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75화
58. 오빠의 마음(3)
연주가 봐뒀다고 하는 음식 가게로 향하게 된 여성 멤버들.
주문한 닭갈비를 내려다보던 연주가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얼마 전에 모 음식 프로그램을 봤는데, 닭갈비가 나왔거든요. 그거 보고 요즘 들어 닭갈비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빠는 바빠서 좀처럼 같이 가주지도 않고…… 그래도 언니들이랑 이렇게 오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그렇군요. 마음껏 드세요, 아가씨.”
“네!”
기운차게 대답하는 연주.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릴리아나였지만, 화염룡은 작은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했다.
“매운 건 질색인데…….”
“조용히 해. 아가씨한테 들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알았어, 알았어.”
화염룡의 바로 옆에 앉은 릴리아나가 그녀에게 주의를 줬다.
릴리아나에게 있어서 연주는 거의 우석과 동급인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우석의 부모님 역시 같았다.
우석이 가족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만큼 릴리아나 역시 우석의 가족들을 성심성의껏 대우해 줬다.
그러나 화염룡은 달랐다.
“연주야.”
“네?”
“너 말이야. 최근에 남자친구 생겼니?”
“……!!!”
순간 릴리아나와 나모영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신중하게 접근하려 했던 대화 주제를 화염룡은 아주 거침없이 내뱉어버렸다.
애초에 화염룡이 이곳에 오게 된 것도 간단했다.
릴리아나와 나모영. 두 사람은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순진한 여성들이었다.
비록 릴리아나가 우석과 이성교제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우석이 첫 남자친구인 데다가 연애 경험도 우석과 사귄 것이 전부에 불과했다.
나모영은 그보다 더 심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자친구를 사귀어본 경험이 없었다.
물론 두 여자 다 고백은 많이 받았었다.
릴리아나의 경우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나모영 역시 마찬가지로 일반인 기준 이상의 미모를 지니고 있었기에 주변 남자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고백을 받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아서, 그리고 ‘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딱 들 만큼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어서 여태까지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다는 사실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연애 경험이 깊지 않은 건 화염룡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들 중에서 그나마 남자란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축에 속했다.
평소에도 클럽 같은 곳에 자주 가곤 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낯선 남자와 육체관계를 가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클럽이라는 문화가 좋아서 가는 것일 뿐. 딱히 남자가 고파서 그곳에 자주 출입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여하튼 릴리아나와 나모영이 남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염룡이 지원군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화염룡이 있으면 그래도 이야기의 화두를 자연스럽게 연애 쪽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던 두 여자.
하나 화염룡의 언어 선택은 자연스럽다기보다는 갑작스러웠다.
“여, 연애…… 요?!”
“응.”
“그, 그게…….”
연주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원고 이야기보다도 훨씬 더 말을 꺼내기 어려운 소재였다.
그보다.
“왜 갑자기 연애 이야기를…….”
화염룡이 뜬금없이 연애를 언급하는 게 뭔가 좀 이상하긴 했다.
순간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 릴리아나.
‘이러다가 우석 님이 우리보고 아가씨의 속마음을 알아보라고 했다는 게 들통나기라도 한다면…….’
분명 연주에게 미움을 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 일은 철저하게 극비를 유지해야 했다.
만약에 우석이 얽혀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연주는 절대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나모영의 독심술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녀는 비서로서 능력을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에 불과했다.
시전 대상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면 적어도 그에 관한 화제에 신경이 집중되게끔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연애 이야기 쪽으로 대화의 흐름을 주도하려 한 것이었다.
화염룡을 노려보다시피 눈을 흘기는 릴리아나.
이 모든 위기가 그녀의 폭탄발언 때문에 발생한 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염은 침착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자신이 연애 관련 소재를 꺼낸 이유에 대해 말해주기 시작했다.
“예전에 봤을 때에 비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더 꾸미고 다니기 시작하는 거 같아서 말이야.”
“제가요?”
“패션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예전에는 전혀 안 하던 화장을 요즘은 하고 다니기도 하고.”
“…….”
“본래 여자란 변화무쌍한 존재이기도 하지. 하지만 여자를 변화시키는 건 외부 환경의 요인이 가장 커. 그리고 그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바로…… 좋아하는 사람의 존재 여부지.”
“그건…….”
“내 말이 틀려?”
“…….”
화염룡은 처음부터 끝까지 직설적인 발언만을 유지해가고 있었다.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건 화염룡의 성미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었다.
기왕 정했으면 빠르게 일을 추진하라.
그게 바로 화염룡의 마인드였다.
“그러니까…….”
대답을 망설이기 시작하는 연주.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모영이 눈짓과 손짓으로 화염룡과 릴리아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갈등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될 거 같아요.’
‘오케이.’
화염룡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화염룡의 무대포와 같은 방법이 연주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가고 있음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하는 중이던 릴리아나는 속으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신중하게, 그리고 연주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끔 배려를 하며 다가가려 했으나…….
