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7화
점점 느끼는 사실이지만 대충 신수나 구해서 아우터 갓이나 잡아야겠다는 준혁의 계획은 결코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본래 신수를 잡겠다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의지의 귀환이었으나 점점 한준혁이라는 인간으로서의 책임이 확장되고 있었다.
캐슬만 봐도 충분히 알만한 일이었다.
“공식 출범 행사 일정이 정확히 언제라고 했지?”
준혁은 공식 출범 행사가 끝나고 나면 동생과 단독 던전 레이드에 대해 얘기해 볼 생각이었다.
이젠 협회의 주인이 동생인 만큼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기자회견은 오후 18시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정치인들. 그리고 기업인들의 방문 인사가 예정되어…….”
“모두 취소해. 공식 출범을 마치고 나면 던전 사냥에 대한 진행을 최우선으로 스케줄을 잡게 될 거야. 정치인들과 엮일 마음은 없어. 그 점은 선우도 알아두라고 해.”
매니저가 긴장한 얼굴로 머리를 조아렸다.
“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근데 몇 살이지?”
“올해로 스물다섯입니다.”
“스물다섯? 그 정도면 대학생?”
“졸업한 지 이제 1년 됐습니다.”
사회초년생이란 소리였다.
“아마 특별히 부를 일은 없을 거야.”
준혁이 식탁 앞에서 일어나자.
“저 귀환자님.”
그녀를 보자 그녀는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였다.
“저는 귀환자님을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열심히 그리고 잘하겠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당찬 게 꽤 보기 좋았다.
“잘 지내 보자.”
준혁은 다이닝 룸에서 나와 성전과도 같은 캐슬 내부를 눈으로 훑었다.
말도 안 되게 높은 천장과 무서울 정도로 돈을 칠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속에서 준혁은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 * *
차량 안.
시트에 깊숙이 몸을 기대고 있던 콧수염의 사내가 흐리멍덩한 눈으로 먼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하수구 속에 몸을 숨긴 적이 있어. 돈을 갚지 못해 도망 다닐 때였지.”
“아주 오래전이겠군요.”
조수석의 남자가 말했다.
“자네 같은 엘리트 출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일 거야.”
“…….”
“협회장이 된 이후로는 잊고 살았어. 그런데 전략상 후퇴이긴 해도 잠시간 그 자리를 내려놓고 보니 다시 하수구 속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더군.”
“다시 찾게 되실 겁니다.”
“더 이상 손에 피 묻을 일은 없을 줄 알았어.”
“삶이 그렇죠. 늘 예측을 벗어나니까요.”
“적안 길드가 협력하고 알파 길드가 협력을 거부하게 될 줄도 몰랐어. 하여튼 쥐새끼 같은 놈들.”
“아무리 국내 1위 길드라 해도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
“하룻강아지야 언제든지 정리할 수 있지만, 범 새끼는 얘기가 달라.”
롱코트의 콧수염 사내가 장갑을 끼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 즉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복면의 사내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수가 약 십여 명.
그들은 산속의 좁은 길에서 차를 세운 체였다.
롱코트의 콧수염 사내는 품 안에서 마법 두루마리를 꺼내 끈을 풀었다.
두루마리 안에 새겨진 글씨는 새파랗게 빛을 뿜었다.
이는 장소를 기억하고 있는 텔레포트 마법서였다.
사내가 그 마법의 두루마리를 찢었다.
그러자 콧수염 사내의 앞으로 사람 키만 한 푸른빛의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사내가 주변을 훑었다.
콧수염 사내의 시선을 받은 복면인들이 모두 준비됐다는 사인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콧수염 사내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던 걸음을 갑자기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따라 복면의 수하들도 고개를 들었다.
함박눈이었다.
“꽃이 지기 좋은 날이군.”
콧수염 사내가 떨어지는 눈을 감상하다가 이내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그를 필두로 십여 명의 복면 사내들이 게이트 안으로 줄줄이 따라 들어갔다.
그들이 모두 게이트 속으로 사라진 후에도 이동 통로인 게이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주문서가 만들어 낸 게이트의 유지력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시간이었다.
