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63화
55. 인기 작가의 슬럼프(1)
반드 미디어는 콘텐츠 제작 회사라고 할 수 있었다.
웹소설과 웹툰, 그리고 차후에는 영상화 관련 콘텐츠를 생산해 이러한 것들로 수익을 내는 구조를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있어서 콘텐츠 생산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그게 정말인가.”
“네.”
“……비상사태군.”
우석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반드 미디어가 보유하고 있는 소속 작가진 중에서 간판 작가라 할 수 있는 존재, 소봉예화.
그녀가 난데없이 슬럼프를 선언하게 된 것이었다.
“당사자는 뭐라고 하나.”
“요즘 들어 글이 잘 안 쓰여진다고 합니다.”
“이런…….”
소봉예화는 눈물 비에 뒤이어 두 번째 로맨스 소설 시리즈인 ‘그 남자가 남긴 편지’를 집필 중이었다.
이미 1권 원고 작업에 들어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슬럼프 선언이라니.
신작 기획 단계도 아닌, 이미 플롯까지 다 통과시킨 마당에서 글만 쓰면 되는 상황인데 슬럼프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분명 저번 주까지만 하더라도 작업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알고 있었는데.”
“네, 저도 그렇게 보고 있었습니다.”
릴리아나는 소봉예화의 담당이기도 했다.
간판 작가인만큼 좀 더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기 위해 우석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릴리아나를 직접 붙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럼프라니.
물론 작가라면 한 번 정도는 찾아올 법한 시기였다.
그러나 소봉예화는 달랐다.
그녀는 평범한 작가와는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우석이 거는 기대감도 컸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슬럼프는 우석의 입장에선 차마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내가 결재를 해줬는데도 마찬가지인가.”
“네, 그런 거 같습니다.”
“거 참…….”
비서는 세계의 주인에게 결재라는 식의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그 능력을 발동시킬 수 없었다.
우석은 그녀에게 작품을 집필하라는 허가를 내렸다.
즉, 결재의 여부로 인해 글이 쓰여지지 않는다는 차원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소봉예화는 아직 집에 있나.”
“예, 우선은 자택에서 안정을 취하는 게 좋다고 판단해서 당분간은 집에 머무를 수 있게끔 해뒀습니다.”
“잘했다.”
작품을 집필하는 쪽은 화염룡이 아닌 소봉예화였다.
화염룡의 경우에는 오히려 집에만 가둬놓는 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소봉예화는 달랐다.
중2병인 데다가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하는 소봉예화였기에 아웃도어보다 인도어(Indoor)을 훨씬 더 선호했다.
“바로 집으로 가보자.”
“소봉예화의 집 말씀이십니까?”
“그래.”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릴리아나가 곧장 순간이동 준비를 서둘렀다.
우석의 손을 잡고 소봉예화가 거주하고 있는 자택 쪽으로 순간이동을 선보이는 릴리아나.
눈물 비 웹툰 작화를 담당하고 있는 은지는 소봉예화의 슬럼프로 인해 휴가 아닌 휴가를 부여받고 현재 본인의 집에서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릴리아나의 순간이동이 그녀에게 들통날 일은 없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사이.
소봉예화의 집 거실에 도착했음을 확인한 우석이 곧장 그녀를 찾았다.
“어디 있지?”
“작업실 쪽인 거 같습니다.”
“…….”
그녀의 작업실 문고리를 조심스럽게 잡은 우석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낯선 이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이…… 나를 잡아가기 위해 어둠의 왕국에서 사신을 보내온 게 틀림없어…… 우으으…….”
“아니, 그럴 리가.”
우석이 곧장 소봉예화의 말에 태클을 걸어버렸다.
그녀의 몰골은 말 그대로 가관이었다.
평소에도 음산한 기운을 마구 뽐내는 소봉예화였지만, 지금은 특히나 더 그러했다.
며칠 동안 안 씻었는지 눈곱이 그대로 붙어 있었고, 긴 머리카락은 수컷 사자의 갈기처럼 산발이 되어 있었다.
“완전히 폐인이 다 되었구만.”
아이티보다도 더 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몰골에 우석이 작은 탄식을 자아냈다.
