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40화
48. 비서 섭외(1)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여성용 의류 매장.
아스란이라는 레이블을 가지고 있는 이 매장에 오늘도 출근을 하게 된 젊은 여성, 나모영은 최근 이상한 현상을 겪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긍긍하며 생활비를 벌 일환으로 이곳 아스란의 매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모영은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의 흐름을 눈치채게 되었다.
“어머, 언니. 그렇다니까요! 이 옷은 언니가 아니면 절대로 소화 못 해요!”
손님에게 연신 칭찬 세례를 남발하는 직장 동료.
그러나 그녀의 속마음은 달랐다.
‘어울리긴 개뿔. 그거 입고 다니면 다들 돼지라고 욕한다, 이년아!’
“…….”
언행 불일치를 선보이는 직장 동료였지만, 나모영은 애써 그녀의 속내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할당 구역인 3층으로 향했다.
유니폼을 갈아입는 사이에 또 다른 동료가 다가와 나모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모영 씨.”
“아, 안녕하세요.”
“요즘 들어 안색이 많이 안 좋으신 거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
그녀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나모영의 미간이 절로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속내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년이 오늘도 일 빠지려고 일부러 꾀병 부리는 거 아니야?’
“꾀, 꾀병 아니에요!”
“네?”
나모영의 돌발 발언에 놀란 여성이 순간 몇 번의 뒷걸음을 쳤다.
분명 입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모영은 마치 속마음이 들리고 있다는 듯이 말을 받아쳤다.
‘혹시…… 나도 모르게 속내를 이야기한 건가?’
그렇지 않고서는 나모영이 ‘꾀병’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이유가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대다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미, 미안해요. 모영 씨,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무심코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내뱉었을 것이다.
그렇게 철석같이 믿은 여성이 먼저 사과를 건네 왔다.
그러자 나모영 역시 마주 사과의 말을 들려줬다.
“아, 아니에요. 저도 잘못인걸요.”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고 한다면…….
남의 허락도 없이 상대방의 속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봤다는 점이 아닐까.
물론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었다.
타인의 속내를 읽어 낼 수 있는 이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게 되었다.
아무런 사건도, 아무런 계기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에 갑자기 생겨 버린 나모영의 능력이기도 했다.
영화에서 보면, 이런 초능력을 얻게 될 경우에는 주인공이 이 능력을 활용해 엄청난 성공 신화 스토리를 이어 가거나 하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
남의 속마음을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하루아침에 주어지게 된다면, 그건 행운이 아니라 불행에 불과했다.
* * *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최종 완성본 나오면 보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마친 오태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철수가 얼추 누구인지 알겠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드라마 쪽 전화죠?”
“용케도 눈치챘군요.”
“그쪽 관련 말들이 많이 들렸으니까요. 오늘은 무엇 때문에 전화했대요?”
“다음 주 정도 되면 1, 2화 편집까지 다 끝날 거 같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완성되면 우리 쪽에도 파일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빠르네요.”
“일이 빨리빨리 진행되면 우리야 좋지요. 그보다도…….”
잠시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린 태준이 목소리를 높여 누군가를 불렀다.
“은성아! 잠깐 이쪽으로 좀 와봐.”
“왜 그러는데.”
“플랫폼 진행 상황 좀 파악하려고.”
“어휴, 꼼꼼도 하셔라.”
긴 머리카락을 긁적이면서 다가오는 김은성.
이름은 이래도 여성이었다.
오태준과 철수 쪽으로 다가온 은성이 짜증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행 상황 물어보는 거 아니야?”
“그렇지.”
“그쪽에서 준 콘텐츠들을 업로드하는 과정에 들어가고 있어. 아마 반드 미디어 측에서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들은 이번 주 중으로 전부 다 업로드될 거야. 물론 업로드만 해 두는 것뿐이지만.”
“플랫폼 홈페이지는 별다른 문제 없지? 버그라든지 이런 거 말이야.”
“이 부장님이 이미 다 확인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플랫폼 사업은 반드 미디어 내부에 있어서 영상화 프로젝트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반드 미디어의 에이스라 할 수 있는 이임전과 오태준, 이 두 사람도 플랫폼 작업 상황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플랫폼이 제대로 갖춰지고 자리를 잡게 된다면 반드 미디어는 콘텐츠 사업에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될 터였다.
지금은 그저 유통사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지만, 이제는 플랫폼을 갖춤으로 인해 타 플랫폼 업체를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회원 수를 성공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마케팅 분야에 많은 투자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 때문에 이임전 부장의 스케줄은 외근으로 잔뜩 도배되어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김민혁도 포함이 되어 있어야 했지만, 우석이 내린 특별 명령으로 인해 그는 타 업체들의 눈길을 돌리고 있어야 한다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임전이 민혁의 빈자리까지 전부 다 커버를 해야 했다.
이임전이 외근을 나갔을 때에는 이런 식으로 오태준이 은성과 함께 플랫폼 프로젝트 작업 진행도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곤 한다.
게다가 오픈일이 바로 다음 주 화요일이었다.
더 이상 일을 지체할 순 없었다.
은성에게 이것저것 세심한 것까지 보고를 받은 오태준이 다시 한번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표님도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이니까 너도 최대한 모든 심혈을 기울여 줘. 우리 대표님은 노력에 따른 보상은 착실하게 해주시는 분이니까.”
