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50화
51. 제3의 무기(3)
대표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니, 이미 사원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혹은 퇴근을 하기 위해 자리를 뜬 상태였다.
우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릴리아나가 그에게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피곤하진 않으십니까? 오늘 하루 종일 계속해서 책만 보시던데…….”
“새로운 분야의 책을 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읽고 있었군. 밥은 먹었나?”
“아니요. 우석 님과 같이 먹으려고 대기 중이었습니다.”
“배고프면 다른 사람들과 먼저 먹어도 된다만.”
“우석 님의 최측근으로서 우석 님이 혼자 식사를 하시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
릴리아나는 다른 비서들에 비해 충성심 하나만큼은 유독 높았다.
물론 대다수의 비서들이 우석에게 강한 충성심을 보이고 있긴 했지만, 릴리아나는 충성심 이상의 감정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우석도, 그리고 릴리아나도 잘 알고 있었다.
애정.
그리고 사랑이었다.
이미 한 번 우석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내비친 적이 있었던 릴리아나.
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했다.
우석도 구태여 입 밖으로 릴리아나의 마음을 확인했다는 말을 꺼낸 적은 없었다. 괜히 그녀를 동요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럼 식사하러 가볼까.”
“예.”
우석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던 릴리아나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 가볍게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우석과 둘만의 만찬.
이것은 마치 데이트와 같았다.
‘우석 님과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오랜만인 거 같아.’
설렘과 두근거림이 뒤섞여 릴리아나의 감정을 마구 자극했다.
여성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살아나고 있을 무렵.
릴리아나의 이 낭만적인 시추에이션을 방해하는 난입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님 아니십니까. 아직 계셨군요.”
외근을 나갔던 이임전 부장이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 것이었다.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릴리아나는 이내 다시 표정 관리에 들어가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이임전도 딱히 두 사람의 좋은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일부러 이런 연출을 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침 잘되었군요. 대표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지요?”
“저번 회의 때 라이트 노벨에 정통한 자를 스카우트해 올 수 있는지 여쭤보셨던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라이트 노벨이라…….”
“괜찮으시다면 같이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때마침 이임전도 식사를 하지 않은 모양인지 좋은 제안을 해 왔다.
우석으로선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도록 하지요.”
“예. 제가 잘 아는 가게가 있습니다. 이야기 나누기 좋고 조용한 곳이지요. 한식집인데……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그럼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임전의 뒤를 따라 이동하는 우석.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 * *
부천역 근처에 위치한 가게, 도원궁.
한식업계 내에서는 아주 많은 인지도를 얻고 있는 한식 체인점이기도 했다.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우석과 이임전, 그리고 릴리아나.
3명의 반드 미디어 멤버들이 방 하나를 차지한 채 식사에 열중하게 되었다.
메인 메뉴들이 다 차려지고 나서야 이임전이 먼저 우석에게 전해 줘야 할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제가 아는 후배 녀석을 만나고 왔습니다.”
“누구입니까?”
“이도영이라고 해서…… 혹시 들어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안드 노벨을 기획하고 만들었던 후배입니다.”
“안드 노벨이라.”
접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몇 시간 전, 반도체로부터 빌렸던 라이트 노벨 명작 시리즈 가운데 안드 노벨에서 발간했던 책이 한 질 있었다.
국내 라이트 노벨로서 상당히 수준이 높았던 책이었다.
“방금 전에 읽었던 책 중에 안드 노벨 것이 있었습니다.”
“오, 제목이 어떻게 되나요?”
“‘절대영역의 흡혈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 책도 도영이가 기획하고 편집한 책입니다.”
“그런가요? 작품 퀄리티가 상당하던데…… 실력이 제법 있으신 분인 거 같군요.”
“도영이 녀석이 실력 하나는 정말 일품이거든요. 국내 라이트 노벨 업계 내에서는 아마 도영이를 따라잡을 사람이 없을 겁니다.”
“오호…….”
실력 있는 자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게 바로 반드 미디어의 모토니까.
“오늘 도영이를 만나서 슬쩍 스카우트 제의를 해봤는데……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즉, 긍정적으로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뜻 아닙니까?”
“물론 대표님 말씀도 맞긴 하지만, 굳이 따진다고 한다면 긍정적인 쪽에 더 무게를 실어 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쁜 소식은 아니군요.”
이도영 본인도 이직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찰나에 때마침 평소에도 좋게 보던 반드 미디어가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게다가 반드 미디어는 평소 친분이 있는 이임전 부장이 몸을 담고 있는 회사이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한 곳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곳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 아니겠는가.
이임전 부장의 존재는 그런 의미에서 이도영 부장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선사하고 있었다.
“일단 의사만 확인을 해두고, 나머지는 차후에 대표님과의 만남 자리에서 결정을 짓겠다는 말까지 듣고 왔습니다만.”
“그렇군요. 그럼 이른 시일 내에 약속을 잡아 두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은 빠르게, 그리고 신속하게 처리하면 할수록 좋은 법이다.
* * *
반드 미디어 사무실.
요즘 들어 사업을 다방면을 넓혀 가는 터라 사무실을 왔다 갔다 하는 외부인들의 출입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이임전 부장의 후배이자 우석이 탐내고 있는 인재 중 한 명인 이도영 부장이 방문을 하는 날이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현관문에서 가장 먼저 외부인의 출입을 반기는 릴리아나가 이도영을 데리고 대표 사무실 쪽으로 안내를 했다.
