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34화
46. 사전 모임(1)
눈물 비 드라마 제작 기념 사전 모임.
이 슬로건 아래에 반드 미디어 측에서도 참가 요청을 받게 되었다.
주연 배우들을 맡게 된 한지혜와 최강성을 비롯해 다양한 배우들이 자리를 빛내게 될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드라마의 스폰서를 맡게 된 기업들 측도, 그리고 제작을 맡게 된 BLT 방송국 드라마 관계자들 역시 사전 모임에 참가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반드 미디어도 마찬가지였다.
참가하게 된 사람은 우석을 비롯해서 릴리아나, 그리고 원작자인 소봉예화와 추가적으로 웹툰 작화 담당인 은지와 철수까지, 도합 5명이라는 나름 대규모 팀을 구성하게 되었다.
본래 철수와 은지는 계획에 없던 참가 인원이었지만, 모임 주최 측에서 데리고 올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데려와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기에 둘의 참가가 결정되었다.
TV에서만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업무를 보던 철수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출판사 일을 하면서 연예인과 만나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하하! 세상일이라는 게 본래 다 그런 거 아니겠냐.”
때마침 철수의 작업을 같이 모니터링하던 이임전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 줬다.
그런 그에게 철수가 약간의 부담감을 토로했다.
“저보다 이임전 부장님이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경력도 훨씬 많으시고, 그리고 영업 쪽에 종사하시는 분이 가셔야 더…….”
“네 참가를 결정한 건 바로 대표님이시잖냐. 대표님이 말씀하셨는데, 내가 면전에서 ‘제가 가고 싶습니다!’라고 하기에는 좀 모양새가 안 나고. 그렇지 않냐.”
“그렇기도 하지만…….”
이임전의 말대로였다.
철수의 사전 모임 참가는 본인이 어필을 해서 따낸 것이 아닌, 우석이 직접 결정을 내린 결과물이었다.
예전부터 우석은 철수를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그 역할을 맡기고자 이런 중요한 자리에 가끔 그를 데려가곤 했다.
종종 미팅에 참가한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사전 모임에 참가하는 건 철수도 처음이었다.
“가서 뭘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냥 가서 문제 안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네 역할을 한 게야.”
“……그런가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그렇듯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지. 사전 모임도 예외는 아니야. 거기서 괜히 얼굴 붉힐 일이라도 생겼다간, 드라마 제작 진행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그 점을 최우선시하면 될 거야.”
“그렇군요…… 우석이 녀석한테도 전해둘게요.”
“아서라. 대표님이 설마 그런 걸 모를 분으로 보이냐?”
이임전의 말에 철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석이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터였다.
반드 미디어를 여기까지 키워 오는 데에 우석의 공이 가장 컸다 해도 무방했다.
사업체를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반드 미디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구설수에 올랐던 적이 없었다.
심지어 작가들 사이에서도 반드 미디어는 괜찮은 곳이라는 평이 자자했다.
이미지 관리가 잘된 덕분에 굳이 작가들을 찾아다니면서 제발 우리 업체와 계약해 달라고 사정하지 않아도 작가들이 먼저 반드 미디어를 찾곤 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아무튼 대표님은 정말 대단해. 보면 볼수록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단 말이야.”
사원으로서 가장 가까이에서 우석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이임전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우석의 잠재 능력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임전의 말에 철수가 말을 보탰다.
“그 녀석이 고등학생 때에는 그렇게까지 특출 난 녀석이 아니었는데, 볼 때마다 저도 신기해요.”
“그러고 보니 대표님하고 너하고 동창이랬지?”
“네.”
“고등학생 때는 어땠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냐.”
“그냥…… 평범했어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친구?”
“믿기지가 않는구나. 대표님이 평범한 학생이었단 말이지…….”
지금의 우석이 너무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뽐내고 있는 덕분일까.
이임전의 머릿속에는 평범한 이우석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은 어디 가셨냐.”
“그…… 아이티 씨한테 뭔가 볼일이 있어서 갔다고 들었어요.”
“플랫폼 관련 일인가?”
“글쎄요. 정확하게 어떤 용무인지는 말 안 해주더라고요.”
“흐음, 그래?”
우석이야 워낙 비밀이 많은 남자다 보니 이제는 이런 말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게 되었다.
이래나 저래나 사업체 운영은 잘하고 있으니까.
어딜 돌아다녀도 이임전의 입장에선 그다지 큰 불만은 없었다.
* * *
요즘 들어 자주 방문을 하는 장소 중 하나인 아이티의 원룸.
다 꺼진 불빛 대신 모니터의 빛으로 부족한 밝기를 충당하는 이곳에서 우석이 찾아온 목적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다른 비서들의 정보를 한번 파악해 봐라.”
“정보…… 말입니까?”
“그래.”
세계의 주인을 모시는 비서들.
그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특출 난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는 소봉예화처럼 지대한 도움이 되는 비서도 있었지만, 남서진처럼 그다지 도움 안 되는 비서도 엄연히 존재했다.
“비서들의 목록을 만들어 나에게 전달하면 된다. 그게 이번에 네가 할 일이다.”
정보의 신이라 불리는 아이티라면 가능할 터.
우석의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능력을 지닌 비서들을 포섭하면 포섭할수록 그의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할 수 있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김민혁 같은 놈만 두세 명 정도 더 있으면 될 거 같군.”
“우석 님께서 바라시는 건 화술 타입의 비서입니까?”
“아니, 그냥 예시가 그렇다는 거다. 그 녀석, 성격은 별로거든.”
비서들 중에서 유일하게 우석을 속이려 했던 사기꾼.
