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97화
64. 비서 실격(1)
최후의 결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석이 살아남느냐.
아니면 그의 목숨을 노리는 비서들을 현장에서 체포하느냐.
그 싸움에 불과했다.
단순한 구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따진다면,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우석이 성진수와 사카모토 류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이 세계는 무질서와 혼돈으로 가득 차게 될 게 뻔했다.
결국 현재 우석을 따르는 비서들의 입장에선…… 아니, 혼란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비서들의 입장에선 우석의 목숨이 보호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전의 날 당일.
“…….”
이른 아침.
우석이 화장실 앞에서 자신의 용모를 단정히 다듬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면도까지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따라 면도가 잘되는군.”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날이 잘 드는 면도기였다.
우석이 이곳 세계에 왔을 때 마음에 드는 용품 중 하나였다.
레디너스 대륙의 면도기는 상당히 투박했다.
그곳의 면도날로 면도를 할 때마다 피부 트러블이 발생해서 골치 아팠는데, 그래도 이곳 세계의 면도기는 그나마 덜했다.
물론 피부 트러블이 없는 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괜찮다는 의미였다.
깔끔하게 용모를 단정히 한 우석이 정장까지 말끔하게 차려입었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적들의 목적이 달성된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오전 8시.
강의가 없는 날이라 그런지 우석과 다르게 연주는 아직까지 단잠에 빠져 있었다.
잠시 연주의 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던 우석.
연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방에서 빠져나왔다.
부모님들은 이른 출근을 서두른 탓에 거실에 남아 있지 않았다.
우석이 연주의 방에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기다리고 있던 릴리아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석님.”
“음.”
우석은 다른 비서들과 다르게 자택에서 출근을 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었다.
대신, 차량이라든지 도보로 이동하는 경로를 최소화했다.
덕분에 릴리아나의 순간이동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게 당연시되었다.
매번 이른 아침에 일어나 우석을 데리러 그의 집으로 순간이동을 해 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치르는 릴리아나였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불만이라든지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라도 비상시에 우석에게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큰 기쁨이었다.
“그럼…… 출근하도록 하지.”
“예.”
마지막 출근이 될지, 아닐지는 오늘 저녁에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 * *
중국 업체와의 미팅을 앞둔 우석 일행.
참가 인원은 김민혁과 반도체, 그리고 우석과 릴리아나였다.
“저도 가면 좋을 텐데…… 아쉽군요.”
이임전이 입맛을 다셨다.
중요한 미팅이었기 때문에 나름 반드 미디어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임전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다.
물론 우석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눈물 비라는 원작 소설 유통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해 미팅을 잡았지만, 이야기가 잘 진행될 경우에는 바로 웹툰 역수출 이야기도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되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임전의 미팅 참가도 나름 나쁘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미팅일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달랐다.
성진수와 사카모토 류.
두 배신자가 우석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 있을 미팅의 목적은 그 두 비서를 유인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어쩌면 우석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목숨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전투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컸다.
그런 상황에서 이임전을 데려간다는 건 가급적이면 배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임전은 반드 미디어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웹툰 기획과 마케팅을 거의 도맡아 하다시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임전을 그런 위험한 자리에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이야기가 잘 된다면, 다음에 2차 미팅을 잡았을 때 이 부장님도 함께 하시지요.”
“예,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
우석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이임전 부장.
대표 사무실을 나서자, 대기 중이던 민혁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석에게 의견을 구해왔다.
“비서들을 소집할까요?”
“그렇게 하도록.”
“예.”
민혁이 곧장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직후.
방독면 마스크를 착용한 숨겨진 반드 미디어의 사원, 아이티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비서들이 반드 미디어 대회의실에 총출동하게 되었다.
도문석을 제외하고 모든 비서들이 대동된 중요한 작전이었다.
“다들 모였겠지?”
“예!”
우석의 물음에 기운차게 대답하는 비서진들.
동시에 우석이 한 명 한 명의 면모를 살피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오늘은 배신자를 척결하는 날이다.”
그의 첫 마디는 상당히 강렬했다.
배신자.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아니, 맞았다.
이 세계를 구입한 세계의 주인, 우석.
그를 보필해야 하는 건 비서로서 당연한 임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진수와 사카모토 류는 그런 비서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역으로 우석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주인의 목숨을 노리는 개의 모습이 얼마나 추하게 느껴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석은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레디너스 대륙에선 숱하게 있던 일이었으니까.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던 아픈 기억이 지금의 그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미팅에는 김민혁과 나, 릴리아나, 그리고 반도체가 참가한다. 나머지는 김민혁과 함께 주변에서 대기하면서 성진수와 사카모토 류를 찾는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화염룡이라든지 미스터 리, 나모영 등 전투능력이 없는 비서들까지 대동한 이유는 간단했다.
