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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198화 (197/201)

갑질의 신 198화

64. 비서 실격(2)

차량을 타고 강남역 인근에 도착한 우석.

역의 주변을 둘러보던 그가 뒤따르던 릴리아나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미팅 장소가 어디라고 했지?”

“근처 도원궁이라는 한식 가게입니다. 우석 님이 말씀해 주신 그대로 100% 예약으로만 자리를 할당해 주는 가게로 장소를 정했습니다. 식사 역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개된 자리에서 하는 게 아닌 룸 형태의 공간으로 잡아두게끔 했습니다.”

“잘했다.”

우석은 성진수, 사카모토 류가 자신이 습격할 수 있는 방식이 뭐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가능성이 가장 큰 것은 사람들의 무리에 뒤섞여 몰래 우석을 암살하는 방법이었다.

다수의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자신의 기척을 지운 뒤, 우석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우석을 암살한다.

극소수의 인력으로 우석을 지키고 있는 다수의 보디가드진들을 뚫고 타깃만을 제거하는 일에 그만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우석이 견제해야 하는 일은 다수의 사람들 속에 섞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가게 역시 평범한 가게가 아닌,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춘 특별한 가게를 미팅 장소로 잡게 되었다.

그만큼 가격이 좀 더 쎄긴 하지만, 목숨이 걸려 있는데 까짓것 그게 중요하겠는가.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음.”

김민혁의 말에 우석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 목소리를 낮춰 작은 통신기를 이용해 남서진과 아이티에게 동향을 물었다.

“성진수와 사카모토 류의 위치는 확인 되었나.”

-여기는 남서진. 아직 확인 불가능합니다.

-아이티입니다. 사카모토 류의 해킹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머지않아 녀석의 현재 위치를 발견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남서진 쪽과는 다르게 아이티 쪽에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정보적인 측면에서 아이티가 우위를 점령했다는 건, 그만큼 녀석들의 활동 범위가 줄어들게 될 것을 뜻했다.

조금만 무리를 하게 될 경우, 아이티에게 금방 위치 정보가 발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카모토 류도 바보는 아니었다.

애써 무리를 하면서까지 성진수에게 정보 전달을 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녀석의 꼬리를 추적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아이티가 제대로 독기를 품은 모양인지 힘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본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것이 의외의 효력을 발휘한 것이리라.

‘평소에도 이런 의욕을 보여주면 참으로 좋으련만.’

쓴웃음을 짓는 우석이었다.

그렇다고 아이티의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집으로 못 돌아가게끔 감금을 시켜둘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여하튼 현재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면서 도원궁 안으로 들어서는 우석 일행.

방금 전, 우석과 남서진, 그리고 아이티가 주고받은 통신 내역은 김민혁과 릴리아나를 비롯해 반도체 등 다른 비서들에게도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성진수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서라도 사카모토 류에게 압박을 넣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아이티가 전의를 불태우며 점점 사카모토 류의 손과 발을 억압해가고 있으니…… 이제 성진수의 돌발적인 행동만 조심하면 될 일이었다.

* * *

“이런…….”

짧게 혀를 친 사카모토 류가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룸 까페.

그곳에 몰래 잠복을 해 성진수에게 정보 전달을 해주고 있던 사카모토 류였지만, 아이티가 자신의 해킹 흔적을 발견하자마자 짧은 시간 내에 바로 치고 들어올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이었다.

“아이티, 이 녀석……!!”

예전부터 아이티는 사카모토 류의 가장 큰 방해물이었다.

비서들 간에도 능력 차이는 존재했다.

같은 계열의 능력이라 하더라도 아이티는 여타 다른 정보 담당 비서들보다도 훨씬 더 우월한 기량을 뽐내왔다.

능력 차이는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카모토 류가 가장 열받는 건…….

노력으로 비서라는 자리까지 오른 사카모토 류와는 다르게 아이티는 순수하게 재능만으로 다른 정보 담당 비서를 압도한다는 점이었다.

예전부터 그가 신경에 거슬렸다.

게으름뱅이에 과도한 모니터 오타쿠, 심지어 방구석 폐인 속성도 지니고 있었다.

잠도 제멋대로 자고, 기분 내키는대로만 일하는 남자.

그게 아이티였다.

모범생이라 불렸던 사카모토 류와는 너무나도 다른 성향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높은 평가를 받은 건 사카모토 류가 아닌 아이티였다.

상대적 박탈감이라 해도 좋았다.

어차피 중요한 건, 사카모토 류는 아이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니까.

“……정면승부를 해보자는 거구만.”

사카모토 류가 의욕적인 표정을 지으며 마우스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성진수의 마음이 어떤지 알겠군.”

남서진과의 주먹 싸움에 열의를 올리던 그의 모습에 공감을 하게 될 줄이야.

당사자인 사카모토 류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 * *

-아이티가 따라붙었다. 어쩌면 지금 이 통신도 도청될 가능성이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지금부터 녀석과 전면전을 펼칠 거야.

작은 통신기에서 전달된 사카모토 류의 말에는 굳은 결의가 담겨져 있었다.

그간의 사정을 청취한 성진수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통신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너도. 마지막으로 너한테 미리 이야기했던 ‘그것’은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은 8시 33분. 현장 판단은…… 이제 너에게 맡기마.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성진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통신이…… 마지막이 될 거란 사실을.

-건투를 빌어주마.

“그래.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함께해서 즐거웠다.”

-정말로 즐거웠냐.

“저번에 아이스크림 사 오라고 심부름시켰던 것만 빼면 나름 즐거웠지.”

