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74화
58. 오빠의 마음(2)
옅은 숨을 쉬며 단잠에 빠져 있던 아이티.
그런 도중에 난데없는 소음에 화들짝 놀라 깰 수밖에 없었다.
쾅쾅쾅!!!
“……?!”
너무 놀란 나머지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무슨 소리일까.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이티를 강제적으로 깨운 그 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쾅쾅!!
“……누구야, 도대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임을 깨달은 아이티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남의 집 문을 과격하게 두드리고 다니는 불한당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런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불한당, 이우석이 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잘 잤나. 아이티.”
“……우석 님 아니십니까…….”
아직 반쯤 감긴 눈으로 우석을 올려다보는 아이티.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 싶어 방문 목적을 물었다.
그러자 우석이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른 아침부터 과격하게 현관문을 두드린 이유를 들려줬다.
“어제 내가 말했던 그 조사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들으려고 왔다.
“그거라면…….”
“다 끝났겠지?”
“……예.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오늘따라 우석의 태도가 상당히 완고해 보였다.
릴리아나는 우석이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이 발생해도 늘 평정심을 잃지 않던 그가 오늘따라 상당히 감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이런 걸까.
그보다 아이티에게 별도로 조사를 의뢰한 건 또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다수 존재하는 와중에, 아이티가 벽에 걸린 서브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
아이티의 말에 따라 우석, 그리고 릴리아나의 시선이 모니터로 고정되었다.
그곳에는 어느 한 인물의 신상명세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름은 이상철.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인상을 지닌 청년이었다.
“이 사람은…… 새로운 비서입니까?”
“아니, 그럴 리가.”
릴리아나의 물음에 우석이 간결하게 대답을 들려줬다.
적어도 릴리아나가 알고 있는 비서들 중에선 없는 남자였다.
나모영처럼 새롭게 비서로서 능력을 각성한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방금 우석의 말을 통해서 그 추측은 제외됐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미스터리는 아이티의 입을 통해서 밝혀지게 되었다.
“우석 님의 여동생분과 최근에 그렇고 그런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남자야.”
“……그렇고 그런 분위기?”
“어디 보자. 요즘 유행하는 단어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썸 탄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좋으려나.”
“…….”
이제야 왜 우석이 아침부터 이렇게 길길이 날뛰는 것인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답은 연주의 남자관계 때문이었다.
릴리아나는 비서들 중에서 유일하게 우석의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특히나 그의 가족사는 한 번 들으면 결코 잊히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돈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잃었던 우석.
그 미련 때문일까.
우석은…… 아니, 라울은 이우석이라는 남자가 되고 난 이후부터 우석의 가족들을 마치 자신의 진짜 가족들처럼 소중하게 대해주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여운 여동생, 연주에게 찝쩍거리는 남자가 생겼다고 하니…….
어찌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랬었구나. 이래서 우석 님이 아침부터…….’
우석의 심정이 공감되지 않는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러나.
연주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로 밀당하는 식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연주 역시 이상철이라는 남자에게 어느 정도 호감이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가씨가 연애라니…….’
연주의 담당인 릴리아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담당과 작가 사이라 하더라도 연애라는 사적인 분야까지 공유해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릴리아나도 구태여 연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다닐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생활 침해가 될 수도 있었기에 그런 점에 대해서는 신중을 기해왔다.
그러나 우석은 생각이 다른 모양인 듯했다.
“어디서 굴러온 말 뼈다귀 같은 녀석이 감히 내 여동생을 건드리다니…… 릴리아나.”
“예, 우석 님.”
“지금 당장 남서진을 불러서 저 녀석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매장시켜 버리라고 전해라.”
우석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아니, 이게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인지 정확하게 알 방법은 없었다.
어찌 되었거나 지금 릴리아나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우석 님, 우선 진정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진정이라고?”
“예.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까지 저 남자가 아가씨의 정식 남자친구가 아니라는 점에 포인트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티도 말했듯이 단순히 썸을 타는 관계에 불과할 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쩌면 아가씨도 저 이상철이라는 남자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우선 아가씨의 마음을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주는 아직 연애를 하기에는 이르다. 괜히 늑대 새끼들의 농간에 넘어가 마음에 상처만 입을 뿐이야.”
“물론 연애를 통해 아픔을 느낄 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여자로서 성장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우석 님에게 실례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석 님의 독단적인 일 처리로 인해 아가씨의 마음에 상처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듭니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우선 아가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부터 확인을 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겠군.”
우석이 제아무리 감정적으로 돌변한다 해도 옳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의 의견을 싸그리 무시해 버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리고 릴리아나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연주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먼저 확인해 보는 편이 수순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과연 어떤 식으로 연주의 속마음을 알아낼 수 있단 말인가.
