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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5화 (5/175)

귀환자의 모든 것 5화

“우선 상황부터 정리하자.”

헌터는 반드시 각성된 능력을 관리국에서 확인받고 각성자 신분증을 받아야만 한다.

그 절차를 생략한 존재가 미확인 각성자.

헌터 관리국의 심사를 받지 않은 채 각성자 능력을 보유한 자는 내포하고 있는 잠재 위험성이 강하기에 엄격히 조사해야 했다.

길드의 일반 헌터 역시도 미확인 각성자의 출연을 목격 혹은 확인하고 해당 사안을 관리국에 보고하지 않으면 그것만으로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마수 처리 시작합니다! 후방조 지원 대기!”

한 헌터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유다연은 약속된 거리만큼 뒤로 물러서면서 잠들어 있는 마수를 포위한 동료들을 보다가 생각했다.

‘대체 누구였을까? 아시아인이 유럽권 마법사만 가능한 스킬을 쓴 거라면…… 잠깐.’

일순 번뜩하고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설마 리더보드 1위 귀환자?’

만약 그게 진짜라면 자신은 리더보드 1위의 멱살을 잡은 샘이 된다.

순식간에 가정만으로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아, 아닐 거야. 분명 헌터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았어. 귀환자가 미확인 각성자일 리도 없고. 그렇게 만날 리도 없지.’

잠깐이지만 식은땀이 등줄기에 흘렀다.

유다연은 한숨을 뱉으며 얼굴을 가로저었다.

그때, 마수를 향한 일제 공격이 시작됐다.

마수를 향해 쏟아지는 병장기.

무기에서 쏟아지는 마력의 빛이 사방으로 번쩍였다.

잠들어 있는 마수의 경우 방어를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이기에 헌터들의 마력이 담긴 무기는 질긴 마수의 피부를 쉽게 뚫어냈다.

출혈이 터지면서 마수는 곧 저항 없이 죽음에 이르렀다.

어렵지 않게 처리를 끝마친 헌터들이 사체반을 불러 철수 작업을 진행했다.

그사이 바이크에 앉은 유다연은 자신이 무례하게 그 남자의 멱살을 잡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눈가를 짚었다.

사실상 그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현장을 많이 다니면서 죽고 다치는 시민들을 봐 와서 그런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후회가 밀려왔다.

더불어 마수 앞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공포에 물들었던 기억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정신 차리자. 유다연.”

그녀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검은색 헬멧을 푹 눌러 썼다.

* * *

“괜히 끼어들었나?”

준혁은 거리를 걸으며 검지로 뒷목을 긁적였다.

‘그래도 위험했어.’

준혁 자신에겐 쉬운 일이었지만 헌터들은 마수들을 상대하는 게 그리 쉬워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이라면, 아웃 브레이크 현상이 일어날 경우 시민들의 위험은 치명적일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이 방해되어 본래의 전략대로 움직일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헌터들의 수준이 시민이 안정감을 느낄 정도까지는 아닌 듯했다.

작은 실수도 충분히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 전력이었다.

생각에 잠겨 거리를 걷던 중, 준혁의 걸음이 딱 멈췄다.

준혁이 신기한 듯 가게를 빤히 보았다.

[떡복이의 제왕]

준혁은 새빨간 가게 간판을 보고 있었다.

“떡볶이 집이 엄청 고급스럽네.”

준혁의 기억 속에 분식집은 허름하거나 포장마차에서 먹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홀린 듯이 준혁은 떡볶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마치 레스토랑처럼 깔끔하게 꾸며져 있는 가게 안에서 준혁이 자리에 앉았다.

준혁은 메뉴판을 보고 침을 꼴깍 삼켰다.

재료를 다듬고 있는 중년의 주인에게 떡볶이와 순대를 부탁했다.

“네 알겠습니다. 금방 드릴게요!”

주인이 떡볶이와 순대를 준비하는 사이 준혁은 물을 마시며 벽걸이로 걸린 TV를 봤다.

뉴스에서는 조금 전 마수로 인해 소동이 있었던 부서진 도로를 보도 중이었다.

“최근 들어 갑작스러운 마수들의 급습으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 역시 사고가 터졌습니다. 다행히 피해자는 없었지만 던전이 가진 위험성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TV를 보던 중에 떡볶이와 순대가 나타났다.