기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었다.
기왕 벌어진 일, 화염룡의 방식을 따르는 수밖에.
“아가씨. 괜찮으시다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할게요.”
“정말…… 이요?”
“……예, 물론이죠.”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이상철이라는 남자에 대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분석을 해 우석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그게 현 릴리아나의 입장이었다.
선의의 거짓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순진한 연주를 속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 릴리아나였다.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녀였지만, 그래도 우석의 명령을 따르려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릴리아나의 발언에 용기를 얻은 걸까.
연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괜찮을 거 같아 보이는 남자가 한 명 있거든요.”
“괜찮을 거…….”
“……같아 보이는?”
화염룡과 릴리아나가 연주의 말을 되새기며 물었다.
이해가 잘 안 가는 어투였다.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거지, 괜찮을 거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연애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이 마음이 사랑이라는 감정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신경 쓰이는 남자가 있다는 건 사실이구나?”
“……네.”
화염룡의 확인차 던진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들려주는 연주였다.
동시에 화염룡과 릴리아나의 시선이 연주 옆에 앉은 나모영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나모영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주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그 남자분은 혹시…… 같은 학과 동기분이신가요?”
이상철이라는 남자에 대한 신상명세는 이미 릴리아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제 아이티를 통해서 이미 정보란 정보는 다 얻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아는 내용을 질문한 건 자신은 이상철이라는 남자를 모른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이야기의 화두를 계속 신경 쓰인다는 그 남자 쪽으로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릴리아나의 두 번째 물음에 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기예요.”
“어떻게 하다가 알게 되었나요? 아니면…… 신경 쓰이는 감정을 지니게 된 계기라든지…….”
“워크샵 때 같이 술을 마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솔직하고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즉, 첫눈에 반했다?”
이번에도 아주 직설적인 질문을 날리는 화염룡이었다.
“반했다기보다는…… 그냥 신경 쓰이는 정도라고 할까요. 그것보다 상대방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다면 남자가 고백하면 받아들일 거야?”
“그것도 좀 고민해 봐야 할 거 같아요.”
“미묘하네.”
아직 본인의 속마음에 대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야.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중인데, 그냥 멋대로 남자와 사귈 생각을 하는 건 잘못되었다.
게다가 첫 연애는 여자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했다.
괜히 잘못된 첫 연애를 보냈다가 나중에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연주처럼 멘탈이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은 젊은 여성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문제였다.
* * *
식사를 마친 이후.
“잘 먹었어요, 언니들. 다음에 또 봬요!”
“그래, 잘 가고.”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아가씨.”
“나중에 봐요!”
연주의 말에 각각 화염룡과 릴리아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모영까지 그녀에게 잘 들어가라는 말을 들려줬다.
식사를 하는 내내 화염룡과 릴리아나는 연주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지 떠보기 위해 여러 번의 시도를 거행했지만, 결과는 영 시원치 않았다.
나모영의 독심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명확하게 속마음이 들려오거나 했는데, 이번에는 뭐라고 할까요…… 상당히 잡음이 많이 껴 있는 상태로 들려서 연주 씨의 본심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모르겠어요.”
“그래도 확실한 건, 적어도 연주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는 거네.”
“네, 아마도요.”
나모영의 말에 화염룡이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알아낸 것도 있었다.
“아가씨가 정말로 본인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도 확인했고.”
릴리아나도 나름 이번 만남의 장을 통해 연주의 현재 상태가 어떠한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우석 오빠에게는 거짓말을 한 셈이네.”
“왜 아가씨는 우석 님에게 남자가 없다는 거짓말을 했을까.”
아직 연주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릴리아나의 질문이었다.
그러자 화염룡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이유야 뻔하잖아.”
“넌 알고 있어?”
“물론.”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답변을 들려주는 화염룡.
그녀의 대답은 이러했다.
“부끄러우니까.”
“……단지 그뿐?”
“응.”
“부끄러울 게 뭐가 있지? 가족이잖아.”
“제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우석 오빠는 남자잖아? 성별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런가.”
“또 무엇보다도 우석 오빠가 연주에게 은근히 애정을 쏟고 있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제3자가 봐도 딱 티가 나는데, 당사자라고 모를까. 만약 그 상황에서 연주가 우석 오빠에게 ‘나, 신경 쓰이는 남자가 있어’라는 말을 꺼낸다면, 우석 오빠의 눈이 뒤집어질 거란 사실은 아마 연주도 잘 알고 있을걸?”
“그건…… 네 말이 맞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마 연주도 은연중에 우석의 그러한 점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비밀로 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선 우석에게 비밀로 할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건 둘째 치더라도.
아직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었다.
애매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연주.
그 덕분에 결과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우석 님께 뭐라고 보고를 해야 한담…….”
졸지에 릴리아나 역시 때아닌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