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166화 (166/201)

갑질의 신 166화

55. 인기 작가의 슬럼프(4)

화염룡의 직설적인 발언에 순간 우석은 반 강압적으로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제3자의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던 도문석은 미묘한 웃음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농담으로 했던 말이었는데 설마 진짜로 사귀고 있을 줄이야…… 세계의 주인님도 제법이시군요.”

“그렇게 되었지.”

별다른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우석이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분위기에 휩쓸려 릴리아나와의 교제를 결정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우석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여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관계를 깊이 가지고 싶어 했다.

그 결과가 연인 관계라는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것보다 우석은 먼저 확인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어떻게 안 거지?”

우석은 릴리아나에게 두 사람이 연인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유지하기로 했었다.

입이 무거운 릴리아나가 사방으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닐 일은 거의 없다 해도 무방했다.

그렇기 때문에 화염룡이 우석과 릴리아나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냥 우연히 듣게 되었어.”

“……그렇군.”

필연을 가장한 우연인지에 대해선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간에 중요한 건 우석과 릴리아나, 두 사람의 관계를 화염룡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그로 인해 화염룡과 소봉예화가 슬럼프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나도 참…… 나름 멘탈이 강하게 단련되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네.”

화염룡의 입에서 자책감에 휩싸인 탄식이 새어 나왔다.

우석도 화염룡의 성격상 이러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리라 생각했었다.

릴리아나와 사귀게 되었다 하더라도 화염룡이라면 ‘축하해’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할 줄 알았었다.

그러나 우석이 생각했던 것보다 화염룡의 마음은 훨씬 더 여리고 세밀했다.

‘여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모르겠군.’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석이 전지전능한 신이 된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소유권을 사들인 남자에 불과할 뿐이지, 신이 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우석이 대뜸 도문석에게 치료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도문석의 시선이 화염룡에게로 향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복잡한 생각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듯한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녀를 응시하던 도문석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요. 화염룡의 마음에 풀릴 때까지 잠깐 그녀의 응석을 받아주는 일도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응석이라…….”

평소에도 워낙 많은 응석을 부리는 화염룡이었기에 구체적으로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선 잘 몰랐다.

도문석이 하고자 하는 말은, 그녀가 미련 없이 우석을 포기할 때까지 같이 잘 어울려달라는 뜻이기도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하지.”

“…….”

우석의 말을 들은 화염룡이 피식 웃음을 토해냈다.

그러면서 가볍게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무슨 애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되겠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실연의 아픔에 잘 듣는 약은 없었다.

그저……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치유되기만을 기다릴 뿐.

화염룡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신경 쓰지 말라며 말을 건넸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우석도 단호하게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마음속에 계속 담아두면 응어리가 지는 법이다. 풀 수 있을 거라면 풀어두는 게 좋겠지.”

“……우석 오빠는 너무 친절해서 탈이라니까.”

긴 머리카락을 쓸어내린 화염룡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그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럼 이번 주 주말, 일정 비울 수 있어?”

“비우는 거야 상관없다만.”

“데이트하러 가자.”

“……데이트?”

“응.”

순간 우석의 머릿속에 한 여인의 이름이 떠올랐다.

릴리아나.

그녀가 화염룡과의 데이트를 용인해줄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진료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우석의 걱정거리를 덜어줬다.

“괜찮습니다, 우석 님. 화염룡의 말대로 해주세요.”

문을 열고 등장한 금발의 여인.

릴리아나의 표정에는 질투심이 아닌 미안함이 어려 있었다.

* * *

토요일 오전.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하는 우석의 모습에 그의 여동생인 연주가 대뜸 질문을 던졌다.

“오빠, 어디 가려고?”

“어.”

“회사? 주말인데 출근하는 거야?”

“아니, 잠깐 속초 좀 다녀오려고.”

“……속초는 왜?”

“그냥. 기분전환 삼아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한다.”

뜬금없이 예정에도 없던 우석의 여행 일정에 연주는 잠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여행을 갈 거라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심지어 저번 주에는 워크샵까지 다녀오지 않았는가.

물론 회사 단체 여행이었기 때문에 혼자 가는 여행과는 사뭇 느낌이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문제가 있었다.

“누구랑 여행 같이 가는 거야?”

정작 연주는 우석이 혼자 속초로 가는지, 아니면 누군가와 동행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여부도 모르는 상태였다.

여동생의 질문에 우석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혼자서.”

“언제 올 건데?”

“당일치기니까 저녁 즈음에는 올 거다.”

“밥은 먹고 오는 거야?”

“어. 내 식사는 따로 챙겨줄 필요 없다고 어머니한테 전해둬.”

“응, 알았어.”

집 바깥을 나오는 동안 우석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거짓말을 해버렸군.”

사실 우석은 혼자서 속초로 떠날 예정이 아니었다.

동행자가 있었다.

친구인 철수도 아니고, 애인인 릴리아나도 아니었다.

화염룡. 그녀와 함께 잠깐 동안 속초행을 택하게 되었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했다.

그녀의 슬럼프를 해결하기 위해 기분이 풀릴 때까지 데이트를 해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연인이기도 한 릴리아나로부터 이미 허락은 구해뒀다.

