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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의 신-110화 (110/201)

갑질의 신 110화

37. 서열(2)

서열이라는 말에 대다수의 비서들이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우석이 누구인가.

비서들에게 있어서 절대 갑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의 말이 비서들에겐 곧 법이요, 성전과도 같았다.

“질서 체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서열을 정해두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에 이런 제안을 꺼내게 된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우석이 아이티를 바라봤다.

이제부터 서열 제도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려 했지만, 자신의 집이 아닌 외부의 환경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두통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비서들이 집중해서 봐야 하는 대목이었기에 우석은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모두, 아이티의 방으로 이동한다.”

“뭐라고?”

“……그건 좀…….”

화염룡과 남서진이 제각각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남서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바로 화염룡이었다.

“아니, 그 지옥 같은 곳을 가라고? 믿기지 않아! 여기가 더 넓고 청결하잖아!”

“하지만 아이티가 집중을 못 하는 환경이잖냐.”

“거기 가면 내가 집중을 못 한다고!”

“그럼 소봉예화의 인격으로 바꿔라. 소봉예화라면 그래도 어둡고 좁은 환경을 좋아하니까 아이티와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 거다.”

“…….”

제대로 된 일침이었다.

싫으면 인격을 바꾸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소봉예화에게 맡겨 두면 제대로 정보 전달이 안 되었다.

머릿속이 중2병 망상으로 가득하다 보니, 기억해 둬야 하는 중요한 사항 같은 건 가급적이면 소봉예화가 아닌 화염룡의 인격으로 들어 두는 편이 좋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참으면 되잖아!”

“현명한 선택이다.”

결국 화염룡이 먼저 항복 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양보에 의해 아이티의 방으로 순간 이동을 할 준비를 마친 인원들.

밝은 빛이 다수의 인원들을 감쌈과 동시에.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거실에 북적이던 자들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 * *

아이티의 방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가장 생기발랄한 표정을 짓는 자가 있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방의 주인이기도 한 아이티였다.

“이 공기, 이 환경, 이 온도…… 정말 최고야……!”

보는 이로 하여금 어이없는 감상을 토로하게 하는 아이티의 말에 화염룡은 맹렬하게 살기를 뿜어냈다.

근처에 놓인 모니터 하나를 들어 공개 처형을 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소란을 일으켜 괜히 우석의 말을 길어지게 만들어 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되레 이 최악의 공간에 머물러야 할 시간만 늘리는 꼴이었다.

‘아니지…… 참자, 참아.’

화염룡이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반면, 릴리아나나 남서진은 워낙 많이 왔다 갔다 한 곳이었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참을 수 있었다.

김민혁은 그래도 화염룡보다는 이러한 방에 대해서 내성이 좀 있는 편인지 극단적으로 싫어하거나 하는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일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우석과의 첫 만남에서 그에게 찍혀 버렸는데, 괜히 여기서 난동을 부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후환이 두려워 이번만큼은 얌전하게 있기로 한 화술가, 김민혁이었다.

아이티가 정신을 차리는 듯한 모습을 선보임과 동시에.

“자자, 주목하도록.”

우석이 이들의 시선을 다시 한번 집중시켰다.

“아까 말한 서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간단히 너희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

잠시 말을 끊은 뒤.

유독 강조하는 말투로 새로운 룰을 추가시켰다.

“서열이 보다 상위권에 있는 비서의 말은 무조건 복종할 것. 물론 최우선으로 복종해야 할 상대는 나다. 알겠나.”

“네!”

“…….”

“…….”

“…….”

“못 알아들었나.”

우석이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고 나서야 이들은 겨우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릴리아나는 처음부터 우석의 말에 착실히 대답을 했다.

“이러한 서열 제도를 도입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화염룡과 릴리아나 때문이란 사실을 기억하도록.”

우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서진과 김민혁, 그리고 아이티의 시선이 두 여자에게로 향했다.

마치 ‘원흉이 니들이었냐’라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릴리아나는 우석의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화염룡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의 이마를 감싸 쥐었다.

“이럴 줄 알았는데…… 내 무덤을 내가 팠구나…….”

“후회는 나중에 하도록. 이제부터 내가 생각한 서열을 발표하겠다.”

드디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5명의 비서들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와중에, 우석이 최하위가 될 비서의 이름을 먼저 거론했다.

“김민혁, 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민혁이 양쪽 눈썹을 꿈틀거리면서 각오를 굳히고 있었다는 듯한 장난스러운 태도를 선보여 줬다.

첫 만남부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우석에게 거짓말 쇼를 했는데, 감히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그리고 아래에서 두 번째는…… 남서진, 너다.”

“……예, 알겠습니다.”

최하위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던 남서진이기에 우석의 말을 그대로 불만 없이 수용했다.

“그리고 3위는 화염룡과 소봉예화.”

“어째서 내가 3위야!”

릴리아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티보다 서열이 아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인지 박박 대들기 시작하는 화염룡이었다.

하지만 우석의 말은 냉랭했다.

“나름의 기준과 적정성을 가지고 판단한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우이씨…….”

불만이 한가득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우겨 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금세 포기해 버렸다.

남은 사람은 아이티와 릴리아나, 단둘뿐.

“2위는 아이티, 그리고 1위는 릴리아나로 고정한다.”

“예, 알겠습니다.”

“영광입니다, 우석 님.”

릴리아나가 고개를 푹 숙이면서 우석을 향한 충성심을 드러냈다.

한편, 졸지에 2위를 차지하게 된 아이티는 의외로 자신의 서열 순위가 높게 평가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매번 릴리아나에게 하대받고 살았기에 자신은 최하위권이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사실 아이티는 순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방면으로 활용도가 높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비서는 바로 그였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건 돈이기도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정보다.

