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2화
“검사 진행이 끝날 때쯤이면 보호자 분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간 지극정성으로 환자분을 챙겼어요. 환자분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정말 기뻐할 겁니다!”
부모님을 일찍 여읜 탓에 보호자라곤 남동생 하나가 전부였다.
“원장님. 한준혁 환자의 검사 준비를…….”
병실에 들어온 간호사가 준혁을 보고 손에 들고 있던 체크 자료를 또 다시 철퍽 떨구었다.
“왜 그러나 윤 간호사?”
병원장이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보며 물었다.
윤 간호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준혁을 보고 있었다.
“윤 간호사?”
“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제가 처음 한준혁 환자를 봤을 때는 엄청 컨디션이 안 좋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또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멀쩡하게……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가…….”
“아마도 회복력이 남다른 거겠지. 이렇게 깨어난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겠나? 애초에 그조차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니.”
“그래도. 달라도 너무 달라졌는데…….”
“윤 간호사. 이럴 시간 없네. 내가 직접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보호자에게 이 기쁜 사실을 알려 주게.”
“네, 네 원장님.”
윤 간호사가 여전히 준혁에게서 눈을 뗴지 못하는 사이.
“검사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검사 시간을 물으며 원장과 같이 병실을 나가는 준혁의 뒷모습을 보면서 윤 간호사는 넋이 나간 채로 몸을 가늘게 떨었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변할 수가 있지?”
귀신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든 윤 간호사였다.
* * *
검사 결과 모든 수치는 정상.
당연한 일이다.
처음 의식에서 깨어났을 때야 몸이 엉망이었을지 모르지만 마력으로 육체를 다시 개조한 이후였기 때문에 근육이 별로 없는 것만 빼면 특별히 검사 결과에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병원장님. 방금 1차 검사를 끝마쳤는데 모두 정상입니다. 인지 능력, 공간 지각 능력과 더불어 기억력까지요.”
신경외과 과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병원장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무려 10년간 의식불명이었어. 그런데 저렇게 건강하다니.”
“병원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듯합니다.”
미스터리한 결과에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흐르던 중 간호사가 다가왔다.
“한준혁 환자 보호자가 곧 도착한다고 합니다.”
병원장과 신경외과 과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이 굳으면서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한준혁 환자의 ‘보호자.’
이 문장이 가진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더 월드의 시대가 오픈 된 이후 권력은 정치인에서 각성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세력은 단연 각성자 길드.
그 중에서도 무려 랭크 5위의 대형 길드를 운영하는 파천의 수장 한선우가 바로 한준혁 환자의 친동생이었으니 저절로 긴장감이 확 솟아날 수밖에.
“곧이 언제야?”
“한 5분쯤 걸릴 것 같다고 들었어요.”
“내가 직접 마중을 나가지. 윤 간호사는 한준혁 환자를 병실로 좀 안내해 주게.”
“네, 원장님.”
병원장은 넥타이를 고쳐 매면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자 신경외과 과장에게 전해 들은 과장들이 일제히 1층에 모여 있었다.
병원장은 과장들을 흘겨보았다가 그들을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이 달고 이동했다.
로비를 가로질러 회전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병원장은 아직 차가 도착하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 시간을 체크했다.
“병원장님. 날씨가 차가운데 이 외투라도.”
“됐어. 저리 치우게.”
병원장은 건물 입구 앞에서 초조하게 주먹을 어루만지며 길드마스터 한선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기를 잠시 곧 검은색 벤츠 차량이 나타났다.
병원장은 크게 심호흡하면서 매무시했다.
벤츠 차량이 멈추자마자 차 뒷문이 열리면서 짧은 금발의 남자가 다급히 내렸다.
한 편의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왕자님 같은 사내.
파천 길드의 수장. 한선우였다.
병원장을 비롯한 과장들은 그런 한선우를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그대로 얼어붙었다.
부드러운 외모와 상반되게, 그가 가진 각성자 본연의 기운에 완전히 압도당해서였다.
오랜만에 본 그의 기운은 훨씬 더 크게 빛나고 있었다.
계열의 특성에 의해 머리색이 금발로 변해 있었고 눈동자도 금빛이었다.
이는 하늘의 힘 일부를 선택 받은 신검 계열의 특성이었다.
연예인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범한 아우라가 마치 광채처럼 쏟아져 나왔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아랫사람들은 좀 물려주시죠.”
10년 만에 형이 깨어났음에도, 한선우의 성격은 여전했다.
부담스럽다는 의미.
병원장이 따가운 눈길로 과장들을 쏘아보았다.
부원장이 과장들을 데리고 허겁지겁 사라졌다.
그들이 우르르 건물 안으로 떠나는 사이 병원장은 한선우에게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정확한 검사 결과는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지만 진행 과정에서 문제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한 상태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마스터. 축하드립니다.”
먼 곳을 보며 크게 심호흡한 선우가 병원장을 보았다.
“어서 형을 만나러 가야겠어요.”
“그러셔야죠. 자 이쪽으로.”
병원장이 미소 지으며 당당히 앞장섰다.
로비를 지나 VIP 병실로 향했다.
선우 때문인지 병원 내의 눈길이 일제히 쏟아졌다.
“한선우다. 한선우.”
“와. 나 실제로 처음 봐.”
“진짜 잘생겼어.”
“인간이 아닌 것 같아.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잘생겼지?”
병원 건물 내의 사람들이 저마다 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속보입니다. 더 월드가 공식적으로 순위 변동을 발표했습니다.”
