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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의 모든 것-4화 (4/175)

귀환자의 모든 것 4화

띠링!

[더 월드 – SNS 쪽지 알림!]

[아직 읽지 않은 (111,382)개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도움말 : 명령어 ‘더 월드’를 통해 커뮤니티가 포함된 시스템 창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거실로 나온 준혁은 소파에 털썩 앉아 시스템 메시지를 빤히 응시했다.

병원에서 처음 이 커뮤니티 시스템을 본 이후로는 한 번도 이걸 다시 사용한 적은 없다.

휴식을 핑계로, 그동안 한 것도 없이 벌써 한 달이 흘렀다.

한 달 동안 간간이 뉴스를 보며 세상의 흐름을 읽거나 러닝과 근육 운동으로 기본적인 육체를 만드는 데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로는 먹고 씻고 하우스 닥터에게 검사받고 자는 것과 같은 단순 반복.

그렇게 한 달은, 쳇바퀴 같은 일상이었다.

마계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지만, 인간계에서의 한 달은 확실히 스스로 인식하기에 그 시간의 개념이 달랐다.

“더 월드.”

[더 월드에 접속했습니다.]

-메시지 111,382(미확인)

-업데이트 ver. 1.92(미확인)

더 월드는 헌터로 각성하게 되면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처음 던전 브레이크를 통해 마수가 나타나고 각성 발현으로 각성자가 나올 때부터 존재했던 시스템.

이 시스템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시스템의 정보는 단 한 번도 오류가 없었고 시스템의 공지사항은 헌터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뉴스였다.

그래도 인간계로 돌아온 지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런지 처음 이 시스템을 봤을 때랑은 달리 크게 낯설지 않았다.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홀로그램처럼 떠 있는 목록 중 메시지를 터치하자 그 즉시 넓은 창에 엄청난 양의 메시지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메시지를 터치하면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확인하지 않아도 대체로 어떤 내용인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미확인) : 귀환자님이 랭커 커뮤니티에 나타나지 않은 지 1327일째. 난 아직도 그대를 기다리고 있…….

(미확인) : 귀환자님 남자예요? 제가 친구한테 여자라고 했거든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미확인) : 살아 계십니까? 협회에서 가짜로 만든 거라는 얘기가 있던데. 그거 사실…….

(미확인) : 야 이 망할 놈아. 너 가짜지? 너 때문에 주식 샀다가 폭망…….

(미확인) : 안녕하세요. 마스터즈 사에서 광고 협의 차 연락을 드립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확인) : 청와대입니다. 귀환자님과...

(미확인) : Hey! bro! my name is chris! I think…….

메시지의 내용 대부분은 그저 그런 호기심이거나 스팸이었다.

[메시지함이 곧 가득 찹니다.]

[메시지를 정리해 주세요.]

[ ! ] : 포인트를 통해 커뮤니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준혁은 미련 없이 휴지통 그림을 터치했다.

그러자 파르륵! 하고 책장 넘어가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나더니 쪽지함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팟-!

업데이트 항목을 터치하자 1.92버전의 업데이트 내용이 펼쳐졌다.

던전의 각 등급마다 마수에 대한 변동 사항의 정보. 그리고 새로 추가된 마수들에 대한 정보가 보였으며, 그다음으로 신규 아이템과 아이템의 상향과 하향, 저항 속성의 변화에 대한 정보가 줄지어 있다.

혹시나 신수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싶었지만 어떠한 흔적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당연했다.

신수에 대한 정보는 오직 ‘멸마의 서’를 통해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기에 이렇게 쉽게 신수를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겠어.’

파천 길드에서 귀환자를 정식으로 발표해야만 공식적인 움직임이 가능해진다.

혼자서 던전 안으로 들어가려면 협회의 공식적인 허가가 필요했다.

마음만 먹으면 몰래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도 동생을 난처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동생이 길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형이나 돼서 사고를 치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니까.

좀이 좀 쑤셔도 동생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멀리 보면 오히려 그게 더 빠른 길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성공한 동생의 덕 좀 보겠군.’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던 준혁은 화창한 날씨를 보고 생각했다.

‘너무 집에만 있었나? 조금 갑갑하네.’

산책이라도 나가 보고자 커피를 내려놓고 움직였다.

드레스룸에는 택도 떼지 않은 속옷부터 의류와 신발, 구두까지. 온통 새것들로 가득했다.

동생이 사람을 시켜 미리 세팅시켜 놓은 것들이었다.

사이즈도 몸에 맞춘 것처럼 딱딱 맞았다.

검은 가죽재킷을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의식적 습관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인간계로 돌아온 이후로도 온통 시커먼 차림새라니.

준혁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외출을 위해 집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와 건물 밖으로 나오자 상쾌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걸으면서 상쾌한 공기를 마셨다.

산책 겸 무작정 나온 건데 이렇게 단순히 거리를 걷기만 해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준혁이 인간계의 거리를 걷게 되다니.

천 년만이라 그런지 실로 만감이 교차했다.

거리를 구경하며 사색에 잠겨 있던 때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준혁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음폭을 봐선 멀지 않은 곳이었다.

준혁은 이끌리듯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벽을 끼고 코너를 돌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아수라장.

뉴스를 보긴 했지만 인간계. 그러니까 지구에서 정말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이런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는 게 준혁은 신기했다.

“으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부서진 건물 파편이 바닥에 각양의 크기로 떨어져 내렸다.

도로를 점령한 것은 마수.

뿌연 먼지 사이로 도마뱀과 흡사한 외양을 가진 마수가 눈에 들어왔다.

던전을 일정 시간 안에 클리어하지 못하면 아웃 브레이크 현상이 일어난다.

