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153화 (153/201)

갑질의 신 153화

52. 워크샵(Workshop)(3)

우석의 차량을 타고 갈 멤버는 3명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선 한 명은 릴리아나.

우석과 늘 같이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녀의 후발대 잔류는 그리 큰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2명은 외부인이라 할 수 있는 화염룡과 미스터 리였다.

화염룡의 경우에는 평소에도 워낙 반드 미디어 사무실에 모습을 자주 내비치곤 하는 그런 친화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소속을 엄연히 구분 짓는다면 반드 미디어 사원이 아닌 외부 작가였다.

또한 미스터 리는 화염룡과 다르게 사무실에 자주 왔다 갔다 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관광버스를 타고 펜션으로 향한다는 건 많은 어색함을 낳을 수 있을 터였다.

선발대와는 별도의 장소에 차량을 대기시킨 우석이 차 안에서 스마트폰과 함께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릴리아나가 다가와 가볍게 창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도착을 알아차린 우석이 창문을 열어 주자, 릴리아나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우석 님.”

“……그래.”

순간 우석이 자신도 모르게 릴리아나의 전신을 쭉 훑어 내렸다.

허벅지가 그대로 다 드러나는 노출도 높은 짧은 핫팬츠.

타이트한 줄무늬 티 위로 카디건을 걸친 그녀의 모습이 오늘따라 너무나도 눈부셨다.

저번 드라마 제작 사전 모임 파티 당시에도 드레스 차림의 릴리아나를 봤을 때 그저 예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는데, 이런 캐주얼 차림도 상당히 잘 어울렸다.

게다가 이번에는 매번 고집하던 긴 생머리의 헤어스타일이 아닌, 단아하게 한쪽으로 땋아 내린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흠.”

헛기침을 하며 정신을 차린 우석이 트렁크 문을 열어 주었다.

“짐 있으면 뒤쪽에 다 실어라.”

“예.”

작은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은 뒤, 우석의 바로 옆 조수석에 자리를 잡는 릴리아나.

동시에 다른 두 사람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화염룡과 미스터 리는 아직 안 온 건가요?”

“미스터 리는 지금 거의 준비 끝났다고 했고…… 화염룡은 부천역까지 두 정거장 정도 남았다고 연락 왔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우석 님. 제가 다 체크를 했어야 했는데.”

“아니다. 어차피 나야 차량에 대기하면서 할 일도 없었으니까. 그보다…….”

우석의 시선이 다시금 릴리아나의 전신을 향했다.

요즘 들어 한창 미모에 물이 오른 릴리아나의 모습에 우석도 간혹 적잖이 당황할 때가 있었다.

그도 결국은 남자 아니겠는가.

수준급의 미모를 보유하고 있는 미인이 바로 옆에 앉아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가는 건 남자로서의 본능이기도 했다.

“요즘 외형에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것 같군.”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석의 지적은 실로 매우 날카로웠다.

확실히 예전에는 화장기 하나 없던 민얼굴의 릴리아나가 지금은 옅은 기본 화장은 꾸준하게 하는 편으로 변했다.

게다가 옷 같은 것도 예전의 경우에는 실용성과 가격을 가장 중시했다면, 요즘은 트랜드 쪽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이게 다 이우석이라는 남자 때문이었다.

사랑은 여자를 변하게 만든다.

이우석을 향한 릴리아나의 마음이 그녀를 더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예전에는 남자 같은 구석도 있더니, 지금은 그래도 제법 여성적인 티가 많이 난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나, 남자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릴리아나가 얼굴을 붉혔다.

가난이 몸에 밴 탓에 우석에게 못 볼꼴을 몇 번 보인 적도 있었다.

소위 말해서 ‘흑역사’라고 하는 것이 천하의 릴리아나에게도 존재했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우석의 앞에서.

만약 릴리아나의 순간 이동에 공간 개념뿐만이 아니라 시간을 이동하는 개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면, 지금 당장 과거로 이동해 자신에게 여성스러움이라는 것을 몇 날 며칠 동안 교육을 시키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으로 다가오는 한 남자.