* * *
창밖으로는 벌써 해가 져서 컴컴해진 후였다.
거실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고민이 있을 때마다 준혁이 하던 습관이었다.
타닥! 타탁!
준혁은 벽난로 안에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면서 결심을 굳혔다.
신수를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한선우의 친형으로서 한준혁으로 살아가는 일 역시 중요했다.
10년 만에 돌아온 양심 없는 인간으로서 책임을 논할 수 없다 하더라도 형으로서의 책임을 배제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 사색에 잠겨 있던 중.
똑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가 귓속으로 들어왔다.
준혁은 소리가 난 통유리 쪽을 보았다.
그곳엔 마피아같은 차림의 한 남자가 있었다.
검은 코트에 검은 첼시 부츠를 신은 콧수염의 사내가 빙글 웃고 있다.
그의 주변으로 마치 조폭처럼 보이는 검은 정장의 사내들 십여 명이 흉흉한 눈을 빛내며 건들거리는 자세로 어슬렁거렸다.
똑똑-
재차 문 열라는 노크 소리.
준혁은 걸음을 옮겨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고맙네. 점점 날씨가 추워지는 것 같아.”
콧수염 사내가 준혁을 지나 제멋대로 거실로 들어와 두리번거렸다.
“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낯설게 느껴지다니. 신기하군. 남의 손이 타서 그런가?”
그는 담배를 물더니 듀퐁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콧수염 사내는 체스터필드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며 담배를 빨아 당겼다.
“스으읍. 후우우.”
콧수염이 준혁을 보며 담배 연기를 천천히 뿜었다.
준혁은 그런 그를 보다가 그들이 들어온 통유리 쪽을 돌아봤다.
콧수염의 수하로 보이는 자들이 우르르 거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준혁을 지나치더니 콧수염의 주변에 포지션을 잡고 위압적인 눈길을 쏘았다.
“소개가 늦었군. 난 전 협회장,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협회장이었던 최무성이라고 하네.”
준혁은 대답 대신 그저 최무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더 월드 리더보드 1위 한준혁. 지금 이렇게 말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아. 전 세계 통합 랭킹 1위가 이렇게 내 앞에 있다니 말이야. 감격스럽다고 해야 할지. 신기해 아주.”
준혁이 최무성을 응시했다.
어떤 의미로 찾아온 건지 정도는 이미 눈치를 챘다.
이에 준혁의 눈빛에는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잔혹성이 스며들었지만, 최무성 일행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얘기는 들었겠지? 협회장의 자리를 자네 동생에게 물려주었다는 걸.”
“순순히 물려준다는 게 이상하긴 했어.”
최무성이 대리석 테이블에 담배를 지져 끄면서 웃었다.
“자네 동생은 야심은 높지만, 경험도 실력도 없는 한낱 애송이야.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아.”
“일부러 자리를 내준 건?”
“자네 동생은 실력도 경험도 없는 게 욕심만 많거든. 헌터라기보단 그저 뭐랄까. 장사치. 좋게 봐야 일개 기업인 따위 아닌가?”
“그래도 내 동생이 너처럼 멍청하진 않은 것 같은데.”
“하하하. 더 월드 리더보드 1위. 그래 분명 대단한 건 틀림없지만 자넨 시대를 잘못 태어났어.”
“그래?”
“자네는 의식불명에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잖나? 아무리 리더보드 1위라고는 해도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제대로 된 잠재력을 끌어내진 못했겠지. 자넨 아직 던전에 들어가 본 적도 없으니까.”
준혁이 옅게 웃었다.
“나와 여기 랭커들의 힘을 합치면, 자네 하나 죽이는 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가 않거든. 10년이나 누워 있던 몸뚱어리 아닌가? 어차피 하루아침에 더 월드의 탑이 되었으니 하루아침에 그 탑이 무너진다고 해도…….”
최무성이 진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거야. 그저 스쳐 지나간 신기루처럼. 그렇게 역사 속에 남겠지.”
준혁은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내 동생을 찾지 않은 건 언론을 의식해서였나? 내가 그런 쪽은 잘 몰라서.”
