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자의 모든 것 1화
마계(魔界).
지옥의 악마들이 군림한다는 세상.
생기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 땅을 흑발의 한 청년이 걷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늘씬한 몸매의 청년은 놀랍게도 그 지옥 같은 풍경 속에 자연히 녹아 있었다.
“이제 18,217번째인가?”
청년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검은 불길로 활활 타오르는 성채의 성문을 통과했다.
핏빛 샹들리에가 걸린 넓은 홀을 가로지르던 청년은 우뚝 멈춰 서서 거울을 쳐다봤다.
반쯤 찢어진 검은 티셔츠에, 낡아 빠진 검은 바지와 검은 부츠.
청년은 그런 스스로가 참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천 년이 지났음에도 늙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 때문이었다.
츠츠츠-!
공허한 눈으로 거울 속의 모습을 마주 보던 청년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칼등을 어깨에 걸치고서 주변을 훑어봤다.
“히이익!”
살금살금 움직이던 각양각색의 악마들이 청년의 시선을 받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성채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청년은 쥐 떼처럼 움직이는 악마들을 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살아남기 위해 생존에 최선을 다했던 기억.
그 이후로 강함을 추구하기 위해 악마를 죽여 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더 이상 마계는 청년에게 있어 생존과 성장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었다.
청년은 도망치는 악마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갔다.
나선형 계단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발소리가 고요한 성채를 울렸다.
계단의 어느 중간쯤.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 디텍트 」
은신자를 찾는 마법.
번-쩍!
난간에 매달린 채 숨을 삼키며 투명화를 시전하고 있던 데스나이트들이 오들오들 전신을 떨었다.
은빛 갑옷이 떨림으로 인해 음악처럼 차르르 울렸다.
“자, 자비를…….”
데스나이트 하나가 떨면서 말했다.
점차 하이라이트로 치달은 음악처럼 격렬하게 떨기 시작하는 데스나이트.
“이제부턴 품위를 지켜. 날 처음 찾아왔던 그때처럼.”
“……?”
데스나이트가 의문에 빠져들 무렵 검은 마기가 휘몰아쳤다.
청년이 등 뒤를 돌아봤다.
허공이 찢어지면서 검은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었다.
악마성의 끝으로 가는 게이트.
‘이젠 악마성을 지킬 생각도 없다 이건가?’
청년이 웃으며 긴 다리를 성큼성큼 옮겨 검은 홀 속으로 들어갔다.
끈적한 느낌을 지나 검은 안개가 걷히고 이내 사위가 밝아졌다.
곧 왕좌에 앉아 있는 제12마신 케르니안이 청년의 눈에 들어왔다.
붉은 눈에 검은 비늘이 전신을 뒤덮고 있는 외양.
머리와 팔다리는 대체로 인간의 형태를 갖고 있다.
그런 케르니안이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나자 등에 달린 검은 날개가 웅장하게 펄럭였다.
“그대는 지겹지도 않은가?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천년 전부터 말하지 않았나? 인간 세계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케르니안이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를 포함해 12 마신들을 죄다 소멸 직전까지 찢어 놓고 살려 주고. 회복되면 찾아와서 또 찢어 놓고! 잉태되는 악마는 모조리 죽여 대질 않나. 대체…… 대체 그대는 언제까지 이처럼 끔찍한 짓을 이어 갈 생각인가?!”
“날 소환한 건 너희들이야.”
“그대를 마계로 소환한 것은 우리들의 실수이자 오만이었다.”
케르니안이 절망한 눈으로 청년에게 걸어가 무릎을 꿇었다.
“뿔 많이 자랐네?”
청년은 일전에 자신이 잘랐었던 케르니안의 뿔을 신기하다는 듯 매만졌다.
“이제 그만 떠나다오. 이렇게 애원하마.”
“하하. 죽을라고 이게.”
케르니안이 청년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제발 떠나. 한준혁! 그만 마계를 떠나달란 말이다! 제바아알!”
