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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178화 (177/201)

갑질의 신 178화

59. 서열 재배치

우석에게 충성을 맹세한 비서들을 포함해 거기에 더해 도문석까지 참가하게 된 비서 모임.

긴장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 나모영이 바로 옆에 서 있는 화염룡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기…… 선배님.”

“응? 왜?”

선배라는 말 때문일까.

화염룡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새겨졌다.

“예전에도 이런 모임 같은 걸 자주 가지고 그랬나요?”

“아니. 최근부터였어.”

“아하…… 그런데 서열이라는 게 뭔가요? 아까 오면서 얼핏 들은 거 같은데…….”

“그냥 우석 오빠가 비서들을 놓고 서열을 지정해 주는 거야. 서열이 높으면 높을수록 비서들의 관계 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그러던데.”

“그럼 높은 서열일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뭐, 그렇긴 하지.”

“선배님은 몇 위인가요?”

“나? …… 몇 번째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모양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화염룡이었다.

비서들 간의 관계에서 중요하다고 일컬어지는 서열인데, 정작 본인은 스스로의 순위를 가끔 까먹을 때가 있었다.

아직까지 화염룡은 순위에 그렇게까지 크게 마음을 담아두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보다 순위가 높은 비서, 예를 들자면 릴리아나가 강제적으로 이런 일을 추진하자고 주장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따르긴 했다.

한편, 화염룡의 태도에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나모영이었다.

‘그 중요한 순위를 잊고 있었어?!’

그녀의 입장에서 화염룡을 보자면 정도가 지나친 마이페이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화염룡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소봉예화의 인격은 이것보다 더 심했으니 말이다.

잠시 자신의 순위가 몇 위였는지 떠올리기 위해 생각에 잠기는 화염룡.

그때, 한 남자가 대신 답을 내려줬다.

“3위잖아.”

“아! 맞다. 3위였지…… 그런데 너, 또 그거 쓰고 왔어?”

“물론.”

화염룡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바로 서열 2위이자 정보의 신인 아이티가 자신의 얼굴에 착용되어 있는 방독면을 가리켰다.

평소에는 그의 아지트 격인 어두컴컴한 원룸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기에 다른 비서들도 아이티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모영이 일부러 인사를 겸해 남서진과 함께 직접 그의 집에 찾아간 적도 있었지만, 아이티는 나모영에 대해 별로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방구석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모니터보다도 덜한 대접을 받았다는 기억 때문에 사실 아이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깥을 돌아다니는데 방독면이라니.

저번 워크샵 때에도 이런 기이한 그의 모습을 접한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볼 때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너도 정상적으로 좀 행동하고 다녀. 바깥에 누가 방독면을 쓰고 다니니?”

화염룡이 일침을 가했지만, 아이티의 태도는 완고했다.

“나쁜 공기로부터 나의 소중한 몸을 보호하려는 의도일 뿐이야.”

“그런 사람이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놓고,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어?”

“……나에게 최적화된 생활 패턴이니까 신경 꺼.”

“하아. 그래, 알았어.”

화염룡도 더 이상 간섭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티의 방에 처음 갔을 때, 화염룡은 그 장소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트라우마로 남을 지경이었다.

소봉예화라는 인격도 어두운 환경을 좋아해서 가끔 대낮에 커튼을 치고, 불을 다 끄고 다니는 그런 행동을 일삼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티처럼 음식물이라든지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 덕분에 악취가 나거나 그런 수준까진 아니었다.

아이티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래서 화염룡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건 나모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릴리아나도 아이티의 생활 일면에 대해서는 이들과 같은 감정이었으니…… 아이티는 졸지에 여성 비서진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방독면 마스크를 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아이티.

이래 봬도 서열은 릴리아나 다음으로 높은 2순위였다.

“그나저나 우석 님은 아직 안 오신 건가.”

“그…… 런 거 같아요.”

나모영이 화염룡을 대신해 그의 말을 받아줬다.

우석을 비롯해 릴리아나 역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두 사람은 거의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릴리아나의 부재는 어떻게 보면 납득이 될 만한 요소이기도 했다.

게다가 비서들 중에서 몇몇은 우석과 릴리아나가 서로 교제 관계에 있음을 아는 비서도 있었으니, 그 정도면 이미 할 말은 다 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비서 소집일을 놔두고 따로 연인으로서 애정행각을 벌이기 위해 늦을 거란 뜻도 아니었다.

아직 약속 시각이 채 되지 않았을 뿐.

“5분 정도 남았나.”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소집까지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는 화염룡.

동시에 방 내부를 쭉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존의 멤버들이었던 민혁과 서진을 포함해 이번에 새로 합류하게 된 미스터 리와 반도체, 도문석, 그리고 옆에 있는 나모영까지.

‘비서들은 다 모인 거 같네.’

릴리아나를 제외하면 도합 8명의 비서들이 모인 셈이었다.

이제 우석과 릴리아나까지 합류하게 되면 총 10명이 된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비서 규모가 많이 확장되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우석은 계속해서 비서들을 섭외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콘텐츠 사업이 부흥하면 할수록 보다 더 많은 인재들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각자 성향에 맞는 비서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을 무렵이었다.

끼익!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금발의 미인이 비서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곧 있으면 우석 님께서 오실 테니 각자 자리에 가서 앉도록 하세요.”

“예.”

“알겠습니다요.”

비서들이 각각 릴리아나의 말에 대답하며 원하는 자리에 가 앉기 시작했다.

딱히 지정석이 없었기 때문에 원하는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화염룡과 나모영은 당연하게도 아이티에게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위험 요소를 피했더니 또 다른 위험 요소가 바로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실례하지.”