“맞아. 자네 동생은 건드리면 안 되지. 대외적으로 너무 티가 나잖나? 그리고 괜히 그럴 필요도 없어. 자네를 제거하고 나면 어차피 한선우야 껍데기 뿐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 너무 조용했으니까.”
최무성이 웃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마치 혼자서 우릴 상대할 수 있다는 듯이. 허세 부리지 말게. 자넨 그저 수치적 오류일 뿐이야.”
“수치적 오류라…….”
준혁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최무성 무리를 휘휘 돌아봤다.
“이보게. 각성자는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될 수 있는 게 아니야. 각성한다고 하더라도 고랭크에 이름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그에 걸맞은 위치까지 끌어 올리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이지.”
최무성이 끌끌 웃었다.
“다시 말하지만 꼬마야. 이 각성자의 시대는 랭크만 높다고 통하는 세계가 아니란 뜻이다.”
“그 반대일 수 있지.”
준혁의 검은 눈 안에 심연의 마기가 서서히 끓어올랐다.
츠츠츠-!
준혁이 서 있는 주변으로 무취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최무성의 동공이 흔들렸고 동료 부하들이 당황한 듯 움찔 어깨를 떨었다.
“확인해 봐. 니 추측과 예상을.”
준혁이 주머니에서 한 손을 빼서 까딱였다.
스르릉-!
최무성이 왼손에 들고 있던 화려한 검집에서 칼을 뽑았다.
“어리석은 이무기 새끼. 멱을 따 주마.”
최무성의 검에 진한 푸른빛의 소드 오러가 분출되어 흘렀다.
챙챙챙!
최무성의 부하들이 각각의 병장기를 꺼냈다.
막 불꽃이 튀기 직전의 대치 상황.
“지옥 본 적 있나?”
준혁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최무성이 웃었다.
“뜬금없이 유치한 소리는.”
최무성이 신호를 주자 부하들이 일시에 준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십여 명이 넘는 헌터들의 무기가 준혁에게로 쇄도하는 그 찰나 최무성은 물론 그들 무리 모두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상대는 한준혁.
준혁이 오른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마치 모래처럼 사방으로 검은 마력의 파장이 뿌려졌다.
“……!”
“읏!?”
“크읏!”
복면의 헌터들이 마치 부표 위를 걷는 것처럼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흡!”
“흣?!”
움직임이 뜻대로 되지 않고 흔들렸다.
급격하게 둔화되는 몸놀림.
누군가 본다면 그들은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치 시간의 통제를 받는 듯 느릿느릿한 헌터들과 달리 준혁의 시간은 당연히 정상적으로 흘렀다.
느리게 움직이며 패닉에 빠진 헌터들 사이로 준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준혁을 노려보는 최무성의 눈에 핏발이 섰다.
최무성의 얼굴은 추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준혁은 최무성의 코앞에 서서 그의 눈을 마주 봤다.
최무성 역시 전신이 물을 머금은 솜처럼 축 처쳤다.
그 역시 준혁의 통제 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준혁의 마력이 만들어 낸 파장의 힘에 의해 최무성 역시도 그 힘을 이겨 내지 못해 간간이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내.
꾸구국!
“크으윽!”
무형의 기운이 전 협회장 최무성의 어깨를 누르기 시작했다.
“판단이 틀렸어.”
점차 그 무형의 힘이 점점 강해지자 최무성의 중심이 흔들렸다.
다리 하나가 꺾이더니 이내 강한 힘에 의해 두 무릎이 땅을 찍었다.
최무성의 동공이 지진처럼 흔들렸다.
태어나 처음 꿇어 보는 무릎.
최무성이 당황한 눈으로 무릎을 꿇은 채로 준혁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하면 피 튀어. 일단 너부터 나와라.”
준혁이 먼저 느긋하게 통유리 문을 열어 잔디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곤 천천히 최무성을 돌아보며 나오라고 눈짓했다.
동시에 최무성에게 금제를 풀어 주었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하는 동료 부하 헌터들 사이에서 홀로 금제가 풀려난 최무성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칼로 바닥을 찍으며 일어선 최무성의 눈이 마치 귀신불처럼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