부천역 근처 작업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온 미스터 리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석 님.”

“고생이 많군. 표정을 보아하니 컨디션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거 같은데. 밤이라도 샜나?”

“작가와 밤샘 마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2박 3일 워크샵은 마감을 앞둔 작가에게 있어서 다소 무리가 있는 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들의 주인이기도 한 우석이 직접 참가 명령을 내렸으니, 그의 말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작업 속도를 높여 2박 3일 치 분량의 일정을 미리 다 소화해 두고 간신히 후발대 인원들과 합류를 할 수 있었다.

미스터 리의 등장에 이어 곧바로 화염룡이 우석의 차량으로 다가와 손을 흔들었다.

“우석 오빠! 나 왔어!”

“…….”

화염룡의 모습을 보자마자 우석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평소의 그녀답게 노출도가 상당한 의상이었다.

하지만 의상 때문에 한숨을 내쉰 게 아니었다.

“너, 그 짐은 다 뭐냐.”

“이거? 2박 3일 동안 숙박하면서 필요한 것들.”

“…….”

이 부분에서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가지고 온 큰 짐만 하더라도 3개는 된다.

캐리어 하나.

백팩 하나.

그리고 오른쪽 어깨로 짊어진 또 다른 가방 하나.

“누가 보면 피난민인 줄 알겠군. 2박 3일 가는 데에 그리 많은 짐이 필요한가?”

“여자라면 이 정도는 기본 아니겠어?”

“같은 여자인 릴리아나는 캐리어 하나밖에 안 들던데.”

“그건 릴리아나니까.”

그녀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사원들 역시 가방 하나, 혹은 릴리아나처럼 캐리어 하나라는 비교적 단순한 짐 형태를 꾸린 채 이번 워크샵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화염룡의 짐은 너무나도 많았다.

“트렁크에 다 들어갈 수나 있을지 제대로 감도 안 잡히는군.”

“안 되면 나중에 릴리아나가 순간 이동으로 가져다주면 되지. 안 그래?”

화염룡의 말을 듣자마자 지목 대상자가 되어 버린 릴리아나가 표정을 팍 찡그렸다.

“남을 짐꾼 취급하지 마.”

“평소에는 잘하잖아.”

“그건 우석 님께서 명령하신 거니까 그런 거고.”

“하아, 우석 오빠 바라기네, 완전히.”

“충성심이라고 표현해라, 화염룡.”

“알았어, 알겠습니다요.”

오늘 변함없이 두 여인의 말다툼으로 하루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석이야 이런 광경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 온 터라 이제는 많이 적응이 되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릴리아나와 화염룡의 말다툼에 미스터 리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가뜩이나 밤샘 작업을 하고 나서 오르게 된 여행길인데, 그 과정조차 편하게 보이진 않았다.

* * *

부천역에서 차량 이동을 통해 3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냈을 무렵, 드디어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근접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 근처입니다.”

순간 이동을 통해 사전에 직접 답사를 해본 경험을 살려 릴리아나가 내비게이션 대신에 길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교외 지역이라 그런지 이동하는 차량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성수기도 아닌 비성수기 시즌인지라 여기저기 보이는 펜션 근처에서도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게까지 많이 없었다.

우석의 차량이 펜션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때마침 기다리고 있던 남서진이 차량 근처로 다가와 주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유도를 하기 시작했다.

남서진 특유의 무표정으로 차량 유도를 마친 뒤, 차량에서 하차한 우석이 그에게 다른 명령을 내렸다.

“트렁크에 짐이 많다.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힘이라고 한다면 남서진을 빼놓을 수 없었다.

왜소해 보이는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캐리어 2개와 무거운 가방 3개를 짊어진 채 그대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거의 중노동을 강요시킨 수준의 명령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지만, 남서진의 얼굴에는 힘들다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릴리아나와 화염룡은 이번에 새로 합류하게 된 신인, 나모영과 같이 3명이서 방을 쓰게 되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나모영이 남서진을 위해 방문을 열어줬다.

