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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127화 (127/201)

갑질의 신 127화

43. 인수(引受)(1)

오태준과 함께 홍대입구역 근처로 향하게 된 우석.

평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평소에는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오늘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홍대입구역 거리가 이렇게까지 한산해 보이는 건 처음인 거 같군요.”

“하하, 저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오채준이 우석의 말을 그대로 받아 줬다.

이들이 홍대입구역에 오게 된 이유는 사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어디 보자. 2번 출구로 가면 될 거 같습니다만…….”

“바로 맞은편이군요.”

마침 횡단보도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깜빡거리는 초록 신호등만 보면 자연스럽게 걸음을 빨리하는 것이 사람들의 특징 아니겠는가.

“빨리 가시죠.”

“예!”

우석의 재촉에 태준도 때아닌 달리기를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진 우석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는 이 나라 사람들은 여유와 느긋함의 미덕을 모른다며 한탄을 했던 때도 있었지만,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사회에 자신도 모르게 편승을 해 버렸다.

‘나도 이제 이 세계 사람이 다 되었군.’

기뻐해야 할 만한 요소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어쨌든 오태준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 2번 출구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때마침 이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한 여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쭌이! 이쪽이야, 이쪽!”

“……쭌이?”

우석이 슬쩍 태준을 향해 되물었다. 그러자 오태준이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예전의 제 별명입니다.”

“그렇군요. 쭌이라……. 귀여운 별명입니다.”

“굳이 그런 것까지 칭찬 안 해주셔도 됩니다, 대표님. 저는 들을 때마다 좀 창피하니까요.”

“하하하, 확실히 나이 든 사람의 별명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민망한 감이 없잖아 있지요.”

우석에 비하자면 오태준의 나이는 확실히 많은 축에 속했다.

물론 태준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이임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쭌이라고 불릴 만한 나이는 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준이 모습을 드러내자, 김은성이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오랜만이야, 쭌이!”

“옛 별명 좀 그만 불러. 그리고 대표님한테 먼저 인사나 해라.”

“대표님이라고? 이분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김은성이었다.

하기야. 대표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보였다.

처음 태준이 그와 함께 왔을 때는 부사수를 데리고 나온 줄 알았다.

물론 전화상으로는 반드 미디어 대표를 모시고 가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젊은 남자가 설마 대표일 거라고는 생각하진 못했다.

“반드 미디어 대표, 이우석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건네며 자신을 먼저 소개하는 우석이었다.

멍하니 우석을 살펴보던 김은성이 이제야 사과를 하며 말문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김은성이라고 해요. 너무 젊으셔서 대표님이실 거라곤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자주 듣는 오해입니다. 신경 쓰지 마시길. 그보다 바로 뒤편에 카페가 있는 거 같은데, 들어가서 커피나 한잔하면서 이야기 나누시죠.”

“네!”

계속 여기에 서서 스카우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태준과 은성을 데리고 카페 안으로 접어드는 우석이었다.

* * *

오랜만에 아이티의 집으로 들르게 된 릴리아나가 여전히 적의 가득한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봤다.

“청소 좀 하면서 살지? 아이티.”

“……이것도 나름 정돈되어 있는 거야. 아, 그리고 모니터 건드리지 마. 이건 최우선 사항이다.”

“…….”

마음 같아선 바로 앞에 있는 모니터를 있는 대로 힘을 줘 발로 뻥! 까 버리고 싶은 릴리아나였지만, 그 욕망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오늘 찾아온 목적에 대해 물었다.

“플랫폼 제작 진행은 어느 정도 되었지?”

“저번에도 말했지만 99.99999퍼센트 완성되었어. 그것도 몇 달 전에.”

“남은 0.00001퍼센트가 뭐기에 100퍼센트가 안 되는 거지?”

“플랫폼을 언제 오픈할지에 대한 결정. 간단하게 말해서 오픈일이 필요하단 뜻이다.”

“……그렇긴 하네.”

오픈일이 결정이 되어야 그때에 맞춰서 플랫폼 준비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지 않겠는가.

나름 일리 있는 말에 릴리아나도 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반드 미디어 플랫폼 사이트 제작도, 그리고 플랫폼에 연재될 콘텐츠 수급도 이미 거의 다 완성이 된 상태였다.

얼마 전에 책을 출간한 연주의 작품을 웹툰화시킨 것도 반드 미디어 플랫폼에 연재될 예정이었다.

게다가 여기에 남궁진수의 기존 웹툰작 3개에 차기작 1개까지 더해졌으니…… 콘텐츠 수급은 목표치를 100퍼센트 달성했다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상세한 오픈일을 정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플랫폼을 전담할 인원을 구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지금 우석 님께서 앞으로 플랫폼을 맡아 운영을 할 사람과 만나서 미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가 좋게 풀리면 머지않아 회의를 거쳐 정식으로 오픈일을 정할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

“그래그래, 알고 있으니까 연락만 언제든지 해.”

“……알았다.”

그렇게 용무를 마친 뒤.

순간 이동으로 반드 미디어 건물 옥상으로 다시 돌아온 릴리아나가 사무실로 복귀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젊은 여사원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선배님, 이연주 작가님 오셨어요.”

“……아가씨가요?”

“네. 지금 회의실에서 글 쓰고 계세요.”

“알았어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연주가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온 것일까.

방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 봤지만, 마땅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회의실 문을 열었다.

릴리아나의 모습을 발견한 연주가 가볍게 오른손을 흔들었다.

“언니, 저 왔어요.”