아이티를 서열 2위로 만들어 놓음으로 인해 화염룡과 남서진, 그리고 머리와 화술이 뛰어난 민혁이 함부로 아이티를 자신의 개인 용도로 이용하지 못하게끔 막아 뒀다.

아이티를 오로지 우석과 릴리아나만이 통제할 수 있는 위치로 만들어 둔 것이었다.

정보라는 가치 있는 분야를 담당하는 비서였기에 아이티의 순위는 높게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릴리아나는 우석이 가장 신뢰하는 비서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해서 1순위로 굳어지게 되었다.

“각자의 서열 순위를 항상 인지하고 있도록.”

우석이 마무리 멘트를 들려주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세계의 주인이시여.”

“그냥 다른 비서들처럼 님 자만 붙여도 된다.”

“우석 님이시여, 한 가지 질문이 있사옵니다만.”

“……말해보도록.”

최하위를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김민혁의 표정에서는 절망과 짜증이라는 감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싱글벙글 웃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비서 서열 순위는 한 번 정해진 것으로 끝나는 겁니까?”

“무슨 뜻이지?”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순위 변동의 여지가 있는지에 대한 걸 묻고 싶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비서답게 단번에 이 비서 서열 시스템이 지니고 있는 핵심적인 구조를 찔렀다.

김민혁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열은 주기적으로 계속 바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했던 그대로 우석이 동일한 대답을 들려줬다.

“네가 이미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다. 서열은 언제든지 변동 가능하다.”

“과연, 그렇군요.”

“하지만 너무 자주 바뀔 예정은 없다. 새로운 비서가 들어왔을 때, 아니면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순위 변동이 있을 거다.”

“그 대답만으로 충분합니다.”

서열 순위 변동은 분명 있을 예정이다.

그 말이 나올 거란 확신이 있었기에 민혁은 최하위를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민혁은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이라면 분명 순위를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우석도 민혁이 스스로 서열 순위를 올릴 생각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우석에게 나쁜 일을 초래하는 게 아니었다.

여기서 서열 시스템의 또 다른 이로운 작용이 발생된다.

이 시스템은 민혁처럼 다른 비서들에게도 서열 순위를 올릴 수 있게끔 의욕이라는 걸 제공했다.

서열 순위를 올리고 싶으면 우석에게 많은 활약상을 어필하면 될 일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 우석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만큼 서열이 상승할 기회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릴리아나, 그리고 아이티가 있었다.

이들처럼 우석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면, 보다 높은 서열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비서들로서는 순위를 올릴 수 있고, 우석은 비서들의 능력을 더욱 많이 제공받을 수 있고.

서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그럼 열심히 해보도록.”

이 말을 마지막으로 우석이 비서들에게 하고자 하는 전달 사항이 끝을 맺게 되었다.

* * *

거의 퇴근 시간에 가까운 시간대에 겨우 반드 미디어 사무실로 돌아온 우석과 릴리아나, 그리고 남서진.

이 3명이 이제야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철수가 때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석을 찾았다.

“야, 우석아, 뭐 하다 이제 왔냐?”

“그냥 좀 처리할 일이 있어서.”

“처리할 일? 회사 일이냐?”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비서들에 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비서들의 일이 반드 미디어 사업에도 크나큰 영향을 주고 있으니…… 회사 업무와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보기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는 일단 넘기는 셈 치기로 한 모양인지 철수가 뭔가 중요한 정보 하나를 건네줬다.

“안 그래도 아까 방송국에서 전화 왔더라.”

“……뭐?”

순간 우석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매니지먼트도, 출판사도, 혹은 연재 플랫폼 업체도 아닌 방송국이라니.

우석의 반응을 보자마자 철수도 공감이 간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나도 처음에 방송국에서 연락 왔다고 했을 때, 너랑 같은 반응을 보였었는데. 하긴, 보통은 이게 정상이지.”

“그 전화, 누가 받았는데.”

“내가.”

“이 부장님하고 오 팀장님은?”

“급하게 외근 나가셨어. 퇴근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아마 그대로 퇴근할 거 같은데.”

“……그렇군.”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데 굳이 사무실에 들렀다가 다시 퇴근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둘째 치고.

“방송국에서 전화 왔다는 거, 무슨 내용이었어?”

“그냥 별다른 이야기는 안 했고…… 너랑 통화를 하고 싶어 하는 거 같더라고. 전화번호 따로 남겨 놓을 테니 너 오면 연락 달라고 하더라.”

“그 전화번호, 나한테 넘겨줘.”

“자, 안 그래도 너 오면 바로 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철수로부터 포스트잇 한 장을 건네받은 우석.

곧장 자신의 책상으로 건너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우석은 방송국이 반드 미디어에 전화를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경우의 수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한 가지 가능성이 높은 수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 아직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직접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보고, 우석이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는지에 대한 여부를 먼저 확답받아야 했다.

전화를 검과 동시에 신호음이 채 가기도 전에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여보세요.

“여보세요. 반드 미디어 대표 이우석이라고 합니다. 전화 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사무실로 들어오셨나 보군요! 반갑습니다. BLT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는 고준서 PD라고 합니다.

‘PD라…….’

그 순간.

우석은 암묵적으로 자신의 추측이 맞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윽고 고준서 PD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천천히 전화를 걸었던 용무에 대해 들려주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 측에서 눈물 비라는 웹소설을 TV 드라마로 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문의를 드리고자 전화를 걸었습니다만…….

순간 우석의 뇌리가 번뜩였다.

웹소설, 웹툰에 이어 드라마화까지.

드디어 우석이 원하는 흐름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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