만약 지금 이 상태에서 인격을 교체한다면, 화염룡이 이게 무슨 꼴이냐고 날뛰었을지도 몰랐다.
의자에 걸터앉은 우석이 그녀와의 면담을 시도했다.
“잠은 충분히 잘 자고 있나.”
“잠이라…… 무의식으로 떠나는 여행길에 오르지 못한 것도 꽤 되었을지도…….”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만.’
그녀만의 중2병 대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던 우석이었지만, 그건 한때의 착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슬럼프라고 들었다. 글이 잘 안 쓰여진다고?”
“…….”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소봉예화.
수많은 집필 경력과 무수한 성공 사례를 만들어냈던 스타 작가, 소봉예화가 자신에게 슬럼프가 찾아왔음을 고백한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우석과 만나기 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슬럼프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 슬럼프는 세계의 주인이 부재중이었기에 결재가 없었던 터라 강압적으로 맞이하게 된 것이 불과했을 뿐. 지금처럼 순수한 의미의 슬럼프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슬럼프가 오게 된 이유가 뭐지?”
세상만사 무슨 일이든 간에 결과가 있으면 그 원인도 있는 법.
슬럼프의 원인을 먼저 알아내고자 하는 우석이었지만, 소봉예화의 입에선 만족스럽지 못할 만한 대답이 들려나왔다.
“모르겠어.”
“모른다고?”
“…….”
당사자도 왜 슬럼프가 왔는지 모른다는 말을 들려주고 있었다.
아마 본인도 답답할 것이다.
어째서, 무슨 이유로 슬럼프가 오게 되었는지를 모르니까.
“짐작 가는 것조차 없는 건가.”
“짐작이라면…… 있긴 한데.”
“그게 뭐지?”
“…….”
머리를 긁적이던 소봉예화가 갑자기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아마도 내가 아닐까 싶은데.”
“너?”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봉예화인 내가 아니라 또 다른 내 인격이 문제인 거 같아.”
소봉예화 측에는 마땅히 슬럼프가 올 만큼의 원인이 될 만한 일을 겪지 않았었다.
그 말인즉슨.
슬럼프가 오게 된 원인이 소봉예화의 또 다른 인격인 화염룡에게서 온 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해보고 있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중인격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같은 사람, 그리고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는 존재. 서로간의 인격이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화염룡과 이야기를 해보는 편이 좋겠군.’
상담의 대상자를 소봉예화에서 화염룡으로 바꾸게 된 우석이 곧장 인격 교체를 요구했다.
“화염룡이랑 이야기해 보마.”
“……그건 힘들 거 같아.”
“힘들다니. 무슨 말이지?”
“그게…….”
소봉예화의 표정에 난감함이라는 감정이 어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인격 교체를 시도해 보고 있었는데…… 안 바뀌더라고.”
* * *
똑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부스스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아이티가 알아서 현관문을 열어줬다.
마치 누가 왔음을 알고 있다는 듯한 그런 반응이었다.
문을 열어주자마자 아이티를 찾아온 두 명의 남자가 그에게 각자만의 스타일로 인사를 건넸다.
“안 자고 있었구만. 장하네.”
“……우리 왔어.”
김민혁과 남서진의 인사를 무덤덤한 얼굴로 받아들인 아이티가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괜히 더운 바람 들어오기 전에 후딱 문 닫고 와.”
“하긴…… 날씨가 기가 막히게 덥긴 하지. 안 그래도 폭염주의보 내렸다고 긴급 재난 문자 왔더라.”
민혁도 아이티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대답을 해주면서 걸음을 재촉하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아이티의 방에는 항상 에어컨이 내뿜는 시원한 바람의 냉기로 가득했다.
익숙하게 의자 하나를 찾아 자리를 잡은 민혁이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자, 이건 방문 기념 선물이다.”
“뭔데.”
“아이스크림.”
“……나쁘지 않군.”
시원한 걸 좋아하는 아이티로서는 나쁘지 않은 선물이기도 했다.
물론 그보다 더한 최고의 선물은 모니터였지만 말이다.
“우리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알고 있지?”
아이스크림을 건네준 민혁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아이티도 알고 있다는 듯이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내 입에 물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크게 한 입 베어 문 그가 마우스 위에 손을 얹고서 대답했다.