“아가씨, 오늘 학교 가시는 날 아니었나요?”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휴강이더라고요. 그것도 모르고 괜히 학교 갔더니 할 일도 없고 해서…… 글이나 쓸까 하는 생각으로 왔어요.”

“그렇군요. 잘하셨습니다. 음료라도 한 잔 가져올까요?”

“아니요. 그보다 오빠는 어디 갔어요?”

“대표님께서는 잠시 외근 나가셨습니다.”

“이른 아침부터요? 오빠도 부지런하네…….”

예전에 생산직에 근무할 때에는 이것보다 더 이른 아침에 출근한 적도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해 본다면, 우석의 이런 부지런함은 그렇게까지 어색한 면모가 아니리라 보였다.

“그럼 전 업무가 있으니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조용히 글을 쓸 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회의실 문을 닫아 주려 하는 릴리아나였으나, 도중에 연주의 말에 의해 행동을 멈추게 되었다.

“언니,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무엇인가요?”

“이번에 눈물 비가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거…… 사실인가요?”

“우석 님에게 들으셨던 거 아닌가요?”

“오빠는 회사 업무에 관한 이야기, 사실 저한테 잘 안 해줘요.”

“사실이긴 합니다만…….”

“정말요? 그럼 그 여배우 역할이 지혜 언니한테 돌아갈 거라는 말도 사실인가요?”

“그건 또 어디서 접하신 건가요?”

눈물 비 드라마 제작 관련 질문은 어차피 기사로도 많이 나간 정보였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주인공인 유미인 역할에 지혜가 배정되었다는 건 극비이기도 했다.

이 극비 사항을 어떻게 연주가 입수한 건가.

“사실 사무실에 왔을 때, 직원분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몰래 들었거든요.”

“그렇군요.”

“아, 물론 외부에 절대로 유출하지 않을게요. 약속!”

연주가 귀엽게 기합을 넣었다.

그녀의 말에 잠시 갈등하던 릴리아나가 어쩔 수 없이 대답을 들려줬다.

“……네, 사실입니다.”

“우와…… 지혜 언니라면 왠지 유미인 역에 어울릴 거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게 실제로 벌어지게 되었네요. 신기해라…….”

“지혜 씨라면 잘해낼 겁니다.”

릴리아나도 지혜가 유미인 역할을 맡는 데에 큰 이견을 제시하진 않았다.

청순가련한 이미지와도 잘 어울렸고, 뿐만 아니라 우석이 제안을 한 건데 릴리아나의 입장에서 어찌 우석의 말에 반론을 가할 수 있겠는가.

“얼마 전에는 우석 오빠랑 지혜 언니가 같이 밥도 먹었다던데…….”

“…….”

순간 가볍게 어깨를 움찔하는 릴리아나였다.

미행팀을 꾸려 우석의 뒤를 밟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반응이기도 했다.

“언니, 이러다가 우석 오빠 뺏기는 거 아니에요?”

“빼, 빼앗기다니요. 저는 그런 생각을…….”

“그치만 요즘 들어 부쩍 그 두 사람 관계가 긴밀해진 거 같지 않아요?”

“…….”

“게다가 지혜 언니는 요즘 잘나가는 아이돌이기도 하고. 모든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은 다 갖추고 있잖아요.”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같은 여자가 봐도 지혜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오죽하면 릴리아나가 지혜의 옷차림을 보고 따라 했겠는가.

“언니, 좀 더 경각심을 가지실 필요가 있겠어요.”

“왜 그런 말씀을…….”

“잊으셨어요? 저는 언니 편이라구요.”

스스로 사랑의 큐피드를 자처하는 연주가 가볍게 윙크를 시전했다.

하긴, 둘이서 자주 미팅을 할 때마다 연주는 릴리아나에게 ‘언니가 먼저 고백해 버려요!’ 같은 말들을 많이 들려줬다.

릴리아나의 입장에선 왜인지 납득이 잘 안 가지만, 연주는 그녀와 우석을 이어 주고 싶어 했다.

물론 연주의 이런 마음 씀씀이는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은 부담으로 작용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우석 님의 사업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업무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언니! 그러다가 정말 늦을지도 모른다구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서…….”

황급히 회의실 문을 닫고 장소를 벗어나는 릴리아나였다.

그녀의 이런 행동에 연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 또 도망을 치시다니.”

* * *

은성과의 미팅은 그렇게까지 큰 어려움이 없이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은성도 반드 미디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우석 역시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은성이 좋은 사람임을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좋은 인재라는 평가가 많아도 우석은 자신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한 뒤에 사람을 뽑는 형식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태준에게 괜찮은 사람이란 말을 들었어도 이렇게 시간을 할애해 면접 같은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게 된 것이었다.

“그럼 출근은 언제쯤 가능하신지요.”

“내일부터 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호기롭게 외치는 김은성의 모습에 우석이 절로 미소를 지었다.

“적극적이시군요.”

“요즘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아무래도 돈이 좀 필요해서요.”

현실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적극성이었다.

돈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필수가 된 요소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런 말이 우석에게는 꾸밈이 없는 솔직함처럼 느껴져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바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회사 내부에 관한 사항들은 오태준 팀장이 잘 알려줄 겁니다. 그리고 하는 업무에 대해서는…….”

“플랫폼 관리 일이죠? 맡겨만 주세요! 자신 있습니다!”

“믿음직스럽군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뭐라고 할까.

성격이 상당히 호전적이고 활기찬 타입의 여성이었다.

‘사무실 분위기 메이커가 될 거 같은 사람이구만.’

한 명씩 이런 사람이 있으면 사무실 분위기 순환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것도 우석이 마음에 든 요소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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