

“귀환자님을 모시고 싶은 마음을 품은 이가 비단 저뿐만은 아닐 걸요? 아마 세상에 차고 넘치겠죠. 저 역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최설화가 준혁의 눈을 뚫어질 듯이 보며 말했다.

준혁은 그녀의 두 눈을 응시했다.

진실 된 눈이었다.

준혁은 잠시 그녀의 효용성에 대해 생각했다.

여러모로 가치는 확실하겠어.

“덕분에 멀쩡해졌네. 앞으로 잘 지내보죠.”

준혁이 샤워를 위해 거실을 떠나자 힐러 최설화는 아쉬운 듯 떠나는 준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어때요? 귀환자님을 만나 뵌 소감이?”

“망양지탄(望洋之歎)이죠.”

최설화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끝없이 넓은 바다를 보고 감탄한다는 뜻이었죠 아마?”

“아아. 잠깐 뵈었을 뿐인데도.”

힐러 최설화의 시선이 아득한 곳을 좇았다.

“그 충격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요. 아쉬워서 어쩌죠.”

“앞으로 자주 뵙게 될 텐데요 뭘. 이제 전담 힐러시잖아요.”

최설화가 지우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겠죠?”

기대감으로 만연한 최설화를 보면서 지우가 작게 웃었다.

“네. 자주 뵙게 될 거예요. 힐러님도 이제 캐슬의 식구니까.”

“이지우님이라고 했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응. 그러자. 빨리 친해지고 싶으니까.”

최설화가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지우의 어깨를 잡았다.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남은 얘기는 다음에 더 하자. 우리 예쁜 동생?”

“네 힐러님.”

캐슬 건물 입구에는 보통 타고 온 차량이 있기 마련이지만 힐러 최설화에게 차량은 불필요한 존재였다.

그녀는 순간이동이 가능한 최상급 공간 능력자이기도 했으니까.

매니저 지우가 정중히 인사를 했을 때, 그녀는 자리에 없었다.

최설화는 이미 텔레포트로 사라진 후였던 것이다.

지우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텔레포트 능력자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리다니.

지우는 신기한 마음을 얼굴에서 감출 수 없었다.

“와…… 대박.”

귀환자님을 모시는 기적 같은 일을 시작한 만큼 오늘같이 신기한 일은 수도 없이 일어날 것 같았다.

“파천 길드에 취직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지우는 여전히 힐러, 최설화가 사라진 곳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감탄했다.

* * *

샤워를 마친 준혁이 외출복을 준비해 입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육체를 꽤 거칠게 굴렸더니 예전의 습관들이 잠에서 깨어난 듯했다.

악마를 죽이고 고문하던 습관은 여전히 세포 곳곳에 남아 있다.

때문에 오늘 던전이란 곳에 들어가게 되면 향수를 느낄지도 몰랐다.

물론 악마의 소멸과는 다른 죽음의 영역이니 이는 전혀 새로운 경험이겠지만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거의 못 주무셨는데, 더 쉬다가 가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빠르게 복도를 걷는 준혁의 옆을 뛰다시피 따라붙으면서 매니저 지아가 말했다.

“충분히 미적거렸어.”

캐슬을 나온 준혁은 운전기사가 열어 준 세단 차량 뒷좌석에 탑승했다.

매니저가 재빨리 준혁의 옆좌석으로 뛰어가 앉았고, 운전기사는 곧바로 차량을 출발시켰다.

“더 월드 라이브에 대해서 설명 좀 다시 해 줘. 마지막으로 체크 좀 하게.”

“시스템 기능은 알고 계시죠?”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기능에서 옵션에 들어가면 자동 스트리밍이 있어요. 그 옵션을 터치하면 채널을 만들기 전에 설정이 나타날 거예요. 기본적인 세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마음에 걸리시는 게 없으면 곧바로 완료를 누르시면 되세요.”

“스트리밍이라는 건 던전 들어간 후에 하는 거지?”

“아니요. 언제든지 하고 싶을 때 하실 수 있어요. 던전 밖이든 안이든.”

‘적당히 들어갈 때쯤 키면 되겠네.’

이미 각오는 했다.

어차피 누가 보고 안 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균열의 틈을 통해 천계의 흔적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자신을 방해할 수 있는 건 그 어디에도 없다.

준혁에게 거리낄 장애물 같은 건 없었다.

스트리밍은 그저 어쩔 수 없이 지나야만 할 통과의례였다.

모든 걸 다해 줄 수는 없어도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지.

그게 설령, 불편하거나 조금은 귀찮은 일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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