때마침 사무실 안에서 어제 읽다 만 라이트 노벨을 정독하고 있던 우석이 노크 소리에 반응을 보였다.
“안으로 들어오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릴리아나와 함께 대표 사무실 내부로 진입한 이도영 부장.
잠시 읽던 라이트 노벨을 내려놓은 우석이 손을 건네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반드 미디어 대표 이우석이라고 합니다.”
“이도영이라고 합니다.”
악수를 나누면서도 이도영은 속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반드 미디어 대표가 젊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까지 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외형으로만 봐도 기껏해야 20대 초반 남짓한 젊은 사장처럼 보였다.
‘이 남자가…… 이우석이군.’
하지만 나이가 젊다고 결코 우석을 얕보거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미 우석은 반드 미디어라는 회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업계 전반에 입증해 보였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완벽한 수완가였다.
능력 하나만을 놓고 봐도 우석을 결코 얕보거나 할 수는 없었다.
“때마침 이도영 씨가 기획한 라이트 노벨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건…… 절대영역의 흡혈귀군요.”
“예. 세계관이 참으로 특이하더군요. 인간의 노예가 된 흡혈귀라…….”
라이트 노벨은 확실히 판무협과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장르마다 지니고 있는 재미의 척도가 다르긴 하지만, 라이트 노벨을 처음 접한 우석의 첫 번째 인상은 대략 이러했다.
신선하다.
그리고 참신하다.
더불어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장르이다 보니 등장인물 하나하나에도 제대로 된 힘이 들어가 있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는데…… 중간에 여러 가지 트러블이 있어서 좀 아쉬울 따름입니다.”
“출간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는걸요.”
“아닙니다. 좀 더 노력하면 뭔가가 나올 수 있었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면이 많더군요.”
“…….”
이임전으로부터 사전에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도영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을 회사의 억압에 의해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 이도영의 언행을 보아하니, 이임전의 말이 제대로 적중한 듯했다.
“회사에서 여러모로 제약을 하고 있나 보군요.”
“아니라고 할 수도 없지요.”
어찌 보면 라이벌 회사가 될지도 모르는 반드 미디어.
그 수장인 우석에게도 솔직하게 이런 말을 털어놓을 정도면, 확실히 그 억압이 이도영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도 자신이 만든 안드 노벨 때문에 쉽사리 퇴직을 결정짓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이임전의 말대로 이도영은 충분히 할 만큼의 노력을 전부 기울였다.
이제 그는 그만의 새로운 도전에 임할 때가 된 것이다.
“우선…… 이임전 부장에게 들어서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전 이도영 씨를 우리 반드 미디어로 데려오고 싶습니다.”
“예.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말씀해 주신다면 최대한 맞춰 드릴까 합니다만.”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이도영의 올곧은 시선이 우석을 똑바로 응시했다.
“라이트 노벨 사업을…… 어느 정도까지 확장시키려고 하시는 겁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때 한계선을 두고 진행하지 않습니다. 굳이 한계선을 정하라고 한다면…… 세계 정복 정도는 되겠지요.”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스스로 한계를 지어 버리는 일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절제는 하되 한계를 만드는 건 자신의 가능성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
“그래서 전 해나갈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 반드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공간에 국한되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는 세계로 뻗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요.”
“세계라…….”
“우선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중국이라든지 홍콩, 대만 등, 이후에 미국과 유럽도 충분히 가능성에 포함시켜 두고 있지요.”
“상당히 포부가 크신 분이군요. 여태 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대표님처럼 당찬 포부를 지니신 분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이도영의 입가에 점차적으로 미소가 번졌다.
“국내 라이트 노벨 작가들의 환경은 상당히 열악합니다. 일본에서 애니메이션과 코믹스 등 전폭적인 지지도를 받고 있는 일본 라이트 노벨과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반면 국내 라이트 노벨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방법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굿즈를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 일본 상품에 뒤처지기 마련이지요.”
일본과 비교당하는 한국의 라이트 노벨.
서브컬쳐 분야에서 일본과 한국, 두 국가의 콘텐츠가 서로 대결을 펼친다면 일본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지원이라든지 기타 여러 방면으로 일말의 도움이 없는 환경에서 최대한 일본과 대등하게 싸우기 위해 노력하는 창작자들.
이도영은 그 창작자들에게 어떻게든 큰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세상 어느 일이든 쉬운 게 없지요.”
차 한 잔을 음미한 우석이 자신의 생각을 토로했다.
현실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도영은 더더욱 자신의 목적을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는 저만의 라이트 노벨을 만들어 역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우리나라의 라이트 노벨을 널리 떨치고 싶습니다. 작가들과 함께 최고의 라이트 노벨 레이블을 만들어 내는 게 저의 꿈입니다.”
“훌륭한 꿈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대표님께서 이런 저의 꿈을 지지해 주실 생각을 가지고 계시다면, 저는 반드 미디어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도영의 당찬 목표를 얌전히 듣고 있던 우석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여 줬다.
“당신은 투자할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인재입니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겠지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이렇게 해서 반드 미디어는 국내 라이트 노벨 최고의 전문가라 불리는 이도영을 영입하는 데에 성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