-아직도 그거 가지고 삐쳐 있었나.

“이래 봬도 의외로 세심한 남자거든. 나란 사람은.”

-쪼잔함을 세심함이라고 잘못 표현한 것 같지만…… 상관은 없겠지. 아무튼,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군.

“힘든 일이겠지만 말이야.”

이들이 알고 있는 우석의 성격상, 반란을 일으킨 부하들을 곱게 살려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할 여지를 둘 필요도 없었다.

-슬슬 여기까지인 것 같군. 아무튼…… 힘내라.

“오케이. 너도.”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사소한 말다툼만 하다가 통신을 끝낼 뻔했지만, 그래도 끝에 가선 나름 훈훈한 마무리로 통신을 끝냈다.

동시에 작은 통신기를 오른손으로 가볍게 움켜쥐는 성진수.

우드득! 소리와 함께 망가진 통신기를 근처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사카모토 류와 통신을 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이미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이미 사카모토 류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이제는…….

성진수가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일만 남았다.

“여기인가.”

도원궁 앞에 마주선 뒤.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현재 시간, 8시 30분.

지금쯤이면 한창 미팅이 진행되고 있을 예정이었다.

“앞으로 3분 뒤인가.”

8시 33분.

그때, 모든 것이 결정된다.

성진수의 목숨 여부.

그리고…….

이 세계의 운명까지 전부 다.

* * *

“눈물 비는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웹툰뿐만이 아니라 드라마화까지 진행되어 성공 신화를 이끌어가고 있지요. 중국 내에서도 이미 눈물 비 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여기에 더해 원작 소설을 중국어판으로 발간한다면…….”

김민혁이 장황하게 중국 업체 측 인사들을 향해 눈물 비 콘텐츠에 관한 어필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언어 역시 마찬가지로 중국어였다.

뿐만 아니라 우석 역시 중국어로 상대측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고 있었다.

“…….”

덕분에 말수가 부쩍 적어진 반도체.

통역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이 미팅에 참가했는데, 정작 유창한 중국어 실력을 뽐내고 있는 이우석과 김민혁 덕분에 반도체의 역할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럴 거면 왜 나를 부른 거지…… 차라리 나오지 말고 신작 애니라도 볼 걸 그랬네.’

속으로 이런 불편을 토로해 보는 반도체였지만, 설사 미팅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외부 수색대로 불려나왔을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이 시간에 애니메이션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건 같은 결과였다.

한편, 김민혁의 프레젠테이션이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중국 업체 측 인사들의 표정이 처음에 비교했을 때와 다르게 한창 밝아져 있었다.

눈물 비는 이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류 콘텐츠 중 하나였다.

드라마가 중국에서 많은 인지도를 끌었기에 협상도 훨씬 더 수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원만하게 진행되던 협상 테이블에 난데없이 트러블이 발생하고 말았다.

팟!

“……?!”

“뭐, 뭐야……!”

갑작스럽게 어둠이 이들을 습격했다.

깜깜해진 실내.

룸뿐만이 아니라 도원궁 가게 전부가 어둠에 삼켜졌다.

“이건…….”

정전이었다.

그 순간, 우석의 시선이 창가 바깥쪽으로 향했다.

다른 건물들은 제대로 불빛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이 건물만 정전이라는 건가.’

한눈에 봐도 누가 의도적으로 정전을 일으켰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정전과 동시에 룸 바깥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우석이 있는 룸의 문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낌새를 알아차린 우석이 어둠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사람의 형체를 응시했다.

“꽤나 당돌하게 쳐들어왔군, 성진수.”

그를 보자마자 우석은 남자의 정체가 성진수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성진수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김민혁과 릴리아나, 그리고 반도체의 시선이 절로 입구 쪽을 향했다.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현재 시각, 8시 33분.

세계의 주인을 암살할 사신이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성진수의 시선이 우석에게 고정되었다.

그가 노릴 목표는 오로지 단 한 명.

이우석뿐이었다.

그를 지키기 위해 움직임을 개시한 김민혁이 먼저 성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익!!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성진수는 가볍게 김민혁의 공격을 피했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환영 인사가 상당히 난폭하구만. 김민혁.”

“난폭성으로 따진다면 네가 가장 높을 거 같은데?”

화술의 달인답게 우습다는 듯이 성진수의 말을 맞받아치는 김민혁이었다.

무력으로는 성진수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이들은 우석의 보디가드.

그를 지키는 것이 비서들의 소임이었다.

한편, 성진수의 난입으로 인해 덩달아 중국 업체 인사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별일 아니니까 뒤로 물러서세요.”

릴리아나가 이들에게 물러설 것을 지시했다.

성진수의 입장에선 저들은 관심 밖의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그가 노리는 사람은 이우석, 한 명이니 말이다.

파박!

지면을 박차며 순식간에 김민혁과 릴리아나, 그리고 반도체의 머리 위로 점프하는 성진수.

순식간에 비서들을 뛰어넘어 우석의 앞까지 당도했다.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비서들의 머릿속에 각인될 무렵.

“생각했던 것보다 멍청하군, 성진수.”

우석의 한마디가 성진수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죽을 위기가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우석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제정신인가?’

그런 의구심이 든 성진수였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며 다시 우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괜한 허세를 부려 일부러 자신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고, 시간을 벌려는 속셈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석의 태도는 결코 허장성세(虛張聲勢)가 아니었다.

쨍그랑!!!

갑자기 창문의 유리조각이 깨지더니…….

또 다른 난입자가 성진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난입자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성진수가 이를 잘근 깨물었다.

“남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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