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91화
62. 다가오는 위기(3)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우석이 가장 먼저 할 일은 비서들을 소집하는 일이었다.
주말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반드 미디어 사무실 안에는 우석의 호출을 받고 출동한 비서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출석을 할 것.
그게 우석이 내린 명령이었다.
그 때문일까.
우석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던 도문석 역시 졸지에 반드 미디어 사무실 구경을 하게 되었다.
“조기축구회 있었는데…… 하아.”
“지금 조기축구회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고, 아저씨.”
화염룡이 도문석에게 축구 경기 내에서도 당해보지 못했던 강한 태클을 걸어왔다.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지금은 비상사태였다.
현(現) 세계의 주인인 우석이 정체 모를 적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으니 말이다.
제아무리 우석의 밑으로 들어가는 걸 거절한 도문석이라 하더라도 비서라는 직책을 유지하고 있는 한, 우석의 신변에 위험이 다가오는 걸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세계의 주인이라는 자리가 공백에 들어서게 되면, 이 세계는 혼돈으로 가득 찰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멋대로 세계를 조종하기 위해 나서는 다수의 비서들.
이들을 통제할 수단은 세계의 주인뿐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우석이 비서들의 참석 여부를 물었다.
“전부 다 왔는가.”
“예.”
“하나도 빠짐없이 왔습니다.”
비서들이 목소리를 높여 우석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번에는 저번의 서열 재정리 때와 같이 밝은 분위기의 소집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뭇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우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본에 있을 때, 누군가가 내 목숨을 노리고 습격을 했더군.”
“그 누군가의 정체는 아직 안 밝혀졌습니까?”
민혁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의 물음에 우석이 슬쩍 아이티를 응시했다.
방독면 마스크를 쓴 채 이곳에 참석한 아이티가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비서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심지어 나모영처럼 새롭게 비서로서의 능력을 각성한 이들도 있었다.
신인 비서들을 비롯해서 은퇴한 비서들까지 전부 다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작업은 꽤나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우석도 지금 당장 결과가 나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우석을 습격한 이들도 바보는 아닐 터.
바로 들킬 증거 같은 건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석이 정보의 신이라 불리는 아이티까지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최대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면서 움직일 터.
그러면 더더욱 습격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힘들다.
게다가 습격자가 정말로 우석의 추측대로 비서라고 한다면, 아이티의 작업 속도는 더더욱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정보의 신이라 하더라도 같은 등급의 비서를 상대로 정보 조사 능력을 발휘할 때에는 제법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아직 범인들의 정체를 밝혀내진 못했다고 하는군.”
“큰일이군요.”
민혁의 말대로 지금 상태는 위기였다.
누군가가 우석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습격자의 정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석을 노리는 목적이 무엇인지조차도 알아내지 못했다.
“일이 벌어진 이상, 아이티가 범인을 찾아내기 전까지 당분간은 비상 체제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우석의 말에 비서들이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비상 체제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우석이 고개를 돌려 릴리아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릴리아나가 비서들의 앞에 마주선 채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했다.
“현재 자취를 하고 있는 비서들은 전부 이곳 반드 미디어 빌딩으로 와 생활하도록 한다. 기간은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
“세상에…….”
비서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특히나 아이티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방독면 마스크 덕분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굳이 내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 잘 되었다.
처음부터 반드 미디어 빌딩 내에서 생활하고 있던 반도체는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그 외의 비서들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그렇다고 이들을 뿔뿔이 떨어뜨릴 수도 없었다.
습격자는 우석을 노리고 있다.
그 말은 곧, 우석과 관계된 이들도 충분히 노릴 수 있음을 뜻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너희들도 타깃이 될 수 있다. 당분간만 참으면 되니 토를 달지 말도록.”
우석의 명령인데, 누가 감히 불만을 제기하겠는가.
그러나 여기서 예외적인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저는 어찌하면 됩니까?”
바로 우석의 비서라고 보기에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도문석이었다.
그의 물음에 우석이 쓴웃음을 보여주면서 입을 열었다.
“너는 그냥 자택에서 생활해도 될 거 같군.”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서열상으로는 우석의 비서 라인에 분배되어 있는 도문석이었지만, 그는 애초에 우석에게 있어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역할을 맡는 비서가 아니었다.
필요에 따라 우석에게 협력을 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구태여 그가 습격자의 타깃이 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도문석보다 더 인질로서 값어치가 있는 비서들이 즐비하는데, 굳이 그를 노릴 필요가 있을까?
우석이 생각한 바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도문석에게는 자유를 부여하게 되었다.
비서들 몇몇이 도문석에게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왔지만, 그래도 우석을 따르기로 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임시 거주지로 이동하도록. 그리고 김민혁.”
“예, 우석 님.”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머리 쓰는 놈들이 아닌 주먹 좀 쓸 줄 아는 놈들로. 아는 자들이 있나?”
“물론이지요.”
화술 덕분에 꽤나 넓은 인맥망을 구축하고 있는 민혁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게 된 우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추가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고용비는 상한선 없이 제공할 터이니 실력 위주로 뽑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서진.”
“……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남서진이 낮은 목소리로 그의 부름에 답했다.
