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95화
63. 격돌(1)
늦은 취침을 취한 뒤.
오후 2시에 눈을 뜬 아이티의 얼굴에는 말 그대로 불만이라는 감정이 그대로 박혀 있었다.
잠을 자도 불만.
눈을 떠도 불만이었다.
딱히 누군가가 강제로 아이티를 깨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티가 너무 잠을 안 자고 조사에만 몰두를 하는 덕분에 릴리아나로부터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들으며 강제 취침을 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감히 아이티의 단잠을 깨우겠는가.
보통 같으면 저녁에 눈을 뜨는 것이 정상이었을 테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오늘도 달랐다.
아이티가 이곳, 반드 미디어 빌딩으로 거주지를 옮긴 이후.
그는 제대로 된 잠을 취할 수 없었다.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잠을 안 자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눈만 감으면 그의 아지트에 두고 온 모니터들이 아련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지금쯤이면 먼지가 쌓여 있을지도 모르는데…… 적어도 먼지 정도는 털어줘야 하는데…….”
연신 모니터 걱정뿐이었다.
자신의 안부보다 모니터가 더 신경이 쓰였다.
그게 아이티라는 남자였다.
한편, 아이티와 졸지에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남서진이 양치질을 하면서 이제 막 눈을 뜬 그를 응시했다.
“일어났나.”
“……어. 근데 웬 양치질이냐.”
“점심 먹었으니까.”
“점심밥을 먹고 양치를 한다고?”
“상식 아닌가.”
“……전혀.”
아이티에게 양치는 하루 세 번이 아닌 하루 한 번뿐이었다.
하루에 한 번 하는 것도 사실은 그에게 있어선 많은 편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한 번의 양치질이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나 남서진은 달랐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의외로 청결한 면모가 있었다.
전(前) 세계의 주인이 이 세계를 다스리고 있을 시절 때도 알지 못했던 남서진의 청결한 면모를 이번 동거를 통해 본의 아니게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한들, 남서진의 이런 습관이 지금의 상황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습격자들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
그리고 녀석들을 소탕하는 것.
이 두 가지가 현재 아이티가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목표이기도 했다.
습격자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선 집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곧…….
그의 사랑스러운 모니터들과의 재회도 강제적으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건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아이티는 연신 밤을 지새우며 수색 활동에 임했다.
하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습격자의 정체는 드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아아아…… 진짜 진이 다 빠지네.”
다시 컴퓨터 의자에 앉은 아이티가 깊은 한숨을 자아냈다.
조사를 해도 마땅한 증거가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비서라는 존재로 한정을 지어도 마찬가지였다.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모든 비서들을 추궁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다.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그 방식을 실행하는 도중에 습격자들이 먼저 칼을 뽑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우석이 원하는 건 습격자들이 먼저 아군을 공격해 오기 전에 미리 정체를 파악해두는 것이었다.
누구인지 미리 파악을 해두면 대처하기도 훨씬 수월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좀처럼 일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아직도 많이 헤매고 있는 거 같은데.”
남서진이 터벅터벅 걸어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물음에 아이티가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은 채 입을 열었다.
“뭐…… 그런 셈이지.”
말이야 쉽지, 결과물이 곧장 뚝딱 나올 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분명 습격자도 마찬가지로 아이티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뭔가 위장 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일 터였다.
그래서 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있었다.
아이티를 상대로 이 정도 시간을 끌 줄 안다는 건, 웬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뜻했다.
누구일까?
머릿속으로 끊임없는 궁금증이 들었지만, 정체는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희소식이 아니라 달갑지 않은 소식이기도 했다.
“우리가 일본에 있을 때 거주하던 비서들을 위주로 조사해보면 되지 않을까.”
“그것도 나름 조사를 해봤지만, 우리가 아키하바라에 있었을 당시에 그곳에 위치해 있던 비서들의 정보가 없어.”
“그래? 분명 누군가가 있던 기척이 들던데.”
남서진은 감이 좋았다.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지닌 소유자.
그게 바로 남서진이었다.
“다리 밑에 우석 님과 릴리아나 말고 분명 한 명이 더 있었어.”
“눈치채고 있었다면, 바로 그 녀석을 잡아들였어야지. 뭐 했던 거냐, 도대체.”
“만약 내가 그 수수께끼의 인물을 잡기 위해 달려들었다면, 우석 님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랐을걸.”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군.”
헛기침을 내뱉으며 자신의 말을 번복하는 아이티였다.
우석의 목숨과 습격자의 포획.
두 가지는 애초에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최우선적으로 우석의 목숨을 비중 있게 다뤄야 했다.
그가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 말이다.
“우리가 일본에 가 있을 때 그곳에 있던 비서들이 몇이나 되는데.”
“50여 명 정도.”
“일본인 비서들이?”
“어…… 가만, 한 명은 아니었네.”
때마침 일본으로 여행을 갔던 비서가 한 명 있었다.
성진수였다.
