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의 신 108화
36. 플랫폼(2)
연재 플랫폼에 관한 사항들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이임전.
그날 이후부터 딱히 그에 관해서 별다른 문제는 제기하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확인을 한 사항들인데, 어찌 태클을 걸 수 있겠는가.
본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결과가 나온 거 같아 도리어 만족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연재 플랫폼이 만들어져 있다고는 하지만, 홍보와 마케팅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플랫폼을 오픈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눈물 비와 같은 작품들을 4~5개 정도 마련한 뒤, 플랫폼 이용자수를 대폭 늘리는 데에 활용을 해야 했다.
결국 이 바닥도 콘텐츠 싸움 아니겠는가.
반드 미디어에서 충분히 좋은 콘텐츠들을 가지고 있어야 훗날 플랫폼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힘을 비축할 필요가 있었다.
“웹툰과 웹소설이라…….”
보다 많은 콘텐츠를 확보해야 했다.
연주의 웹소설을 비롯해 다수의 웹툰들이 지금 현재 제작 중이었다.
게다가 이임전과 오태준이 각각 웹소설, 웹툰 파트에서 실무와 영업을 번갈아 담당하고 있으니, 우석의 입장에서는 든든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반드 미디어 내부 업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보다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선 또 다른 변화의 계기가 필요했다.
우석이 생각하고 있는 그 계기는 다름이 아닌 비서라는 존재였다.
반드 미디어 콘텐츠 생산의 주축이 되고 있는 자가 바로 화염룡과 소봉예화다.
뿐만 아니라 아이티의 정보력 역시 막강한 무기가 되어 주고 있었다.
릴리아나의 순간 이동은 외근을 나갈 때 많은 도움이 되었고, 남서진은…… 여전히 쓸모가 없었다.
기본적인 워드 작업 같은 걸 알려 주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비서들처럼 우석의 사업에 특출나게 도움이 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남서진과 같은 부류만 빼고 나면 비서란 존재는 우석에게 상당히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우석은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비서들을 좀 더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많은 비서들을 보유하면 보유할수록, 우석이 돈으로 사들인 결재 권한이 더더욱 빛을 보게 되는 구조였다.
‘아이티에게 따로 연락을 해봐야겠군.’
정보력하면 역시 아이티 아니겠는가.
그에게 비서들의 위치 추적을 부탁해 두면, 보다 많은 비서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연락을 취하기 위해 사내 전화의 수화기를 들려던 찰나에.
우우웅!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이 가볍게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 수화기를 내려놓은 우석이 통화를 걸어온 상대방의 이름을 확인했다.
“……소봉예화인가.”
아니면 화염룡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녀가 왜 갑자기 전화를 걸어왔는지에 대한 이유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전화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지체 없이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여보세요.”
-아, 우석 오빠?
말투를 보아하니 화염룡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래, 나다. 무슨 일로 전화했지?”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누구지?”
-그건…… 아, 말하지 말라고 하네.
“……?”
-아무튼 비서들 좀 소집해 줬으면 좋겠어. 장소는…… 우리 집으로 해도 좋고.
“알았다. 그렇게 하지.”
갑자기 일이 생겼다.
처리하던 업무를 잠시 내려놓은 우석이 근처에서 자신의 부사수로 지명된 젊은 여사원에게 이것저것 교육을 시키고 있는 릴리아나를 불렀다.
“릴리아나, 잠깐 갈 곳이 있다. 준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부사수를 잠시 철수에게 맡긴 뒤, 릴리아나가 우석에게 곧장 다가왔다.
사무실 이전을 하고 난 이후에 좋은 점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면, 외부인들의 눈치를 볼 것 없이 마음껏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는 점일 것이다.
위층에 마련되어 있는 원룸 형태의 공간 하나를 지정해 출입하는 두 사람.
이윽고 우석이 릴리아나에게 화염룡과의 통화 내용을 대충 설명해 줬다.
“가급적이면 비서들을 모아서 집합시켜 달라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우선 아이티의 집으로 순간 이동을 한 다음에 녀석을 데리고 곧장 소봉예화의 집으로 순간 이동하자. 그러면 될 거다.”
“남서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차피 녀석도 아이티의 집에 있다. 내가 그쪽으로 심부름을 보냈거든.”
“예,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릴리아나가 손을 뻗어 우석의 오른손을 잡았다.
처음과는 다르게 지금은 순간 이동을 할 때마다 릴리아나의 비서로서의 능력이 상승함에 따라 몸과 굳이 맞닿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릴리아나는 일부러 우석의 손을 잡았다.
상세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사모하는 남자의 손을 잡고 싶은 여심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동하겠습니다.”
릴리아나의 말과 동시에 강한 빛이 발현되었다.
이윽고 눈을 슬며시 뜨자,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다수 사 온 남서진이 아이티와 간식거리를 입에 머물고 있는 모습이 제일 처음 들어왔다.
“태평하군.”
우석의 한마디에 아이티와 남서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그래.”
아이티가 대표로 우석에게 인사를 건넸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그의 태도에 최근 우석은 많은 만족도를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니터를 가지고 자주 협박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석은 아이티에게 많은 보장을 해 주고 있었다.
마음껏 가상의 세계에서 뛰어놀 수 있게끔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이 바로 우석 아니겠는가.
남서진이야 처음부터 충성적인 태도를 고집하고 있었으니 그다지 큰 차이는 없었다.
아이티와 남서진을 한 번씩 둘러보면서 오늘 찾아온 용건을 말해주기 시작하는 우석.
