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6화
“어디로 가는 거죠?”
준혁이 창밖을 보며 물었다.
“캐슬로 갑니다.”
“캐슬?”
“본래 전 협회에서 쓰던 청사였는데. 귀환자님은 앞으로 그 곳 캐슬에서 지내시게 될 겁니다. 자세한 설명은 마스터께서 설명해드릴 겁니다.”
군단장이 운전하는 차량이 점점 속도를 냈다.
차량은 약 10분가량을 지나 도심 안쪽의 언덕을 올라갔다.
그 끝에 커다란 철창문이 있었다.
차량이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철창문이 열렸다.
청사 출입구를 통과하자 마치 골프 필드를 연상시키는 규모의 풍경이 펼쳐졌다.
겨울이라 잔디가 말라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풍경은 가히 예술적이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잔디와 고급스러운 나무. 그리고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호수.
그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 거대한 저택 건물이 준혁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의 성체처럼 보이는 저택은 아름다운 호수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캐슬이라는 이름의 저택은 현대적이면서도 중세의 성체가 가진 위엄을 풍겼다.
저택의 입구 앞에 도착하자 수트 차림의 선우가 뒷짐을 쥔 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군단장이 먼저 내려 차 문을 열어 주었다.
준혁은 차에서 내려 성채와 같은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크게 젖혀야 할 만큼 높고 크게 지은 저택이었다.
“이제 여기가 형이 살 곳이야.”
선우가 품 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준혁에게 내밀었다.
준혁은 동생이 준 서류를 받아 내용을 확인해 봤다.
부동산 등기였다.
주인의 이름은 한준혁.
등기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기 협회 청사라며?”
“그건 예전에 그렇게 불렀던 거고. 협회장이 개인 부동산으로 소유한 지는 오래됐어.”
“그러니까 이걸 왜 나한테 줘?”
“변호사들과 함께 협회장과 협의를 봤어. 간단히 설명하자면 협회장은 형 얘기를 듣자마자 자리에서 물러났고, 난 만장일치로 새로운 협회장이 됐어.”
“그럼 여긴 네가 써야지? 내가 왜?”
선우가 웃었다.
“내가 협회장이 된 건 형을 대신해 일을 하기 위해서야. 전 협회장이 일찍 물러난 것도, 내가 협회장이 될 수 있었던 것 역시도 형이 귀환자이기 때문인 거고.”
거대한 건물의 회색 벽면에 크게 새겨진 그레이트 캐슬이라는 글자.
뒤이어 준혁은 주변을 훑어봤다.
풍경 하며, 건물의 규모 하며,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궁궐이라고 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 누구도 형이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거야. 여긴 오직 형을 위한 성이니까.”
“…….”
“캐슬은 각국 대표의 규모를 보여 주는 거기도 해. 그 나라의 상징이기도 하지.”
어차피 신수를 구해 아우터 갓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준혁 스스로가 정한 자신의 길이었다.
그 길에 이런 거창한 배경은 필요 없었다.
“난 관심 없어. 그리고 협회의 간판이라면 더더욱 이유야 어떻든 내 자리는 아니야.”
준혁이 서류를 내밀자 동생이 한숨을 쉬었다.
“형. 내가 이 캐슬을 쓴다고 생각해 봐.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형을 이용해 권력을 욕심낸다고 생각할 거야. 그렇다고 여길 놀릴 수도 없어. 여기에서 일하는 직원만 200명이 넘어. 형이 거절하면 그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거야.”
“그건.”
“형이 거절한 자리를 감히 누가 앉을 수 있겠어.”
“네가 앉으면 돼잖아.”
선우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꿈도 꾸지 마.”
어차피 신수를 찾으려면 던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대외적으로 외부에서 보기에 그 자체가 국가를 위한 마수 사냥을 볼 테고,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선 동생이 권력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게 나쁠 건 없었다.
“이곳. 그레이트 캐슬의 적격자는 형뿐이야. 불변의 진리니까 괜히 힘 뺄 생각은 마시고.”
“이름이 그레이트 캐슬…….”
준혁이 황당하다는 듯 건물을 보며 중얼거렸다.
“위대한 성. 어때? 형이랑 딱 어울리지 않아?”