자연스럽게 화염룡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된 도문석이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런 도문석을 보자마자 화염룡이 눈을 흘겼다.

“다른 곳으로 가. 왜 하필이면 내 옆이냐고.”

“자리가 여기밖에 없으니까.”

“그럼 서 있든가.”

“이런. 나한테 상당히 매정하게 구는구만. 마땅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그건 네 가슴 위에 손을 올리고 양심에게 물어봐. 정말 잘못한 게 있는지 없는지 말이야.”

어차피 잘못한 일이 없다 해도 화염룡은 기본적으로 도문석이랑 잘 안 맞았다.

차라리 릴리아나와 어울리는 게 훨씬 더 속 편할 지경이었다.

“그보다 요즘 몸 상태는 괜찮나 모르겠군.”

도문석이 안부 겸 건강 여부를 물었다.

그러자 화염룡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의 물음에 간단히 답을 들려줬다.

“너무 건강해서 고민이 될 정도야.”

“하하하. 우석 님과의 여행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나 보구만. 다행이군.”

“……그러게. 넌 진찰만 하고, 해결은 우석 오빠가 해줬지.”

“대신 문제의 원인도 우석 님이었지만.”

“…….”

“뭐, 의사들도 어려워하는 게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깃든 골병이니까. 굳이 내 손을 거치지 않았어도 환자의 병이 별문제 없이 치료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대만족이지.”

그것만큼은 진심이었다.

비록 도문석과 여러모로 잘 안 맞는 화염룡이었지만, 적어도 그의 의사로서의 마인드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서로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드디어 이 소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들 모였군.”

비서들의 모습을 일일이 다 확인한 우석이 만족스러운 듯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서 천천히 자리 한 가운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등장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의자에서 일어서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비서 일동.

이윽고 우석이 손을 내저으면서 입을 열었다.

“앉도록 하지.”

“예.”

9명이나 되는 비서들이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제히 의자에 착석했다.

비서들에게 있어서 우석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그가 없으면 비서로서 지니고 있는 특출난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석의 말을 어기게 될 경우에는 천벌을 받는 때도 있었다.

천벌의 강도는 비서가 잘못을 범한 정도에 따라 정해지게 되어 있었다.

물론 이우석 체제로 들어오면서 천벌을 받았던 적이 있는 비서는 아직까지 없었다.

대신 천벌 후보 1순위로 꼽혔던 인물은 있었다.

김민혁.

까닥 잘못했다가 우석에게 괘씸죄로 천벌을 받을 뻔했었다.

그러나 민혁은 그 죄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본인의 서열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노력을 해 우석으로부터 믿음직한 비서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쌓아 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아직까지는 서열 발표가 나오지 않았지만, 민혁은 나름 높은 순위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우석에게로 고정되었다.

그러나 원하는 대답을 얻기에는 잠시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일단 뭐 좀 먹고 시작하지. 점심부터 아무것도 안 먹어서 배가 고프군.”

식사부터 먼저 하고 나서 이야기를 하겠다는 우석의 말에 잠깐 기운이 빠지는 민혁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비서들의 주인은…… 아니, 이 세계의 주인은 바로 이우석이라는 남자였으니까.

그가 원한다면 적어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런 우석에게 감히 식사 대신 서열 발표부터 하라고 누가 닦달을 하겠는가.

그런 덧없는 배짱을 지닌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만찬을 즐기는 도중에도 민혁의 입에선 연이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바로 옆에서 다수의 음식들을 무자비하게 섭취하고 있던 남서진이 별일이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안 먹고 뭐 하냐. 너도 점심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그냥 입맛이 없다.”

빨리 서열 발표가 듣고 싶다.

머릿속에는 온통 자신의 서열이 몇이나 될까에 대한 추측만이 난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는가.

그런 민혁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몰래 지켜보던 우석이 피식 웃음을 토했다.

“지금 당장에라도 결과를 알고 싶다는 눈치군.”

“하하, 제가 티를 너무 많이 냈나 보군요.”

“안달 내지 않아도 된다. 안 그래도 이제 막 발표하려고 했으니까.”

적당히 배도 불렀겠다.

이제 슬슬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우석이 다시금 비서들을 집중시켰다.

“식사도 거의 다 끝나가는 거 같으니 슬슬 발표하도록 하지.”

우석의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예전의 서열 발표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그때는 그냥 의미 없는 서열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관심 없는 어투로 일관하던 화염룡도 이 순간만큼은 잠시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1위는 릴리아나. 그리고 2위는 아이티. 이건 저번이랑 같다.”

여기까지는 민혁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3위부터는 변동이 있다.”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인 민혁.

혹시 3위인가?

설마 했지만 그래도 머지않아 괜한 기대감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화염룡과 소봉예화, 그리고 미스터 리가 공동 3위다.”

서열 순위에서 처음으로 나온 공동 순위였다.

저번과 같은 순위임을 확인한 화염룡은 약간의 아쉬움을 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순위가 급격하게 상승한 미스터 리는 한껏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건 4위.

하나 그전에 우석이 잠깐 서열 발표를 우회했다.

“이다음은 끝에서부터 발표하지. 우선 8위는 도문석이다.”

예상대로였다.

도문석은 다른 비서들에 비해 우석에게 적극적으로 충성을 맹세한 비서가 아니었다.

본인도 납득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금 발표를 통해 민혁은 적어도 꼴찌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꼴찌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는 민혁으로선 천만다행이었다.

“다음으로는 7위. 나모영. 그리고 6위는 반도체. 5위는…… 남서진이다.”

남은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순위가 발표되었다.

그 말은 곧…….

“김민혁은 4위다.”

“……!”

민혁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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