“하지만 성진수, 이 녀석은 아키하바라가 아닌 다른 지방 쪽에 있던 걸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지금은?”
“지금도…… 마찬가지군.”
“뭔가 조금 이상하지 않나.”
남서진이 자신의 생각을 툭툭 내뱉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필이면 이 시기에 여행이라니. 아무리 지역이 이상하다 해도 수상한 냄새가 풍기는데. 안 그래?”
“…….”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했다.
습격자들 중에선 아이티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가 존재했다.
그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소재지 정도는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지 않을까?
비단 성진수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당시.
일본에 있었던 모든 비서들이 추적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좋았어.”
남서진의 말이 힌트로 작용한 모양인지 다시금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아이티였다.
그의 손이 빨라지는 걸 목격한 남서진이 입을 굳게 다문 채 그의 방해가 되지 않게끔 배려를 하기 위해서 장소를 이동했다.
* * *
며칠 뒤.
“대, 대표님!!”
이임전, 오태준과 함께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 우석.
그러는 사이에 갑자기 여성 직원이 다급한 표정을 지은 채 회의실의 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었다.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물론 여성 직원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 예의를 따지기 이전에 앞서, 먼저 우석에게 보고를 해야만 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무슨 일인가요?”
오태준이 먼저 여성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물었다.
그러자 여성이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게…… 바, 방독면을 쓴 남자가…….”
“방독면이요?”
“갑자기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이임전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난데없이 방독면을 쓴 남자라니.
서두가 너무 지나치게 생략이 되어 있던 탓에 이임전과 오태준은 여성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방독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우석만이 단번에 이해를 하는 데에 성공했다.
“회의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지요.”
“예?”
“대표님.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나중에 제가 따로 다시 회의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혜 씨.”
“네, 네!!”
졸지에 이름을 호명 당한 여성 직원이 긴장에 물든 목소리를 냈다.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던 우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방독면 남자, 이곳 회의실까지 데리고 와주세요.”
* * *
“……위험하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사카모토 류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청각이 좋은 성진수가 티비에서 눈을 떼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또 무슨 일인데 그러냐.”
“아무래도…… 우리 정체가 들킨 거 같다.”
“뭐어?!”
아무런 과정 없이 결론만을 담담하게 말하는 사카모토 류의 발언에 성진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정체가 밝혀졌다니.
그 말은 곧…….
“세계의 주인이 우리가 습격자의 정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뜻이야?”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가능성의 문제라니…… 그게 무슨 뜻인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
“아이티가 사고 당시, 일본 전역에 있던 비서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어. 그중에 특히나 네 신원 조사에 관한 건수가 가장 많았고.”
“나……???”
“그래. 아이티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건, 다시 말해서…… 들키는 건 시간문제라는 뜻이겠지.”
“방법이 없는 거야?”
“없어.”
“하아…… 미칠 노릇이네. 아직 작전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곤란하잖아.”
“그렇다고 작전까지 실패로 돌아간 건 아니다.”
사카모토 류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을 이어갔다.
“현(現) 세계의 주인이 중국 업체와의 미팅을 가지기로 스케줄을 잡은 날짜는 이틀 뒤. 그때까지 도망 다니다가 마지막에 칼을 뽑아 이우석이라는 작자의 목을 치면 된다.”
“그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란 셈이군.”
“아마도 그렇겠지.”
거의 확실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이들은 두 번 다시 이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걸 아주 잘 알기에 어떻게 해서든 마지막 기회를 최대한 살려야 했다.
이미 정체가 밝혀졌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시간 지체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제는 정말로…….
모 아니면 도였다.
* * *
반드 미디어 사무실에 가급적이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아이티.
그러나 결코 가볍게 넘길 만큼의 무거운 정보를 알아낸 덕분에 이렇게 직접 우석의 면전 앞까지 걸음을 옮겨 찾아오게 되었다.
아이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릴리아나와 민혁, 그리고 남서진 역시 회의실로 호출되었다.
“대충 다 모였나 보군.”
“예, 우석 님.”
릴리아나가 핵심 멤버들이 총 집합했음을 알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우석이 아이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슬슬 용건을 말해보도록.”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티.
방독면 마스크를 쓴 덕분에 그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진 않았다.
그 탓에 비서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귀를 쫑긋 기울여야 했다.
모두가 그의 말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을 무렵.
아이티의 입에서 놀라운 발언이 새어나왔다.
“습격자들의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저, 정말로……?!”
릴리아나가 너무 놀란 나머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러더니 이내 자신의 행동에 창피함을 느낀 나머지 얼굴을 붉힌 채 다시 제자리에 착석했다.
그녀와 다르게 남서진과 민혁, 그리고 우석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아이티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어차피 아이티에게 수색 의뢰를 한 이상, 습격자들의 정체는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였을 뿐.
정체를 밝힌다는 것에 대한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인지 말해보도록.”
우석의 재촉에 아이티가 빔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이윽고 두 명의 남자가 스크린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진수. 그리고 사카모토 류라는 녀석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