“이번에는 네 역할이 상당히 클 거다. 잘 숙지하도록.”
“……알겠습니다.”
평소에는 할 일 없는 잡일 담당 취급당하던 남서진.
그러나 이번 사건만큼은 그가 에이스였다.
* * *
우석을 따라 한국으로 귀국한 성진수가 유독 뒤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한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만 좀 해라. 그러다가 땅 꺼진다.”
“네 녀석이 작전에 성공했더라면, 한숨 쉴 일도 없었을 거다.”
“어쩔 수 없잖냐. 설마 거기서 남서진 녀석이 튀어나올 줄은…….”
성진수의 입장에선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정확하게 우석의 머리 위에 시멘트 조각들이 떨어지게끔 다리를 무너뜨리는 데에 성공한 성진수.
그러나 중간에 남서진의 빠른 합류로 인해 두 남자의 계획은 무산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역시 남서진…… 나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 답다니까.”
“남서진은 그렇게 생각 안 할 터인데.”
“에이, 그럴 리가.”
“내 정보에 의하면 아마 높은 확률로 맞을 거다.”
“……쳇. 그러는 너야말로 라이벌인 아이티한테 계속 밀리고 있잖냐.”
아이티라는 이름이 거론되자, 성진수의 동료인 사카모토 류의 미간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내 앞에서 그 녀석 이름은 꺼내지도 마라.”
“뭐 어때서. 네가 좀 더 정밀한 정보를 제공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다. 적어도 남서진이 근처에서 대기 중이란 사실 정도는 파악했어야 했잖냐.”
“시끄럽다. 나도 결재만 받았더라면, 정보 면에선 아이티 녀석을 짓밟을 수 있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들은 우석의 허락 없이 멋대로 비서의 능력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아이티와 호각을 이룰 정도로 뛰어난 정보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카모토 류.
그의 능력 덕분에 아이티의 수색에 두 사람이 걸려드는 시간은 꽤나 지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명확히 한계가 있었다.
세계의 주인으로부터 결재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멋대로 비서의 능력을 한계치 이상으로 사용하는 이들.
언제까지 이런 과부화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 전에 끝을 봐야 했다.
우석을 암살해 세계의 주인의 자리를 빼앗아오느냐.
아니면…….
이들이 우석의 손에 죽느냐.
결국 누가 먼저인지의 싸움이었다.
“자, 바로 가자고.”
“……쳇.”
성진수의 말에 짧게 혀를 찬 사카모토 류.
마음에 들지 않은 파트너의 실패였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한 배를 탄 이상, 끝까지 같이 해야 하는 운명공동체였으니까.
* * *
“…….”
월요일 오전.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이임전은 멍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저기…… 혹시 뭐 하시는 분들이신지…….”
영화, 혹은 뉴스에서 자주 봤던 우락부락한 덩치의 남자들이 각을 잡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임전이 말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다부진 체격과 팔뚝에 새겨진 문신.
그리고 소위 말해서 깍두기 형태의 얼굴형이 누가 봐도 조직폭력배임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설마…… 대표님께서 사채업자한테 채무라도 지신 건가?!’
별 생각이 다 드는 이임전이었다.
그러나 한 발 늦게 출근한 김민혁의 등장으로 인해 그의 추측이 헛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민혁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깍두기 남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그에게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덕분에 근처에서 겁에 질린 채 업무를 보는 척을 하고 있던 사원들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한편, 이들의 기습 인사를 받은 장본인, 김민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니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냐.”
“대략 30분 전부터입니다.”
“니 녀석들이 여기서 진을 치고 있으니까 직원분들이 잔뜩 겁먹었지 않았냐. 어찌할 거냐.”
“그, 그건…….”
“죄송합니다, 형님!!!”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님!!!”
“……알았다. 알았으니까 일단 나 따라와라. 곧 있으면 너희 큰형님께서 오신다고 하니까.”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이우석 큰형님이십니까?”
“그래.”
“예, 알겠습니다. 아그들아! 큰형님 오신단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예!!”
시선 강탈자였던 깍두기 남자 10명을 대회의실 안으로 안내한…… 아니, 거의 내쫓다시피 한 김민혁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이임전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미, 민혁아. 저 사람들, 뭐냐?!”
“아…… 그냥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동생들입니다.”
“도, 동생들?”
“예. 그렇습니다만.”
“혹시 대표님께서 채무를 지거나 그런 건…… 아니지?”
“하하하! 반드 미디어 재정 상황이 어떤지는 이 부장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회사에 빚 같은 건 없습니다.”
“그…… 렇긴 하지. 그래도 혹시 내가 모르는 과거사가 있나 싶어서 그랬었지.”
“우석 님만큼 깨끗하신 분이 또 어디 계시다고요. 그 점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임전을 안심시켜주기 시작하는 김민혁이었다.
물론 우석이 깨끗한 사람이란 말은 거짓이었다.
이우석이라는 남자로 두 번째 인생을 살기 전.
라울 더 그레이너란 사람은 돈의 왕으로 불림과 동시에 더러운 일도 서슴지 않고 시행했던 인물이기도 했었다.
물론 그 각오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손을 더럽힐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 마음가짐이 우석의 무서운 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