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96화
63. 격돌(2)
칙, 칙!
잠시 바깥으로 나와 지포 라이터를 들고서 불을 켜는 미스터 리.
입에 담배를 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담배의 연기가 공중을 수놓을 때.
그때가 미스터 리에게 있어서 스트레스 풀이의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겉멋 들은 흡연 습관은 주변인들에게 간접흡연의 폐해를 안겨주곤 했다.
“이봐요, 거기 미스터리한 아저씨. 회사 앞에서 누가 담배 피우라고 그랬어요?”
“미스터리가 아니라 미스터 리다, 미스터 리!”
반드 미디어 빌딩 입구 쪽에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던 화염룡이 그의 행동에 태클을 걸었다.
때마침 그녀도 바깥에서 잠시 통화를 할 일이 있던 터라 빌딩 입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바깥으로 나오게 된 미스터 리와 마주하게 되었다.
본인만의 방이 아닌 비서들과 같이 생활하는 공동 공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본의 아니게 흡연 타임을 가질 때에도 바깥으로 나와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창 반드 미디어 사원들이 사무실 안에서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 연기가 사무실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그보다 더한 민폐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 틀림없었다.
“하여간…… 담배도 내 마음대로 못 피우다니. 에휴…….”
더더욱 깊은 한숨을 내쉬는 미스터 리.
그의 한탄 역시 한숨과 마찬가지로 깊어졌다.
집에 돌아가서 마음껏 담배와 술의 향연을 즐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우석이 직접 비서들에게 이 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공동생활을 하라고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만큼은 도문석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시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불만이라면 미스터리 아저씨가 직접 사건을 해결하면 되잖아.”
“미스터리가 아니라니까. 그리고 너나 나나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지닌 부류는 아니잖냐.”
“뭐…… 그렇긴 하지만.”
화염룡이나 미스터 리는 남서진의 무력이나 아이티의 정보 수집 능력 같은 스킬을 지니고 있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은 이번 사건에 그다지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우석은 딱히 이들의 능력 부족을 탓하거나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비서란 존재는 각자만의 자기 담당 분야를 관할하는 게 원래의 업무였다.
전쟁에는 싸움을 하는 병사가 있는 반면, 그 병사를 보조해 주는 의무병이나 통신병도 있었다.
그들 역시 전쟁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화염룡과 미스터 리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우석의 콘텐츠 사업에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요 인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이번 사건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오면서 민혁이 녀석한테 들은 건데, 습격자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하더군.”
“정말?”
“그래. 가만 있어 보자…… 누구였더라? 분명…….”
미스터 리가 몇 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두 남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사카모토 류하고 성진수였나.”
“그 두 녀석이라면 그럴 만도 할 것 같네.”
“뭐야. 의외로 쉽게 납득하네.”
반기를 든 두 남자.
그런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화염룡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여왔다.
미스터 리는 그녀의 그런 반응이 의외로 느껴졌다.
그의 물음에 화염룡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성진수의 경우에는 전(前) 세계의 주인이 이 세계를 통치할 때에도 대놓고 반항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었잖아.”
“하지만 사카모토 류는 다를 텐데. 그 녀석은 오히려 더 순종적이지 않았나.”
“태도는 그랬지. 하지만 눈빛은 달랐어. 뭐라고 할까…… ‘일단 내가 너에게 순응은 하지만, 네 생각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라는 눈빛을 언제나 달고 살았지.”
“그거 참 무서운 녀석들이군.”
“아마 전(前) 세계의 주인도 두 녀석들이 뭔가 나중에 큰 문제를 터뜨릴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아이티와 남서진에게 더 많은 권한과 대우를 해줬겠지.”
“하긴, 생각해보면 아이티나 남서진이 그쪽 분야에선 탑이었지.”
잠시 옛날 일을 되새겨보는 미스터 리였다.
남서진이 말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주먹 쓰는 일 쪽으로는 나름 행동대장이라 불리며 꽤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 왔었다.
아이티는 정보의 신이라는 별칭을 받을 만큼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줬다.
두 비서들에게 밀려 언제나 2인자로 불렸던 두 남자.
이제 그들은 2인자가 아닌 1인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세계의 주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꽤나 위험한 도박수를 띄우다니. 나 같으면 세계의 주인 자리를 노린다든지 하는 그런 배짱은 못 부리겠는데.”
“뭐, 그거야 아저씨니까.”
“내가 뭐 어때서.”
작은 불만을 표출하는 미스터 리에게 화염룡이 솔직한 심정을 들려줬다.
“그런 배포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그거, 욕이냐?”
“그만큼 남을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야.”
“…….”
욕인지 칭찬인지 제대로 구분하기 힘든 화염룡의 말이었다.
* * *
“사카모토 류와 성진수라…….”
당연한 말이지만, 우석이 알지 못하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하기야. 우석이 예전부터 세계의 주인이라는 직함을 계속 유지해 왔던 인물도 아니지 않은가.
그도 갑작스럽게 인수인계를 받은 터라 비서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필요에 따라 아이티로부터 정보를 공급받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막상 두 사람의 이름을 접했어도 별다른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릴리아나와 민혁, 그리고 남서진은 달랐다.