역시 분식의 장점은 속도.

젓가락을 들었다.

떡부터 먹어 보자 기막힌 부드러움이 입안에 퍼져 나갔다.

진한 소스와 쫄깃한 떡은 입에 짝짝 맞았다.

“입에 맞으세요?”

“예. 죽이는데요?”

“하하하.”

준혁의 장난스런 칭찬에 주인장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집이 근처니까 자주 들를게요.”

“그럼 좋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이 마지막 영업일이라서요. 최근 들어 마수로 인한 피해가 많아지다 보니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이 동네 가게 분위기가 대체로 그렇지요.”

헌터라는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주인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따듯한 차 한 잔 드릴까요? 선물 받은 건데 꽤 많아서.”

“감사하죠.”

“옙! 잠시만요.”

주인장이 주방으로 들어간 사이 전화가 걸려 왔다.

동생이었다.

-어디야? 집?

“근처에 산책 나왔다가 사고 치고 식사 중.”

-사고 치고는 뭐야?

준혁은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별문제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내가 처리할 수 있어.

“그래? 괜히 나서서 혼나는 거 아닌가 했네.”

-하하. 세상에 형을 혼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딨어? 그보다 이제 준비가 끝났어. 소개해 줄 곳도 있고 말해 줄 것도 있는데. 오늘 시간 어때?

“나야 남는 게 시간이지.”

-그럼 가게 이름 좀 불러 줄래? 그쪽으로 바로 차량 한 대 보낼게.

준혁은 가게 이름을 불러 준 후 전화를 끊었다.

때마침 막 주방에서 나온 주인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노란 꽃잎이 띄워져 있었다.

찻잔을 입으로 기울이려고 할 때 가게 문이 벌컥 열렸다.

“후우! 춥다 추워!”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네.”

“여긴 뭐 파는 가게냐?”

“주인장! 주문받아야지 주문! 배고프다고!”

조용하던 가게가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8명의 사내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고, 웅성거림이 가게를 가득 채웠다.

평상복에 무기를 갖고 있는 걸로 봐선 헌터인 듯했다.

후식으로 차를 마시며 그들을 구경하던 중, 준혁은 마지막으로 가게 안에 들어온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보랏빛 머리에 눈 아래의 점.

확실했다.

자신의 멱살을 잡았던 용병 헌터. 그녀였다.

“어? 당신…….”

준혁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빤히 보았다.

“……한국인이에요?”

용병 유다연이 준혁을 놀란 눈으로 보며 물었다.

준혁이 고개를 짧게 끄덕여 주곤 차를 마셨다.

“으잉? 야, 유다연. 뭐 하냐? 헌팅해?”

“둘이 잘 어울리는데?”

“휘익! 유다연, 이야 박력 있어? 번호 따냐?”

유다연은 동료들의 놀림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준혁을 응시했다.

“잠깐 밖에서 얘기 좀 해요.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아직 후식이 남아서.”

준혁이 찻잔을 들어 보였다.

“그럼, 밖에서 기다릴게요.”

유다연이 가게를 나갔다.

준혁이 가게를 나가는 그녀를 무시하고 찻잔을 다시 입가로 기울일 때 헌터들이 수군거렸다.

“유다연 쟤 왜 저러냐? 남자한테 관심 1도 없더니?”

“점마 머스마 아니었나?”

“뭐 잘생기긴 했네.”

“에이 둘이 서로 아는 사이 같은데요?”

잠깐의 정적.

“이봐요. 둘이 아는 사이요?”

한 용병이 물었다.

준혁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구면이긴 하죠.”

“오옷?!”

“헐?!”

“으헉?”

헌터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말도 안 돼! 유다연이 아는 남자가 있다고?”

“쟤 모쏠이잖아?”

“에이! 그냥 아는 사람이겠지.”

“유다연이 이성 관계에 뭔가가 있다? 후후. 개소리하지 마. 절대 아니다에 내 손모가지를 걸지.”

“난 있다에 만원!”

“난 없다에 2만……!”

벌-컥!

가게 문이 거칠게 열렸다.

유다연이 죽일 듯이 노려보자, 동료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흠흠.”

