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갑질의 신-107화 (107/201)

갑질의 신 107화

36. 플랫폼(1)

아이티라는 자와 만나기 전까지, 이임전은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다.

컴퓨터 계열에서 천재성을 보유한 남자. 뛰어난 기술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 들어서 엘리트성이 짙게 묻어 나오는 남자일 거라 생각했다.

하나 아이티와 직접 마주하게 되었을 당시. 이임전이 품었던 그러한 이미지들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그는 그저 방구석 폐인에 불과했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다수의 쓰레기들.

그 모습에 이임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악취의 원인이 어디서 나오나 했더니만, 멀지 않은 곳에 그 이유가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나서 손님한테 인사해라.”

“……저 남자는 누굽니까.”

부스스한 눈을 유지하며 묻는 아이티.

그러자 우석이 곧장 입을 열었다.

“우리 반드 미디어에 새로 합류한 기획팀 이임전 부장이다.”

“……안녕하세요.”

꾸벅.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했다.

누가 봐도 성의가 안 느껴지는 그런 인사였지만, 현재 이 방의 상황이 너무나도 충격적인 나머지 이임전은 이런 아이티의 건성 인사에도 제대로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저기…… 대표님?”

“무슨 일이시지요.”

“이분이 정말…… 그 숨겨진 사원 맞습니까?”

아직까지도 제대로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인지 다시 한번 더 우석에게 물었다.

혹시 몰래카메라 같은 건 아닐까.

반드 미디어는 신입을 받으면 늘 이렇게 짓궂은 이벤트 같은 것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재차 물었다.

하나 우석의 대답은 여전했다.

“예, 맞습니다.”

“허허…… 믿을 수가 없군요.”

어쩐지.

왜 회사에서 일을 안 하고 작은 원룸에서 숨겨진 사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방구석 폐인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회사 일을 하겠는가.

아이티의 입장에선 차라리 이렇게 단독으로 공간을 할당해 그곳에서 숙박과 업무를 겸하게 만들어 주는 쪽이 일의 능률이 더 잘 오를 것이다.

다만 그렇다 치더라도 이임전의 입장에선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쩌다가 이런 방구석 폐인과 대표님이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실력만 좋다면 우석은 그자를 반드 미디어 식구로 데려올 용의가 충분했다.

반드 미디어의 상징이 바로 실력주의 아니겠는가.

물론 철수와 릴리아나는 좀 다른 경우의 수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방구석 폐인에게 따로 이런 원룸까지 마련해 줄 정도라면, 분명 어느 정도 능력은 있을 터.

실제로 연재 플랫폼 사이트를 단기간 내에 훌쩍 만들어 버렸다고 하니…… 그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능력은 인정할 수 있었다.

물론 퀄리티의 여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여지는 아직 충분했다.

“네가 만든 연재 플랫폼을 직접 보러 왔다.”

우석이 방문 목적을 간략하게 들려줬다.

어제 메신저를 통해서 미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터라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아이티였기에 별다른 질문 없이 곧장 컴퓨터부터 켜기 시작했다.

좋은 컴퓨터를 쓰고 있는 탓에 부팅 또한 채 20초가 걸리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몇 번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이티.

사소한 모습일지라도 뭐라고 할까. 그에게서 숨은 고수의 향내가 났다.

떡진 머리에 후줄근한 옷차림만 아니었다면 아이티의 이런 열정적인 자세에 좀 더 감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이티의 캐릭터성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였기에 차마 이임전으로선 더 이상 태클을 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방구석 폐인에게 이임전이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설교를 늘어놓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속으로 아이티에 관한 연이은 놀라움을 억누르며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임전.

그사이, 아이티가 사이트를 하나 띄웠다.

“작업하고 있는 내용의 결과물입니다. 연재, 그리고 유료 연재 결제 시스템을 비롯해 뷰어 기능까지 완벽하게 도입했지요.”

“세상에……!”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어 보이던 이임전이 작은 부탁을 해 왔다.

“제가 잠깐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자신의 컴퓨터를 남이 만지는 것에 대해선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티였으나, 릴리아나가 뒤에서 버티고 있는데 뭐라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조금만 말을 잘못해도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모니터들의 수명이 단기간 내에 끝나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티의 천적, 릴리아나가 뒤에서 감시를 하고 있는 사이.

대략 10분 정도 사이트를 여기저기 관찰하던 이임전이 계속해서 질문을 해왔다.

“이 뷰어는 내부 삽화 이미지도 들어갈 수 있도록 설정이 되어 있습니까?”

“예, 가능합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깐만요.”

아이티의 눈빛이 순간 ‘의심이 많은 아저씨구만’이라는 감정을 담아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마우스를 잡고서 이임전이 요구하는 것들을 착실하게 보여줬다.

대략 두 사람이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연재 플랫폼 사이트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미 우석은 하루 전날, 퇴근하기 전에 잠시 아이티에게 들러서 사이트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미리 한 번 확인을 해봤었다. 그때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이임전이 물었던 것들에 대해서 아이티로부터 확인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아끼고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임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라는 뜻이 컸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이 아닌 이상, 어떠한 사실을 믿는 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편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그냥 한 번 이렇게 보여 주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기에 일부러 말을 아끼고 있었다.

이임전이 만족할 때까지 계속해서 사이트를 살펴본 결과.

“……살다살다 이런 완벽한 플랫폼은 처음 봤습니다. 시험 단계에 불과함에도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군요.”

“저의 숨겨진 비장의 카드니까요.”

“하하, 대표님께서 아껴 두시는 이유가 뭔지 알겠습니다!”