“신났냐?”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신났지.”
선우가 웃는 얼굴로 준혁의 등을 떠밀며 말을 이었다.
“어서 들어가자.”
준혁은 마지못해 선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남녀 가정부들이 좌우로 도열한 채 준혁을 향해 45도로 머리를 조아렸다.
‘미치겠군.’
준혁은 충격 먹은 표정으로 그들을 지나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복도를 걸었다.
천장은 고개를 젖혀야 할 만큼 높았고 아랍 황실과 비교해도 지지 않을 만큼 사치스러움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준혁은 선우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통유리 너머로 가까운 마당 풍경이 보인다.
멋지게 휘어 있는 소나무들이 보였고 저 멀리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호수가 보였다.
한국이라고는 결코 믿을 수 없으리만큼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창밖의 풍경이 마치 한 편의 예술을 담은 그림 같았다.
“형은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어. 내가 그렇게 만들 거고.”
선우의 눈이 깊어졌다.
“이제 어느 누구도, 형과 나. 그리고 파천 길드를 무시하지 못할 거야.”
준혁이 선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너 그렇게 힘주고 살면 부러진다?”
“걱정 마. 나름 산전수전 겪은 몸이니까.”
동생의 눈에서는 자신감과 확신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자, 먼저 일 얘기부터 하자. 인터뷰 일정에 대해서는 내가 얘기했었지?”
준혁이 고양이 같은 얼굴로 딴청 피웠다.
“그렇게 가기 싫단 표정 지어도 어쩔 수 없어. 당장 내일이니까. 파천 길드에서 공식적으로 형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아마 공식 출범이긴 해도 우리 쪽 우호 기자들만 참석할 거라 규모가 그렇게 크진 않을 거야.”
준혁은 생각만 해도 귀찮다는 듯 눈매를 좁혔다.
“금방 끝날 거야. 그리고 대외 행사 일에 너무 그렇게 거리 두지 마. 앞으로 적응해야 할 일들인데 언제까지고 그럴 순 없잖아.”
선우가 손목시계를 봤다.
“이따가 매니저가 올 건데 형을 도와줄 사람이거든? 앞으로 필요한 건 뭐든 시키면 돼.”
“매니저?”
“스펙 좋고 머리 좋고. 센스까지. 거기에 외모도 출중해. 긍정적이고 활력 있고. 형을 보좌하기에 적격이라고 판단했어. 나이는 어려도 충분히 유능할 거야.”
준혁은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간단한 심부름부터 시작해서 전문적인 대외 행사까지 케어해 줄 거야. 거기에 비서 역할까지 사실상 겸임. 나중엔 안 보이면 불안할걸?”
동생의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고 준혁은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한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분위기를 봐선 뭐라 말해도 듣지 않을 동생이었다.
“나 미팅 있어서 이제 또 가 봐야 해. 회견장에서 보자 형.”
선우가 떠났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듯했다.
준혁은 멍한 얼굴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뭐가 늘 그렇게 바쁘신지.”
거실에 홀로 남게 된 준혁은 창밖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통유리 가까이 다가가자 유리창에 OPEN이라고 새겨져 있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글씨를 볼 수 있었다.
그걸 터치하자.
기이잉-!
통유리가 좌우로 열리면서 개방되었다.
준혁은 신기하게 보면서 통과했다.
준혁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잔디를 밟으며 천천히 걸었다.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호수의 수면과 멋지게 자리 잡은 나무들을 보며 준혁은 아주 잘 관리된 잔디를 걸었다.
곧 석양이 지려는 듯 하늘이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붉은 하늘은 마치 마계 같았다.
늘 불에 휩싸인 듯한 검은 하늘과는 물론 대조적이었지만 붉은색이 주는 기억이 있다.
수도 헤아릴 수 없이 악마를 죽였던 기억.
그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참하게 마계의 시체 밭을 굴렀던 기억 이후로,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일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던 과거.
그리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지금.
생각이 꽤 많아지고 있다.
재능있는 우주인간종을 소환해 제물로 바친 마신들과, 그 영혼을 탐욕스럽게 씹어 삼켰던 아우터 갓.
그 근원을 뿌리뽑는 것이 준혁에게 있어 진정한 복수이자 정의였다.