그렇다 하더라도 낯선 여인과 타지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오는 것도 문제가 될 요지가 있었기에 당일치기를 택하게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선 화염룡도 충분히 납득했다.

애인이 있는 남자에게 데이트를 요구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여기서 더한 요구를 하는 건 민폐였다.

이러한 사정들이 엮이고 엮여 오늘과 같은 여행 일정이 짜여지게 되었다.

차를 몰고 화염룡의 집 앞을 향하는 우석.

머지않아 거의 다 접근했을 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화염룡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석 오빠?

“거의 다 왔다. 슬슬 내려와라.”

-응, 알았어.

미리 화염룡에게 집 바깥에서 대기하라는 전화를 남겨놓은 뒤.

차량을 몰아 그녀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섰다.

그러는 순간, 우석이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순간 다른 여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우석의 차를 발견하자마자 그를 향해 다가온다는 건…….

필히 화염룡이라는 것을 뜻했다.

차 문을 열고서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우석의 옆자리를 꿰차는 화염룡.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우석이 대뜸 이런 말을 내뱉었다.

“뭔가…… 평소와 많이 다른 거 같다만.”

“그런가?”

화염룡이 자신의 치맛자락을 슬쩍 들쳐 보였다.

평소 노출 있는 클럽 의상을 선호하는 화염룡이었지만, 오늘은 느낌이 사뭇 달랐다.

핑크색의 원피스와 흰색의 구두.

화염룡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청초함이 물씬 풍겨왔다.

게다가 화장도 오늘은 과하다 싶은 수준이 아닌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타일을 바꾸기로 결심했나?”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을 거 같아서. 어때, 잘 어울려?”

다시 한번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려 보이는 화염룡이었다.

거의 허벅지 안쪽까지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노출 행동이었다.

“괜찮네. 잘 어울리는군.”

“그래? 오빠 취향에 맞아서 다행이야.”

화염룡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새겨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우석이 속으로 다른 생각을 품었다.

‘옷차림은 바뀌었는데, 행동가짐은 변함이 없군.’

직접 말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우석은 속으로 그녀의 행동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 * *

관광지로도 유명한 속초.

때마침 성수기라 그런지 오가며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차량에서 하차한 화염룡이 기지개를 켜보였다.

“도심에 있다가 외지에 나오니까 괜찮네!”

“저번 주에도 그랬지만.”

아직 워크샵을 갔다온 지 채 3주도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또 한 번 여행길을 택하게 되었다.

물론 우석의 의도는 아니었다.

그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화염룡의 의지가 많이 반영되었다.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이라도 할까?”

우석의 제안에 화염룡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나, 수영복 안 가지고 왔어.”

“바다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나 보군.”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바람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다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옷 젖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혹시 몰라 수영복을 가져왔던 우석이었지만, 그의 철저한 준비성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해수욕장으로 들어서게 된 이들.

성수기답게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바다에 빠져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스마트폰을 들고 여기저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꽤나 많이 보였다.

“저 사람들은 뭐 하고 있는 거지?”

단체로 스마트폰을 들고 뭔가에 열중하는 이들을 가리키며 묻는 우석.

그의 물음에 화염룡이 곧장 대답을 들려줬다.

“게임하고 있겠지.”

“바닷가에 왔는데도 게임이라니…….”

“증강현실 게임이라고 해서 새로 나온 스마트폰 부류 게임인데, 요즘 한창 유행하더라고.”

“증강현실 게임?”

“현실의 배경이나 이미지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띄워서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야. 외국에서 만든 게임이 하나 있는데, 요즘 히트치고 있다고 들었어.”

“근데 왜 하필이면 속초지?”

“우리나라는 아직 정발이 결정되지 않아서 그래. 서비스가 되는 지역이 몇 안 되는데, 속초가 그중 하나더라고.”

“그렇군.”

언젠가는 게임 관련 부분에도 진출할 계획을 품고 있는 우석이기에 화염룡의 이런 발언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나날이 발전해 가는 과학기술.

레디너스 대륙에 있을 당시에는 꿈도 못 꿨을 법한 그런 문명의 발전이었다.

물론 그곳에는 과학 대신 마법이 발달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바닷바람 쐬니까 좋네! 우석 오빠는 어때?”

“나름 괜찮군.”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의 풍경은 워크샵 때 봤던 계곡과는 색다른 기분을 선물했다.

짧은 기간 내에 계곡과 바다, 두 곳을 왕래하게 된 우석.

의도했던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화염룡 덕분에 이렇게 바다를 보게 되었으니 나쁘진 않았다.

“읏차.”

구두를 잠시 벗어둔 화염룡이 천천히 바닷물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맨발 아래로 느껴지는 모래 알갱이들의 감촉.

그리고…….

차가운 바닷물이 시원함을 선사해줬다.

“우석 오빠도 들어와 봐. 기분 좋을 거야!”

“알았어.”

우석도 그녀를 따라 신발과 양말을 벗고 천천히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뒤숭숭한 마음을 치유할 때에는 역시 자연의 경관이 특효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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