“K 로지와 M 컬쳐의 소송 진행 상황에 대해 알려달라는 거잖아.”
“잘 아네.”
반드 미디어에 근무하면 한 가지 큰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
아이티를 통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소문을 거듭하고 나서야 그 진위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반드 미디어는 달랐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구태여 인맥을 총동원해 알아볼 필요도 없이 곧장 아이티에게 찾아가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물론 아이티의 정보 이용권이 허락된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민혁은 아주 예외적으로 우석에게 아이티로부터 정보를 공급받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그에게 당당히 정보를 요구할 수 있었다.
프린트를 통해 몇 장의 자료를 출력한 아이티가 도중에 결론만 간단하게 추출해 들려줬다.
“네 예상대로 M 컬쳐가 이길 거 같아.”
“오, 그래?”
“K 로지 쪽에서는 항소 의지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봤자 의미는 없어 보여. 시간 낭비, 돈 낭비일 뿐이지.”
“과연, 그렇구만.”
민혁의 예상대로였다.
한때 사기꾼으로 활동을 했던 적이 있었던 민혁이었기에 어느 정도 법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은 편이었다.
법이라든지 규율, 제도 등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기 편했다.
약삭빠른 그의 두뇌 회전력을 통해 이미 진작부터 M 컬쳐가 법적 분쟁에서 승자의 자리를 차지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업계 내에선 서로 누가 이길지 모르는 치열한 대결 구도라는 말이 오고 가고 있었다.
이미 승패는 진작부터 갈렸다.
아직까지 K 로지 측에서 쉬쉬하고 있을 뿐. 머지않아 M 컬쳐가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일파만파 퍼질 것이다.
아이티의 정보력과 김민혁의 판단력이 만들어낸 고급 정보를 굳이 함부로 외부에 유출시킬 이유도, 필요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민혁은 당분간 자신이 알고 있는 승패의 결과에 대해 그 어떠한 업체와도 공유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우석 님이 지시한 줄타기만 잘해내면 되는 건가…….”
나머지는 민혁이 알아서 해야 할 것들이었다.
그의 능수능란한 화술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터.
그러는 와중에 아이티가 의외의 정보를 흘렸다.
“그러고 보니 소봉예화 녀석, 슬럼프라고 하더군.”
“슬럼프?”
“어.”
“어쩐지…… 그래서 화염룡이 안 보였던 거구만.”
민혁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것보다 아이티가 굳이 왜 이런 정보를 자신에게 들려준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이유는 곧 밝혀지게 되었다.
“슬럼프에 빠진 이유가 뭔지 알고 있냐.”
아이티의 물음에 민혁이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키며 확인하듯 물었다.
“나?”
“어, 혹시 들은 게 있을까 싶어서.”
정보의 신이 오히려 민혁에게 정보를 물어온 것이었다.
순간 헛웃음을 삼킨 민혁이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보는 나보다 네가 더 능통하잖아.”
“내가 알 수 있는 건 객관적인 지표를 지닌 정보뿐. 사람의 마음까지 알지는 못해. 설사 알 수 있다 하더라도 독심술을 지닌 그 신입 아가씨가 알겠지.”
“하긴…….”
아이티의 정보력이 지닌 한계점이었다.
사람의 마음과 같은 주관적인 정보를 알아내긴 힘들었다.
그래서 민혁에게 이런 질문을 해온 것이다.
“짐작은 가지만, 잘 모르겠네.”
“그 짐작이라는 게 뭔데.”
“왜. 너, 혹시 화염룡 좋아하냐?”
“……그럴 리가.”
아이티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은근슬쩍 떠보기 형식으로 물어본 민혁이었지만, 그의 말을 곧장 부정하는 아이티였다.
“뭐, 나도 정확하게 모르는 거니까 섣불리 이야기는 못 해줄 거 같다. 원하는 대답을 못 줘서 미안하다.”
“아니, 됐어.”
급하게 마무리를 짓는 아이티였다.
단순히 정보의 신으로서 가지는 호기심에 불과한 걸까.
아니면 정말 민혁의 말대로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는 걸까.
‘이 녀석, 속을 모르겠구만.’
민혁의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