“나도 잘 알고 있어.”
반드 미디어에 입사하고 난 이후, 은성은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었다.
이곳은 여타 다른 장르문학 업체와는 뭔가 큰 차이점이 하나 존재했다.
바로 복리후생이 지나칠 정도로 좋다는 점이었다.
물론 장르문학 업체 특성상 마감이라는 시일을 맞추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야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우석은 특별히 야근 수당까지 챙겨 줄 정도로 사원들에게 금전적인 고민이 안 들게끔 배려를 해 주고 있었다.
본래는 야근을 하면 별도의 수당을 챙겨 주는 것이 옳은 일이지만, 중소기업 중에서 야근 수당을 지급하는 기업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은성은 야근 수당은 기대도 하지 않고 이곳에 왔었지만, 예상외로 경제적인 부분이라든지 기타 근무 환경 등 복리후생이 좋다는 점 때문에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복리후생을 통해 우석이 얻은 것은 바로 사원들의 충성심이었다.
실제로 반드 미디어에 입사한 사원들 중에서 퇴사를 한 직원…… 아니, 퇴사를 생각하고 있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이 반드 미디어의 클래스를 입증하는 자료가 아닐까 싶었다.
“그나저나 플랫폼 사이트 만들 때 말이야. 외주를 줬다고 했었나?”
은성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결국 질문 사항을 꺼냈다. 그러자 표로 정리된 자료들이 새겨져 있는 서류 더미들을 확인하던 중에 오태준이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니. 회사 내부에 프로그래밍을 전문으로 하는 숨겨진 사원이 있는데, 그 사원이 혼자서 만들었다고 들었어.”
“숨겨진 사원?”
“나도 거의 만나 본 적은 없는데…… 방구석 폐인이라서 자택 근무 중이야. 이름이…… 아이티라고 했나. 여기 직원들 사이에선 ‘숨겨진 사원’이라 불리고 있어.”
“여긴 진짜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오태준도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이티는 반드 미디어 내부에서도 정말 독특한 포지션을 맡고 있는 남자였다.
게다가 실력까지도 좋았다.
어디서 섭외를 해 온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태준도 쉽사리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반드 미디어가 가급적이면 외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남자라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외부로 알려서는 안 됐다. 아이티는 우석의 특별 관리 대상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저런 사람을 어디서 구해 왔는지…… 대표님도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란 말이야.”
요즘 출판업계는 인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경력직은 말도 못 하고, 신입을 선정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못 버티고 그다음 날에 도망가는 사람도 몇 명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점에 대해서는 이상향과 현실의 차이를 들 수 있었다.
자신이 알던 편집자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괴리감을 느끼고 관두는 사람도 종종 발생했다.
“민아 출판사 직원들이 들어온다면 회사 규모도 더욱 커지겠구만.”
반드 미디어와 민아 출판사의 합병.
오태준의 기대는 날이 갈수록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 * *
릴리아나와 함께 아이티의 원룸을 방문하게 된 우석이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는 내용 중 하나를 릴리아나에게 공유하기 위해 말을 꺼냈다.
“지금부터 이 3명을 만나러 간다.”
“이 사람들은…….”
아이티의 모니터 중 대형이라는 사이즈에 포함될 정도로 큰 비율을 자랑하는 벽 모니터를 바라보던 릴리아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녀가 목격하게 된 장면은 실로 간단했다.
3인의 남녀의 사진.
그리고 이름과 개인 프로필 등.
그중에서도 2명은 릴리아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바로 미스터 리와 반도체였다.
두 사람은 릴리아나와 함께 세계의 주인 밑에서 활약하는 비서들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번에 비서 능력이 새롭게 각성한 여자인가 보군요.”
“그런 셈이지.”
“우석 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저 또한 마찬가지로 동행을 하겠습니다. 위치는…….”
“아이티가 이미 녀석들의 정보를 전부 다 캐냈다.”
릴리아나는 아이티가 우석에게 제공했던 자료의 복사본을 건네받았다.
덩달아 이번 비서 찾기 프로젝트의 중심이 될 인물은 바로 릴리아나였다.
“제가 필요한 이유가 이거였군요.”
각 비서들이 거주하고 있는 장소가 주소와는 별도로 특정 숫자들로 변환이 되어 적혀 있었다.
바로 ‘좌표’였다.
릴리아나가 순간 이동을 할 때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좌표다. 그런데 이들의 프로필에 좌표가 적혀 있다는 건, 릴리아나의 순간 이동을 통해 이들과의 만남을 꾀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우석의 뜻이라면, 릴리아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기는 언제 정도로 잡으면 됩니까?”
“지금이다.”
딱 잘라 말하는 우석.
그의 확언에 릴리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이 좌표에 따라 순간 이동을 할 준비를 서두르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우석의 결정이다.
더 이상 릴리아나가 왈가왈부 토를 달 수는 없었다.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릴리아나의 발밑에 밝은 빛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그마한 빛의 입자들이 아이티의 어두컴컴한 원룸 내부를 밝히자, 집주인인 아이티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놈의 빛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구만.”
그래도 같이 가는 게 아닌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우석과 릴리아나의 모습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빛의 입자들과 함께 아이티의 원룸에서 완벽하게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