한준혁이라 불린 청년은 절규하는 케르니안의 뿔을 쓰다듬었다.
“케르니안. 조금 서운한데. 내가 그렇게 돌아갔으면 좋겠어?”
“마계의 천 년은 인간계로 고작 10년에 불과한 걸 알잖나? 네 영혼은 인간계와 이어져 있어. 네 젊고 아름다운 외형을 봐. 한준혁! 복수는 이만하면 충분했다. 3마신, 7마신, 9마신은 견딜 수가 없어 스스로 소멸하기까지……!”
준혁이 케르니안을 발로 밀어 찼다.
케르니안이 성벽을 뚫고 날아가 검은 대지에 떨어져 굴렀다.
둔중한 소리를 내며 지면에 착지한 준혁의 손에 검이 생성되었다.
찬란한 빛의 검이 신성하게 일렁였다.
오직 마력으로 만들어 낸 검이었다.
“내가 천 이백년간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
준혁의 검게 일렁이는 눈빛을 보고 케르니안이 다시 무릎을 꿇었다.
“……미, 미안하다 한준혁. 감히 그대를 소환한 것에 대하여.”
케르니안이 엎드린 채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차가운 눈으로 케르니안을 내려다보던 준혁이 왼손을 내밀었다.
그 인기척에 케르니안이 머리를 들었다.
“……무, 뭐?”
케르니안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귀환석.”
“귀환석?”
“네 소원을 들어주지.”
“……갑자기?”
준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가지 말까?”
그를 인간계로 돌려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에 케르니안은 혼란이 이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서둘러 아공간에서 귀환석을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이는 아주 본능적인 행위였다.
준혁은 그런 케르니안이 내민 귀환석을 손에 꽉 쥐었다.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보석.
준혁이 귀환석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오묘하고 신비로운 빛깔이었다.
“너희들이 나를 소환한 이유는 아우터 갓에게 우주인간종의 영혼을 바치기 위해서였지.”
케르니안의 눈이 불안하게 데굴데굴 움직였다.
“그 이유가, 고작 아우터 갓. 놈들의 영원을 위해서라니.”
준혁의 강한 눈동자를 보고 케르니안이 속뜻을 알아차렸다.
“너, 지금 무슨 생각을……?!”
“난 그 징그러운 악마 새끼들이 도저히 용서가 안 되거든. 내 모든 수모와 고통의 근원이 거기에 있잖아.”
“아우터 갓은 차원계 그 이상의 절대적 존재. 한준혁! 아무리 너라고 해도 감히…….”
준혁이 팔을 휘두르자 멸마의 서가 나타났다.
먹색을 머금은 거대한 책이 준혁과 케르니안의 머리 위로 나타났다.
그 웅장한 힘을 내뿜는 책이 곧 파르르 페이지가 펼쳐졌다.
이윽고 첫 장에 새겨진 새하얀 빛의 글자.
그 아래 악마의 맹세를 품은 피가 새겨진바, 이는 진품이 확실했고 그 프롤로그 페이지에는 대천사의 봉인 된 힘이 새겨져 있었다.
케르니안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며, 며, 멸마의 서! 한준혁. 네가 대체 어떻게……?!”
“이 ‘멸마의 서’로 천계의 천사들이 숨긴 5대 신수와 신물들을 찾으면.”
준혁의 눈에 새파란 열기가 일렁였다.
“아우터 갓을 찢어발길 수 있지.”
케르니안은 전율에 몸을 떨었다.
멸마의 서는 아우터 갓의 차원계 침범에 대해 심판한 후, 천계가 남긴 흔적이자 역사.
천계의 힘이 오롯이 봉인된 어둠의 심판 그 자체!
“애초에 너 같은 마신이라는 졸개 따위엔 관심 없었어. 감히 오만하게 날 내려다본 아우터 갓. 내 목적은 거기 있거든.”
서늘하면서도 건조한 억양.
그동안 겪어본 바 이는 준혁의 진심이란 뜻이었다.
