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51화
52. 워크샵(Workshop)(1)
바쁜 와중에도 우석은 늘 그렇듯 눈물 비 드라마 편수를 꼭 리얼 타임으로 모니터링을 하곤 했다.
오늘도 역시나 마찬가지.
퇴근 시간이 늦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석은 TV를 통해서 온라인으로도 송출해 주는 드라마 방송 편수를 챙겨 확인을 했다.
“역시 잘 만드는군.”
처음에는 불안한 기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지금은 고준서 PD가 만드는 눈물 비 드라마에 대한 믿음이 한없이 높아져 있었다.
실제로 반응 역시 괜찮았다.
이제 10화 정도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갈등 모드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그럴 때일수록 지혜는 물이 오른 듯 완벽한 연기 실력을 보여줬다.
원작자인 소봉예화도 매우 만족을 할 정도였으니, 지혜의 연기 솜씨는 이제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플랫폼 사업 역시 순항을 이어 가고 있었다.
40만 회원 수를 넘어서 최근에는 근 70만 명의 회원 수를 확보했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이대로 쭈욱 성장세를 이어 간다면 우석이 설정한 100만 명의 회원 수를 달성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반드 미디어가 점점 성장세를 더해 가고 있을 무렵.
사내에서도 직원들이 다수 늘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석과 철수, 릴리아나, 그리고 아이티. 이렇게 4명으로 시작했던 사업도 이제는 어엿한 회사라는 조직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직원 수만 얼추 70여 명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슬슬 사무실도 이전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더 추진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퇴근 준비를 서두르는 우석에게 때마침 릴리아나가 다가왔다.
그녀 역시 우석과 비슷한 시간대에 퇴근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우석과 릴리아나, 단둘뿐이었다.
“빠뜨린 물건은 없겠지?”
“예.”
“그러고 보니 저번에 화염룡하고 같이 워크샵 장소를 물색해 보라고 지시했던 거 같은데…… 그건 어찌 되었나.”
“강으로 잡을까 합니다만…….”
“강이라…….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바다는 좀 애매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산으로 갈까 했었는데,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원들도 있기에 경치만 어느 정도 감상할 수 있는 강 지역으로 골라 봤습니다. 근처에 펜션들도 많이 있다고 하니, 대규모로 워크샵을 가도 인원 수용에 큰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이미 성수기는 지난 10월이 막바지였기 때문에 펜션 예약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을 터였다.
“인원이 70여 명이나 되니, 어디 놀러 갈 때도 상당히 번잡하군.”
“교통수단은 버스를 따로 대여해 이동하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그쪽에 대해서는 너에게 전적으로 일임해 두겠다.”
“예, 알겠습니다.”
장소도 얼추 결정이 났으니, 이제 조만간 사원들에게 알릴 일만 남았다.
그간 여러모로 바빴던 반드 미디어가 드디어 워크샵을 계획하게 된 셈이었다.
* * *
3일 뒤.
“……워크샵?”
대표 사무실로 들어온 뒤 우석에게 공문 하나를 건네받은 철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또 다른 공문을 매만지던 우석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워크샵.”
“뜬금없이 왜?”
“뜬금없진 않지. 이제 슬슬 인원도 많이 늘었으니, 단합을 목적으로 한 번 정도는 단체로 여행이나 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렇긴 하지.”
반드 미디어에 다니면서 워크샵이라는 단어를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던 철수였기에 처음에는 의아한 기분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우석의 말을 들어 보니 또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하긴, 최근 인원이 급격하게 늘긴 했으니까. 서로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그 뭐였나. 영업팀에 새로 들어온 사람 있잖아. 누구였지?”
“반도체하고 나모영을 말하는 건가.”
“맞아, 맞아. 그 두 사람. 이름도 제대로 기억 안 나더라.”
“그건 네가 무신경해서겠지.”
“……이 녀석이. 친구를 매정한 놈으로 만들어 놓네.”
다소 과도한 표현이 섞이긴 했지만, 실제로 반드 미디어 내부로 단시간 내에 급속도로 많은 사원들이 유입이 된 건 사실이었다.
민아 출판사와의 합병.
요하네 플랫폼 관련 부서 창설.
비서들의 추가 합류.
그리고 최근에 반드 미디어로 입사해 라이트 노벨팀을 꾸리기 시작한 이도영 부장까지.
규모가 커진 만큼 서로 얼굴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지게 되었다.
이 어색함을 해결하고자 워크샵을 통해 단합력을 높이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취지였다.
“장소는 어디로?”
“일단 강 쪽이 가장 확률이 높을 거 같다.”
“강이라……. 무난하네. 등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그렇다고 계곡을 가자니 비성수기이기도 하고.”
철수도 나름 괜찮을 거 같다는 의사를 표현해 왔다.
“사원들한테도 잘 말해둬.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웬만하면 참가하게 하고.”
“오케이, 알았다.”
우석에게 추가적으로 몇 가지 사항을 더 듣게 된 철수가 곧장 대표 사무실을 나섰다.
반드 미디어 식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워크샵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집단이 있었다.
바로 우석이 거느리고 있는 비서 조직이었다.
기존 5명의 비서에 추가적으로 3명이 영입되어 총 8명까지 늘게 된 우석의 비서 조직.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이번에 새로 비서가 된 신입이었다.
‘비서들도 데리고 가는 편이 좋겠지…….’
반드 미디어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화염룡과 소봉예화, 그리고 미스터 리 정도였다.
아이티도 일단은 반드 미디어에 소속된 사원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으니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티 녀석이 문제군.’