마수가 던전 밖 도시로 유출되는 것이 아웃 브레이크였다.

던전마다 클리어 타임이 다르기 때문에 종종 이런 사고가 일어나곤 했다.

준혁은 아웃 브레이크가 일어난 현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준혁은 이내 마수 앞으로 바짝 가까이 걸어가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마수가 내뱉는 낮은 저음의 울음소리는 땅을 미약하게 진동시킬 만큼의 마기를 머금고 있었다.

마수는 바로 발치 앞으로 다가온 준혁을 향해 괴성을 내질렀다.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재킷이 펄럭일 정도의 피어.

하지만 그럼에도 마수를 바라보는 준혁의 표정은 편안했다.

“그러니까 이런 걸 잡으면 돈이 된다는 건가?”

신기한 세상이다.

마수를 잡으면 돈이 된다니.

준혁은 순수하게 먹잇감을 보는 눈으로 마수를 응시했다.

마치 연약한 사냥감을 보는 맹수의 시선.

그 눈빛에 마수가 본능적으로 흠칫 몸을 떨 때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

준혁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차량 몇 대와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병원 개인실에서 TV를 통해 본 적이 있다.

헌터들이 출동하는 모습을.

그들이 아마도 헌터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 같았다.

선택받은 특별한 힘으로, 고도의 훈련을 거친 전문 마수사냥꾼을 전 세계에선 총칭하여 헌터라고 이름을 붙였다.

준혁이 출동한 헌터들을 감상하고 있을 때 흥분한 마수가 대가리를 뒤로 젖히면서 울부짖었다.

“그렇게 위험한 곳에 있으면 어떡해요. 어서 대피해요!”

멀리서 들려온 외침.

조수석 창문에 걸터앉은 여자가 마수를 향해 장총을 겨누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마력이 깃든 탄환이 머리에 적중.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마수가 휘청거렸다.

급정거로 멈춰 선 차량과 오토바이들.

거기서 헌터들이 내려 일제히 준혁을 지나쳐 마수를 향해 뛰어들었다.

각종 장비들을 가지고서 마수를 공격하기 위해 돌격하는 그들을 준혁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신선했다.

헌터들이 하나의 직업으로써 마수를 잡기 위해 싸운다는 것.

흥미로움이 담긴 눈길로 헌터들과 마수 간의 싸움을 지켜보는 가운데 갑작스레 누군가 준혁의 멱살을 팍 잡아당겼다.

“당신 대피 교육 못 받았어? 그렇게 위험하게 서 있으면……!”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준혁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신비한 보랏빛이 감도는 단발에 예쁜 얼굴.

꽤 터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눈 밑에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안 들려? 왜 대피 안 하고 그렇게 서 있냐고!”

준혁의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하지만 강한 눈동자가 빛났다.

보랏빛의 단발 여성이 준혁의 눈빛에 잠시 당황했다가 다시 뭐라 화를 내려는 순간 굉음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준혁의 앞을 막아섰다.

뿌연 시멘트 먼지를 뚫고 나타난 마수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렸다.

여자는 마수를 보고 얼어붙었다.

한 템포 빠른 타이밍에 나타난 탓에 반응하기에 직감적으로 늦었다는 걸 인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준혁이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을 초월하는 움직임.

여자의 동공이 놀람으로 번졌을 때 준혁의 손바닥이 마수의 목을 툭! 하고 건드렸다.

시계 형태의 원반이 마수의 머리를 휘감음과 동시에 새하얀 빛이 사방으로 번지다가 팍-! 터졌다.

마수는 동공이 풀리면서 그대로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트렸다.

쿵-!

그러곤 거대한 몸을 바닥에 눕히며 뿌연 먼지를 일으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여자는 준혁의 등 뒤에서 그저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 * *

비현실적이다.

그저 건드리는 것만으로 마수를 쓰러트리는 자는 해외의 최상위 마법사나 가능하다.

더욱이 한 손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이렇게 간단히?

“당신 대체 정체가…….”

여자가 충격에 물든 얼굴로 멍하니 말하는 사이 준혁은 연기와 함께 서서히 사라졌다.

자욱하게 번졌던 흙먼지가 걷히고 나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로 앞에 있던 남자는 홀연히 사라진 후였다.

잠들어 있는 마수 앞에서 헌터 유다연은 넋이 나간 채 마른침을 삼켰다.

“야, 유다연! 어떻게 된 거야?”

“뭐야? 마수가 왜 잠들었지? 특성인가?”

“지원조 오고 있지? 지원조 도착하면 바로 처리한다!”

지원조 사이렌 소리가 점차 선명히 들리고 주변이 조금씩 시끄러워지고 있는 중에 팀장이 유다연의 팔을 잡아끌고 마수와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너 왜 그래? 왜 정신을 못 차려?”

유다연이 팀장을 돌아봤다.

“……팀장님도 봤죠?”

“뭘?”

“……마수 앞에 있던 사람.”

“민간인? 네가 대피시킨 거 아니었어?”

“그 사람이에요. 마수를 이렇게 만든 거.”

유다연이 마수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그저 손으로 건드린 것만으로. 그것도 캐스팅도 없이. 이렇게.”

팀장이 놀란 눈으로 다시 마수를 보았다.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으로 잡아도, 그런 헌터는 국내에 존재하지 않아. 슬립 마법으로 마수를 재울 수 있는 건 유럽권 최상위 마법사들뿐일 텐데? 잘못 본 거 아니야?”

유다연은 준혁을 떠올리며 얼굴을 굳혔다.

“저 역시 유령이라도 본 것 같은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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