“그 둘이…….”
“어떤 의미로는 납득이 가능한 녀석들이기도 하네요.”
충격을 받은 릴리아나와 다르게 민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어투로 대답했다.
릴리아나를 지나쳐 정신적인 타격이 덜해 보이는 민혁에게 물었다.
“어떤 녀석들이지?”
“아이티와 남서진의 하위호환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각각 무력과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어쩐지…… 그래서였군.”
일본으로 갔을 당시, 우석 일행의 동선과 위치 파악.
그리고 다리를 한 번에 무너뜨릴 법한 괴력.
이 모든 것들이 사카모토 류와 성진수의 소행이었다.
이제야 이들의 습격 과정이 전부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짧게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지휘 계통과 행동 계열.
포지션이 딱 들어맞는 두 사람이 뭉친 덕분에 좀처럼 대응하기가 쉽지 않게 되어버렸다.
한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릴리아나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혼잣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세계의 주인을 모시고 이 세계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야 할 비서가…… 어째서 주인의 목숨을 위협하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게 인간이라는 존재다.”
오히려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던 우석이 짧게 한 마디를 더했다.
“인간은 탐욕스러운 존재.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위를 바라보고, 그리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는 법이지. 그 대표적인 게 바로 ‘금전욕’이다.”
돈은 사람을 유혹한다.
그리고 사람은 늘 그렇듯 돈의 유혹 앞에서 약해지는 법이었다.
우석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돈의 유혹에 넘어간 존재들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돈 때문에 친구를 배신한 자도 있었고.
돈 때문에 연인을 죽인 자도 있었다.
하물며 가족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국 전부 다…….
돈이 문제였다.
돈은 사람에게 물질적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얻게 만들어주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돈의 위력을 뛰어넘는 권력이 존재한다면?
그 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세계의 주인이라는 자리였다.
“금전의 힘을 뛰어넘는 권력의 자리가 있다면, 인간인 이상 한 번쯤은 누구라도 ‘내가 저 자리에 앉는다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법이지. 그리고 그게 심화되면 나중에 가선 시기와 질투, 그리고 배신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지금의 사카모토 류와 성진수처럼.”
“……그래도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릴리아나의 입장에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물론 우석도 그녀에게 사카모토 류와 성진수의 마음을 이해해보라고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는 뼛속까지 비서로서의 충성심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더욱이 우석에 대한 충성심은 이 세계를 통틀어 탑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릴리아나에게 사카모토 류와 성진수 같은 배신자의 심정을 이해해 보라는 말을 하는 건 얼토당토않은 일이기도 했다.
“아무튼 이로서 습격자들의 정체도 밝혀진 셈이니, 이제 조치를 취할 일만 남았군. 아이티.”
“예.”
“최대한 정보를 교란시켜라. 우리가 저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는 낌새를 가급적이면 숨기도록.”
“그 말씀은…….”
“계속 습격자의 정체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는 시늉을 보이라는 뜻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습격자 수색 조사를 멈추게 된다면, 분명 사카모토 류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색을 멈췄다는 소리는…….
범인을 찾았다는 말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의심을 던져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아이티에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계속 습격자 수색 조사를 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김민혁, 남서진.”
“네.”
“너희는 나와 같이 함정을 팔 준비를 한다.”
“어떤 식으로 하시겠습니까?”
민혁의 말에 우석이 이미 구상한 시나리오가 있는 모양인지 말을 빠르게 이어갔다.
“우선 중국 측 업체와 잡은 미팅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에 관한 정보를 일부러 뿌리도록. 분명 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성진수라는 작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낼 거다. 그때 남서진, 네가 성진수를 잡는다.”
“생포합니까?”
남서진의 한마디는 오싹함을 느끼게끔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성진수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 말을 뜻하는 것이었다.
“가급적이면 생포해라. 하지만 만약 생포가 어려울 거 같다면, 죽여도 상관없다.”
“예, 알겠습니다.”
같은 동료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서진은 거리낌 없이 우석의 명령을 받았다.
배신을 한 이상, 더 이상 동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서진은 이런 일에 특화된 남자였다.
설령 한때는 얼굴을 자주 마주했던 동료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려도 그는 세계의 주인이 내리는 말에 충실히 이행하고 복종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김민혁, 너는 나와 같이 미팅을 나가는 척하면서 동시에 보디가드들을 통재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릴리아나.”
“……예.”
힘없이 대답하는 그녀에게 우석이 충고를 들려줬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그 녀석들은 더 이상 네 동료가 아닌 적이다.”
“……죄송합니다, 우석 님.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석의 목숨이 최우선이었다.
그렇기에 릴리아나는 다시 한번 굳은 결심을 다져야 했다.
* * *
데스크탑 앞에 앉아 있던 사카모토 류가 거실에서 몸을 풀고 있던 성진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틀 뒤. 오후 8시, 강남에 위치한 도원궁이라는 한식 가게에서 세계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라고 하더군.”
“드디어 상세 정보가 뜬 건가.”
“그래. 좀 미심쩍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미심쩍어?”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방금 그 말은 잊어라.”
우석의 미팅 정보가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었다.
아이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뭔가 구린 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였으니까.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