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77화
58. 오빠의 마음(5)
몸풀기를 마친 남서진의 눈매가 순간 매서워졌다.
평소에는 뭔가 무기력한 모습마저 느껴지는 그였지만, 막상 주먹다짐에 들어가면 평상시의 남서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싸움에 미친 광견(狂犬) 한 마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새끼가 어디서 감히……!!!”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남서진의 눈에는 남자의 행동이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느려서 하품이 다 날 지경이었다.
“…….”
남자의 주먹을 가볍게 피한 뒤.
오른 주먹에 살짝, 아주 살짝 힘을 실었다.
이윽고 정확하게 카운터로 남자의 안면에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빠각!!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그대로 코를 부여잡으며 바닥이 널브러지는 남자.
단 한 번의 주먹질에 코뼈가 무너져버렸다.
엄청난 통증이 남자의 안면에 그대로 느껴졌다.
서로 주먹이 교차했지만 남서진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피해 버렸고, 반대로 그에게 주먹을 휘두른 남자는 치명상을 당했다.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어안이 벙벙해지는 남자들.
그러나 자신을 속였다는 것 때문에 남서진과 화염룡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이상철은 무작정 소리를 지르며 그의 친구들에게 덤벼들기를 명령했다.
“뭣들 하고 있어?! 상대는 고작 한 명이라고!! 우리가 동시에 덤벼들면 저 새끼도 별수 없을 거야!”
“그, 그렇지!”
“쪽수로 밀어붙이자!”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제외하고 이상철을 포함해 3명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성인 남자들이 한꺼번에 남서진을 향해 덤벼들었다.
그 와중에도 남서진의 눈은 세 명의 움직임을 끝까지 쫓고 있었다.
이상철과 그의 일당들을 때려눕히라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다름이 아닌 이우석이었다.
그 말인즉슨.
세계의 주인으로부터 자신의 무력에 대한 한계치까지 결재를 얻게 되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남서진을 쓰러뜨리려면 적어도 50여 명이 달려들어야 겨우 땀방울 하나 뺄 수 있을 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그런데 고작 3명이라니.
게다가 이상철을 비롯해 그의 친우들은 정식으로 무투 훈련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기껏해야 학창시절 때 주먹 몇 번 휘둘렀던 게 고작이었다.
그것만 믿고 자신만만하게 까불었지만,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힘을 개방한 남서진의 주먹 한 방에 남자의 늑골이 으스러졌고, 또 한 명의 남자는 두 다리의 뼈가 부러졌다.
이제 남은 사람은 단 한 명.
이상철뿐이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술병을 들고서 남서진을 위협하는 남서진이었지만, 물러서고 있는 쪽은 남서진이 아닌 이상철 쪽이었다.
고작해야 깨진 술병만으로 남서진을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이상철도 그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단 세 번의 주먹질로 자신의 친구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선사해준 남서진.
세 명이 덤벼들었는데도 처리하지 못한 남자를 이상철이 무슨 수로 쓰러뜨리겠는가.
저벅, 저벅.
남서진의 구두 굽 소리가 이상철에게는 사신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처럼 들려왔다.
콰앙!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엉덩방아를 찧은 그.
살짝 자세를 낮춘 남서진이 이상철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묵직하고 거대한 손에 점점 힘이 가해지자, 이상철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야야야야!!! 머, 머리 터져!! 터진다고요!!!”
“내가 앞으로 평생 여자 한 명 안 건드리고 솔로로 살아가겠다고 맹세한다면 이 손을 놓아주마.”
“예, 예에?!”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여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희대의 바람둥이이자 꽃제비, 이상철에게 여자를 포기하라니.
좀처럼 쉽사리 대답을 내지 못하는 이상철의 모습에 남서진이 점점 손에 힘을 가했다.
“아아악!!!!!”
“난 힘 조절에 그다지 자신이 없거든. 까딱하다가 정말로 네 머리통을 터뜨릴 수도 있으니까 빨리 답을 내는 게 좋을 거다.”
“아, 알겠습니다!! 앞으로 여자는 절대로, 다, 단 한 명도 안 건드리겠습니다!! 맹세합니다!!”
“……만약 네가 여자와 만난다는 사실이 내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난 다시 너를 찾아올 거다. 그리고 기억해 둬라. 내가 언제나 널 지켜보고 있을 거란 사실을.”
“히, 히이익!!!”
기겁을 하는 이상철.
너무 겁에 질린 나머지, 바지에 소변을 지리고 말았다.
짧게 혀를 찬 남서진이 그대로 이상철을 놓아주자, 그와 동시에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서진의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선 화염룡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줌 지리는 꽃제비라니. 참으로 멋없네.”
“……그보다 뒷수습은 어떻게 할 거지?”
“그건 걱정하지 마. 사기꾼이 다 알아서 처리해 줄 거니까.”
“사기꾼?”
“누구인지 너도 잘 알잖아?”
“……김민혁이군.”
“정답.”
어쩐지.
소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클럽 직원들은 구태여 이 상황을 수습하려고 전면으로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 이제 끝났으니 신경들 쓰지 마시고 열심히 즐겨주세요.”
“뒤처리는 저희가 알아서 다 하겠습니다.”
쉬쉬 무마시키려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남서진이 별일이라는 식으로 혀를 찼다.
“도대체 그 사기꾼이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러지?”
“글쎄. 뭐, 알아서 잘했겠지.”
“……그렇군.”
이것으로 우석이 내린 명령 이행은 끝이 나게 되었다.
아직도 기절해 쓰러져 있는 이상철을 내려다보던 남서진이 대뜸 물었다.
