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8화
“죽여 버린다. ……괴물 새끼!”
최무성이 이를 악물고 준혁을 향해 검기를 발출했다.
새파란 검기 세례가 폭풍처럼 준혁을 향해 날아들었다.
총력을 다한 공격이었으나 그가 발현시켜 쏘아낸 검기는 준혁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박살이 나며 흩어졌다.
마치 폭죽처럼 흩어지는 검기를 보고 최무성이 넋이 나갔다가 이내 이를 으득 갈며 다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준혁의 코앞으로 도달한 최무성이 검을 내질렀다.
수도 없이 훈련하고 연습하며 실전 경험을 통해 갈고닦았던 검격.
하지만.
준혁이 검지와 중지로 너무나도 간단하게 최무성이 내지른 검의 칼날을 잡았다.
마치 나비 날개를 잡듯이 간단하게 칼을 잡아버린 준혁을 보고 최무성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덜덜덜덜덜덜!
시뻘겋게 핏대가 선 최무성이 안간힘을 썼지만 어찌 된 일인지 준혁의 손가락에 붙잡힌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최무성의 떨리는 팔 뿐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최무성이 부하들을 돌아봤다.
“죽여…… 어서 죽여! 어서어어어!”
최무성이 동료 부하들에게 핏대를 세우며 발작적으로 소리 질렀다.
마력 파장으로 몸이 둔화된 헌터들이 준혁을 향해 안간힘을 다해 기었다.
그들이 거실에서 마당으로 겨우 빠져나온 순간 준혁의 마력은 한층 더 짙어졌다.
그와 동시에 헌터들의 뼈마디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윽-!”
“크악!”
“아아악!”
헌터들이 제자리에서 마치 도미노처럼 쓰러져 나갔다.
“무, 무슨……?!”
준혁 앞에 최무성이 준비된 전력은 그저 한낱 태풍 앞의 낙엽일 뿐이었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헌터가 어떻게……?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마력 컨트롤을 할 수 있는 거냐고!”
최무성이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준혁을 돌아봤다.
준혁은 손가락으로 쥐고 있는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검은.”
준혁이 최무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너한테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있어.”
준혁이 검을 반으로 부러트리는 순간.
화르륵-!
“…….”
잔디가 순식간에 잿빛으로 검게 변하더니 그 잿빛 바닥 곳곳에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유황이 끓고, 매캐한 연기를 피우는 불꽃이 타오른다.
이내 순식간에 주변은 황폐한 마계의 모습을 재현해 냈다.
최무성과 쓰러져 있던 헌터들이 당황한 얼굴로 두리번거렸다.
“어?”
“이게 무슨……!”
“환영 마법인가?!”
“콜록! 콜록-!”
준혁이 미소지으며 왼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내가 지옥을 본 적 있냐고 물었지? 못 봤으면 두 눈 뜨고 잘 봐. 지금 바로 여기가 지옥이 될 테니까.”
거대한 책이 마치 날개를 펼치듯 나타나 페이지에 빛의 글자를 새겼다.
멸마의 서 1장.
악마 소환
“간만인가?”
글자가 폭발했다.
뒤이어.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
귀를 찢을듯한 고음이 퍼지며 드레이크 한 마리가 상공을 상회하며 날았고.
콰드드드드드드득!!
태풍 같은 붉은 바람 속에서 땅을 깨며 악마들이 지상으로 올라왔다.
“크르르르르륵!”
새빨간 눈에 잿빛의 피부와 같은, 다양한 악마들이 최무성 무리의 주변을 서서히 에워싸기 시작했다.
“헉!”
“히익!”
“어어어?!”
악마들이 죽일 듯이 최무성 무리를 노려보며 질식할 듯한 기운을 풍겨댔다.
이에 최무성은 물론이고, 수하들은 일제히 패닉에 빠진 채 전의를 상실했다.
헌터들은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악마들이 내뿜는 마기는 절대 환영 따위나 가짜가 아니라고.
“키아아아악!”