어제저녁, 연주는 우석에게 남자가 없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 말은 곧 우석이 직접 연주에게 속마음을 캐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을 얻을 수 없으리란 것을 뜻했다.
아이티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정보의 신은 사람의 마음속까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가만.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는 능력이라면…….”
우석의 주변에 그런 능력을 지닌 자가 딱 한 명 존재했다.
최근에 합류하게 된 비서, 나모영.
그녀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비서였다.
“릴리아나.”
“예.”
“너에게 특명을 내리겠다.”
“특명이라 함은…….”
“나모영과 함께 연주가 이상철이라는 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속마음을 확인해 봐라. 그리고 나에게 곧장 보고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이름하야 연주의 진심을 파악하라.
졸지에 특사로 임명받게 된 릴리아나는 우석의 이런 새로운 일면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삼켰다.
* * *
다음 날.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연주는 불안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그녀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 정문 앞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어제저녁 릴리아나로부터 갑자기 식사라도 같이하자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왜…….”
살짝 불안한 기분도 들었다.
릴리아나는 연주에게 있어서 친한 언니이면서 동시에 원고를 봐주는 담당이기도 했다.
그녀가 직접 보자는 말을 꺼낼 때마다 자연스럽게 현재 휴재하고 있는 원고가 떠올라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물론 릴리아나는 전화상으로 원고에 관한 것 때문에 만나려고 하는 건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충분히 전해주긴 했지만, 듣는 입장에선 여전히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연락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일단 나오기는 했으나…….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어.”
뒤늦은 후회를 해보는 연주였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약속 장소까지 나온 마당에서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릴리아나가 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이윽고 얼마 후.
“아가씨, 여기예요.”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멀리서도 시선을 확 잡아끄는 금발의 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언니.”
고개를 숙이며 릴리아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연주.
아직 그녀는 릴리아나와 우석이 서로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였다.
제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우석 역시 모든 사생활을 오픈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그건 연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석에게 최근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겼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따지고 봤을 때, 우석과 연주가 서로 남매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늦으신 것도 아닌데요, 뭘.”
환한 미소로 릴리아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건네주는 연주.
이윽고 근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럼 밥 먹으러 갈까요? 마침 여기 오면서 괜찮은 식당을 발견했거든요.”
“그전에…… 아직 와야 할 사람들이 안 온 거 같아서요. 조금만 더 기다려도 될까요?”
“와야 할 사람…… 이요?”
“네. 두 명 정도 더 있습니다.”
“……??”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연주는 분명 릴리아나와 단둘이 만나는 약속일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일행이 더 있을 줄이야.
“혹시 어느 분들인지…….”
“한 명은 아가씨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안녕? 우리 귀여운 연주.”
“우와악?!”
화들짝 놀란 연주가 자신도 몰래 릴리아나 뒤로 숨어버렸다.
그러자 릴리아나가 눈을 흘기며 연주를 놀라게 한 장본인에게 경고했다.
“아가씨 놀라게 하지 마, 화염룡.”
“미안해. 설마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그보다 반응이 귀엽네? 놀리는 맛이 있어.”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안 보이는군.”
릴리아나의 고운 미간이 순간 일그러졌다.
연주가 잘 아는 사람이 설마 화염룡일 줄은 당사자도 몰랐다.
“오랜만이에요, 화염룡 언니.”
“그러게, 오랜만이야.”
서로 가볍게 악수를 나누는 두 여자.
사실 연주는 화염룡보다 소봉예화 쪽이 더 친근감이 갔다.
실제로 만난 횟수 역시 소봉예화가 화염룡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화염룡과 연주가 전혀 면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가끔 서로 얼굴을 마주칠 때도 있었기에 어색함 없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럼 남은 한 명은…….”
두 명이라고 했으니, 이제 단 한 명만이 남았다.
그 순간, 릴리아나가 어느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오네요.”
“어디요?”
“저쪽…… 단발머리에 청색 스키니진 입으신 여성분이요.”
나이가 제법 어려 보였다.
적어도 릴리아나나 화염룡보다 연주와 비슷한 또래 나이로 추정되었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릴리아나와 화염룡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한 여성.
괜찮다며 그녀의 말을 받아준 릴리아나가 연주에게 여성을 소개시켜 줬다.
“이분은 나모영 양이라고 해서, 저희 반드 미디어 고객지원부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분이에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모영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왠지 모르게 기운이 넘치는 여성이었다.
그러나 연주는 인사를 나누는 도중에도 머릿속에서 계속 의구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왜 이분들까지 같이 보자고 한 걸까?’
연주로선 릴리아나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통 알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