여행을 가는 데에 가장 최대의 장애물인 아이티가 있었다.
그것을 뒤늦게 떠올린 우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급적이면 모든 인원들을 데리고 가고 싶었다. 특히나 비서들은 전부 다.
하지만 아이티가 지닌 신체적 특성상(혹은 정신적 특성일지도 모른다) 그를 함부로 바깥에 싸돌아다니게 하면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괜히 여행이랍시고 데리고 갔다가 아이티에게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곤란했다.
그는 서열 2위로 나름 중요한 능력과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함부로 굴릴 수는 없었다.
‘하여튼 이 녀석은 어딜 가든 문제 덩어리구만.’
뭔가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티를 바깥에 장시간 동안 데리고 다녀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최고의 방법이.
* * *
아이티가 살고 있는 원룸에 대뜸 쳐들어온 우석.
그가 아이티에게 한 말은 딱 하나였다.
“너, 어떻게 하면 바깥에 나갈 수 있냐.”
“……저 말입니까?”
“그래.”
“…….”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평소에도 갑자기 찾아와서 이상한 명령 같은 걸 많이 내리곤 하는 우석이었지만, 방금 그 말은 아이티를 섬뜩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깥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
그 말은 결국…….
자신을 바깥에 데리고 나가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일시적인 해답으로는 방독면 마스크가 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그거 착용하고 사무실에 왔었군.”
“예.”
“……역시 그것밖에 없나.”
소봉예화도 그다지 바깥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래도 화염룡이라는 또 다른 인격으로 그 단점을 커버 가능했다.
하지만 아이티는 아니었다.
화염룡과 같은 또 다른 인격도 없을뿐더러, 극도로 바깥에 나가기를 싫어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거지만, 넌 어쩌다가 방구석 폐인이 된 거지?”
나름 오랫동안 아이티를 알고 지내 온 우석인데,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금은 웃긴 상황이었다.
그러나 딱히 과거에 대해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아이티는 순순히 우석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려줬다.
“예전부터 창문 대신 모니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방구석 폐인의 길을 걷게 된 거죠.”
“특별한 사연이나 그런 건 없나 보군.”
“……그냥 태생이 이럴 팔자였나 봅니다.”
“불편하진 않은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괜히 바깥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나 보게 되는 일이 없으니, 역으로 저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사람은 저마다의 신념이 있는 법이다.
아이티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에 대해서는 우석도 딱히 크게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알았다. 그럼 펜션 예약을 할 때는 너 혼자 따로 머물 수 있는 방을 잡아 두도록 하지.”
“우석 님의 배려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아니다. 참고로 기간은 2박 3일이니 그리 알고 있어라.”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제 새로운 비서들도 합류하게 되었으니, 서열 2위나 되는 비서를 함부로 막 대하거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티도 이제는 2위다운 대접을 해 줄 필요가 있었다.
물론 최고의 대접은 워크샵을 빠지라고 명하는 거지만, 우석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참가하라.
그게 우석의 이번 워크샵 방침이었다.
* * *
최근 반드 미디어 자체적으로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이름하야 라이트 노벨 프로젝트.
“새로운 레이블의 이름은 다크 노벨로 해 봤습니다.”
기획서와 함께 그간의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이도영.
그가 건넨 기획서를 천천히 살펴보던 우석이 눈은 기획서에 고정을 시켜 두면서 입으로는 그와 관련된 질문을 언급했다.
“다크 노벨이라 지은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만든 레이블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어서 한때 제가 사용했던 필명인 다크를 붙여봤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다크 노벨.
뭔가 강한 인상을 심어 주는 그런 레이블 명칭이었다.
“작가진들은 어떻게 확보할 예정입니까?”
또 한 번 핵심적인 질문을 해 왔다.
우석도 얼추 국내 라이트 노벨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다.
판무협이라든지 로맨스에 비해 라이트 노벨을 쓸 줄 아는 국내 작가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
대다수가 신인이고, 한 질 이상의 라이트 노벨 출간 경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은 끽해봐야 30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공급이 상당히 적기에 작가 확보도 결코 쉽지 않을 터.
그러나 이도영은 그 문제를 커다란 장애 요소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제가 기존의 출판사에 사직서를 내기 전에 저와 뜻을 같이한 작가 몇몇을 이곳으로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그쪽에서 별로 좋지 않게 볼 텐데요.”
“어차피 제가 데려올 작가들도 조만간 안드 노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틈을 노려 설득을 해 대략 7여 명 정도 되는 작가들을 데려오기로 했습니다.”
“전부 다 기성입니까?”
“예. 최소 한 질 이상의 작품을 내본 기성 라이트 노벨 작가들입니다.”
“나쁘지 않군요.”
국내에서 활동 중인 기성 라이트 노벨 작가는 정말 보기 드물었다.
그 작가를 무려 7명이나 데리고 왔다 하니, 다크 노벨의 출발 자체는 상당히 무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전부 다 어느 정도 팬들에게 인지도를 쌓아 올린 인기 작가들입니다. 종이책뿐만이 아니라 연재 분야에서도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올 겁니다.”
“들을수록 기대가 되는군요.”
이도영은 언젠간 자신이 퇴사할 것을 대비해 많은 일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시기가 때마침 이임전이 이직 제의를 해 온 것과 겹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다크 노벨 레이블 창간 작업은 일사천리로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석의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그런 상황임에 틀림이 없었다.
“우선은 웹 연재부터 들어간 이후에 분량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다음 단행본 작업에 들어가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저야말로요.”
새로 합류하게 된 이도영은 역시 우석이 예상했던 그대로 빈틈이 없는 든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