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3화
“10년 만에 깨어나서 첫 끼야. 진짜 이걸로 괜찮아? 그리고 죽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병원 구내식당.
선우가 자신의 형인 준혁을 걱정스레 쳐다봤다.
준혁은 동생을 흘깃 봤다가 웃으며 김밥을 입에 넣었다.
“10년 만에 깨어났는데 어떻게 이렇게 건강할 수가 있지?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가 없어야 정상이잖아. 힐러 치료도 아직 안 받았다면서?”
준혁이 김밥을 먹으면서 구내식당 입구 쪽을 돌아봤다.
경호원 사이로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 보려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 있었다.
“저긴 왜 저렇게 사람이 많아?”
“내 팬들이야. 아무래도, 미디어에 노출이 많을 수밖에 없고 시장 규모도 워낙 크니까. 난 길드마스터이기도 하고.”
“팬?”
준혁의 장난기가 섞인 눈을 보고 선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놀릴 생각하지 마. 충분히 낯간지러우니까.”
“헌터라는 게 마수를 사냥하는 거지?”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지만 지금은 꽤 여러 분야로 발전했어. 사업이 확장되다 보니 처리해야 일들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
준혁이 흐뭇한 시선으로 동생을 보았다.
“그런데 형은 10년 만에 깨어나 세상이 이렇게 많이 변했는데도 별로 놀라는 것 같지가 않네?”
“이미 알고 있었어.”
“어떻게? 아! 그 간호사가 알려준 거지?”
준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렇지 뭐.”
마계에서 이미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까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형. 그리고 그거 알아? 신기하게도 형이 깨어난 날. 새로운 각성자가 나타났어. 등장과 동시에 무려 리더보드 1위. 리더보드라는 건 전 세계 각성자들의 랭킹 순위를 표기하는 건데, 닉네임이 귀환자라고 했었나? 그 사람이 리더보드 1위를 차지했어. 그것도 하루아침에. 형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문제로 지금 이쪽 업계가 여간 시끄러운 게…….”
“그거 나야.”
준혁이 김밥을 먹으면서 말했다.
“…….”
긴 정적이 흐르자 준혁은 단무지를 먹으려다 선우를 보고 멈췄다.
“왜?”
준혁이 다시 단무지를 아삭아삭 씹는 사이 선우가 심각해진 표정으로 웃었다.
“……재미없어. 그런 농담.”
“농담은 무슨.”
살짝 떨어져 있던 물컵이 저절로 움직여 준혁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태연하게 물을 마시는 준혁을 보는 선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한 거야, 방금?”
“말했잖아. 그거 나라고.”
준혁이 물 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형이 깨어난 시각과 업데이트 시간이 일치해…… 설마, 설마 진짜라고?”
준혁이 시끄러운 팬들을 잠깐 돌아봤다가 선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 국내도 아니고 무려 리더보드 1위야. 형이 만약 정말 그 귀환자라면…… 형은 신이나 다름없는 거라고.”
선우가 충격에 물들어 몸을 떨며 말했지만 준혁은 아우터 갓을 떠올리며 뺨을 씰룩였다.
“대체 잠들어 있던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 그 전에 대체 어떻게?”
“말하자면 긴데. 간단히 얘기하자면 트럭 사고 이후 영혼이 마계에 소환됐어. 그리고 돌아온 거고.”
선우는 충격으로 인해 말을 잇지 못하다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마계?”
준혁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여기랑은 다르지. 악마들의 세계니까.”
“그러니까 의식불명인 동안 마계에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닉네임이 귀환자인 거고.”
당혹감에 눈을 깜빡이던 선우가 긴 숨을 뱉었다.
“형. 난 꽤 큰 길드를 이끌고 있어. 게다가 형이랑은 형제 사이고. 만약 귀환자가 형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파장이 난 상상도 안 가거든.”
“굳이 안 밝혀도 돼. 돈, 명성, 명예. 난 그런 건 다 관심 없어.”
선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 그리고 이건 절대 피할 수도, 피해서도 안 될 일이고. 앞으로의 형 스케줄은 내가 관리할게. 내가 할 수 있어. 맡겨 줄 수 있지?”
선우가 열정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준혁을 보며 말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눈이었다.
준혁이 선우를 보며 미소지었다.
“나야 고맙지.”
“그보다 대체 어떤 느낌이야? 그 정도로 강하면?”