“아우터 갓이고 뭐고 우선 밥이나 먹자.”
인간의 육체를 되찾은 후로 수시로 뱃속에서 신호가 울리는 준혁이었다.
* * *
‘이건 꿈인가…….’
준혁은 영혼이 가출한 듯한 눈으로 식탁을 응시했다.
중세시대에나 쓸 법한 긴 테이블에는 그 커다란 테이블이 무너질 것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떤 음식이 입에 맞으실지 몰라 가볍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이게 가볍게요?”
“네.”
집사 명찰을 달고 있는 사내가 준혁의 옆에서 공손한 자세로 손을 모으고 서서 말했다.
“……난 오늘 무슨 뷔페 행사 있는 줄 알았는데요.”
“앗! 혹시 요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지금 바로.”
“아니 그게 아니라. 앞으로는 먹을 수 있는 양만큼만. 적당히. 1인분으로 부탁합니다.”
집사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예. 주인님.”
집사가 물러가고 주방에 혼자 남게 된 준혁은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인 테이블을 여전히 신기하게 쳐다봤다.
“먹기도 전에 배부르네.”
이 많은 음식들 중에 뭐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던 중.
“실례합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주방 입구 쪽을 통해 긴 생머리의 여자가 테블릿을 들고 들어와 바른 자세로 섰다.
흰 셔츠에 검은 치마 차림.
전형적인 비서 복장으로 나타난 새하얀 피부의 미녀는 당당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늘부터 귀환자님을 모시게 된 파천 길드 소속의 팀 매니저 이지우라고 합니다.”
매니저 이지우가 천천히 예의를 담아 꾸벅 인사했다.
긴 생머리가 찰랑 흔들렸다.
“아, 선우가 말했던 그 매니저분?”
“네. 오늘부터 필요하신 건 무엇이든,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되세요.”
매니저가 다가와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무전기를 전해 주었다.
“24시간 언제든 호출해 주시면 됩니다.”
“24시간?”
“네. 24시간. 언제든지요.”
“24시간이면 잠은 언제 잡니까?”
매니저가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마치 날이 잘 선 칼날이 빛에 반사되는 듯했다.
“충분히 훈련되어 있으니 믿고 호출해 주세요. 전 오직 귀환자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까요. 5분 안에 반드시 귀환자님 앞에 나타날 겁니다.”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말하는 저 기세에 더 이상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할 의지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그러지 말라고 해도 듣지 않을 듯했다.
선우가 지시한 일들과 관련된 건 준혁의 의지와 관계없이 진행되는 부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생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 계속 불평불만만 늘어놓을 수도 없는 일.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더 편했다.
“식전이면 같이 먹죠. 식후면 차라도 마시고. 여기 테이블 위에 있는 양을 봐서 알겠지만 혼자 먹다간 체할 것 같으니까.”
“네. 그럼 분부하신 대로.”
이지우 매니저가 자리에 착석했다.
“그리고 귀환자님. 앞으로 말씀은 편하게 해 주세요.”
매니저가 부탁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어쩐지 귀환했더니 난데없이 왕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참 복잡하다.
이 낯 간지러운 생활은 마계에서 야생화처럼 거칠게 살아온 자신의 습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난 그냥 신수만 찾고 싶을 뿐인데.’
어쩐지 일이 점점 커지는 기분.
준혁은 머리가 무거워지는 걸 느끼며, 포크로 스테이크 조각을 푹 찍어 먹었다.
그러곤 이내 준혁이 충격 먹은 눈으로 음식을 쳐다봤다.
마계에서는 사실상 혼으로 존재했기에 음식을 즐길 감각 존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마기는 영기를 흡수하는 것 말고는 식욕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육체를 되찾고 식사를 하면서 미각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욕구의 반응이 점점 강해지게 된다.
“귀환자님. 혹시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집사가 만든 건가? 음식 실력 장난 아니네. 대체 어떻게 만들면 이런 맛이 나는 거야?”
“음식은 귀환자님 전속 셰프가 만들었습니다. 귀환자님을 모시는 데 있어 출중한 실력이 없다면 애초에 들어올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귀환자님이 공식 출범을 하게 되면, 전국 각지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