화염룡과 미스터 리는 성진수와 사카모토 류의 얼굴과 행동 방식, 습관을 기억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모영은 사람들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독심술을 구사하는 게 가능했다.
성진수와 사카모토 류가 외형을 속인다 하더라도 나모영의 독심술까지 속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김민혁과 반도체, 릴리아나는 우석과 미팅에 참가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서 외부 인력 통제는 아이티와 남서진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티, 네가 사카모토 류를 맡아라. 최대한 정보를 교란시키고, 녀석의 위치를 파악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서진.”
“……예, 우석 님.”
“너는 외부에서 순찰을 돌 비서들과 민혁이 데려온 보디가드들을 통제해라. 그리고 동시에…… 전투가 벌어지면 네가 성진수를 마크한다.”
“알겠습니다.”
남서진과 성진수.
두 남자는 전(前) 세계의 주인 체제일 때부터 주먹이라고 하면 탑을 달릴 만큼 우수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비록 성진수가 정식으로 현재 세계의 주인인 우석에게 결재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일본에 있을 때, 이미 성진수의 능력은 증명되었다.
맨주먹으로 다리를 부숴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특히나 일본의 경우에는 지진이 많이 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건축물을 튼튼하게 짓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리가 성진수의 주먹 한 방에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우석이 제아무리 나름 운동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성진수와 마주하게 될 경우에는 압도당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비단 우석뿐만이 아니었다.
김민혁이 데려온 남자들이 집단으로 덤벼들어도 성진수 한 명 막아내기 힘들지도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남서진의 역할이 중요했다.
오랜만에 주먹 쓰는 일을 찾게 되어 그런지 남서진의 눈빛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전도 작전이지만, 미팅의 중요도 역시 간과하면 안 된다. 알겠지? 김민혁.”
“예, 물론 인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유통사와의 협상은 반드 미디어의 콘텐츠를 세계로 수출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특히나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소비 시장에 있어서 중국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 배신자 비서를 막는다는 것도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동시에 성공적으로 미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일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각 비서들에게 역할을 하달한 우석.
이제는…… 출전뿐이었다.
“3시간 뒤에 출발한다. 각자 준비를 마치도록.”
“예!!”
의도치 않은 배신자들의 습격.
하지만 우석은 담담했다.
세계의 주인과 비서는 절대적인 갑(甲)과 을(乙)의 관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갑을 거역한 을이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나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주인을 배신한 괘씸한 을에게 채찍질을 내리는 것도 절대 갑인 우석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 * *
현재 시각, 저녁 7시.
미팅까지 남은 시간은 아직 1시간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강남역에는 퇴근길에 오른 직장인들과 더불어 저녁을 기점으로 젊음을 불태우기 위해 강남으로 놀러 온 청년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들 한 가운데에서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한 명의 젊은 남자.
“…….”
뚜벅, 뚜벅.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강남역의 계단을 오르는 남자, 성진수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도 주변을 철저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러면서 작은 통신기를 이용해 사카모토 류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했다.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거기서 도보 상으로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도원궁이라는 한식 가게가 위치해 있을 거다. 그곳으로 이동하면 된다.
“지금 움직일까?”
-사전 조사를 해두는 편이 좋겠지.
“오케이.”
물론 성진수도 도원궁이라는 한식 가게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주변 경관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정보 담당인 사카모토 류의 공이 컸다.
무조건 주먹만 휘두른다고 다가 아니었다.
주변의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야 했다.
머리를 쓰는 주먹 싸움.
그것이 성진수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직접 작전을 치룰 지역이 어떻게 생겼는지 눈으로 한 번 봐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머리로 알고 있는 정보와 실제 지역 정보가 반드시 100% 일치하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카모토 류도 그렇고 성진수도 그렇고.
이들은 전부 세계의 주인인 우석에게서 결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무단으로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결재를 받은 비서들에 비해 능력 발휘가 어렵다는 건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시내 거리부터 골목길까지.
구석구석을 직접 눈으로 보고, 걷고 하면서 체크를 하기 시작하던 성진수의 눈에 순간 이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남자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게 거리를 거니는 남자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의 외형을 보는 순간, 성진수는 본능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먹을 쓰는 놈들이다.
한눈에 봐도 우석이 고용한 보디가드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눈은 못 속이지.’
주먹을 쓰는 사람은 같은 동족을 알아보는 법이었다.
다부진 체격.
그리고 손에 배겨 있는 굳은살들.
그것을 통해 성진수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치는 두 명의 남자들이 우석이 뿌린 보디가드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 고생 좀 하겠는걸?’
속으로 혀를 차는 성진수.
그러나…….
그의 얼굴 표정에는 당혹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쁘다는 감정이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