선우가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시선으로 자신의 형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
준혁이 아우터 갓을 떠올리며 가라앉은 눈동자로 말하자 선우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형이 리더보드 1위라니. 맙소사다 정말.”
준혁은 그런 것에 별 관심없다는 듯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마계라는 곳. 다음에 술 한잔하면서 제대로 얘기해 줘야 돼?”
“듣고 울지나 마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스토리니까.”
선우가 쿡쿡 웃었다.
“컨디션 안 좋으면 바로 말해 주고.”
“컨디션은 항상 최상이야.”
“하긴 리더보드 1위니 오죽하시겠어. 이제야 전부 이해가 가. 막 깨어난 형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지.”
선우가 웃는 얼굴로 준혁을 보고 있던 때.
부르르!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선우는 문자를 확인하곤 곧장 옆자리에 걸쳐 놓은 외투를 챙겼다.
“다 먹었지? 가자. 형이 지낼 곳 알아봐 놨어. 병원장 말로는 안정을 취하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해 줘야 하기 때문에 편하게 쉬어야 한대. 하우스 닥터가 형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해 줄 거야.”
“하우스 닥터? 굳이 그런 건 필요가...”
“안 돼. 체크는 해야 돼. 일단 나가자. 형.”
동생과 구내식당을 나오자 선우를 향한 팬들이 귀가 아플 정도로 함성을 질렀다.
준혁은 귀를 막은 채로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밴 차량에 올라탔다.
* * *
“어때? 마음에 들어?”
선우가 리모컨을 누르자 커튼이 자동으로 펼쳐지면서 환상적인 뷰가 서서히 나타났다.
준혁은 소파에 앉은 채로 룸을 훑어봤다.
소파만 봐도 수천만 원은 할 것 같았으니 말 다 했다.
서울 강남의 사무용 오피스텔을 개조했다고 하는데 인테리어가 가히 고급스러움의 끝판왕이다.
조명만 해도 억대가 넘어갔다.
“괜히 나 때문에 무리하는 거 아니야? 비싸 보이는데.”
“걱정 마. 나 능력 있어. 그리고 형이 귀환자라는 게 밝혀지면 숨만 쉬어도 이런 건물이 달마다 통째로 굴러들어올 걸?”
동생이 직접 원두를 내려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유리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이것도.”
선우가 곧 안 주머니에 미리 준비한 스마트폰과 신용 카드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준혁이 신용 카드를 들어 동생에게 들어 보였다.
무슨 의미냐는 질문이었다.
“폰이랑 한도가 없는 카드야.”
준혁은 카드를 들어 통유리를 통해 들어온 빛에 카드를 비춰보았다.
얼핏 봐도 범상치 않은 검은색의 블랙 카드다.
“한도가 없다고?”
“응. 맘껏 써.”
준혁이 카드와 선우를 번갈아 보았다.
“너 성공했구나?”
선우가 곧 진지한 얼굴이 됐다.
“형이 깨어나면 잃어버린 시간을 채워 줄 수는 없어도 작은 불편함조차 없게 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어.”
동생이 얼마나 지독하게 꿈을 좇았을지 눈에 훤했다.
“그런데 형이 귀환자라니. 괜히 맥 빠지는 걸?”
선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진실을 알게 될 까 두려워서였다.
명계 구체를 통해 늘 동생이 잘 지내고 있는지 이따금씩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언제든 마음만 먹었으면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준혁은 도저히 동생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
준혁은 선우를 보았다.
동생은 창밖을 보며 밝게 웃고 있었다.
선우는 자신이 깨어난 것만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준혁이 보기에 어쩐지 그간 겪은 고생이 동생의 웃음 속에 번져 있는 듯했다.
“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이런저런 일을 진행할 텐데. 형이 신경 쓸 일 없도록 마무리 다 짓고 말해 줄게. 형도 그편이 편할 거야.”
준혁이 동생의 금발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내 동생은 못 하는 게 없지.”
“후우. 형은 꼭 그렇게 칭찬으로 부려 먹기도 잘했지. 이제 안 통해.”
선우가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준혁을 노려봤다.
“진심이야. 진심.”
“입에 침이나 발라.”
선우가 웃으며 가방을 챙기고 일어섰다.
“일 때문에 가 봐야 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푹 쉬면서 우선 머리 좀 식혀.”