케르니안이 공포에 질린 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뭣보다 그 더러운 새끼들이 인간계에 무슨 짓을 더 벌여 놨을지 모르잖아?”
“너 설마…… 마계를 떠나지 않은 이유가 그동안 모두 계획된……?!”
파-아아앙!
준혁이 귀환석을 깨트렸다.
푸른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굉음과 함께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인간계로 통하는 문(門)이었다.
“아아아……!”
“기대해라. 내가 곧 혼돈을 깨워 줄 테니.”
준혁이 미소를 남기곤 차원의 게이트 속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아, 안 돼…….”
슈아아아-!
준혁이 순식간에 새하얀 연기를 남기고 게이트 속으로 사라졌다.
제12마신 케르니안은 멍하니 차원의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닫히는 차원의 문.
귀환석을 달라고 할 때 철저히 의심했어야 했다.
그때 소멸을 걸고 귀환석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만약 한준혁이 정말 5대 신수와 신물들을 손에 넣는다면?
그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미래였다.
그의 말대로다.
애초에 한준혁을 소환하지 말았어야 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제 12마신 케르니안이 내뱉는, 피를 토하는 후회의 외침이 검은 하늘 위로 비참하게 울려 퍼졌다.
* * *
규칙적인 전자음이 점차 선명하게 들렸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새하얀 천장.
그곳은 침대 위였고 얼굴에는 불편한 뭔가가 붙어 있다.
산소호흡기였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입에 붙어 있는 장치를 떼어 냈다.
주변을 훑어보자 고급스러운 병원 개인실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햇살이 창가의 꽃과 병실의 내부를 비춘다.
준혁은 천천히 목을 꺾었다.
우드득!
‘왜 이렇게 몸이 무겁지?’
바이탈을 체크하는 기계와 연결된 장치. 그리고 링겔과 이어진 주사바늘을 떼어 내면서 준혁은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마치 해골 같다.
팔다리가 수분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앙상하게 말라 있다.
밋밋하기 짝이 없는,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몸은 물렁했고 연약했다.
그간 의식불명의 육체로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준혁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순간.
띠링!
맑은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시스템 로딩 중.]
[신원 확인에 성공했습니다.]
[각성자 기본 스탯을 확인합니다.]
이름 : 한준혁
계열 : 마검(魔劍)-Demon sword
호칭 : 전설
전투수치 : 측정불가
잠재력 : 측정불가
마나 감응도 : 100%
고유 권능 : 멸마의 서
[플레이어 등급 측정 결과 정확한 등급은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전 세계 통합 랭크 100순위를 표기하는 더 월드 리더보드 순위가 강제로 변경됩니다.]
[‘한준혁’ 님. 더 월드의 리더보드 1위가 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더 월드 리더보드 1위는 ‘한준혁’ 님입니다.]
[더 월드 커뮤니티 채널 업데이트 완료.]
[신분 : 대한민국 국적 확인.]
[대한민국의 전력이 더 월드 통합 ONE TOP으로 격상됩니다!]
준혁은 줄줄이 나타나는 시스템 메시지 창을 보며 눈살을 구겼다.
[도움말 기능을 사용합니다.]
[더 월드 시스템을 통해 언제나 업데이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월드를 통해 시스템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공지사항과 업데이트 항목을 확인하세요.]
[시스템 창의 물음표를 터치하면 도움말 기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달칵-!
[한준혁 님. 닉네임을 음성으로 입력해 주십시오.]
갑작스러운 현상이라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해 놓는 게 앞으로 편할 것 같아 준혁은 대충 이름을 짓기로 했다.
“귀환자?”
[닉네임이 ‘귀환자’로 설정되었습니다.]
달칵-!
[공식 업데이트 알림!]
[일시정지된 서버 채팅방이 다시 활성화를 완료합니다.]
[리더보드 1위 ‘귀환자’님이 더 월드 커뮤니티 대한민국 랭커 채널에 입장했습니다.]