처음 봤을 때, 아무 쓸모도 없는 방구석 폐인이란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아이티는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우수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이 정도면 어엿한 연재 플랫폼 사이트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지금 당장 서비스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으니…… 이임전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였다.

이것으로 직접 확인을 했으니…….

더 이상 문제 삼을 만한 이유는 없어졌다.

* * *

어두컴컴한 방 안.

스탠드 불빛에 의지한 채 태블릿 장비 위로 무자비하게 그림을 그려 대기 시작하던 소봉예화의 입에서 으스스한 발언이 뿜어져 나왔다.

“크크큭…… 죽어라, 인간이여!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저기, 예화 작가님, 눈물 비 웹툰은 미스터리 추리물이 아니에요.”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은지.

누가 보면 잔혹한 장면의 일부를 그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몰랐지만, 막상 그리는 콘티는 달달한 로맨스물 그 자체였다.

처음 소봉예화를 봤을 때, 은지는 사실 그녀가 무섭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같이 숙박을 하면서 이제는 이런 모습도 점점 익숙해졌다.

심각한 중2병을 앓고 있는 여성, 소봉예화와의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

띵동!

갑자기 예화의 집에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누구세요~”

콘티 작업으로 바쁜 예화를 잠시 놔두고 방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현관문으로 향하는 은지.

인터폰 너머로 보이는 남자는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치킨 시키셨죠?]

“치킨…… 이요?”

[네.]

“……?”

은지는 그런 걸 시킨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예화 씨가 시킨 걸까.’

하기야,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소봉예화는 아침부터 저녁인 지금까지 물만 마시면서 콘티 작업에 매진 중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눈물 비 원작 소설 연재분도 써야 했으니…… 작업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마감에 쫓기게 된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저녁 시간에 화염룡으로 변해 클럽에 놀러 가는 일이 없었다면, 마감일에 쫓기는 일 같은 건 없었을 터였다.

또 다른 인격 덕분에 마감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그것도 결국은 자업자득 아니겠는가.

배가 고픈 나머지 은지 몰래 치킨을 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잠시만요. 저희가 시킨 거 맞는지 확인 좀 해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배달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다리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은지가 여전히 ‘죽어!’라고 말하면서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과 달콤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콘티로 표출하고 있는 소봉예화를 바라봤다.

아마도 솔로의 서러움을 폭발시키는 게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해 보던 은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예화 씨! 혹시 치킨 시키셨어요?”

“……치킨?”

“네.”

“그런 거 시킨 적 없는 거 같은데.”

“그럼 잘못 배달 왔나 보네요.”

“하지만 먹고 싶기도 하군…… 나의 주린 배가 식욕을 갈망하고 있어…….”

“…….”

배가 고플 만도 했다.

삼시 세끼를 내리 굶었으니, 배가 안 고픈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니겠는가.

여하튼 예화로부터 치킨 주문 여부를 확인한 이후.

다시 인터폰을 들어 배달원에게 말을 했다.

“저희는 시킨 적 없는 거 같아요.”

[네? 정말입니까? 이런…… 분명 여기가 맞다고 했는데…….]

“잘못 배달된 거 아닌가요?”

[난감하네요…….]

헬멧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배달원의 당황스러운 감정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재차 거절을 하려고 하는 순간.

“방금 그 목소리…….”

거실로 나온 소봉예화가 현관문 쪽을 바라봤다.

“잠깐만.”

어느 순간 은지의 곁에 접근해 온 소봉예화가 그녀로부터 인터폰의 수화기를 빼앗다시피 했다.

깜짝 놀란 은지였으나, 그녀의 반응을 깡그리 무시한 채 소봉예화가…… 아니, 어느샌가 인격을 바꾼 화염룡이 재차 말을 이어 갔다.

“천하의 네가 치킨 배달부가 다 되어 있다니. 놀랄 만한 일이네.”

[그 목소리는…… 소봉예화냐?]

“땡. 화염룡이다.”

[…….]

남자는 소봉예화의 또 다른 인격이 지닌 별칭을 알고 있었다.

화염룡과의 대화를 끝낸 직후.

남자가 헬멧을 벗는 순간, 은지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잘 몰랐지만, 헬멧을 벗고 나니 제법 미청년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또렷한 이목구비.

날카롭게 선 콧날.

약간 이국적인 느낌마저 나는 남자의 외모에 은지의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순정 만화에서 나올 법한 그런 미청년처럼 생겼지만.

한 손에는 치킨이 포장되어 있는 검은 봉지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있었다.

[직업에 귀천 없는 법이라고, 화염룡. 이래 봬도 배달부도 꽤나 매력적인 직업이야.]

“하지만 네 성격상, 배달부로 만족하면서 여생을 살 만한 놈은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

“하긴, 나도 네 심정은 이해해.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 또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으니까.”

우석과 만나기 전까지 화염룡은 소봉예화의 인격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우석의 결재 권한이 아니면 그녀의 비서로서의 능력을 발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화염룡이 아닌 소봉예화로 일을 해야만 했었다.

화염룡이라는 또 다른 인격 자체도 소봉예화의 능력 중 일부였으므로 쉽사리 인격이 바뀌질 않았다.

물론 우석을 만나기 전에도 화염룡의 인격을 불러오는 일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기간 화염룡의 인격을 유지시키진 못했다.

소봉예화의 창작 능력, 그리고 화염룡의 안목.

이 모든 것을 봉인당한 소봉예화는 현관문 너머에 있는 남자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우석과의 만남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하나 과연.

눈앞에 있는 남자도 우석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을지에 대해선 화염룡도, 소봉예화도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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