“밥이 언제 나오나?”

“에잇. 카레를 시킬 걸 그랬나.”

준혁은 용병들을 구경하다가 다 마신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잘 먹었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흘깃 뒤를 보자 용병들이 죄다 구경하기 위해 유리창 앞에 낙지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유다연의 살벌한 시선에 그녀의 동료들이 마지못해 자리로 돌아갔다.

“묻고 싶은 게 뭡니까?”

준혁이 시간을 확인하면서 물었다.

“그 마법. 외국계 최상위 마법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마법이에요. 만약 외국인이라면 허가를 받은 입국인지 확인해야 했어요.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각성자는 신고할 의무가 있거든요.”

준혁은 잠시 고민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비밀 좀 지켜줄래요? 아마 아직은 알려져선 안 될 일이라. 아, 비밀이라기보단 기밀에 가깝겠네요.”

잠시 생각을 정리한 유다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약속할 테니까 말해 봐요. 그 비밀.”

“안 지킬 것 같은데.”

유다연이 눈에 힘을 빡 줬다.

“지켜요. 약속.”

준혁이 그녀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가까이 비스듬히 섰다.

“귀환자.”

“……?”

“그게 제 닉네임입니다.”

준혁이 그 말을 남기고 그녀를 지나쳤다.

횡단보도 부근에 멈춰 섰을 때 검은 세단 차량 한 대가 부드럽게 멈춰 섰다.

유다연이 충격에 빠진 얼굴로 준혁을 천천히 돌아봤다.

막 운전석에서 내린 사내가 재킷 단추를 잠그며 준혁의 앞에 섰다.

선글라스를 벗자 오른쪽 눈에 검상이 있었다.

그로 인해 색이 다른 푸른빛 눈이 드러났다.

“파천 길드 1군 군단장 백인호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파천 길드 1군의 군단장이란 1군을 통솔 관리하는 대표라는 뜻이다.

즉 파천 길드의 길드장 한선우의 오른팔이라는 뜻.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헌터 바닥에선 유명한 인물이었다.

파천 길드에 있기엔 아깝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의 헌터였다.

그런 그가 차 뒷문을 아주 공손한 태도로 열어 주었다.

“모시러 오는 동안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1군 군단장 백인호가 특유의 감정이 없는 서늘한 눈으로 넋이 나간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유다연을 보았다.

“여기 가게 문 닫는데요.”

“네?”

준혁이 차량 뒷좌석에 올랐다.

백인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차량 문짝을 닫았고, 운전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유다연은 가게 안으로 돌아와 실성한 사람처럼 자리에 앉았다.

“야. 유다연. 어서 말해. 누구야 저 사람?”

“썸이냐?”

“전 남친 맞지? 내 말이 맞지? 맞다니까!”

“야, 유다연! 어서 말해! 베팅 금액이 5만 원을 넘었다고!”

“…….”

여전히 말없이 멍하게 있는 유다연을 보고 동료 헌터들이 이상하다는 듯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얘 왜 이래?”

“식은땀 흘리는데?”

“야, 유다연. 정신 차리고 말 좀 해 봐. 뭐냐고?”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자 동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야 무슨 일 있냐?”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어?”

유다연이 여전히 멍한 얼굴로 굳어 있자 동료들이 어깨를 뒤흔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전혀 반응이 없자 동료들이 여전히 걱정이 담긴 눈길로 지켜보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충격이 심해 보이는데?”

“전 남친 맞다니까.”

“실연이야 실연.”

“진짜 고백했다가 차인 거 아니야?”

시끄럽게 떠드는 동료들의 말은 유다연의 귓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유다연의 머릿속은 오로지 방금 전에 떠난 그 남자로 가득했다.

-귀환자. 그게 제 닉네임입니다.

그의 목소리, 그가 말한 내용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유다연은 감히 귀환자의 멱살을 잡았던, 자신의 원망스러운 손을 내려다보았다.

더 월드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리더보드 1위의 지존.

그가 대체 어떻게 어디서 나타난 건지에 대한 의문을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몸을 떨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귀환자가 왜 분식집에?’

유다연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인터넷은 물론 친한 사람한테 말해도, 절대로 믿어주지 않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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