[국내 랭커님들은 시스템 채팅으로 ‘귀환자’님을 환영해 주십시오.]
R4 ▶포텐 : ??
R19 ▶존윅 : 리더보드 1위요? ;;
R33 ▶도미노 : 와아. 소름 끼친다. 리더보드 1위. ㅁㅊ 닭살 올랐어. 이거 실화입니까?
R15 ▶낭만자객 : ㅋㅋㅋ 이건 꿈인가. 대한민국이 ONE TOP?
R17 ▶아이언맨 : 저기, 어떻게 그동안 랭크 순위에도 없다가 갑자기 일반 랭크도 아니고 리더보드 1위가 나오는 거죠? 이거 더 월드 오류 아니에요?
*‘낭만자객’님이 전설비급서 제작에 실패했습니다.
R19 ▶존윅 : 형님. 이 와중에 비급서 날려 먹는 클라스도 대단하네요. 이걸로 8번째 실패 아닌가? 30억 증발 ㄷㄷ
R15 ▶낭만자객 : 귀환자님. 메시지 표시 터치하면 홀로그램으로 채팅 가능합니다. 인사 좀 해 주세요 ^^
[‘귀환자’님이 더 월드 채팅방을 로그아웃했습니다.]
더듬거리면서 찾다가 겨우 로그아웃에 성공한 준혁은 미간을 구겼다.
“하아. 케르니안을 짜내서 미리 공부 좀 해둘 걸 그랬나?”
준혁은 냉장고에 든 생수를 꺼냈다.
“이미 왔는데 어쩌겠어.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머릿속을 비우고 생수 뚜껑을 따던 중 병실의 문이 열렸다.
드르륵!
간호사가 문 앞에서 준혁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녀는 마치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체크 서류를 떨어트렸다.
“하, 한준혁 환자? 맞아요? 아니 어떻게.”
간호사가 당황한 눈으로 멀쩡히 서 있는 준혁과 비어 있는 침실을 번갈아 보며 말을 더듬거렸다.
‘왜 저러지?’
준혁은 자신의 침대를 돌아보았다가 뒤늦게 그녀가 놀란 이유를 깨달았다.
오랫동안 의식불명이었다고 했으니 멀쩡히 걸어 다니는 자신을 본 그녀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아, 그게. 오랜만에 이 육체로 깨어났더니 몸이 워낙 엉망이라…….”
“화, 화, 환자분! 지금 바로 원장님 불러올게요. 꼼짝 말고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간호사가 문을 탁! 닫고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준혁은 고개를 갸웃했다가 간호사가 나간 방향을 보며 생수를 꿀꺽꿀꺽 마셨다.
‘뭐 이렇게 사람을 만나니까 귀환했다는 게 조금은 실감이 나네.’
* * *
“뭐라고? 한준혁 환자가?”
“네. 얼른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병원장은 벌떡 일어나 서둘러 간호사와 함께 VIP 병동으로 향했다.
한준혁 환자는 화물 트럭과의 교통사고로 인해 몸 곳곳의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됐다.
그 이후 의식불명으로 병상에 누워 지낸 게 10년.
그런 사람이 재활도 없이 멀쩡히 깨어나 움직이고 있다니.
게다가 그가 어디 보통 환자인가?
무려 파천 길드의 수장 한선우의 친형이다.
“병원장님. 보호자에게 한준혁 환자 깨어났다고 연락을 할까요?”
“정말 한준혁 환자가 맞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 윤 간호사! 지금 바로 정밀 검사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이후에는 정신과 치료를 진행할 수 있게 준비만 먼저 해 주게.”
“네, 네. 병원장님!”
경보하듯 놀라운 속도로 걸어가는 병원장을 보며 간호사가 긴장으로 삼켰던 숨을 푸우 뱉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대형 사건이네, 정말.”
멍하니 원장의 뒷모습을 보던 간호사가 아차 하며 검사 준비를 위해 어디론가 후다닥 뛰어갔다.