“이 남자는 어떻게 하지?”
“그냥 놔둬. 나중에 정신 차리면 알아서 기어들어 가겠지.”
그렇게 말하며 아까 이상철이 터치했던 어깨 부분을 가볍게 손으로 털어내는 화염룡.
그 뒤, 이상철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고 다니면 언젠가는 피를 보는 법이야. 잘 알아둬.”
* * *
다음 날 오전.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릴리아나가 우석에게 어제 있었던 일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우석이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뒤처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김민혁이 알아서 처리하고 있습니다. 다방면으로 알고 지내는 인맥들이 꽤 있다면서 본인한테 맡겨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군.”
“그리고 우석 님께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뭐지?”
“비서 서열 재배치 발표에 대해서입니다만…….”
“아, 그랬었지.”
본래대로라면 근래에 비서들을 불러보아 새로운 서열 정리를 발표하기로 했던 우석이었지만, 연주의 일 때문에 워낙 정신이 없던 나머지 그 일을 뒤로 미루게 되었다.
그러나 남서진과 화염룡, 그리고 김민혁의 활약으로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된 듯하니, 이제 슬슬 비서들을 소집해 서열 재배치 관련 발표를 할 필요가 있었다.
“내일 저녁 7시로 잡도록 하지. 장소는…… 네가 근처에 괜찮은 가게 하나 알아보도록. 가급적이면 조용한 곳으로.”
“예, 알겠습니다.”
계속해서 새로 비서들이 합류함으로 인해 이제는 좀 더 넓은 소집 공간이 필요했다.
예전에는 아이티의 집에서 모임을 가질 정도로 소규모였는데, 이제는 비서들의 인원 숫자도 꽤나 많이 늘었기에 보다 넓은 공간을 빌려야 했다.
그렇다고 우석이 살고 있는 집을 이용하자니,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세계의 주인이니 비서니 하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은 소봉예화의 집이었지만, 거기도 그렇게까지 큰 곳은 아니었다.
‘장소 대여도 생각해 볼 법한 문제군.’
비서 소집 때마다 장소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우석의 기분은 하늘을 찌를 듯 기뻤다.
왜냐하면 이상철이라는 불한당으로부터 연주를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
* * *
그날 저녁.
“……뭔가 이상해…….”
거실에서 가족들과 같이 TV를 시청하던 연주가 대뜸 스마트폰을 보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연주의 반응이 뭔지 궁금한 모양인지 그녀의 어머니가 슬쩍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아는 사람이 있는데 연락이 두절되어서요.”
“아는 사람?”
“워크샵 가서 친해진 사람이 있어요.”
“혹시 남자니?”
“그, 그런 건 아니고요…….”
어머니의 말에 민감히 반응한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한 명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녀의 오빠인 우석.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이들의 아버지였다.
소중한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아버지 입장에선 자연스럽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위험한 녀석한테 걸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이미 우석이 말끔하게 해결해 버렸다.
‘비서들이 있으니 일 처리가 깔끔하고 좋군.’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시 TV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는 우석이었다.
누구든지 연주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있다면, 이우석이라는 무서운 오빠의 벽을 넘어야 했다.
* * *
비서 서열 재배치를 발표하는 날이 다가오게 되었다.
오늘을 가장 기다려 온 비서는 누가 뭐라 해도 바로 김민혁이었다.
“……너, 복장이 왜 그러냐?”
릴리아나가 지정한 음식 가게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남서진이 바로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민혁을 응시했다.
오늘 그의 옷차림은 심히 과했다.
다름이 아닌 턱시도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중요한 날이니까 예의와 격식을 갖춰 차려입고 왔을 뿐이야.”
“중요한 날이라니…… 서열 재배치가?”
“당연하지.”
“……이해가 안 되네.”
남서진은 아직까지 비서 서열이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염두를 두고 있지 않았다.
서열에 딱히 큰 욕심이 없는 남서진과는 다르게 민혁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높은 서열을 차지하고자 과한 의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민혁이 우석에게 첫 만남 때 사기를 치려고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는 꽤나 높은 등급의 서열을 차지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었다.
그 한 번의 실수가 너무나도 뼈아프게 작용한 셈이었다.
그러나 자고로 사람 인생에 있어서 기회란 단 한 번만 찾아오는 게 아니었다.
민혁은 그날 이후로 높은 서열을 차지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우석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콘텐츠 사업 분야뿐만이 아니라 엊그제 있었던 이상철 사건의 뒷수습까지.
최근에는 철수를 대표로 내건 사업이 정식으로 출범되고 안정화를 이룰 때까지 민혁과 그를 따르는 인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기로 협약을 맺었다.
현재 우석이 거느리고 있는 비서 중에서 가장 맹활약을 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함은 단연 김민혁을 꼽을 수 있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기에 오늘은 많은 기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게 입구를 통과해 지정 장소로 향하는 남서진과 김민혁.
커다란 룸 형태로 되어 있는 공간 안으로 입성하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비서가 손을 흔들며 두 남자에게 인사를 해왔다.
“오랜만이네, 김민혁. 그리고 옆에는…… 남서진이었나?”
“오, 의사 아저씨잖아?”
허름한 옷차림으로 이곳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던 도문석이 민혁의 말에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의사 아저씨가 뭐냐. 그냥 형이라고 불러.”
“형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아.”
“시끄럽다. 그나저나 비서 서열이라니…… 이번 세계의 주인은 참으로 특이한 걸 많이 하는구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거잖아.”
전(前) 세계의 주인보다 현(現) 세계의 주인인 이우석이 보다 더 재미있는 존재였다.
그건 민혁이 장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