빠르게 걷던 선우가 잠시 걷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대형 화면의 TV 쪽으로 흘깃 시선을 던졌다.
“오늘부로 전 세계 각성자 전력 ONE TOP은 대한민국입니다. 뿐만 아니라 ‘귀환자’라는 닉네임을 가진 각성자가 ‘리더보드’ 1위로 등극했습니다. 대한민국 각성국 등급이 ONE TOP으로 격상한 것은 이 닉네임 ‘귀환자’라는 헌터 1인의 전력 때문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뉴스가 나온 이후 병원 내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박수를 치거나 흥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뉴스를 듣고 놀라지 않은 건 병원 내에서 한선우뿐이었다.
“허허. 리더보드 1위라니.”
병원장 역시 놀란 얼굴로 TV를 보다가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소리를 듣고 서둘러 탑승했다.
“대한민국의 각성자 전력이 ONE TOP으로 격상되다니. 믿기지가 않는군요.”
“저도 궁금하네요. 어떤 사람일지.”
한선우가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며 말했다.
* * *
검사가 끝나자마자 밥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보호자가 곧 도착할 거라며 어서 병실로 가야 한다고 윤 간호사가 펄쩍 뛰었다.
준혁은 어쩔 수 없이 병실로 돌아와 동생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요?”
준혁이 윤간호사를 보며 물었다.
“네? 아, 그게. 아무래도 한선우 님이 오시니까요!”
“동생이요?”
“네! 한준혁 환자분이 의식을 잃은 후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요.”
윤 간호사가 손짓 발짓을 해 가며 던전과 헌터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시스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어떤 세상으로 변했는지 케르니안에게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준혁은 그런 그녀의 얘기를 들어 주고 적당히 맞장구도 쳐 줬다.
“뭐, 그런 거죠. 그런데 한준혁 환자 동생분은 무려 그런 헌터 집단의 수장이에요! 신검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고. 국내 길드 랭킹은 5위. 정말 놀랍지 않나요?!”
“공부만 하던 범생이 녀석이었는데. 확실히 놀랍긴 하네요.”
윤 간호사가 준혁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그러니까 한준혁 환자분은. 엄청 대단한 동생분을 두신 거예요.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된다고요.”
준혁이 마치 자신을 가르치듯이 말하는 윤 간호사를 빤히 볼 때 병실 문이 열렸다.
준혁은 병실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한선우가 있었다.
금발의 머리칼.
그리고 금빛의 눈동자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자신을 향해 있었다.
윤 간호사에게 이미 들어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달라진 건 알고 있었다.
10년만, 아니 천 년이 지났음에도 신기하게 얼굴이 곧 눈에 익었다.
하지만 많이 변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키도 커졌고 외모도 훤칠해졌다.
무엇보다 눈이 깊어졌다.
이제보니 동생은 어느덧 오랜 기억 속의 아이가 아닌 어른이었다.
“미안하다. 좀 늦었지?”
준혁이 침대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물을 때, 선우가 빠르게 걸어와 준혁을 끌어안았다.
준혁은 잠시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동생을 떼어 내고 얼굴을 보았다.
동생의 눈은 피라도 흘릴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괜찮은 거야? 아픈 덴 없어?”
동생 선우가 준혁을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너보다 튼튼할걸?”
선우가 눈가를 닦으며 웃었다.
준혁도 동생의 어깨를 잡았다.
“밖에서 봤으면 못 알아봤겠어. 다른 사람 같네, 꼭.”
농담이 아니다.
정말 많이 변했다.
천 년 전 기억 속의 꼬맹이는 어느새 어른이 됐다.
“아무래도 시간이 흘렀으니까.”
“헌터가 됐다며? 그것도 아주 훌륭한. 거기다 길드 마스터까지.”
“어떻게 알았어?”
준혁이 윤간호사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선우의 시선이 윤 간호사에게로 향했다.
윤간호사는 선우가 쳐다보자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했다.
“아! 호, 혹시나 동생분이 혼란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설명을…… 주제넘게 죄, 죄송해요.”
“아닙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선우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준혁을 돌아봤다.
“병원장이 그러더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라고. 바로 퇴원 수속 밟아도 된다던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곧바로 선우의 눈이 놀람으로 굳어졌다.
“왜? 어디 불편해?”
“너 기다리느라 굶고 있었거든.”
선우의 금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
“밥부터 먹으러 가자. 봐 둔 곳 있어.”
준혁이 먼저 병실을 나갔다.
선우는 황당하다는 듯 준혁이 나간 방향을 보다가 윤간호사를 보며 웃었다.
“우리 형 맞네요.”
선우가 얼굴이 벌게진 윤 간호사를 남겨 두고 준혁을 따라 나갔다.
병실에 혼자 남게 된 윤 간호사는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푸우…… 한선우 님 실물 쩐다. 와! 그리고 우리 형 맞네요라니. 진짜 미쳐 내가! 솔직히 한준혁 환자도 잘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매력은 한선우님이지.”
윤 간호사가 꺄악 하고 발을 동동 굴릴 때.
“응? 윤 간호사. 거기서 뭐 해?”
윤간호사가 발을 동동 굴리다가 그대로 석고상처럼 굳어버렸다.
“춤은 왜 춰? 그리고 얼굴은 왜 그래? 감기야?”
지나가던 의사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윤 간호사가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정신없이 병실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의사가 멀어지는 윤 간호사를 보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윤간호사가 한선우의 팬이라는 건 병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