악마들이 일시에 괴성을 질렀다.
단순한 괴성이 아닌 마기가 실린 괴성이었다.
때문에 헌터들은 악마들이 내뿜은 짙은 마력에 저릿저릿한 통증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 내고 싶은 듯 저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드레이크가 날개를 퍼덕이며 헌터들 위로 지나갔다.
휘이이이잉!
헌터들이 자라처럼 목을 넣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심박수가 올라가 호흡이 가빠진다.
준혁에겐 이 광경이 익숙한 풍경이었으나 이 순간을 처음 경험하게 되는 최무성과 헌터들은 당연히 그렇지 못할 일이다.
“크읏!”
“흐흡!”
“흐흐흑!”
극한의 공포에 헌터들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
최무성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얼굴로 악마들을 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크워억!”
악마들이 충동적인 본능을 참지 못하고 결국 일제히 헌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대기.”
준혁의 짧은 한마디에.
콰드드드득!
악마들의 발이 멈추었다.
황폐한 땅이 마치 스키드 마크처럼 패여 나가며 뿌연 먼지를 일으켰다.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악마들은 준혁의 눈치를 살피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려 마계의 악마였지만 준혁 앞에선 마치 훈련된 사냥개와 같았다.
악마들이 안간힘을 다해 스스로의 충동을 제어하는 사이.
“저기. 저놈 하나만.”
준혁이 최무성을 손가락질했다.
최무성의 눈이 완전한 공포에 물들었다.
“으어어어! 자,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귀환자님! 살려 주십시오. 잘못 했습니다. 제가 감히 주제도 모르고. 제발……!”
준혁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삼켜.”
최무성의 얼굴이 절망에 물드는 순간.
파파팟-!
악마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속도로 최무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굶주린 듯 악마들이 최무성의 영기(靈氣)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적-!
빠직!
우저저적!
우적-!
수십 마리의 악마들에 둘러싸인 탓에 최무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의 비명 소리만이 검은 하늘 위로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단 10초도 되지 않아, 피를 머금은 악마들이 신이 난 듯 춤을 추는 것처럼 몸을 떨거나 흔들어 댔다.
“그만 사라져라.”
준혁의 명령에 악마들이 아쉬운 듯 최무성을 보다가 하나둘, 모래처럼 변해 흩어졌다.
황폐하던 마계의 풍경 역시 서서히 모래처럼 흩날려 사라져 갔다.
이내 주변은 처음 딛고 있던 깨끗한 잔디밭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살아 있는 악몽을 목격한 헌터들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몸을 떨었다.
헌터들은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공포에 질려 있었다.
뒤이어 그들은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긴 상태에서도,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준혁을 향해 완전한 굴복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들은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떨 뿐이었다.
준혁은 그런 헌터들을 훑어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병원으로 데려가.”
준혁이 거실 안으로 돌아갔다.
고요한 잔디 위의 마당.
서서히 헌터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엔 전 협회장 최무성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담한 몰골로 자리해 있었다.
최무성의 몸은 성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미라 같았다.
머리는 새하얀 백발이 됐고 뺨이 움푹 파일 정도로 말랐다.
신체 곳곳의 살점이 뜯겨져 나가 있었고, 팔다리는 부러지거나 찢겨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숨은 간신히 붙어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 정도로 끔찍한 상태.
헌터들은 그런 최무성을 보면서 움직이지 못했다.
극한의 공포가 전신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헌터가 악마를 부리고, 그 악마가 무려 전 협회장급의 헌터를 저 지경으로 만든단 말인가?
단숨에 폐인이 되어 버린 최무성의 모습을, 헌터들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건 단순히 네크로맨서 계열의 능력이 아닌, 마계의 재현 그 자체였다.
준혁의 과거 이력을 알지 못하는 헌터들로서는 미지의 공포에 잠길 수밖에 없는 충격이었다.
* * *
“별일 아니니까 걱정들 마세요.”
거실에 내려와 있던 메이드 팀과 전담 매니저 이지우가 다행이라는 듯 안도했다.