준혁이 어서 가보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외투를 팔에 걸고 가방을 들고 나가던 선우가 현관으로 가다 우뚝 멈추어선 준혁을 돌아보았다.
준혁이 물음표가 된 표정으로 동생을 보았다.
“그냥 믿어지지가 않아서.”
선우가 웃으며 어깨를 돌렸다.
“간다.”
철-컥! 삐리릭!
문이 닫히고 넓은 거실 홀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준혁은 커피잔을 어루만지다 그걸 들고 창가로 갔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풍경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황량한 마계와는 당연히 비교가 불가.
준혁은 생각이 깊어진 채, 가라앉은 눈으로 화려한 시티뷰를 응시했다.
* * *
선우가 파천 길드의 본관 건물 입구를 통과하자 경비원이 인사하고 직원들과 헌터들이 인사했다.
선우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로비를 지날 때 여비서가 선우의 옆으로 뛰어왔다.
“퍼스트 로펌 대기 중이에요.”
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비서가 버튼을 눌렀다.
“계약금 상향을 요구했다며?”
“네. 아무래도 적안 길드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조건을 듣기도 전에 계약금 상향이라니. 여전하네.”
선우가 혀를 찰 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적안 길드는 랭크 2위의 길드로써 각 길드의 랭크 성장을 견제하고 있다.
중립을 유지할 때도 사사건건 파천 길드의 방향에 터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비단 파천 길드뿐만이 아니라 적안 길드의 하위권에 위치한 모든 길드들이 겪는 문제였다.
적안 길드가 랭크 1위 알파 길드의 세력 아래에 있었기에 결국 최상위 길드의 세력이 헌터 협회와 손을 잡고 업계를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보안 유지 확실해야 해.”
“네. 말씀하신 대로 조치해 놓았습니다.”
선우는 비서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복도를 지나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응접실에는 퍼스트 로펌의 변호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선우는 기계적으로 인사하는 변호사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힘이 지배하는 세계지만 그 힘 앞에 법과 명분이 존재했다.
헌터와 로펌은 악어와 악어새의 사이와 비슷하다.
대형 로펌은 알파 길드와 적안 길드에 붙어 있는 악어새들이었고, 이 악어새들은 1,2위의 길드를 제외하곤 그 아래 하위 랭크 길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최상위 세력이 만들어 낸 보호벽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우가 소매 셔츠를 걷고서 상석에 앉았다.
“이제 저희 파천 길드만을 위해서 일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동안 퍼스트 로펌에 대해 좋게 봤거든요. 제가.”
“저희 쪽에서 분명 전달 드렸을 텐데요. 조건이 어떻든 어려울 거라고. 오늘 저희가 이 곳에 온 건 파천 길드의 던전 소유권에 대한.”
“리더보드 1위 닉네임 귀환자. 제 친형입니다.”
변호사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빠진 상태가 됐다.
그들은 일제히 충격에 빠진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원톱으로 격상시킨 귀환자. 제 친형입니다. 방금 말씀해드린 건 기밀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넋이 나가 있던 변호사들 중 파트너 변호사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한선우를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저희 퍼스트 로펌은 파천 길드를 위해 존재하게 될 겁니다. 대표님 승인 10분! 아니 5분 안에 받아 내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대표님한테는 미리 연락해 뒀습니다.”
선우가 손목시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쯤이면 확인하셨겠네.”
선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트너 변호사의 스마트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파트너 변호사는 오래 걸리지 않고 곧 전화를 끊었다.
“대표님께서 파천 길드에서 무엇을 제시하든 계약하겠답니다.”
“하하. 어떠한 조건이든 말입니까?”
“예. 저희 퍼스트 로펌은 이번 일을 조건 없이 진행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이 앞으로 저희 퍼스트 로펌은 파천 길드를 위해 존재할 것이니 저희 퍼스트를 전속으로 받아만 달라. 그렇게 전달받았습니다.”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작업 시작하면 되겠네요. 1층의 대회의실을 쓰시면 됩니다.”
“최종 협의안 내용은…….”
“협회장 자리, 제가 앉아야겠습니다.”
변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2시간 안에 팀원 모아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선우가 상석에서 일어나 파트너 변호사와 악수했다.
변호사들이 나간 후, 선우가 웃었다.
“곧 세상이 뒤집어질 거야. 기대해.”
비서가 숨을 크게 삼켰다가 긴장한 얼굴을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