그게 바로 김민혁이었다.
“능력은 있되 성격은 남서진처럼. 이런 비서가 딱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부류의 비서로 조사를 해 명단을 바치면 됩니까?”
“아니, 성격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 일단 쓸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비서들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내 주도록.”
“예, 알겠습니다.”
능력도 출중한 데다가 성격까지 온순하다면 말 그대로 우석이 원하는 베스트 비서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녀석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우선 능력을 1순위로 선정한 우석이 아이티에게 작은 숙제 하나를 부여했다.
그렇게 이곳을 찾아온 용무를 다 보게 된 우석이 뒤에서 대기 중이던 릴리아나를 불렀다.
“이제 슬슬 가도록 하지.”
“예. 회사로 돌아가면 되나요? 그렇다면 바로 순간 이동 준비를 서두르겠습니다.”
“아니, 이대로 퇴근하면 되니까 굳이 순간 이동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다. 너도 딱히 회사에 볼일 없으면 퇴근해도 좋다.”
우석의 퇴근 명령에 릴리아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예.”
아이티의 방에서 먼저 나서는 우석.
그의 뒷모습을 향해 릴리아나가 다시 한번 조신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기를 잠시 뒤.
“……?”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아이티가 릴리아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너는 안 가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뭐? 묻고 싶은 거?”
“그래. 아주 간단한 거니까 조금만 도와주면 돼.”
“네가 무슨 우석 님이라도 되냐. 왜 내가 너한테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유라도 있나.”
“아까도 말했지만 아주 간단한 거야.”
“……?”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긴 아이티였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릴리아나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새겨졌다.
“……괜찮은 의류 가게를 좀 알아보고 싶은데…….”
“의류? 우석 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이라도 좀 차려입으려고 그러는 거냐.”
아이티가 툭 던지는 농담 식으로 말을 꺼냈다.
곧바로 릴리아나의 반론이 가해질 거라 예상했던 아이티.
그러나…….
“…….”
“어라……?”
릴리아나의 얼굴이 더더욱 빨개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반응을 보자마자 덩달아 아이티도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평소의 릴리아나라면 ‘이 모니터를 부숴줄까? 저 모니터를 부숴줄까?’ 하는 폭력적인 면모로 반응을 보여 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릴리아나는 왠지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여자 같군.’
아이티도 릴리아나가 우석에게 사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눈치채고 있었다.
하기야. 화염룡이 우석에게 들러붙을 때마다 대놓고 질투심을 폭발시키는데,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더 바보 같을지도 몰랐다.
‘아니, 남서진 녀석이라면 모를 것 같기도 하네.’
졸지에 의문의 1패를 당하게 된 남서진이었다.
천하의 릴리아나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의류 가게를 다 알아보려 하다니.
그녀의 직장 동료이기도 한 아이티로서는 신기한 현상 그 자체였다.
“알아봐 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해 줄 수 있지 않나.”
“모, 목적?”
“그래. 아무리 서열 1위의 비서라 하더라도 우석 님 이외의 사람에게 쉽사리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사양하고 싶거든.”
“…….”
“단순히 의류 가게 조사하는 것 정도면 굳이 우석 님의 결재 권한을 통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내 입장에선 네 부탁보다 우석 님이 정해 둔 우리 간의 규칙을 지키는 게 먼저니까. 그건 너도 잘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다.”
“……알고 있어.”
오늘따라 유독 말을 잘하는 아이티의 모습에 릴리아나는 분함을 느끼면서도 설득당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이티가 옳았다.
비서들의 능력은 세계의 주인을 위해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아무리 비서들끼리라 하더라도 이런 사적인 부탁을 주고받는 건 최대한 자제해야 했다.
물론 의류 가게 조사해 주는 것 정도는 부탁으로 인지하고 쉽게 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을 너무나도 쉽게 들어준다면, 후에 부탁의 범주가 늘고 늘어 나중에 가면 세계의 주인으로부터 결재를 받아야 하는 일도 단순히 부탁으로 치부하고 들어주게 되는 경우도 생길지 몰랐다.
그것만큼은 아이티도 피하고 싶었다.
우석의 결재 권한을 받지 않은 채 과도한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면, 그에게는 ‘천벌’이 주어지게 되어 있었다.
천벌의 종류는 무궁무진했다.
단순히 ‘운이 나빴다’라는 정도의 가벼운 사고부터 시작해서 죽음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사건까지.
그래서 릴리아나의 이런 작은 부탁도 최대한 신중하게 생각에 생각을 거쳐서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건 릴리아나도 잘 알기 때문에 아이티의 이런 태도에 딱히 책망을 하거나 하는 그런 태도를 선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에 사전 모임 파티가 있다. 그곳에 입고 가기 위한 드레스를 구하려고 하는데.”
“드레스? 정장 입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그냥 드레스가 입고 싶어졌다. 더 이상 이유가 필요하나?”
“…….”
릴리아나의 이런 말은 다른 쪽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캐물으면 네놈의 모니터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살기가 느껴질 정도겠는가.
‘이 정도 하면 됐겠지.’
이미 릴리아나가 우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드레스를 갖춰 입고 싶다는 의사를 알아차렸는데, 굳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해 자신의 소중한 모니터들을 위험에 빠뜨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자신의 입장에선 이미 충분히 할 만큼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 아이티가 가볍게 손짓했다.
“잠시만 앉아 있어. 곧바로 괜찮은 가게를 찾아줄 테니까.”
“……고맙다.”
“천만에.”
릴리아나로부터 정말 듣기 힘든 감사의 말을 접하게 된 아이티가 쓴웃음으로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