“화염룡이 비서들을 소집해 달라 요청해 왔다. 우리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해서 너희를 데리고 소봉예화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바깥으로…… 나간단 말씀이십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타인의 집이라서 실내겠지만.”
“…….”
아이티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릴리아나의 순간 이동 능력이 있으면, 굳이 바깥사람들 눈치 볼 필요도 없이 곧장 소봉예화의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다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우석이 직접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았는가.
우석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릴리아나가 또 그의 소중한 모니터에게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몰랐다.
“알겠습니다. 곧장 가도록 하죠.”
“음.”
고개를 끄덕인 우석이 릴리아나를 바라봤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석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릴리아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곧장 이동하겠습니다.”
릴리아나의 말과 동시에 바닥에 새겨지는 밝은 빛.
은은하게 빛나던 빛이 점점 강해지면서 이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윽고 머지않아…….
팟!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눈을 뜬 곳은 예상대로 소봉예화의 집 내부였다.
평소에도 자주 오고 가고 그랬지만, 오늘은 정말 특이하게 집 안 내부가 참으로 환했다.
“어서 와.”
거실 내부에 순간 이동을 해 온 이들을 향해 화염룡인지 아니면 소봉예화인지 모를 인격을 지닌 여자가 반갑게 맞이해 줬다.
옷차림이라든지 어투로 보아선 화염룡이 틀림없었다.
“은지 씨는 없나 보군.”
“비서에 관한 이야기라서 오늘은 집에서 작업하라고 했어. 나 잘했지?”
“……잘했다.”
억지 칭찬을 들려준 우석이 주변을 둘러봤다.
“너 말고 없나?”
“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녀의 말에 우석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화염룡은 분명 전화상으로 ‘말하지 말라고 하네’라고 했었다.
그 말인즉슨.
누군가로부터 우석에게 수수께끼의 존재가 자신의 흔적을 알리지 말라고 화염룡에게 부탁을 했다는 것을 뜻했다.
“우석 오빠는 역시 눈치가 빠르네.”
화염룡이 살짝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처를 취했다.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지금 여기에는 없어.”
“그게 무슨 뜻이지?”
“잠깐 일이 있어서 그거 끝내고 온다고 했거든.”
“…….”
미리 대기하고 있을 줄 알았건만.
우석을 보자고 했던 그 존재는 아직 약속 장소에 도착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비서 주제에 건방지군.’
우석이 속으로 살짝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는 자신을 보고 싶다 청했던 그 존재가 필히 비서일 거란 생각을 전부터 하고 있었다.
물론 아닐 확률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을 봤을 때, 전(前) 세계의 주인을 모시던 비서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지?”
우석이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는 순간.
띵동!
소봉예화의 집 내부에 초인종 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그러자 화염룡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얼마 안 기다려도 될 거 같은데?”
“…….”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봐. 금방 데리고 올게.”
현관문으로 나가는 화염룡.
그녀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안색이 파랗게 질린 아이티가 소파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
* * *
현관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절로 탄식이 나올 만큼 훤칠한 키와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는 훈남이었다.
처음 우석이 봤을 때는 연예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수준이 높은 미청년이 우석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등장과 함께 릴리아나가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이름을 언급했다.
“김민혁…….”
“오랜만이다, 릴리아나.”
목소리 톤 자체도 비교적 듣기 좋은 톤이었다.
‘릴리아나와 아는 사이라면…… 역시 저 녀석도 비서인가.’
우석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릴리아나는 그래도 전(前) 세계의 주인을 모시는 비서들 중에서도 그나마 직급이 높은 축에 속하는 비서였다.
그래서 웬만한 비서들의 얼굴과 이름은 거의 다 알고 있었다.
반면에 폐쇄적인 생활을 즐겨 하는 아이티의 경우에는 저런 비서 모른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티가 마음만 먹으면 비서들의 신상 정보를 알아내는 데에 많은 일조를 기할 수 있었지만.
세계의 주인이 명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아이티는 자원해서 굳이 비서들의 소재지라든지 신상 명세를 파악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애초에 아이티는 릴리아나와 화염룡 덕분에 비서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도 괴롭힘 아닌 괴롭힘을 당하다 보니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라고 하는데…… 비서들 사이에서도 폐쇄적인 생활을 해 온 아이티의 입장이 십분 이해가 되는 대목이라 보였다.
그건 둘째 치더라도, 지금 아이티의 폐쇄적인 생활보다 중요한 건 바로 눈앞에 있는 김민혁이라는 비서의 정체였다.
“너도 비서란 말이지.”
우석의 눈이 민혁을 응시했다.
비서라고 한다면, 신분 차이에서 이미 갑과 을의 직위가 결정되는 셈이었다.
비서들은 우석의 결재 없이는 본인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우석에게 을로서 복종을 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남자의 눈빛은 결코 복종하는 을의 눈빛이 아니었다.
“글쎄요. 비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확신하진 못할 텐데요.”
“……뭐라고?”
김민혁의 비꼬는 말투에 릴리아나가 성을 내기 시작했다.
“말을 낮춰라, 김민혁. 세계의 주인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지?”
“세계의 주인이라……. 듣기 좋은 울림이지. 하지만 말이다, 릴리아나. 내가 이런 말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양손을 주머니 속에 넣은 김민혁이 도발적인 시선으로 우석을 응시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바로 나, 김민혁이 새로운 세계의 주인 자리에 앉게 되었다! ……라고 말이야.”
순간.
우석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