* * *
준혁은 창가로 가서 창문 너머를 내다보았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큐브 형태로 빼곡히 늘어선 건물들.
그 풍경 위로 지난 기억이 아스라이 겹쳤다.
‘마계는 늘 더웠지.’
달칵-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피부를 스쳤다.
절대로 꿈이라고 할 수 없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준혁은 미소지으며 상쾌하게 기지개를 켰다.
“으읏?!”
준혁이 곧 얼굴을 구기며 몸을 구부정하게 구부렸다.
“으윽……!”
이런 고통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아무래도 10년간 침대에만 누워만 있던 몸이라 그런지 컨디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나마 마계의 힘이 그대로 혼에 담겨 이전되었기 때문에 순수한 마력을 바탕으로 육체가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대기 중 마나 상태가 괜찮은 편일까?’
시간 왜곡 때문에 마계에의 천 년은 인간계의 10년과 같다.
케르니안에게 인간계가 많이 변했다는 얘기 정도는 들은 적이 있다.
던전이 생성되고, 그 던전에는 마수가 들끓었다. 그와 동시에 도래한 헌터의 시대.
초인적인 힘을 각성한 자들이 헌터라 불리며 그 괴물을 사냥하기 시작한다는 얘기였으니.
‘던전과 마수가 있으니 가능성은 충분할 것 같긴 한데. 한번 보자.’
준혁은 눈을 감고서 마나를 느껴 보았다.
그리고 이내 준혁은 깜짝 놀랐다.
대기 중에 흐르는 마나가 마치 끝없는 바다처럼 풍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구의 마나는 마계보다 훨씬 더 불순물이 없는, 깨끗한 마나였다.
준혁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순식간에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나가 육체로 흡수되어 순환하면서 막혀 있는 기혈을 뻥뻥 뚫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쾌한 기분은 잠시.
이내 끔찍한 고통의 단계에 들어섰다.
육체의 재조정.
마력의 힘으로 손상되어 있는 육체를 개조하는 단계이기에 당연히 고통이 잇따르는 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콰득-! 콰드득!
준혁은 이를 악물고 신음을 삼키며 고통을 견뎠다.
뼈가 다시 자리를 잡는다.
준혁의 피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며 마치 타들어 가는 듯했다가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근육까지 만들 수는 없지만, 골격이나 체형을 가장 무인답게 변화시킬 수는 있다.
트트득! 트득!
마치 탈피를 하듯이 피부 껍질이 떨어져 나왔다.
그 껍질은 대기 중의 마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삼켜 버렸다.
탈피된 피부 조직이 공중에서 마치 불꽃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뜨거운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다시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든 육체의 재조정 과정을 마친 준혁은 천천히 눈을 뜨고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퍼석퍼석하게 노화되어 있던 피부는 마치 아기의 피부만큼이나 깨끗하게 변해 있었고 힘없이 말랑거리던 뼈마디는 막 만든 강철처럼 튼튼했다.
‘이제 좀 나답네.’
준혁은 걸음을 옮겼다.
거울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번쩍번쩍 광이 난다.
수척하고 비쩍 말랐던 피부에는 생기와 탄력이 생겼다.
그렇게 거울을 보던 중 병실 문이 열렸다.
드-륵!
병실문이 열리자마자 병원장이 준혁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병원장.
그는 말을 잇지 못하며 준혁의 몸을 더듬거리며 살폈다.
“환자분.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요?”
준혁은 병실을 슬쩍 훑어보고는 병원장을 쳐다봤다.
“병원이잖아요.”
“본인의 이름은! 이름은 기억나십니까?”
“한준혁. 18세, 아니 10년이 지났으니까 28세인가? 트럭 사고로 의식불명. 맞죠?”
“맞습니다!”
의사가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0년간 의식불명이었던 환자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이는군요. 환자분이 이렇게 세상으로 돌아온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신의 축복입니다!”
신의 축복?
준혁은 케르니안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