“큰 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어요.”
“별일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마력으로 만들어 낸 악몽은 결계 안에 있었기에 일하는 직원들과 매니저는 악마가 최무성의 영기를 뜯어먹는 건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 전에 검기가 터지는 소리는 큰 폭음을 냈을 것이기에 이들이 그 소리에 놀라 뛰쳐나왔을 것이다.
“더러워졌네.”
준혁이 무수한 발자국이 남아 있는 거실을 내려다보며 혼잣말처럼 말하자.
놀란 눈으로 바닥을 보던 집사가 표정을 고쳤다.
“바로 청소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사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준혁이 거실을 떠나려는 때 매니저가 따라붙었다.
“귀환자님. 혹시 파천 길드에 보고를…….”
“아니 됐어. 그보다 여기 침실 위치가 어디였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앞장서는 매니저를 따라가면서 준혁은 뒤를 힐끔 돌아봤다.
거실 밖으로 보이는 마당은 텅 비어 있었다.
헌터들이 이미 최무성을 수습하여 떠난 후였다.
‘뭐,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최무성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후환은 남기지 않은 셈이다.
또한 목격자들이 있으니 곧 소문이 음지에 사는 놈들에게 확산될 것이다.
전부 학살하거나 전 협회장 최무성을 죽이지 않은 건 어설픈 아량 따위가 아니었다.
준혁이 마계에서 자주 하던 경고였다.
귀환자를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사인.
그편이 동생의 신변을 보호하기에도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마계에서도 그랬듯 보스를 잃은 무리는 와해되기 마련이고 본디 한 번 새겨진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죽여봐야 동생이 정치적으로 엮여 있으니 괜히 시끄러워질 뿐이다.
물론 다시 기어오른다면 그땐 전 협회장이 아니라 관계된 모든 인물들을 죽일 거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이쪽이 침실이에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준혁은 매니저가 보여 준 안방을 보고 말을 잃었다.
“귀환자님? 혹시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방으로.”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대체 누가 인테리어를 한 건지 모르겠지만 업자는 분명 이곳에 권력과 사치에 쩌든 인간이 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진한 네이비색의 침대 프레임은 마치 공작새를 보는 듯했다.
문양이 화려한 건 아니지만 우아함과 과감한 곡선의 형태.
거기에 금수가 놓인 이불의 문양과 베개는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의 절정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
“그나마 여기가 가장 심플한 방이라서요. 내일이라도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아니 됐어.”
“필요하신 다른 분부는 없으세요?”
“괜찮아. 그만 가봐.”
“그럼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매니저가 정중하게 꾸벅 인사하고 떠났다.
준혁은 한숨을 뱉으며 침대로 가서 누웠다.
확실히 명품이라 그런지 푹신하고 느낌도 좋았다.
늘 땅이나 바닥에 기대어 자곤 했던 준혁이었지만 지구로 돌아온 후로, 동생이 마련해 준 곳에서 지내다 보니 침대에는 이미 적응을 했다.
점점 인간계에 익숙해지고 있지만 그만큼 앞으로 귀찮은 일에 휘말릴 일이 많을 듯했다.
‘기자회견이 끝나면, 신수 찾기에 집중할 수 있겠지.’
주인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리는 브루저 타입의 신수, ‘백호령’.
백호령과 반대로 적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디버프 시키는 힘을 가진 신수, ‘현무’.
적의 마법을 무력화시키는 힘을 가진 신수 ‘기린’
주인의 마법에 관여하는 ‘청룡’
차원 이동의 신수 ‘주작’
모아야 할 신수는 이렇게 다섯.
뿐만 아니라 천계의 신물들도 모아야 한다.
멸마의 서를 이용해 균열의 틈으로 들어가게 되면 던전과 연결된 새로운 어비스의 문을 만날 수 있다.
신수와 신물은 바로 그곳에 있다.
‘네놈들이 바라는 영원 따윈 없을 거다.’
준혁은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