쿠웅!

쿵!

묵직한 소리들이 연달아 그녀들이 묵을 펜션의 방을 채워 나갔다.

“……이 정도면 돼?”

남은 짐이 더 있는지 묻는 남서진이었다.

그의 물음에 화염룡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다 옮겼어. 이제 괜찮아.”

“……그럼 난 또 일을 하러…….”

아직 짐을 옮기지 못한 이들이 많이 있었다.

이미 본인 짐 옮기는 일은 다 끝을 낸 남서진이었지만, 자발적으로 나서서 다른 사람들의 무거운 짐까지 손수 들어주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오랜만에 힘을 쓰는 일이 생겨서 그런 걸까.

남서진의 얼굴에는 귀찮다든지 힘들다는 감정보다는 오히려 기쁘다는 감정이 어려 있었다.

그렇게 여성진들은 남서진의 도움을 받아 짐을 옮기는 일을 끝마치게 되었다.

우석과 미스터 리는 민혁과 남서진, 반도체가 묵기로 한 방에 짐을 옮기기로 했다.

방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서 우석이 특히나 신경을 썼던 것은 반드 미디어 사원들과 비서들을 구분 짓는 일이었다.

반드 미디어와 비서, 두 가지 분야에 모두 소속되어 있는 인물은 회사 측이 아닌 비서 측에 좀 더 비중을 두어 한군데에 모아 두기로 했다.

그 결과가 이런 방 배치를 낳게 되었다.

“아이티는 어디 있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티의 행적을 먼저 찾는 우석이었다.

아무래도 서열 2위인 데다가 최중요 비서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석의 말을 듣자마자 민혁이 손으로 옆방을 가리켰다.

“아이티 녀석은 독방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석 님께서 정하신 겁니까?”

“그래.”

“녀석도 참 골치 아프군요.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방독면 마스크를 쓴 채 그대로 기절하듯 잠이 들지 않나…… 지금은 옆방에서 자신만의 2박 3일 방 세팅을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안 가봐도 어떤 분위기인지 알 거 같군.”

보나마나 뻔했다.

에어컨 가동은 둘째 치고 햇빛이 잘 들지 않게끔 커튼을 치는 건 기본이요,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모니터 몇 개를 벽에 걸어 두면 그야말로 아이티만의 세계가 완성이 된다.

방을 둘러보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아이티의 방이 대충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을지 충분히 감이 잡혔다.

그래도 무사히 잘 적응했는지, 못 했는지 생사 정도는 확인해야 했기에 짐 정리는 후 순위로 미뤄 두기로 하고, 일단 옆방에 있는 아이티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가 끝나자 아이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나다. 들어가도 되나.”

“예”

2박 3일 동안 방 주인으로 활약하게 될 아이티로부터 허락을 구한 뒤 문을 열고 그의 방 전경을 접했다.

그러자 우석의 입에서 역시나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환경이었다.

“너는 정말 빛이라는 걸 싫어하는 것 같군.”

“햇빛은 별로 안 좋아합니다. 살이 타거든요.”

“햇볕 몇 번 쬔다고 선탠 수준으로 살이 타거나 그러진 않는다. 게다가 여름도 거의 다 지나갔고. 그나저나 이 모니터들은 어떻게 가져온 거지?”

“미리 택배로 보내뒀습니다.”

“펜션 주인이 황당해하는 모습이 눈에 훤하군.”

2박 3일 동안만 묵고 갈 뿐인데, 방에 모니터까지 설치할 생각을 할 줄은 아마 주인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다수를.

한창 선 정리를 하고 있는 아이티에게 우석이 추가적인 사항을 들려줬다.

“후에 행사가 있어도 너는 굳이 참가 안 해도 된다. 나중에 내가 비서들만 따로 집합을 시킬 때나 얼굴 정도 내비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다수의 사람들 속에 섞일 자신이 없던 아이티였기에 우석의 말을 듣자마자 그 나름대로의 반가운 기색을 미소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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